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35화 (35/309)

< Verse 4. Cross Over >

쇼 비즈니스(Show Biziniz) 초판 - 2005년 7월호

P83-99. Music Interview.

한국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 L&S Band X 888 Crew

부제 : Cross Over

에디터 - 황주철 편집장

쇼 비즈니스 독자들에게 크로스 오버(Cross Over)라는 단어가 얼마나 익숙한지 모르겠다. 크로스 오버란, 다른 범주에 속하는 2개 이상의 음악이 섞여 이루어진 음악을 말한다.

1960년대 말에 급속히 대두하여 70년대 중반 하나의 호칭으로 굳어진 크로스 오버는, 원래 '클래식 주자들이 민요나 팝음악을 노래하거나 연주한다'는 현상을 표현하는 용어였다.

50, 60년대에 테너 유시 비을링, 리처드 터커와 같은 일부 성악가들이 민요와 팝을 즐겨 부르기 시작하면서 크로스오버라는 말이 등장했다. 다른 장르가 교차한다는 뜻의 음악 용어로 크로스오버가 본격적으로 쓰인 건 80년대 들어서다.

(생략)

본 에디터가 휴가차 처갓집이 있는 광주에 내려갔다가 이 공연을 보게 된 건 순전히 ‘L&S8’이라는 포스터 디자인 때문이었다.

(포스터 사진)

밴드 L&S와 888 크루라는 두 팀의 심볼을 절묘하게 섞어놓은 포스터는, 보자마자 Cross Over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게다가 밴드와 랩 뮤직의 콜라보레이션이라니!

(생략)

‘부드러운 직선’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공연장 앞에서 티케팅 알바가 빵긋 웃으며 에디터를 반겼다. 공연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들리는 사운드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훌륭한 연주였기 때문이었다.

***

황 편집장이 공연장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음악 소리가 뚝 끊겼다. 오프닝 곡으로 짐작했던 괜찮은 연주 대신 관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무슨 관객이 이렇게 많아?’

홍대에서 밴드가 공연해도, 간간히 음악프로그램에 출현하는 유명한 밴드가 아니면 관객 50명을 채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 공연장 안에는 어림잡아도 100명이 넘는 관객들이 빽빽이 서있었다.

그가 알기로 광주 인디씬은 광역시 중에서 규모가 가장 작은데 이정도 관객 동원력이라니. 이 팀이 광주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팀일까? 놀라운 일이었다.

-찰칵. 찰칵.

황 편집장은 본능적으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관객들을 무대가 보이는 구도로 찍었다. 그리고는 입구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있는,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사내에게 물었다.

“저기 무슨 일이에요? 노래가 끊긴 것 같은데”

“아, 베이스가 소리가 안나나 봐요. 쯧쯧, 리허설 때 충분히 확인했어야지…….”

계단에서 내려올 때만해도 베이스 소리가 나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이게 뭐야. 베이스 없는 밴드라니.’

황 편집장이 쩝하고 입맛을 다셨다.

“저 사람이 L&S의 베이시스트 맞죠?”

“네.”

“그럼 888은 뭐예요? 뭐라고 읽지? 팔팔팔? 삼팔?”

황 편집장의 질문에 대답해주던 사내가 피식하고 웃었다. 사내는 기분이 좋아보였지만 말투가 싸가지가 없었다.

“그냥 음악 한다고 설치는 고삐리들이 만든 팀이에요.”

“고등학생? 포스터 보니까 힙합 팀이라던데 춤추는 친구들인가요?”

“아녜요. 뭐 되도 않는 랩 가지고 음악이네 마네 하는 애들이죠.”

이 자식은 뭐 L&S나 888 오디션에서 떨어졌나? 왜 이렇게 베베 꼬였어?

황 편집장이 대충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멀어졌다.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저런 놈들이 있다. 안 그래도 음악하기 힘든 한국에서 삐딱한 시선으로 더욱 음악하기 힘들게 만드는 놈들 말이다.

기타와 보컬이 베이스에게 다가가서 이것저것을 말하고 있었지만 커넥션 문제인지 디스토션(재생음의 일그러짐)도 일어나지 않았다.

관객들의 인내심은 길지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하던 목소리가 어느새 잡담으로 커졌고, 곧 시장 통을 방불케 했다.

그때였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보컬과 베이스, 이쁘장한 키보디스트 여자애가 무대를 내려가더니 두 명의 남자가 무대 위로 올라온 것이.

‘학생들인 것 같은데?’

성인은 아니고 고등학생쯤 돼보였다.

‘아, 저 친구들이 그 888이란 이상한 이름으로 랩하는 친구들인가?’

황 편집장은 약간 맥이 빠졌다.

