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2. 움직여야지 >
***
상현은 담임선생님과 매주 월요일 1교시마다 수업대신 면담을 가졌다. 부모를 여읜 제자에게 선생이 당연히 해야 할 상담이라는 담임의 신념 때문이었다.
“상현아. 이래저래 바쁘고 공부하기 힘들었을 텐데 고생 많았다. 선생님 기대 이상이네.”
“네.”
“너는 아쉽겠지만, 이 정도면 선생님은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야.”
“노력하겠습니다.”
담임이 상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곧 수업 끝나니까. 수업 종 치면 들어가라.”
상현이 대답대신 인사를 하고 상담실에서 나왔다.
담임이 좋게 돌려 말했지만 그의 월말고사 성적은 엄청나게 떨어졌다. 이전 월말고사에서 상위 20% 안에 들었는데, 지금은 아래서 30%도 간신히 벗어났다.
상현은 복도에서 종이 치길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다.
과거에는 이때부터 공부를 미친 듯이 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공부 밖에 성공할 길이 없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음악을 하기로 했으니까.’
이전 인생을 워낙 공부로 성공했기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억지로 안 좋은 생각을 떨쳐냈다. 괜찮다. 음악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에게는 재능이 있는 듯 했다.
제대로 음악도 안했는데 멋진 무대를 만들었고, 벌써 밴드에서 러브콜도 받았다. 어쩌면 공부보다 음악에 재능이 있을 지도 몰랐다.
“뭐야. 매점가려고? 같이 가자.”
때마침 종이치고 준형이 교실에서 나왔다. 복도에 서있던 상현은 준형과 매점으로 향했다.
“아, 맞아. 상현아, 너는 다음 주 언제가 편하냐?”
“뭐가?”
“크루 만드는 거, 드디어 시간 맞아서 다음 주에 모일 수 있을 것 같아. 다음 주가 놀토면 좋을 텐데 이번 주가 놀토네.”
오늘이 금요일이고, 내일은 학교를 나가지 않는 토요일이었다.
“아무튼 다음 주에 토요일 수업 끝난 뒤나, 아니면 아싸리 일요일 어때?”
“음…….”
상현이 애매한 표정을 짓다가 물었다.
“크루 꼭 만들어야 하냐?”
“뭐? 당연하지. 그럼 너랑 나랑 둘이 음악 할 거야?”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야.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 크루하겠다고 모인 사람들 중에는 음대 다니는 휴학생도 있고, 다른데서 밴드 활동한 사람도 있다더라. 우리는 그런 사람들한테 하나라도 배워야해.”
“그냥 랩만 잘하면 되지 않냐?”
“실력을 잘 포장하는 것도 중요하지. 그리고 막말로 우리가 랩을 잘하냐? 잘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지.”
상현은 준형에게 밴드 L&S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가 말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러브콜만 받은 거지, 별 다른 접점은 없으니까.
그래도 뭔지 우쭐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역시 남자는 죽을 때까지 애라고 하더니만.
“나는 다음 모임부터 나갈게. 일단 너 혼자 가서 한 번 만나봐.”
“나 혼자? 부담스러운데……. 왜? 같이 가자.”
상현은 음악으로 성공할 준형의 방식을 믿었다.
하지만 지금 준형은 너무 시작단계고 초보자다. 상현의 생각으로는 음악을 잘 아는 L&S에서 배워도 충분할 것 같았다.
‘아니면 혼자 하거나.’
혼자해도 충분히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냥. 다음 주 금요일에 상미 중간고사 끝나서 좀 놀아줘야하지 않을까 싶다.”
“흠…… 그럼 별 수 없지. 알겠어. 그럼 우선 내가 먼저 만나볼게. 다음번에 본격적으로 모일 때 같이 가자.”
“그래.”
매점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둘은 음료수만 하나 뽑아먹고 돌아와야 했다.
“아, 맞아. 내가 수업시간에 문자로 가사 보내줄게.”
“무슨 가사?”
“어제 쓴 거야. 한 번 읽어봐.”
“알겠어.”
종이 치고 다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월요일은 체육도 들어있고, 이동 수업도 많은 날이었다. 상현은 중간에 준형의 가사를 받았지만 바빠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대충 훑어봤는데 좀 유치한 것 같은 느낌만 받았다.
