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4. Cross Over >
노이즈는 일부러 삽입한 거였고, 당황하는 액션은 상현과 사장님의 맞춰진 연기였다.
관객들은 그제야 상현과 사장님의 발 연기에 웃음을 터트렸다. 분위기가 한층 살아났다.
“다같이! 광주!”
“업-!”
“광주!”
“업-!”
“빛 광 고을 주! 광주!”
“업-!”
“문화와 예술의 도시 광주!”
“업-!”
우리가 살아가는 광주 업!
상현은 공연을 준비하며 광주를 주제로 제이지의 Empire state of mind 같은 트랙을 만들고 싶었다.
대체적으로 힙합 노래의 수명은 그렇게 길지 않다. 물론 발라드나 메탈의 수명도 비슷비슷하다. 하지만 크게 다른 점은 랩 뮤직은 통상적으로 ‘리메이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가까운 예로 이문세의 ‘붉은 노을’은 많은 리메이크 트랙이 있다. 하지만 에미넴의 Lose yourself 같이 12주나 빌보드 1위를 수성한 공전의 히트곡도 밴드 커버(Cover : 따라 부름)를 제외하면 리메이크 된 곡이 없었다.
그럼 어떤 힙합 노래가 가장 수명이 길까?
어떤 곡이 뮤지션 사후(死後)에도 플레이 될까?
상현의 생각으로는 단연 빅 애플(뉴욕의 애칭)에 보내는 러브 레터, Empire state of mind였다. 뉴욕을 대표하는 노래가 뭐냐는 질문에 미국인들 대부분은 제이지의 노래를 떠올리니까.
광주역 도착 미녀들을 포착
예향의 도시답게 센스 있는 옷차림
무등산 정기가 내려앉은 도시
그 덕에 다른 곳보다 강한 억양 토씨
오늘 밤엔 다 모여라 금남로
전라남도에서 가장 큰 난로
무등산 폭격기, 오늘도 품격 있게
형님 누나 동생들 전부다 성격 있제
상현의 경쾌한 랩과 유쾌한 가사에 관객들이 들썩였다. 움직여야지가 양주처럼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면 이 노래는 막걸리다. 그것도 무등산 막걸리.
사실 ‘광주 UP’이란 노래는 원곡이 있다.
상현의 입장에서는 약간 억울한 면이 있는 일이었다. 상현은 스탠다드의 비트를 듣자마자 ‘광주 UP’이란 단어를 생각하고 후렴구를 먼저 만들었다.
그리고 벌스의 가사를 쓰는데 뭔가가 생각날 듯 말 듯한 느낌이 자꾸 들었다. 그러나 결국 끝까지 생각해내지 못했고 작업을 끝낸 다음날 ‘오사카 UP’이라는 노래가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쩌면 상현이 기억을 못함이 당연했던 게, ‘오사카(Osaka) UP’은 그가 스치듯 지나간 노래였다.
일본의 어떤 래퍼가 오사카의 명소, 문화를 레퍼젠트(Represent)하는 랩을 쓰고 뮤직비디오를 찍었는데, 그게 일본 각지의 래퍼들을 자극해 수많은 리믹스가 양산됐었다.
도쿄 업, 신주큐 업, 카나가와 업 등으로.
상현은 과거에 모 힙합 블로그에서 ‘도쿄 업’을 우연해 접했고 블로그에 같이 포스팅 된 원곡 ‘오사카 업’을 한 번 스치듯 들은 것뿐이었다.
몇 년도 노래인지 기억이 안 나서 구글이나 야후를 검색해봤지만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한참 뒤의 노래인 듯싶었다.
상현은 몰랐지만 ‘오사카 UP’은 신고(SHINGO) 니시 나리가 2012년 7월에 발표한 노래였다.
아무튼 상현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찝찝했다.
광주 UP은 분명 그가 작업한 곡이긴 한데 왠지 미래의 곡을 훔친 것 같고, 아니라고 부정하자니 무의식 속에 있는 ‘오사카 UP’의 영향을 받은 것도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을 만들 당시에는 오사카 UP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고.
결국 상현은 ‘광주 UP’을 음원 발매나 앨범 수록 등의 상업용으로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공연에만 활용하기로 결정했었다.
후일 원작자가 ‘오사카 UP’을 만들면 우연의 일치인 척 하기로 마음먹었고.
사실 버스타 라임즈(Bustar Rhymes)의 ‘뉴욕 싯(New York Shit)’ 같은 노래도 발매는 2006년이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 이전부터 충분히 활용되었던 소재니까.
거시기가 거시기 하는 것이 신기한 것이지
이 시끼가 멋있기만 하는 건 아따 좀 거시기
이미 고삐는 풀렸지 사투리를 뱉은 뒤
등번호를 세기지 우리는 전부 공육이(062)
그래 여긴 자랑스러운 광주 Love
10월엔 충장 축제와 비엔날레
상현은 광주 UP을 부를 때마다 자신이 아직 사투리가 어색하다는 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곡은 전반적으로 광주의 억양이 들어가게 만들어진 노래였고, 관객들 대다수가 신나는 랩 리듬 때문에 어색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한 번 더! 광주!”
