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2. 움직여야지 >
갑자기 그 가사가 왜 입에 붙었는지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어차피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일을 겪었기에 깊이 고민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또 뭐 밴드 사운드에 어울리는 음악 없나? 요즘 랩 하는 가수들보면 리얼 악기 연주가 많이 사용되던데?”
“찾아보면 많이 있겠죠?”
한국의 2005년 상업 가요계에서 힙합의 위치는 야구 용어로 ‘뜬금포’가 적당했다.
아무리 가수를 ‘만들어’봤자 망하는 장르이면서도, 가끔 빅 히트를 치는 장르.
MC몽의 ‘I love you, oh thank you’ 등의 아이돌 보컬 후렴이 가미된 정통 발라드 힙합이 큰 성공을 거뒀고, 에픽하이, 배치기의 2005년 힙합 앨범 역시 성공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다.
밴드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래퍼의 피처링 = 상업적’이라는 이상한 공식이 성립하는 시기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인디음악가들의 수가 너무 적어서 이상한 편견도 빨리 생기는 시기지.’
“근데 L&S가 무슨 뜻이에요?”
“뭔 것 같은데?”
“엘지, 삼성?”
“엄청나게 상업적인 이름인데?”
상현의 농담에 피식 웃은 방민식이 고기를 우적우적 씹으며 옥상 아래를 가리켰다.
“Local Spirit. 지역의 혼 같은 거지. 뉴욕은 뉴욕의 아티스트가 있고 파리는 파리의 아티스트가 있듯이, 우리는 홍대는 홍대의, 광주는 광주의, 부산은 부산의 색을 지닌 아티스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때 드러머 황인수가 박장대소를 했다. 용준도 소주를 마시며 좋다고 웃었다.
“아, 형 개소리 좀 그만해요.”
“그런 건 언제 생각했어요? 형 뭐 인터뷰 잡혔어요?”
“아, 시끄러워 미친놈들아. 내 말대로 로컬 스피릿이라고 하자고!”
“왜요? 아니에요?”
상현은 방민식의 설명을 듣고 지역의 자부심을 내거는 힙합의 느낌을 받아서 그런지 아주 좋은 팀명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황인수와 용준이 낄낄거리며 방민식을 비웃었다.
“절대 아니야. 사실 우리 세 명에 대구 가있는 보컬 놈까지 모여서 처음 합 맞추기 시작했을 때 팀명이 없었거든? 근데 어떤 새끼가 민식이 형한테 우리 밴드 음악이 지루하다고 한 거야. 그때는 우리 음악이 지금보다 더 심플했거든.”
“그래서 민식이 형이 진짜 화가 엄청 나있었거든? 근데 갑자기 구청에 공연 신청한 게 허가 났다면서 밴드 이름을 적어내라는 거야. 그래서 형이 엄청 씩씩 거리면서 L&S라고 지었지.”
“지루한 거랑 L&S랑 무슨 상관인데요?”
“Long S. ‘지루’라고.”
이야기를 끝낸 인수와 용준이 좋다고 낄낄거리며 웃었다. 상현은 S가 뭔지 고민하다가 뒤늦게 깨닫고는 같이 웃었다.
“아, 그 이야기 좀 그만해! 이 미친놈들아! 지네 밴드 이미지 깎아먹는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냐!”
“형이 지어놓고 책임 전가하는 거예요? 이게 왜 밴드 이미지야, 형 이미지지.”
소주를 나눠 마시고 약간 취해있던 L&S 멤버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근데 이제 나이 먹어서 약해진 민식이 형 때문에 S&S로 바꿔야 할 거 같아. Short로.”
“걱정 마. 내가 평균 이상이니까 M&S는 어때. 내가 민식이 형을 커버하고 평균으로 세는 거지.”
“상현이는 젊은 피니까, 상현이랑 같이 공연할 때는 또 L&S가 되는 거야.”
황인수와 용준이 방민식을 놀리며 소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고딩이면 어른이라고 주는 술을 같이 마셨던 상현도 취해서 낄낄거렸다.
화가 좀 가라앉고 상현과 다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돌아왔던 미주는 L&S 멤버들과 상현의 이야기를 듣고는 다시 열이 받아서 나가버렸다.
분위기 심각할 줄 알았는데 저질 농담하면서 술 마시고 웃고 난리다.
‘아, 열 받아, 싸이월드에 L&S 뜻 올릴 거야.’
그날 밤 L&S 리더는 미주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해야 했다.
***
세종악기사 사장 홍기영은 광주 인디펜던트 음악가들 사이에서 ‘대부’라고 불렸다. 그만큼 돈 욕심 안 부리고 광주의 독립 음악가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었다.
또, 오랫동안 광주에서 음악관련 움직임을 갖다보니 얼마 전에는 시청에서 ‘광주시 콘텐츠 기획 부서장’이라는 감투를 얻기도 했다. 감투는 별거 아니었지만 덕분에 시청에 사업 지원금을 신청할 자격이 주어졌다.
‘수주를 따내야지 지원금이 나올 텐데…….’
오늘 그가 가게를 닫고 서울로 올라온 이유는 이번에 1회를 맞이하는 한 축제 때문이었다.
아시아 독립예술 음악 & 영화 축제.
ASIA INDEPENDENT
MUSIC & MOVIE FESTIVAL.
줄여서 AIMMF.
홍기영 사장은 이 AIMMF를 광주에서 개최하고 싶었다.
