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4. Cross Over >
***
“아…… 너무 감사합니다.”
상현이 관객들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저는 888 크루의 이상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친구는 저희 크루의 리더인 신준형입니다,”
“안녕하세요. 888 크루의 리더 신준형입니다.”
공연 때는 그렇게 시끄러웠던 관객들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조용해졌다.
관객들도 궁금한 거다. 저 새파랗게 어린놈들이 도대체 누군지.
“처음에 L&S 밴드 형들이 함께 공연을 하자고 했을 때 경험이 없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네요. 너무 잘하는 것 같습니다.”
상현의 농담에 관객들이 피식 웃었다.
“눈치 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베이스에 문제가 생겨서 큐시트가 꼬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무슨 곡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방금 하고 싶은 곡이 생겼습니다. 형, 한 곡 더해도 괜찮겠죠?”
상현의 물음에 민식이 웃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방금 문자가 왔는데 저희 베이시스트가 근처 악기사에서 케이블을 사고, 베이스가 연주되는지 확인했다고 합니다. 아마 베이스와 스피커를 연결하는 케이블이 문제가 된 모양인데,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라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민식이 상현에게 물었다.
“그래서 상현 씨는 이제 무슨 곡을 할 건가요?”
“아, 형 미쳤어요? 소름 돋게 상현 씨는 무슨.”
“어? 아니 무대잖아…….”
“저 형이 저래요. 저래서 여자 친구가 없나 봐요. 혹시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저 기타 치는 형을 보고 막 가슴이 설렌다거나, 저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다던가, 함께 데이트를 해보고 싶은 분은…….”
상현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뭔가를 뒤졌다. 민식이 당황해 손사래를 쳤다.
“아니, 핸드폰 번호 같은 건 형이 개인적으로…….”
“공육이 육공팔에 칠천번으로 전화해보세요.”
“엉?”
062면 광주 지역번혼데?
“일곡 병원 번호입니다.”
“아…….”
“아무래도 전문의의 진료를 받는 게 좋겠죠?”
잠시 멍 때리던 방민식은 뒤늦게 자신이 평생 놀림거리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L&S멤버들이 킥킥 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미주도 웃고, 준형도 웃고, 심지어 888크루 멤버들도 웃고 있다. 관객은 말할 것도 없고.
아아.
어디선가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당신은 X맨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물론 X는 멍청이, 머저리, 등신, 김칫국과 동의어입니다. 김칫국 맨.’
아아.
역시 음악은 홍대에서 해야겠지? 언제 서울로 올라갈까? 후후. 역시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가야하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가야지.
민식이 강한 현실 부정을 하는 중에도 상현의 멘트는 쉬질 않았다.
“와, 이 형. 막 말리는 것처럼 하면서 제대로 안 말리고 기대하는 거 보셨죠? 이 형이 이렇습니다.”
와- 하는 웃음이 터졌다.
“이 불쌍한 분에게 박수 한 번 주세요.”
웃음과 함께 박수가 터졌다.
상현은 오랜만에 단합대회에서 회사 신입사원들을 괴롭히던 기분을 만끽하며, 가슴 깊은 곳에서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꼈다.
“장난이고, L&S 멤버에 대한 것을 알고 싶으시면 싸이월드에 밴드 L&S라고 치시고, 저희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면 888크루라고 치시면 됩니다. 쉽죠?”
상현은 여전히 현실 부정을 하고 있는 민식과 아직도 웃고 있는 황인수를 무대 밑으로 내려 보냈다.
이제 무대 위에는 준형과 상현만 남았다.
“이번 곡은 오늘 공연에서 유일한 솔로곡입니다.”
준형이 살짝 뒤로 물러났다. 이번 곡에서 준형은 훅과 더블링을 도와주는 백업 포지션이었다.
상현이 잠깐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말만 남녀노소인 게 아니라 정말로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도 계셨다.
여기 모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광주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상현은 과거에는 광주에 대한 애정이 전무했다.