“업-!”
“광주!”
“업-!”
상현은 업! 을 외치는 순간마다 무릎을 굽혔다가 피며, 마이크를 쥐지 않은 오른손을 역동적으로 올렸다. 금방 관객들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준형은 아예 마이크를 대지도 않고 춤을 추듯 두 손을 역동적으로 들어올렸다.
관객들의 몸짓으로 객석이 물결 쳤다.
“빛 광 고을 주! 광주!”
“업-!”
문화와 예술의 도시 광주 업!
우리가 살아가는 광주 업!
상현은 광주 UP을 만들며 광주에 받치는 러브레터라는 의의 외에도 한 가지 욕심을 더 가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후크 송’을 만들어보겠다는 의도였다.
후크 송(Hook Song)이란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여러 번 루핑(Looping) 되는 곡을 말한다.
한국에서 처음 후크 송의 대중적 유행을 불러일으킨 노래는 2007년 원더걸스의 ‘Tell Me’다.
디스코 복고풍의 춤과 중독성 있는 후렴구를 장착한 텔미가 한국 가요계에 가져온 열풍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었다.
그 뒤로 한국 가요계의 훅(Hook)은 간소하고, 반복적이며 쉽고 멜로디컬해 중독성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알게 모르게 힙합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상현은 유행 시기를 조금 앞당겨서 ‘광주 UP’에서 아주 중독성 있는 훅을 선보이고 싶었다.
물론 2005년이라고 후크송이 없는 건 아니다.
반복되는 길이가 조금 길뿐이지 트로트에서 자주 쓰이던 작법이며, 특히 만화영화 주제가에서 자주 쓰인다.
치키치키 차카차카 쵸코쵸코쵸-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제곡 같이 말이다.
광주 UP! 광주 UP!
빛 광(光) 고을 주(州) 광주 UP!
문화와 예술의 도시 광주 UP!
우리가 살아가는 광주 UP!
상현은 광주 UP에서 중독성 있는 후렴구를 만들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사람들이 따라 하기 쉬운.
훅이 끝나고 벌스 투가 시작되었다.
미향의 고장. 전라남도 안
상다리 부러지게 먹어봐 한 상
아따 시방 자실 게 허벌나게 많어
욕하는 게 아닌 거 여기 사람들은 알어
오리탕, 떡갈비, 먹고선 다 뻑가지
요리만이 아냐 진짜는 밑반찬, 곁가지
순대는 초장, 콩국수는 설탕
어디 한 번 먹어보면 없어져 니 ‘설마’
상현의 랩은 움직여야지를 부를 때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일견 듣기에는 준형의 움직여야지 벌스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준형은 상현의 광주 UP을 들으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말하는 듯한 느낌.’
정말로 관객들에게 말하는 것 같다. 순대는 초장이고 콩국수는 설탕이지? 내 말 맞지? 라는 질문에 관객들이 좋아 죽는다.
굳이 자신처럼 라임을 강하게 강조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라이밍(Rhyming)이 된다. 자신의 랩이 라임을 타이밍 맞게 ‘박아’ 넣었다면 상현은 자연스럽게 라임이 ‘위치’하는 것 같다.
‘언제 저렇게 잘해졌지.’
사실 녹음하고 들어볼 때는 잘 몰랐다.
상현이 자신보다 조금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대에 서보니 알 수 있다. 라이브를 들어보면 느껴지는 갭이 있다. 하지만 준형은 전혀 질투가 나거나, 기분 나쁘지 않았다.
상현의 저 등을 따라잡고,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반드시 올바른 길로 갈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빵이 먹고 싶을 때는 궁전제과로
광주의 낙원상가 세종악기사로
참이슬도 좋지만 우리 입엔 잎새주
순위는 상관없지 We love 광주 타이거즈
광주 UP. 광주 UP.
그래 자랑스런 고향 광주 LOVE
내 맘의 위치는 언제나 광주 옆
우리가 살며 완성하는 광주 업(業)
‘이런 게 랩이구나.’
랩이 낯선 관객들은 상현의 랩을 통해 랩과 노래의 차이점을 명확히 느끼고 있었다.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노래가 ‘감성과 감정’에 호소한다면 랩은 ‘이성과 인식’에 호소하는 느낌.
그들이 가사 하나하나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정도로 즐길 수 있었을까?
광주!
“업-!”
광주!
“업-!”
여중생들도, 상미의 친구들도, 888크루 멤버들도, 황 편집장도, 인디 밴드 사람들도 다 함께 업!을 외치고 있었다.
빛 광(光) 고을 주(州) 광주!
“업-!”
문화와 예술의 도시 광주 UP!
우리가 살아가는 광주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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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rse 4. Cross Over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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