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23화 (23/309)

< Verse 2. 움직여야지 >

홍 사장은 뭔가를 생각하더니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그날은 장비 견적을 내려고 가게에 들른 건가?”

“네.”

“미리 좀 알아봤어?”

“못 알아봤습니다.”

“전혀?”

“네.”

“왜?”

“그냥 좀 바빠서…….”

상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실제로 바쁜 탓도 있지만, 사실은 과거의 버릇이 남아있는 것일지도. 사장 마인드.

“바빠? 뭐가 얼마나 바쁜데?”

상현은 갑자기 홍 사장의 반문이 미묘하게 공격적이라고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 좋던 분의 말투가 달라졌다.

그러나 상현은 괜히 기분 상하기보다는 웃으며 말을 흘렸다. 어쨌든 자신보다 어른이고, 광주 인디 음악가의 대부가 아니던가. 괜히 밉보일 필요는 없었다.

“그냥, 사정이 좀 있었습니다.”

“음악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됐나?”

“올해 막 시작했습니다.”

“목표는 뭐고?”

“음악으로 성공하는 것입니다.”

“성공? 어떤 식의 성공?”

홍 사장의 질문에 상현이 잠시 생각하다 정말 솔직하게 대답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성공이 뭐겠습니까? 제 공급이 끝없는 수요를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수요가 많으면 값어치도 올라가겠죠.”

“흠…….”

홍 사장이 턱을 쓰다듬었다.

사실 그가 이상현을 만나려고 한 이유는 별 이유가 없었다. 그냥 AIMMF 진행 위원장이 큰 관심을 보였고, 홍 사장 자신도 상현의 음악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작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마음에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아직 싹도 못 틔운 애송이가 아닌가? 그런데 상현은 ‘성장’을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니라, ‘안정’을 목표로 삼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놈은 성장하지 못하는데…….’

홍 사장이 재차 물었다.

“음악이 좋은 건가? 아니면 음악 하는 자신의 모습이 좋은 건가?”

“당연히…….”

더 잘해지고 싶다. 더 멋진 랩을 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고, 박수 받고 싶다.

전자라고 말하고 싶었던 상현이지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상현 군. 아니, 그냥 편하게 부르겠네. 괜찮지?”

“네. 말씀하시죠.”

“상현.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도 업으로 삼다보면 지치고, 방황하기 마련이야. 그런데 내가 보기에 자네는 음악 그 자체보다는, 보여주는 모습을 중시하는 것 같아.”

“말씀 중 죄송한데, 저는 음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벌써 제 태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조금 이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더욱 말할 수 있는 거야. 이제 음악 시작한지 몇 달 되지도 않은 네가 지금 준비하는 게 뭐지? 전혀 없지. 사실 나는 랩에 대해서는 잘 모르네. 하지만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

홍 사장이 상현을 똑바로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장비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아니고, 악기를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곡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닌 자네가 어떻게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나?”

‘오빠는 할 일 없어? 음악 한다며? 내가 보기에는 하루 종일 집에서 게으름 피우는 것 같은데?’

‘그치만 오빠가 하려는 건 예술이잖아? 수학이 아니고?’

상현은 홍 사장의 말과 상미의 말이 겹쳐 들렸다.

“솔직히 말해줄까? 자네는 아직 음악 하는 사람이 아니야.”

“처음 전에는 제 공연이 괜찮았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상현은 약간의 답답함을 느꼈다.

“자네 공연은 음악적으로 완성도는 형편없었네. 단지 랩과 메탈의 결합이 너무 신선해서 잘해보였을 뿐이지. 코드도, 오선지도 못 읽는 자네가 음악에 대해 이해하면 얼마나 하겠나?”

미주는 점점 거칠어지는 홍 사장의 언사에 놀라 양쪽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아이씨, 내가 끼면 왜 자꾸 험악한 분위기가 되는 거야.’

상현은 홍 사장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자네, 저번에 공연했던 것만큼의 랩을 만들 수 있겠나?”

“있습니다.”

“내가 보기엔 안 될 것 같은데? 저번 곡은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야.”

“말씀이 좀 지나치십니다.”

