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2. 움직여야지(중복 내용 수정했습니다) >
* 실수로 전편과 같은 내용을 올렸습니다. 9시 43분경 수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페스티발의 밴드 서바이벌부분이라니까 상위권으로 랭크되면 상금과 인지도를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떨어지더라도 L&S와의 인맥. 무대 경험. 콜라보레이션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이게 끝인가?’
건방떨지 말자. 아직 자신은 초짜다.
경험과 인맥이라는 부산물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게다가 밴드와 친해지면 작곡이나 연주가 필요할 때 비벼볼 언덕이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상현은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했다.
“날짜가 언제죠?”
“8월 중순이야. 12일 금요일에 전야제로 시작해서 13일 토요일, 14일 일요일, 그리고 광복절인 15일 월요일에 끝나. 이때면 고등학교 방학기간 맞지?”
8월의 13~15일이란 말이었다.
“그럼 15일이 폐막식인가요?”
“그렇지. 우린 12일 저녁에 갈 거고, 계속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아서 최종 4팀에 포함된다면 15일 날 폐막식에 참여하겠지.”
“조기 탈락하면요?”
“14일에 돌아와. 방값, 식대 이런 건 요구도 안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밴드들 숙소는 거기서 줄 거야. 혹시 상금을 받으면 널 포함해 N분의 1이고.”
상현은 L&S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받았다.
상현이 아무리 멋진 랩으로 피처링을 한다고 해도, 상금을 공평하게 나눌 정도로 기여하질 않을 텐데, 고민하나 없이 N분의 1을 언급한다.
“혹시 광주에서 왔다 갔다 할 수는 없나요?”
“아무래도 악기 때문에 힘들지. 특히 드럼 같은 건 설치하고 분해하기를 반복하기가 좀……. 그렇다고 숙소에 고가의 장비를 놔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근데 왜? 어차피 고등학교 방학기간이라 상관없잖아?”
그때 미주가 끼어들었다.
“상현아, 하자. 만약 너가 하면, 내가 사장님한테 말해서 랩 녹음할 레코딩 장비 쫙 선정해줄게. 너는 약간 하이톤이니까, 높은 헤르츠(Hz)를 안정적으로 잡는 좋은 조합으로 뽑아 달라 할게. 어? 어때? 좋지?”
“누나는 키보드로 참여해요?”
“객원 키보디스트.”
미주가 웃으며 손으로 V표시를 그렸다. 상현은 피식 웃었지만 결국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못할 것 같아요.”
“뭐? 왜……?”
“바로 결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봐.”
“아니에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절 높이 평가해줬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상현이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상현은 상미를 생각하고 있었다. 상미가 점점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으면 불안을 느꼈고, 광장공포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상미를 집에 혼자 두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있으면 괜찮긴 하지만…….’
18살이었던 자신도 1년 가까이 힘들었는데 16살은 오죽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상미를 최소 3일에서 길면 4일까지 혼자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물론 같이 갈수도 있겠지만, 무대를 준비하고, 공연하는 중에는 사람 많고 넓은 축제의 한 가운데에 상미 혼자 있어야 한다.
‘상미의 친구들도 초대해서 함께 갈까? 아니면 나랑 상미만 광주에서 왔다 갔다 할까?’
상현은 아쉬운 마음에 이런저런 차선책들을 생각했지만 결국 고개를 저었다.
상미를 언제까지나 배려할 수는 없겠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지 이제 겨우 한 달이다. 괜히 평온한 일상의 심리적인 안정을 깨고 싶지 않았다.
상현은 하나뿐인 동생에게 마음의 빚이 많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유가 뭔데?”
상현의 사과에 미주가 물었다. 상현은 적당히 둘러댔다.
“제 음악에 그렇게 자신도 없고…….”
“거짓말 하지 마. 확신은 없어도 자신은 있잖아. 자신 없는 놈이 무대에서 그렇게 할 수는 없어.”
“거짓말 아니에요.”
“지금 네가 하는 말은 너의 음악성을 믿고 밴드의 흥망을 배팅하려는 L&S를 무시하는 거야. 알고 있지?”
미주가 언성을 높였다.
미주는 사실 곡으로만 따지면 L&S보다 골든 핑거의 곡을 좋아했다. 골든 핑거의 인성은 별로지만 어쨌든 그들의 자작곡은 수준이 높은 게 사실이니까.
그러나 그녀는 L&S의 사람들이 정말 좋았다.
노력하는 게 보이고, 시류를 타지 못한 보컬의 아픔도 보였다. 음악을 단순히 연예인 놀이나 돈벌이로 생각하지 않는 진지함이 좋았다.
그런데 상현이 별 생각도 없이 단번에 거절하니 열이 나는 것이다.
“어디 제대로 말해봐. 이유가 뭐야? L&S랑 하면 안 될 것 같아? 시장성이 없어?”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그럼 뭔데?”
