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3. 888 Crew >
***
OMG. I can't imagine my first fan living in south korea.
오 마이 갓, 내 첫 번째 팬이 한국에 살다니 믿을 수 없어.
덴마크 출신의 DJ.STANDARD에게 온 메일의 첫 문장이었다.
상현은 스탠다드가 LA 랩퍼들과 콜라보를 하며 인지도를 얻었기에 LA출신의 프로듀서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덴마크 출신이었다.
덴마크 출신의 약간은 어설픈 영어로 쓰인 이메일에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대부분 상현이 보낸 첫 이메일의 질문과 호감표시에 답하는 내용이었다.
상현은 준형과 쓸 만한 랩 인스를 찾다가 외국 아마추어 작곡가 사이트에서 DJ.STANDARD란 아이디를 발견하고 메일을 보냈었다.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그의 생일이었다. 스탠다드의 팬이었던 상현은 그와 자신의 생일이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생일? 아시아인들은 영적인 믿음이 강하다고 들었어. 오, 동양계 친구의 말로는 아시아 타로술사들이 생일과 이름을 통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더군. 난 1984년 10월 3일에 태어났어. 쿨한 천칭자리라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메일을 읽던 상현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혹시 내가 알던 그 스탠다드가 아니면 어쩌나 긴장하고 있었는데 틀림없는 듯 했다.
‘친해질 수만 있다면 정말 대박인데. 아무래도 이메일로는 관계 진전에 한계가 있겠지?’
상현은 우선 메일을 몇 번이나 꼼꼼히 읽었다.
한참 일할 때는 영어를 영어 자체로 받아들이는 수준이었는데, 오랜만에 영문을 읽으니 눈에 잘 안 들어왔다.
‘물론 이 놈이 영어를 잘 못하는 것도 있고.’
덴마크어가 모국어인 만큼 스탠다드의 영문법은 약간 이상했다.
상현이 보낸 첫 메일에는, ‘나는 당신이 업로드한 작업물들을 듣고 당신의 팬이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랩을 하는 사람이다. 당신과 음악적인 교류를 나누고 싶다.’, '언젠간 가능하다면 직접 만나서 작업을 해보고 싶다.’등의 리스펙트를 표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상현의 메일에 스탠다드는 아주 쿨하게 답장했다.
‘난 당장 LA에서 방세 내는 것도 힘들지만, 유명한 프로듀서가 된다면 한국을 가고 싶어졌어. 물론 네가 LA에 오는 게 더 웰컴이지만.’
‘내가 최근에 작업한 트랙들을 첨부했어. 얼마든지 활용해도 좋아. 대신 레코딩 후에는 나에게 보내주는 것을 잊지마. 공개할 때 Prod 표시 역시.’
그렇게 스탠다드는 8개나 되는 트랙을 메일에 첨부해주었다. 최근에 작업한 트랙들인지 전부 세련되고(물론 2005년 기준에 상대적으로) 마음에 쏙 들었다.
상현은 문득 꿈의 조합을 생각해봤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7년간 그래미 어워드에 자신이 프로듀싱한 곡을 노미네이트시켰던 세계 일류 프로듀서 ‘디제이 스탠다드’.
유려한 플로우와 직관적인 가사로 상현이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MC였던 ‘벤(Ben)’.
2013년 혜성처럼 등장해 평론가와 대중의 찬사를 휩쓸고 마침내 빌보드에 이어 그래미까지 석권했던 ‘조에이(JoEigh)’.
이외에도 아직 빛을 보지 못하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실력을 다듬고 있을 수많은 래퍼들을 하나의 팀으로 만들면 어떨까?
상현은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음악가 대 음악가로.’
팬으로 만나는 건 사양이다.
만약 그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음악에 자부심이 안생기면 만나지 않을 것이었다. 래퍼와 래퍼의 만남은 비즈니스보다는 자존심과 자존심의 만남이다. 그렇기에 디스(랩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행위)도 빈번했고.
Thanks friend. Your beat is fucking awesome.
고마워 친구. 네가 만든 비트는 완전 내 스타일이야.
상현은 스탠다드의 비트를 들으며 답 메일을 작성했다. 어서 준형과 함께 작업을 시작하고 싶었다.
***
-지이잉!
거친 일렉 기타 소리.
“나만의 Origin!”
그 사이를 헤집는 상현의 랩.
