소설리스트

더 랩스타-40화 (40/309)

< Verse 4. Cross Over >

***

'Band L&S8 Crew'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고, 공연진과 뒤풀이 참여를 원하는 지인들은 근처의 고기뷔페로 이동했다.

2층을 통째로 빌려서 성인과 미성년자의 자리를 나누고 고기를 구워먹기 시작하면서 초면이었던 사람들의 거리감마저 사라졌다.

뒤풀이 장소에서 화제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은 오늘 공연의 주역인 L&S 멤버들과 미주, 888 크루의 상현, 준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 뒤풀이 장소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놀랍게도 뮤지션들에게는 익숙한 잡지사인 쇼 비즈니스의 황 편집장이 인터뷰를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개인 인터뷰는 이정도면 됐고, 이제 공연에 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죠? 이건 내가 나름대로 정리하고 축약해서 올리는 부분이라는 걸 미리 말해두고 싶어요.”

“네. 말씀하세요.”

“우선, 공연을 처음 기획할 때부터 크로스 오버라는 주제가 있었나요?”

“아, 그건 아닙니다. 제가 상현이의 공연을 처음 보고 랩 메탈이라는 장르에 대한 욕심이 생겨서 섭외를 진행했었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피쳐링 게스트로 몇 곡만 부탁할 생각이었죠.”

민식의 대답에 L&S의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888 크루의 비중이 커졌나요?”

“첫째로 공연 라인에 준형이가 합류했기 때문이죠. 한 명의 래퍼와 밴드가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은 두 명의 래퍼와 밴드가 보여줄 수 있는 그림과는 양과 질이 다르니까요. 만약 888 크루의 탄생이 한 달만 빨라서 888의 다른 멤버들도 공연에 참여할 수 있었다면 러닝 타임을 반을 가져가는 정도의 콜라보레이션이 성사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두 명의 래퍼…….”

황 편집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에 미친 듯이 타이핑을 했다. 그와 동시에 녹음기도 반짝거리며 방민식의 목소리를 녹음했다.

“첫째가 준형 군이 합류라고 했죠? 그럼 다른 이유도 있나요?”

“아, 별건 아니고 상현이랑 준형이가 이렇게 곡이 많을 줄 몰랐던 것도 있죠. 한 두곡 정도 같이하려고 가지고 있는 곡 좀 들려달라니까 끝도 없이 곡이 쏟아지더라고요?”

“오, 그래요?”

황 편집장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번에는 준형에게 물었다.

“가지고 있는 곡이 몇 곡이나 되나요?”

상현과 준형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대답하기가 되게 애매했다.

“저희가 곡을 작업하는 방식이 밴드와는 달라서 몇 곡이 있다고 말씀드리기는 애매한데요……. 오늘 공연했던 곡이 888 크루의 공식적인 곡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음? 그럼 다른 곡들은 미완성곡들이란 말인가요?”

“그런 건 아니고…… 어, 저희는 주제를 생각하고, 가사를 스케치하고 비트를 고르는 순간부터 그게 저희가 사용할 수 있는 곡 목록에 포함이 되거든요. 그런데 어딘가에 들려줄 수는 없죠. 왜냐하면 그건 저희 팀 사람들만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니까요.”

상현의 두루뭉술한 대답에 황 편집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상현 군, 다르게 물을게요. L&S 밴드랑 같이 공연을 하자! 라고 마음먹은 순간에는 즉시 공연을 할 수 있는 곡이 몇 개였나요?”

“한 개요.”

“한 개?”

“네. 런디엠씨의 Walk this way를 커버하는 형식의 Run this town이란 곡 한 개뿐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황 편집장뿐만 아니라 L&S 밴드의 멤버들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니들이 매일 연습실로 들어보라고 가져온 곡들은 뭔데?”

“그거야 전날에 만든 곡들이죠. 아니면 엠피쓰리에 비트를 담아가서 준형이랑 학교에서 만들었거나.”

“뭐라고?”

상현의 대답에 준형을 제외한 모두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상현은 서로 다른 장르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를 이해하고 있었다.

