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2. 움직여야지 (完) >
상현은 얼떨떨하게 박수가 나오는 곳에 다시 한 번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박수를 치시는 분들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상현의 눈에 그 박수는 진심으로 보였다.
‘많이 부족한 공연이었는데…….’
공연의 어떤 면이 저분들의 박수를 만들어 냈을까?
생각에 잠겨 있는 상현에게 미주가 물을 건네며 말했다.
“어땠어?”
“재밌었어요. 진심으로.”
“저 분들도 즐거워 보이더라.”
미주가 시각장애인분들을 가리키자 상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너 어제 집에 가서 가사 썼지? 사장님 말 듣고 화나서?”
“네. 사실 화가 좀 났죠.”
“그 가사 쓸 때 재미있었어? 쓰고 싶어서 쓴 가사야?”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재미없는데 왜 했어? 너가 재미가 없는데 듣는 사람이 재밌을 수 있을까?”
상현의 입장에서는, 아니 어쩌면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상상해본 적도 없는 말.
재미없는데 왜 했어?
해야 하니까. 좋은 대학 가려면 공부해야하고, 남들한테 뒤지지 않으려면 취업해야하니까.
다들 하니까. 친구들 모두 차가 있으니까 나도 사야 되고, 점점 나이가 드니까 결혼도 해야 하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다.
이러한 상현의 상식 위에 미주는 예술과 비예술의 사이에 경계선을 그었다.
“사장님이 어울리지도 않는 악역을 자처하며 너에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건, 음악을 대하는 태도야. 오늘 너가 공연할 때 가졌던 태도. 랩이란 유일무이하게 ‘말’하는 예술인데, 너는 네가 사는 방식으로 ‘말’하고 있어?”
문득 상현은 지금으로부터 3년 뒤, 2008년 8월에 발매될 노래를 생각했다.
한 사람의 인생과 삶의 방식을 표현했고, 감출 수 없는 고뇌와 혼란한 마음을 솔직하게 녹여낸 곡.
파티용 노래도 아니고, 귀에 박히는 멜로디 하나 없는 잔잔한 랩이지만, 빌보드 랩 차트 4위를 기록한 곡.
더 게임(The Game)의 ‘마이 라이프(My life)’
My life가 사랑을 받았던 원동력은 단연 가사에 있었다.
더 게임은 진짜 갱스터(Gangster) 출신의 래퍼였다.
마약 중독자 아버지의 밑이며 위험한 빈민가에서 태어난 더 게임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자연스레 어린 시절부터 마약과 총을 접했고, 먹고 살기 위해 갱스터 활동을 시작했다. 빈번한 총격전으로 친구들과 형제를 잃었고, 더 게임도 5번의 총격을 당하고 죽음의 지경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났다.
더 게임은 'My Life'에서 자신의 진솔된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Hood(빈민가) 혹은 Ghetto(빈민가)에서 살아가는 갱스터들의 삶을 묘사했다.
철창은 없는 곳인데, 흑인들은 후드로부터 벗어나지 못 해
내 친구들을 너무 많이 데리고 가서, 난 후드를 싫어하는 게 당연해야 하는데
그러나 후드를 구성하는 놈들은 우리 같은 놈들이지
더 게임은 My life에서 시종일관 후드에 대한 애증을 드러낸다. 내가 성장한 곳이지만 내 친구들이 죽은 곳, 당장 도망가고 싶은 곳.
그와 동시에 존 레논은 왜 비틀즈를 떠났지? 라고 되물으며 절대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다짐하는 곳.
이 노래를 만들 당시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더 게임은 My life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를 치료하기 위해서.
더 게임이 랩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우울증과 자살충동을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왜 hood의 친구들은 악을 통해서만 먹고 살 수 있지?
