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30화 (30/309)

< Verse 3. 888 Crew >

상현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고, 준형은 어느새 용준과 친해져서 베이스와 랩의 공생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었다.

“자자! 연습하자!”

한참의 소란이 정리되고 간신히 연습이 재개되었다.

이번에는 키보드인 미주와 베이스인 용준은 뒤로 빠졌다. 기타와 드럼, 그리고 두 명의 래퍼가 꾸미는 무대.

상현은 스탠드에 마이크를 끼우고 의자에 앉아 다리 사이에 젬베(djembe:아프리카에서 축하연과 제식에 사용하는 큰 성배 모양의 북)를 놓았다.

“젬베네. 상현이가 젬베도 칠 줄 아나?”

“낑낑 거리며 가져온 걸 보면 칠 줄 아나보지?”

미주의 질문에 용준이 대답했다.

“너희 보컬은 어디 갔어? 대구 갔다가 아직 안내려왔어?”

“며칠 더 있겠대. 볼일이 길어졌다나 뭐라나. 암튼 인현이 이 자식 요즘 바빠.”

“여자친구 생겼나?”

“그럼 밴드에서 강퇴야!”

그렇게 미주와 용준이 L&S 보컬 차인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무대 세팅이 끝났다. 방민식이 시작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미주는 상현보다 준형을 주의 깊게 살폈다. 상현의 무대는 세종악기사에서 이미 봤기에 믿음이 가지만, 준형이란 친구는 아직 음악적인 신뢰도가 제로다.

미주는 이번 공연에 거는 기대가 컸다. 음악의 불모지 광주에서 크로스 오버 공연이라니!

때문에 크로스 오버의 한축을 담당하는 준형의 역할도 누구 못지않게 중요했다.

‘긴장 많이 했는데?’

준형은 꽤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준형아 준비 됐지?”

“오, 오케이.”

“그 힘없는 오케이는 뭐냐? 준비 됐냐?”

“오케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상현은 준형을 믿었다.

과거로의 회귀를 통해 얻은 ‘20년의 경험’이라는 치트키가 없다면, 상현은 준형에게 한참 배워야할 처지일 것이다.

“간다. 원, 투, 쓰리……."

Let's go.

상현이 두드리는 젬베 소리를 필두로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가 깔렸다. 이어서 평소보다 작고, 드라이하고, 섬세한 드럼이 박자를 이끌기 시작했다.

미주는 인트로 연주를 들자마자, 문득 이글스(Eagles)의 전설적인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nia)를 떠올렸다.

‘황량한 사막에서 모래바람을 맞는 것 같은 쓸쓸함.’

그녀의 생각처럼 이 비트는 스탠다드가 호텔 캘리포니아의 코드 진행을 모티브로 삼아 만든 곡이었다.

그런 스탠다드의 곡을 상현과 방민식, 황인수가 라이브로 연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기존 비트에 있는 키보드와 베이스를 과감히 배제하고, 젬베라는 장치를 추가해 건조하고 우울한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젬베, 기타, 드럼.

세 개의 악기 소리를 뚫는 방민식의 허밍(humming)으로 노래가 시작되었다. 허밍은 상당히 길었다. 그것은 마치 하모니카 독주 같았다.

지켜보던 미주와 용준은 기존 L&S음악과 전혀 다른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낯설음에서 찾아오는 몰입.

“아……!”

민식의 허밍은 노래를 잘 부른다기보다는 담백한 느낌이었다. 그게 묘하게 청중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미주는 허밍이 계속되길 바랐다. 그러나 허밍 사이로 준형의 랩이 갑자기 뛰어들었다.

전혀 랩이 들어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타이밍.

마디의 절반을 쭈욱 잘라서 들어오는 엇박자의 랩.

허밍에 몰입해 있던 관객들이 순식간에 랩에 몰입하게 될 것이 미주의 눈에는 보였다.

젖어버린 흙에 씨를 심고 물을 줘

빛을 쬐어 준 다음에 죽지 않으면 싹을 틔워

모든 건 똑같아

뭔가를 이루려고 힘을 써

오늘은 잠에 들었지만 내일 아침엔 또 눈을 떠

준형의 목소리는 상현과는 대비되는 느낌이었다.

상현은 하이톤을 베이스로 미들톤까지 음역대를 확장한다. 때문에 뚜렷한 가사 전달력으로 감정선을 딜리버리할 수 있다,

그와 반대로 준형의 목소리는 한 마디로 딥(Deep)했다.