AIMMF는 굴지의 대기업인 오경그룹에서 새롭게 추진하는 축제였다. 오경그룹은 이번에 전주에서 4회째를 맞이하는 ‘월드 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발’의 스폰서 LOC 그룹과 심각한 라이벌 관계였다.
LOC 그룹이 월드 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발에 기업 이미지 홍보를 위한 금전적 스폰만 한다면, 오경그룹은 AIMMF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홍보부터 출연진 관리까지 모두 신경 쓸 계획이었다.
“아, 홍 부서장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차가 너무 막혀서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어서 앉으세요.”
홍기영 사장과 오경그룹 홍보부의 전무가 악수를 나눴다.
홍 사장은 ‘광주시 콘텐츠 기획 부서장’의 입장이었고, 오경그룹 홍보부의 전무는 ‘AIMMF 음악 콘텐츠 진행 위원장’의 입장이었다.
“여기 영상부터 보시죠.”
“정말 사전공지 없는 즉흥 잼 영상 맞습니까? 합의하고 찍은 영상은 티가 나는 거, 부서장님도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당연합니다.”
연주의 기본을 알려면 잼을 봐야한다고 믿는 AIMMF 위원장이 캠코더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그러면서도 한숨이 나왔다.
‘내가 이 짬밥에 캠코더나 보고 있다니.’
위원장은 곧 고개를 저으며 일에 열중했다.
“구도를 보니 정면에서 찍었군요.”
“캠코더를 프로젝트 빔 안에 숨겨놨습니다. 정면일 수밖에 없죠.
“그렇군요.”
영상의 잼이 진행되면서 AIMMF 위원장도, 홍 사장도 말이 없어졌다. 위원장은 자신이 이 짬밥 먹고 출연진 섭외에나 신경써야한다는 사실이 착잡해 입을 다물었고, 홍 사장은 긴장감에 다물었다.
사실 홍 사장도 4주짜리의 잼 영상 중 앞의 2주 밖에 보지 않았었다.
‘문제는 없겠지?’
못할 때는 조마조마한 마음에 긴장이 됐고, 잘할 때는 위원장의 표정을 힐끔힐끔 살피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위원장은 속으로 실소했다.
‘광역시의 부서장이라는 분이 너무 순진하시네. 아무리 명예직에 외근직이라지만. 그리고 이건 진짜 잼 영상이네?’
위원장은 실제 잼 영상을 부탁했지만 홍 사장이 ‘라이브인 척 준비한’ 영상을 찍어올 것이라 예상했었다. 사실 그게 당연한 일이고.
그런데 정말 카메라를 숨겨서 잼 영상을 찍었다.
‘순진한 양반이구먼.’
대기업의 모진 정치세계를 겪은 위원장에게 홍 사장의 정직함은 어떤 의미에서 재밌었다.
‘흠, 그래도 제법이네. 이 팀은 연주가 정말 좋아. 특히 베이스랑 드럼이 장난이 아니네. 보컬 파트에 음역대가 몇 키만 더 높았으면…… 오, 이건 자작곡인가?’
연줄 하나 없이 평사원으로 입사해 오경그룹 엔터테인먼트의 부사장까지 올라갔던 위원장이기에 음악적 소양은 충분했다.
1년 전쯤, 위원장은 사내정치의 파워게임에서 밀려 한직인 AIMMF 홍보부로 좌천됐다. 직책만 진행 위원장이지 사실 하는 일은 섭외부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권고사직만큼이나 굴욕적인 일이었다.
때문에 위원장은 이 악물고 AIMMF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다시 평생을 받쳤던 엔터테인먼트 주류 계열로 진입하고 싶었다.
위원장은 영상을 보며 여러 가지 아이템들을 떠올렸다.
지역감정이 있는 대구와 광주의 두 밴드를 좋은 점만 섞어서 화합의 무대를 만들어볼까?
아니면 네거티브로 지역감정을 유도해볼까?
전라도와 경상도의 노골적인 대결구도?
표절시비를 일으켜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건 어떨까?
그쯤 영상에는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 무대로 오르고 있었다.
“어?”
홍 사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광주 밴드 플레이어들은 거의 알고 있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다.
‘이 친구는 누구지? 영상을 미리 살폈어야 하는데……. 이거 불안한데?’
하지만 최근에 너무 바빠서 여유 시간이 아예 없었다. 자식 놈들 같은 광주 밴드 플레이어들의 실력에 믿음을 갖기도 했고.
‘실력은 있으니 무대에 올렸겠지?’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무대 밑에서 설왕설래하기에 영상을 조금 뒤로 넘겼더니, 저 고등학생이 등장했다. 얼핏 대화를 듣자하니 골든 핑거의 이경민이 심술을 부린 것 같다.
‘이경민 저 자식은 성격 좀 죽여야 해. 부잣집에서 오냐오냐 키우니까 싸가지가 없지.’
다행히 위원장은 이경민의 꼬장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 곡 선정을 고민하던 고등학생이 이것저것을 말하며 밴드 L&S의 연주를 조율했다.
조금씩 사운드가 쌓이기 시작한다.
“흠.”
AIMMF 진행 위원장이 흥미 있는 표정을 지었다.
런디엠씨의 Walk this way라면 그가 젊은 시절에 즐겨들었던 노래. 정말 오랜만이었다.
‘키보디스트는 이 노래를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키보드가 일렉 기타 라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좀 아쉽지만 흥미가 동한다.
마침내 영상속의 L&S와 미주, 상현의 Run this town이 시작되었다. 흥미롭게 지켜보던 위원장의 눈빛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 Verse 2. 움직여야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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