스무 살 때 서울로 대학진학을 한 뒤로 부모님의 납골당에 들릴 때 외에는 광주에 온 적이 없다. 아마도 광주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부모님이 떠오르고, 그게 가슴이 아파서 외면하기 시작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비단 888Crew라는 팀이 광주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은 아니다. 그가 광주에서 힙합 음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판소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한(恨)’이듯 힙합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SWAG이다.
스웩(Swag) 혹은 스웨거(Swager)란 본래 거들먹거리는 걸음걸이라는 의미인데, 한국말로 번역하면 자부심이라고 표현하는 감정이었다.
이러한 스웨거의 문화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위치’에 대한 스웨거.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의 힙합은 이러한 스웨거를 바탕으로, 각 코스트만의 고유한 사운드와 가사가 있고 고유한 전개 방식이 있다.
이러한 위치에 대한 스웨거는 보통 명확한 심볼을 지닌 도시로까지 이어진다.
상현이 정말 좋아하는 노래.
4주 동안이나 빌보드 1위를 지켰던 제이지(Jay-Z)와 앨리샤 키스(Alicia Keys)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Empire state of mind)’.
이 노래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Theme from New York, New York’ 이후 뉴욕을 대표하는 테마 송이 되었다.
“지금 부드러운 직선이라는 낯선 공연장에 모여서, 저라는 낯선 사람의, 랩이라는 낯선 음악을 듣는 여러분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백여 명의 사람들이 상현의 말에 집중했다.
“힙합은 음악적 요소 이외에도 재미있는 문화가 많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자신의 성장에 대한 표현입니다. 내 음악이 누구와의 소통을 통해서 만들어졌고,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리스펙트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저는 광주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제 음악을 완성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상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아직 Empire state of mind가 나오지 않은 2005년에 그들이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노래로 무슨 노래를 떠올릴까? 사직구장의 부산갈매기? 아니면 여수 밤바다?
‘아, 여수 밤바다는 한참 뒤에 만들어진 노래였지.’
상현이 멍청한 생각을 했다며 속으로 웃었다.
“그래서 저는 여기 있는 백여 명의 여러분이 광주를 대표하는 노래를 떠올릴 때, 제 노래를 떠올리게 만들 생각입니다.”
노래의 제목은 ‘광주 UP’.
“거창하게 말했는데…… 사실은 별 거 아닙니다. 그냥 신나는 노래에요. 그런데 이 노래가 더 신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제가 광주! 라고 외치면 여러분께서 업! 이라고 해주시면 됩니다.”
상현은 관객들에게 먼저 광주 업이라 외치며 훅을 들려줬다.
“여러분의 리듬감과 기억력을 믿고 연습을 하지 않겠습니다. 사장님! 비트주세요!”
엔지니어 부스에 앉아있던 부드러운 직선의 사장님이 손으로 OK모양을 만들며 비트를 재생했다.
그러나 비트가 재생되자 음악소리 대신 ‘지지지직’하는 시끄러운 노이즈가 들렸다.
“광주! 업……?”
훅을 부르려던 상현이 당황해 엔지니어 부스를 보자 사장님도 당황하며 믹서의 뭔가를 조작했다. 그러자 지지지직하는 듣기 싫은 노이즈가 더욱 크게 들렸다.
“어……?”
상현이 당황해 어쩔 줄을 모르고 관객들이 웅성거리는 순간.
갑자기 경쾌하고 펑키한 힙합 비트가 흘러나왔다.
상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훅을 뱉었다.
광주 UP! 광주 UP!
빛 광(光) 고을 주(州) 광주 UP!
문화와 예술의 도시 광주 UP!
우리가 살아가는 광주 UP!
상현이 훅을 부르며 부드러운 직선의 사장님께 엄지를 들었다. 사장님도 웃으며 엄지를 척 들었다.
노이즈는 일부러 삽입한 거였고, 당황하는 액션은 상현과 사장님의 맞춰진 연기였다.
관객들은 그제야 상현과 사장님의 발 연기에 웃음을 터트렸다. 분위기가 한층 살아났다.
< Verse 4. Cross Over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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