랩은 비트만 주어졌다면 한 곡을 완성하는데 얼마가 걸릴지 알 수 없는 장르다. 10분 만에 하나의 곡이 완성될 수도 있고,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며 1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작 방식의 차이가 장르간의 우열을 나누는 기준은 될 수 없다.

하나의 예로 제이지(Jay-Z)의 2001년 작인 전설적인 명반 ‘더 블루프린트(The Blueprint)’는 제작기간이 고작 2주다. 게다가 가사는 2일 만에 완성되었다.

누군가는 제작기간을 근거로 대충 만들어진 앨범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더 블루프린트 앨범은 빌보드 모든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고, 싱글들도 10위권 안으로 진입했으며, 온갖 평론가의 찬사를 받은 명반이다.

그런데 이러한 앨범 수록곡 중 몇몇 곡들은, 혹은 몇몇 벌스(Verse)는 미리 가사를 쓰지 않고 ‘프리스타일(Freestyle: 즉흥으로 부르는 랩)’로 녹음된 것들이다.

때문에 상현은 랩에서의 제작기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역시 ‘움직여야지’처럼 1달 가까이 끙끙 앓아가며 고생고생해서 만든 곡이 있었지만.

“본인이 제이지 급이라는 건가요?”

상현의 이런 설명에 황 편집장이 능글맞게 웃으며 물었다. 상현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편집장님도. 그리고 움직여야지 같은 곡들은 긴 시간이 걸려 완성한 곡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상현 군은 음악을 시작한지는 얼마나 됐죠?”

“글쎄요? 그걸 딱 나눌 수는 없죠.”

상현은 물론 딱 ‘이때부터 음악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한 사람이지만 짧은 음악 경력이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었다.

그러나 준형이 3달이 안됐을 거라고 대답을 했고, 황 편집장은 약간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도 잡다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힙합과 밴드 음악의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고, 객원 키보디스트인 미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존경하는 뮤지션에 대한 이야기 까지.

그렇게 인터뷰 시간은 1시간을 훌쩍 넘어 2시간으로 치달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각 팀의 리더에게 하나씩 물을 게요. 우선 밴드 L&S의 가까운 목표는 뭐죠?”

“어, 우선은 팔월에 있는 전주 월드 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벌에서 입상하는 것입니다.”

“음. 밴드 경연 부분으로 참가하나 봐요?”

“네.”

민식의 대답에 황 편집장이 고개를 끄덕했다.

“그럼 888 크루는?”

“음…….”

준형이 머뭇거리며 상현에게 눈빛으로 헬프 요청을 했지만 상현은 모른 척을 했다.

“저희는 광주에서 ‘힙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모든 사람이 888 크루를 떠올리게 만들겠습니다.”

“그게 가까운 목표라고? 대단한데?”

“아…… 가까운 목표…….”

준형이 머리를 긁적이고 모두 웃었다. 황 편집장도 웃으며 노트북을 접었다.

“자, 인터뷰는 여기서 끝이고, 아마 오늘 인터뷰 내용은 쇼 비즈니스 칠월 호, 뮤직 인터뷰 부분에 실릴 거예요. 발매일은 8월 1일이에요. 그 전에 허락받고 싶은 부분들이 있어요.”

“허락이요?”

“잡지에 인터뷰 전문을 실으면 좋겠지만 그건 지면상 불가능하고, 제가 압축하고 축약하는 부분에서 대화가 조금 편집될 수도 있어요. 가급적 원 뉘앙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데 가끔 불만 있는 뮤지션들이 있더라고요.”

“아, 괜찮습니다.”

“그리고 오늘 공연 포스터 사진이랑 공연 중간 중간 제가 따로 찍은 사진들을 잡지에 기재해도 괜찮겠죠? 코멘트도 달아서?”

“물론입니다. 이왕이면 잘 나온 얼굴로 해주세요.”

드러머 황인수의 너스레에 황 편집장이 웃었다. 그들은 웃는 낯으로 악수하며 헤어졌고, L&S와 상현, 준형은 고기 뷔페로 돌아갔다.

“이제 술 먹자!”

“술술!”

인터뷰를 끝으로 모든 일정이 끝난 그들의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다.

< Verse 4. Cross Over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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