“지나친지 어쩐지는 자네가 더 잘 알겠지.”

상현은 홍 사장이 힙합에 대해 모른다고 생각했다.

코드를 모른다고, 오선지를 못 읽는다고 랩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잭슨의 음악성을 프로듀싱했던 전설적인 프로듀서 퀸시 존슨(Quincy Jones)이 말했다. 랩은 전통적인 음악의 카테고리에 완전히 담을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소리 예술이라고.

상현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참지 못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하지만 집에 동생이 혼자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식사 맛있게 했고, 좋은 충고 감사합니다. 깊이 새기겠습니다.”

상현은 꾸벅 인사하고는 음식점을 나왔다.

한동안 테이블에는 홍 사장과 미주가 젓가락 놀리는 소리만 들렸다.

“사장님. 왜 이렇게 공격적으로 말씀하셨어요?”

“내가 뭘?”

“원래 안 그러시잖아요.”

홍 사장은 물로 입을 헹구며 빙긋 웃었다.

“너, 저 놈 음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제가 랩에 대해서 뭐 아나요? 그냥 매력이 있었어요.”

“매력은 철철 넘치지. 근데 난 세 가지가 크게 마음에 걸려.”

“세 가지요? 네 개라하고 싸가지라고 하시죠?”

홍 사장이 재미없다며 미주의 뒤통수를 살짝 때렸다.

“첫째로 저 놈은 자만하는 중이야. 이건 분명해. 첫 공연에서 그 정도 했다면 재능 있는 건 틀림없는데, 자만은 재능을 죽이는 가장 강력한 제초제거든.”

천재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자만하는 천재는 없다.

“둘째로 화를 안내잖아.”

“네? 화요?”

“고작 열여덟 살이야. 근데 아무리 본인 음악을 무시하고 꼽을 태워도 버럭 하지 않잖아. 그런 놈이 어떻게 남의 가슴을 울리는 음악을 하겠어? 감성보다 이성이 훨씬 쎈 놈이야.”

“그냥 이 악물고 참은 것 아닐까요?”

“아니야. 저 놈은 머리로 계산하는 놈이야.”

“그럼 마지막은요?”

미주의 물음에 홍 사장이 머뭇거렸다.

“AIMMF 위원장이 저 놈을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더라.”

“에? 그럼 좋은 거 아니에요?”

“골든 핑거나, L&S가 컨택 됐다면 무조건 좋은 일이지. 하지만 상현이는 아니야.”

“왜요?”

“아직 자신의 음악관도 없고, 실패했던 경험도 없고, 지식도 없어. 뭐를 받아들이고, 뭐를 흘려들어야할지 모른단 말이지. 지금 대기업의 엔터테인먼트랑 접촉하면 그냥 만들어져서 몇 년 돌려먹는 상품이 될 뿐이야.”

홍 사장이 가장 걱정하는 일이었다.

미주가 히죽 웃었다.

“뭐야, 역시 사장님은 오지랖이 넓으십니다. 악역을 자처하신 건가요? 역시 대부!”

미주가 대부의 주제가를 흥얼거렸다. 홍 사장이 미주의 뒤통수를 쳤다. 미주가 악! 하는 소리를 냈다.

“악역은 무슨…….”

“좀 친절히 알려주시지 그랬어요?”

“내가 랩에 대해 뭘 알아야지 말이다. 아무튼 저 놈은 재능이 있으니까 방향만 잘 잡으면 될 텐데.”

홍 사장이 잠시 턱을 쓰다듬었다.

“연극을 좀 보면 좋을 텐데.”

“상현이가요? 연극은 왜요?”

“소극장의 연극은 드라마나 영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딜리버리(전달력)를 중시하는 매체니까. 아무래도 랩이란 장르와 유사성이 있지.”

홍 사장은 미주에게 말한 것보다 훨씬 더 AIMMF 위원장의 야망이 상현에게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엔터테인먼트 계열사로 다시 진입하고 싶어 하는 야망.

AIMMF 위원장은 홍 사장을 순진하다고 비웃었지만, 사실 홍 사장도 위원장의 배경을 조사해본 뒤였다.

< Verse 2. 움직여야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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