밴드 L&S의 연습실에는 상현의 이름을 광주 인디밴드 씬에 알리게 된 노래, Run this town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당연히 밴드는 L&S였고, 키보드는 미주.
‘죽인다! 와, 진짜 미쳤네.’
그걸 지켜보던 준형은 상현의 Run this town에 감탄할 뿐이었다. 연습일 뿐인데 이 정도 에너지를 보인다면 본래 공연에서는 어땠을까?
‘새끼가 자신만만할 만 했네.’
상현의 랩이 끝나고, 베이스 독주가 이어지더니 곧 노래가 끝났다. 준형은 아낌없이 박수를 쳤다.
준형은 상현을 따라 양동시장 근처의 밴드 L&S 연습실에 와있었다. 상현과 안면이 있는 밴드 L&S와 인사를 나누기 위함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곧 있을 L&S의 공연을 위한 연습을 하기 위함이었다.
“상현이 친구지? 어때?”
“죽이는데요, 형님.”
L&S 베이시스트 용준의 물음에 준형이 넉살좋게 대답했다.
“오, 건방진 상현이랑 다르게 사회생활 좀 할 줄 아는데? 이름이 뭐야?”
“신준형입니다. 형님.”
“너도 운산고야?”
“그렇죠.”
“크, 직속후배 이리와.”
상현은 용준과 준형의 주접(?)을 지켜보며 물을 마셨다. 발성이나 호흡법을 배운 적이 없기에 한 곡만 불러도 숨이 헐떡거렸다.
밴드 L&S는 곧 있을 ‘전주 월드 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벌’에 대비해 공연을 준비 중에 있었다. 말하자면 모의고사인 셈이다.
장소는 전남대학교 후문 부근에 새로 생긴 ‘부드러운 직선’이라는 공연장으로 예정 되어있었다.
부드러운 직선에서 열리는 첫 공연이며, 광주 인디밴드 중에는 최초로 시도되는 크로스 오버(Cross over : 장르 간 융합) 공연이었다.
게스트로 두 명의 래퍼가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다. 바로 상현과 준형이었다.
“런디스타운은 더 이상 연습할 필요가 없겠다. 공연 당일에만 가볍게 리허설을 해보자.”
리더이자 리드기타인 방민식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 곡 연습해볼까? 이번 곡은 저 친구도 하는 거지?”
민식의 질문에 상현이 긍정을 표하고는 준형을 불렀다.
“야, 준형아. 주접 그만 떨고 이리 와서 마이크 잡아.”
“선후배가 학연의 끈끈함을 확인하는데 주접이라니!”
준형과 잡담을 떨고 있던 용준이 투덜거렸다. 상현이 피식 웃으며 크게 말했다.
“‘준 형’이 철이 덜 들었네. 유치해.”
“어?”
“뭐라고?”
준형과 용준이 동시에 대답했다.
둘은 뒤늦게 상현의 놀림수를 깨달았다.
‘신준형’과 ‘용준 형’은 상현의 입장에서 성을 떼고 부르면 호칭이 같아진다.
“‘준 형’이야 ‘준형’이야? 똑바로 해라.”
용준이 위협적으로 인상을 팍 썼다. 그러나 상현은 전혀 굴하지 않았다.
“제가 보기에는 주우운형이 나잇값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미주와 방민식이 웃음을 터트렸다.
보통 상현은 용준을 ‘준이 형’이라고 불렀지만 주우운형이라고 얄밉게 부르는 표정이 웃겼다.
잠시 인상을 쓰던 용준이 준형을 보고는 우리는 ‘준형 브라더스’라며 또 시시덕거리기 시작했다.
드러머 황인수가 잡담 그만하고 연습이나 시작하자며 드럼을 두두두두두 갈겼다. 미주가 시끄럽다며 황인수의 등짝을 때렸다.
“악! 무슨 기집애가 이렇게 거침이 없어!”
“귀 아프잖아!”
미주가 떽떽거리자 방민식이 인상을 쓰며 상현에게 귓속말로 미주를 욕했다. 미주는 용케 눈치를 채고는 방민식의 등짝도 후려쳤다.
“악!”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는데, 즐거운 개판이었다.
‘즐겁다.’
정말 진심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상현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고, 준형은 어느새 용준과 친해져서 베이스와 랩의 공생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었다.
< Verse 3. 888 Crew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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