내가 나에게 총 쏘기 전에 빨리 내 질문에 대답해
흔히들 힙합에 대해 갖는 편견이, 힙합의 대부분이 의미 없는 자기 자랑뿐이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래퍼들은 돈, 여자, 차, 명예 등등을 스웨거(Swagger)라는 테두리에 묶어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표현해버린다.
하지만 이건 결코 의미 없는 일이 아니다.
후드에서 태어나 도저히 배움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성장한 흑인. 그런 흑인들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3가지뿐이었다.
운동선수가 되거나, 거대 마약상이 되거나, 래퍼가 되거나.
그것은 더 게임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린 다른 인간, 난 화성인이야
그러니 내 명품 차에 접근 할 때는 조심해
24 인치 휠이 보이지? 난 정당하게 일해서 샀지
힙합은 SWAG의 문화.
힙합에서 그렇게 부와 성공, 명예를 자랑하는 이유는 그들은 오직 ‘힙합’으로 가난과 불행을 이겼기 때문이다.
‘아……!’
상현은 자신의 문제를 깨달았다.
그가 병원에서 불확실에 배팅하며 힙합을 택한 것은 틀림없지만, 지금까지 그것을 이루려는 방식은 여전히 이성적이었다.
힙합의 방식이 아닌, 사업가의 방식.
‘내가 보기에는 하루 종일 집에서 게으름 피우는 것 같은데?’
‘아니야. 천천히 계획 세우고,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최적화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
‘음악에 그런 게 필요해?’
상미가 맞았다. 그에게 필요한 건 최적화 따위가 아니다. 하고 싶어 견디지 못하는 일들을 하는 것이다.
“저, 먼저 집에 가볼게요.”
미주가 빙긋 웃었다. 원래 예쁜 얼굴이었지만,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말로만?”
“그럴 리가요.”
상현은 가방에서 팔찌를 꺼내 미주에게 건넸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미주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야, 아니야. 이건 그냥…….”
“받으세요.”
상미를 위해 산 팔찌였지만 문득 미주에게 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다음에 볼 때 차고 있어요.”
“고, 고마워.”
충동을 무시하지 않는 것.
상현은 씩 웃고는 미주를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을 힙합의 방식으로.’
그가 하려는 예술은 힙합이니까.
전설적인 힙합 뮤지션 구루(Guru)의 말처럼, 제대로 된 힙합을 하기 위해서는 힙합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힙합의 문화적 요인을 이해하고 그것을 삶에 투영시켜야 하는 법이다.
지금까지 멍청한 짓을 한 것 같다.
런디스타운보다 좋은 곡이 나오지 않으면 어떻단 말인가. 다시 만들면 되고, 또 다시 만들면 되는 거다.
오늘 공연한 Thugz Mansion이 기술적으로 런디스타운보다 뛰어났을까?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그는, Thugz Mansion을 부르며 행복했고, 타인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적절한 비트가 없는 것은 변명도 되지 않는다. ‘말’을 하는데 꼭 연주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집에 도착한 상현은 뭔가에 홀린 듯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차분하고 침착하게 원하는 단어를 골랐고 라임을 고민했다.
자신이 작사라는 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말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문장’을 적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모든 가사가 완성되었다.
이게 좋은 랩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로 가득 찬 가사는 분명하다.
상현은 곡의 제목을 고민하다가 노트의 제일 위에 작은 글씨를 채워 넣었다.
움직여야지.
‘움직여야지’라는 곡의 가사를 적으며 오직 하나의 목적의식만 두었다. 시간이 흐른 뒤 이 노래를 듣게 됐을 때, 오늘의 기분을 완전하게 복원해내는 것이었다.
‘오늘 느꼈던 기분, 감정, 깨달음.’
음악은 수많은 예술 분야 중에서도 차별화된 점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이 ‘시간 예술’이라는 것이다.
음악은 그림이나 조각처럼 공간을 점하는 예술이 아니다. 음악은 입을 열어 소리를 뱉음과 동시에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그중 랩은 더욱 특수하다.