힙합이란 장르를 무시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한국 힙합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그의 생각으로 현재 한국 힙합은 본 고장인 미국에 비해 20년 이상 뒤쳐져 있다.

물론 가리온 1집이나 에픽하이 2집 등의 수준 높은 랩도 있지만, 한국 힙합 씬의 전체 평균 관한 그의 부정적 시선은 여전했다.

열악한 한국 힙합 씬.

음악적 인프라가 극히 부족한 광주.

한술 더 떠 고등학생.

별 흥미가 동하지 않는 조합이었다.

황 편집장의 실망감과는 별개로 공연은 재개되었다. 공연진의 간단한 곡 소개가 이어졌다.

‘움직여야지? 이상한 곡명이네.’

이윽고 드라이한 드럼과 어쿠스틱 기타가 연주의 시작을 알렸다. 젬베가 뒤를 따랐다.

두 개의 퍼커션과 한 개의 스트링.

그 사이를 뚫는 담담한 허밍.

“오……!”

황 편집장이 예상 밖의 사운드에 감탄하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젬베 연주자는 연주 경력이 길지 않은 듯 아주 기본적인 연주 스킬만 사용했지만 박자감각이 훌륭했다.

드럼은 최대한 힘을 절제하며 드라이한 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쓸쓸한 느낌.

‘곡이 계속 허밍으로 가는 것도 재미있겠군.’

황 편집장의 생각을 부수려는 듯 난데없이 준형의 랩이 시작되었다.

***

골든 핑거의 이경민은 처음부터 L&S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되도 않는 착한 척을 한다, 보컬 수준이 떨어진다, 음악이 80년대 수준이다 등등으로 술자리에서 L&S를 씹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신보다 베이스를 월등히 잘 치는 L&S의 베이시스트인 용준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는 세종악기사에서 이상현의 연주를 도와주는 것부터 완전히 사이가 틀어졌다.

Band L&S8 Crew

때문에 웃기지도 않는 문구의 공연 포스터를 세종악기사에서 봤을 때, 거지같은 놈들끼리 뭉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밴드와 힙합의 크로스 오버? 지들이 무슨 린킨 파크인가?

“야, 너 설마 저 공연 가냐?”

“어…… 한번 가보려고.”

“왜?”

“아니, 그냥 얼마나 못하는지 가서 보고 비웃어주려고.”

같은 팀의 드러머가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듯이 말했을 때 열이 받았지만 그냥 넘어갔다. 어차피 10명이나 올까?

광주의 대다수 밴드는 무료 공연으로 공연을 열어도 관객 수가  30명이 넘을까 말까였다. 그것도 지인을 빼면 순수 관객은 보통 15명 남짓.

1888원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입장료를 책정한 놈들이 멍청한 놈들이었다.

‘머저리 새끼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이경민은 주변에서 음악 하는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L&S의 공연을 가려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몰랐지만 L&S는 멤버들이 가진 배려심과 착한 성격이 쌓이고 쌓여 좋은 이미지를 형성 하고 있었다.

또한 뮤지션들 사이에서 꽤나 많은 소문이 돌았던 세종악기사의 ‘래퍼’가 팀을 만들었다는 것에 흥미가 동하는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밴드와 힙합의 크로스오버(Cross Over)라는 공연 컨셉이 방아쇠를 당겼고.

‘병신 같은 놈들. 돈도 없는 거지새끼들이!’

결국 이경민은 직접 눈으로 L&S와 랩하는 멍청이들의 망한 공연을 확인하기 위해 공연장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거지새끼들에게 적선하는 셈치고.

그러나 막상 공연장에 가니 기분이 더욱 더러워졌다.

관객이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적게 잡아도 백 명.

이경민은 광주에서 이런 공연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곧 관객 구성을 살피고는 코웃음을 쳤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관객들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공연에 친구들과 후배들을 동원한 모양인데, 쪽팔린 것도 모르는 새끼들.’

L&S의 리더가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놀랐다는 둥의 가식적인 멘트를 쳤고, 곧 공연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잠시 뒤 공연은 중단되었다.

베이스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기치 못한 사고에 기분이 좋아진 이경민은 처음 보는 아저씨가 귀찮게 이것저것을 물을 때도 그답지 않게 친절한 대답을 해줬다.

“뭐야? 공연 취소야?”

“몰라. 에어컨 좀 더 세게 틀면 안 되나?”

“어후, 더워.”

짧은 관객의 인내심이 끝나고 공연장 안이 시끄러워졌을 때, 싸가지 없는 이상현과 처음 보는 놈이 무대로 올라왔다.

“드럼에 젬베? 거기에 통기타?”

이경민이 흥하고 코웃음을 치자 주변 관객들이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

< Verse 4. Cross Over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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