어느덧 벌써 4시가 되고 상현의 학교 일정은 끝이 났다. 가방을 챙기는 상현을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상현아, 집 가냐?”
우철이 교실로 들어오며 상현을 불렀다.
“가야지. 나 먼저 간다. 고생해라.”
“야 잠깐 기다려봐. 준형이가 담탱이 심부름 때문에 너희 동네 쪽으로 가야 한다던데?”
“지금?”
“어. 문자해볼까? 아직 교무실에 있으려나?”
“문자했다가 교무실에서 진동소리나면 너 죽일 걸.”
“그럼 걍 잠깐 기다려라.”
“그래.”
어차피 상미는 CA활동 때문에 5시 30분에 끝나니 급할 것은 없었다. 잠깐 기다리니 쇼핑백을 든 준형이 교실로 들어왔다.
“오, 안가고 있었네. 같이 가자.”
“너 어디로 가냐?”
“몰라. 한전 근처래. 가보면 알겠지”
그때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이 쳤다. 상현과 준형은 부랴부랴 학교에서 나왔다.
“아, 이제 슬슬 덥네.”
“아직은 괜찮은데?”
“아, 맞아. 가사는 읽어봤냐?”
“어? 아…… 오늘 체육이다 뭐다 너무 바빠서 제대로는 못 봤는데 보기는 봤어.”
“그래? 어때?”
준형이 기대하며 물었다.
상현에게는 대충 쓴 것처럼 말하며 줬지만 사실 어제 새벽까지 고치고 또 고친 가사였다. 상현이 자세히 봤다면 분명 그가 들인 공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그저 그렇던데. 좀 아쉬운 부분도 있고…….”
“아쉬운 부분?”
“영어 단어로 라임(Rhyme) 맞추는 부분들이 좀 음, 뜬금없다고 해야 하나?”
사실은 단어 선택이 너무 유치한 것 같았는데, 준형을 위해 말을 순화했다. 준형이 상현을 잠시 쳐다보더니 말했다.
“너 제대로 안 봤네.”
“어? 아니야. 봤어.”
“이거 우리 첫 번째 앨범 노래 제목들이잖아. 앞으로 만들기로 한.”
“어? 뭐라고?”
상현은 준형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핸드폰을 열어 다시 가사가 적힌 문자를 확인했다.
“아……!”
상현과 준형은 같이 음악을 하자고 약속한 뒤, 미리 첫 앨범의 수록될 제목을 함께 만들어놨었다. 둘 만의 ‘Set List’가 있는 것이었다.
실제 시간상 20년이 지났지만 상현은 둘이 만든 셋 리스트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과거에 준형이 발매한 첫 앨범의 셋 리스트가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음악을 포기한 상현과의 추억을 잊지 않았던 준형에게 감동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상현은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20년이 지나서라고 변명하기에는 곡 리스트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너무 크다.
상현이 미안함에 머뭇거릴 때, 갑자기 한 무리의 여중생들이 다가왔다.
“오빠! 안녕하세요!”
“어, 어? 누구……?”
상현은 여중생들이 사람을 잘못 봤다고 생각했으나, 왠지 낯익은 얼굴이었다.
“세종악기사에서 봤잖아요!”
“아……! 제일 앞줄에?”
“네! 오빠, 무대에서는 멋있던데 밖에서는 왜 이렇게 어리버리해요?”
여중생 무리들은 말을 걸더니 자기들끼리 왁자지껄 웃었다.
개중 몇 명은 세종악기사에 없었는지 친구들에게 상현에 대해 물었고, 공연을 봤던 여중생들이 사실을 엄청나게 부풀려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맞아! 저 L&S 리더 오빠한테 들었는데 오빠한테 전주 인디뮤직 페스티벌 같이 하자고 할 거라고 했어요!”
“그렇구나.”
“아직 이야기 못 들었어요?”
상현은 난감해졌다. 자신을 알아봐준 것은 고마운데, 타이밍이 너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여중생들이 그들을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찍기 싫다는 사진까지 같이 찍고, 앞으로 팬이 되겠다며 핸드폰 번호까지 받은 뒤에야 헤어질 수 있었다.
< Verse 2. 움직여야지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