노래는 가사를 몰라도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랩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랩을 만드는 MC들이 더욱 가사에 치중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리듬은, 멜로디는, 그루브는 잊어버려도 내가 전달한 메시지는 남으니까.
-달칵.
MP3의 녹음기능이 활성화되었다. 38살의 기억을 가진 상현이 만든 첫 번째 곡.
말하는 것 같은 유연한 상현의 목소리가 방을 울리며 노래가 시작되었다.
똑같은 삶을 살기 싫어. 그래서 난 노력해.
아주 진부한 말이지만 이것 밖에
날 설명할 수 없어. 두려움이 날 덮쳐
만약 지금 하지 않을 걸 평생 동안 멈춰
오연주 과장이 제약회사가 망했다고 했을 때, 그렇게 불안하고 겁이 났던 것은 미래가 바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미래는 원래 바뀐다.
어차피 상현은 똑같은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선 채로 담아둔다면 그건 절대로
돌이킬 수 없지 그냥 이걸 내 식대로
내가 내 걸하고, 노력하고, 어쩌면 포기하고
말아버리는 상황이 속편하다는 거야
단지 노력하자.
‘건방떨지 말자.’
아직 상현은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었다.
밴드와 한두 번 어울렸다고 마치 뭐라도 된 듯 준형의 셋 리스트를 무시했다.
바뀌는 미래에는 사람에 관한 것도 있을 수 있다.
상미와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준형과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38살까지 함께했던 친구가 아니다. 앞으로 함께할 친구가 되려면 노력해야 한다.
정해진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냥 하면 된다.
안되면 말아. 잘되면 Better Than이
되기 위해서 몇 배로 해버려
그걸 들여 버릇.
성공은 마치 여름.
해 보기 전엔 찾아온 걸 절대 모르거든.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이다.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난 이렇게 생각하니, 이렇게 행할게
어쩌면 망할게 분명한 싸움
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나다운 일을 하면 무언가가 나타난다고.
상현은 아주 담담하게 랩을 하는 와중에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아주 재미있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가 적은 가사가 내 것이 것이 아니고, 누군가 날 위로하려는 사람이 불러주는 것 같았다.
상현은 즉흥적으로 아주 간단한 후렴구를 붙였다.
움직여야지.
movin' it. move it.
움직여야지.
movin' it. move it.
움직여야지…….
***
컴퓨터로 외국 래퍼의 노래를 듣고 있던 준형은 지이잉 울리는 핸드폰의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상현의 짤막한 문자였다.
-메일 확인해라.
메일?
뜬금없는 소리에 준형이 메일에 접속하니 상현으로부터 첨부파일이 와 있었다.
“움직여야지?”
노래 파일이네? 뭐지?
준형은 첨부파일을 재생했다.
곧 지지직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악한 음질을 뚫고 상현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비트를 포함한 어떤 효과도 없는 순수한 목소리.
메일에는 가사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준형은 상현의 목소리를 따라가며 가사를 읽었다. 이윽고 목소리가 담고 있는 진심에 감화됐다.
‘좋다.’
이런 실력이니 밴드가 같이 하자고 한 걸까?
움직여야지.
movin' it. move it.
움직여야지…….
노래가 끝났다. 노래말고 가사만 한 번 더 읽던 준형은 메일의 아래 부분을 뒤늦게 확인했다.
‘벌스 2는 니 부분이니까, 내일까지 가사 적어와라. 형이 내주는 숙제다.’
준형이 피식 웃으며 상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일요일 저녁에 보내놓고 내일까지 적어오라면 나한테 밤새란 말이냐?
상현의 답장은 달랑 'ㅇ' 두 개. 그 불성실함은 마치 ‘너 그것도 못해?’라고 묻는 듯해서 준형은 팔을 걷어붙였다.
그렇게 어느 조용한 일요일에 상현과 준형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곡인 ‘움직여야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 Verse 2. 움직여야지 (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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