“제가 좀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미주가 몇 번을 물어도 상현은 사정이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상현도 난감했다. L&S에 좋은 감정이 있었는데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이.
물론 상현은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동생을 혼자 둘 수 없다는 이야기를 툭 까놓고 할 수도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이 그에게는 20년째의 익숙한 일이니까.
‘하지만…….’
상미가 고아소리를 듣는 게 싫었다.
상미의 중학교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상현 자신이 직접 다른 계통의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과는 별개다. 사람의 입이 싸고 무겁고를 떠나서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금방 퍼지게 된다.
“그니까 이유가 뭐냐고!”
미주가 드디어 화를 냈다.
상현은 상현대로 난감했고, 미주는 미주대로 화가 났다.
안 그래도 뇌를 거치지 않고 입으로 막 뱉는 성격의 미주인데, 상현이 변명도 이유도 대지 않고 무턱대고 거절하니 화날 수밖에.
L&S의 멤버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둘을 말렸다.
베이시스트 용준은 왜 우리 일 가지고 니네가 싸우고 난리냐며 미주를 가라앉히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미주의 불만과 투정이 길어지자 상현도 슬슬 성질이 돋았다.
그도 가고 싶다. 절대 가기 싫은 게 아니다.
“어지간히 하세요. 시끄러우니까.”
상현으로써는 그보다 훨씬 어린 여자한테 화를 내면서 최대한 예의를 갖춘 거지만, 미주가 듣기에는 아니었다. 결국 미주는 상현한테 한바탕 욕을 퍼붓고는 L&S의 연습실에서 뛰쳐나갔다.
미주가 나가자 잠시 침묵이 흐렸다. 침묵을 깬 것은 용준의 베이스 소리였다.
-빰빠밤, 빰빰빰 빰빠밤
베이스 팡파레가 울렸고, 드러머도 두구두구두구하면서 드럼을 울렸다.
“어우 저 시끄러운 기집애 드디어 나갔네. 상현이, 밥 안 먹었지? 기다려봐, 아까 삼겹살 사왔으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진짜 L&S가 싫어서 공연 못하고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사정 있는 거 알아, 임마. 미주도 한 시간쯤 뒤에 깨달을 거야. 쟤가 원래 뇌를 안거치고 말해서 자주 후회하고 그러니까 나중에 사과하면 받아주기나 해.”
“그래. 미주한테는 내가 잘 말할게. 그리고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완전히 해결되면 이야기해주고. 아, 부담 주는 건 아니야. 절대 무리할 필요는 없어.”
“네. 광주에서 공연하면 언제든지 도울 수 있어요. 필요하면 아무 때나 연락주세요.”
“일단 밥부터 먹자. 배고프다. 근데 너 우리 이름 아냐?”
“알죠. L&S."
“그럼 내 이름은?”
이런 대학교 여자 신입생 갈구는 예비역 선배의 추파 같은 질문을 받게 되다니.
“……몰라요.”
상현은 연습실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L&S 멤버들과 친분을 다졌다. 이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리더이자 리드기타인 방민식.
랩에 관심이 많다는 드러머 황인수.
학교 선배라고 자꾸 존경을 강요하는 베이시스트 용준.
‘용 씨 성도 있구나.’
그리고 이 자리에 없는 보컬 차인현.
보컬은 대구에 가있었고, 세컨드 기타는 대학원생이라서 얼굴보기 힘들고, 어느 순간부터 나간 사람 취급한다고 말했다.
상현은 얼마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는데, L&S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뮤지션 대 뮤지션으로서의 갖는 첫 인연이었다. 그들은 고기를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잘 몰랐는데 런디엠씨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더라?”
“래퍼 최초로 빌보드 메이저에 입성했으니까요. 흑인과 백인, 랩과 록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가도 받고.”
“너 그때 Walk this way에 부른 랩은 뭐야? 자작 가사야?”
고기를 굽던 용준이 물었다.
“그렇죠.”
“이경민을 겨냥해서 랩하는 것 같던데? 가사도 그렇고. 즉석에서 한 건가? 프리스타일? 요요?”
“아니에요.”
상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세종악기사의 공연 이후 상현은 책상 서랍에 숨겨진 하나의 노트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자신의 가사 노트였다.
기억이 흐릿흐릿했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래퍼의 꿈을 키우며 써놓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대부분 유치한 면이 많지만 간혹 괜찮은 가사들도 있었다.
런디엠씨의 Walk this way에 부른 Run this town은 비교적 최근에 써진 가사였다.
‘몸이 가사를 기억하고 있는 걸까?’
갑자기 그 가사가 왜 입에 붙었는지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어차피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일을 겪었기에 깊이 고민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 Verse 2. 움직여야지(중복 내용 수정했습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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