깎아 내린 듯한 낮은 로우톤.

그러나 준형의 목소리는 딥하되 헤비(heavy)하지는 않았다. 깊이는 있었지만 무겁지는 않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때때로 준형의 목소리도 미들톤까지 치솟을 때가 있었다. 그것이 명확한 가사 전달 능력에 힘을 실어줬다.

듣기 좋은 로우톤의 랩이 계속 이어졌다.

난 기지개를 켜고 침대에서 꾸물대지 않는 놈.

누군갈 질투하며 뒤에서 수군대지 않는 놈.

“흐!”

용준은 이렇게 우울한 비트에 ‘움직여야지’라는 메시지를 담은 저 용감한 두 놈들의 발상에 감탄했다.

어떻게 표현해야 될까?

그래, 비트와 싸우는 것 같았다.

보통 보컬리스트들은 ‘비트’, ‘보컬’, ‘메시지’의 완벽한 조화를 추구한다. 쉽게 말하면 슬픈 노래를 슬프게 불러, 슬픈 가사를 통해 슬픈 사람들을 공감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대중음악이 발전하면서부터 음악의 당연한 규칙이 된 것이다.

이유는 오로지 하나 뿐, 놓을 수 없는 내 꿈.

망설임 없이 지금부터 하나씩 담아 내 품.

하지만 그들의 첫 곡인 ‘움직여야지’를 기획한 상현과 준형의 생각은 달랐다.

굳이 퀸시 존슨의 “랩은 현대 흑인음악에 있어 가장 혁명적인 표현방식”이라는 말은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기존의 질서를 철저히 무시했다.

아니, 사실은 몰랐다. 그냥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미주와 용준에게 강렬한 영감을 주고 있었다.

행복을 위한 태동. 이제 정해진 태도

일상을 도는 궤도는 쭉 변하지 않는 행동

준형은 우울한 비트를 뚫고 ‘행동’을 촉구하는 단어들을 던지며 비트를 이기려하고 있었다. 비트를 꼬꾸라트리고, 짓누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관중에게 가사를 와 닿게 만들었다.

곡을 듣던 용준은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랩에서만 할 수 있는 방법이네.’

만약 하드록 밴드 딥 퍼플(Deep purple)의 전설적인 명곡 ‘Highway star’의 연주에 사랑을 노래했다면 어땠을까?

단언컨대 아주 이상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런지(Grunge)의 전설인 너바나(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 연주에 평화를 노래했다면?

마찬가지다.

그러나 준형과 상현은 그런 비트와 보컬의 부조화를 의도적으로 준비했다.

‘의도적? 정말 의도적일까?’

용준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복잡한 것은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은 즐기면 된다.

“우오오!”

용준의 함성 소리와 함께 준형의 벌스가 끝을 향해 달려갔다.

속일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갔지

엄마와 아빠 또 내게 다시 물어봤지

거친 방향으로 가도 후회하지 않을래?

대답은 “네” 시련과 좌절까지도 내가 안을래.

준형의 벌스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젬베, 드럼, 기타, 민식의 허밍이 일시에 멈췄다. 귀를 가득 채우는 소리가 한 번에 사라지고 잠깐의 정적.

‘어쩜 이리도 욕심이 많은지.’

미주가 웃어버렸다. 도대체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려고 몇 개의 장치를 준비한 것일까?

정적을 뚫고 드럼과 젬베가 빠지고 어쿠스틱 기타의 소리만 영롱하게 울렸다. 그리고 나오는 상현의 목소리.

movin' it. move it.

움직여야지.

movin' it. move it.

움직여야지.

쉽고 멜로디컬한 훅.

한 번만 들으면 모두가 흥얼거릴 수 있는 대중적인 멜로디.

상현은 본인이 만든 훅이지만, 움직여야지의 훅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랩뮤직에 있어서 후렴구의 단순함은 절대 약점이 아니었다.

movin' it. move it.

움직여야지.

movin' it. move it.

움직여야지.

훅이 한 번 더 반복되고, 마침내 상현의 랩이 시작되었다.

원 벌스(1 Verse) 준형의 랩에도 충분히 놀란 용준이었지만 상현의 랩을 듣고 나서는 참아왔던 한 마디를 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자식.”

***

< Verse 3. 888 Crew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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