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2. 움직여야지 >
그렇게 양동시장에서 위쪽으로 조금 걷다보니 허름한 갈색 건물이 나왔다. 그곳 4층이 L&S의 연습실이었다.
“상현이 데려왔습니다!”
“오, 이 건방진 후배님!”
L&S의 베이시스트 용준이 격하게 상현을 반겼다.
“그날 그렇게 가냐? 박수칠 때 떠나는 거야? 뭐야? 건방진 자식.”
“잘 왔어. 밥은 먹었고?”
“오, 우리 래퍼님 오셨네.”
L&S의 리더, 드러머, 베이시스트가 상현을 반겼다.
상현은 그들의 지나친 환대가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건 상현이 모르는 것이었다. 밴드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상현의 이름과 공연 동영상이 퍼지고 있었다. 광주에 전혀 없던 제대로 된 래퍼, 혹은 블루칩으로.
누군가 첫 번째 기타솔로 브릿지부터 부랴부랴 찍은 동영상을 광주 인디 밴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짧은 영상이지만 충분히 상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영상이었다.
때문에 가끔 세종악기사로 와서 미주에게 상현의 연락처를 물어보는 밴드도 있었다. 미주는 L&S와의 모종의 약속을 통해 모른다고 했고.
래퍼들이 VST악기(작곡용 가상 악기, 컴퓨터로 찍어내는 악기 소리)에만 랩을 하다가 밴드의 리얼 사운드에 반하는 것처럼, 밴드들도 실력 있고 감초 역할을 해줄 래퍼를 탐냈다.
“안녕하세요.”
“거기 앉아봐. 우선 네가 들어야할 연주가 있어. 미주야 일로 와봐.”
어리둥절해 하는 상현이 자리에 앉고, 밴드 L&S와 미주가 뚱땅뚱땅 손을 풀더니 갑자기 연주를 시작했다.
익숙한 전주. 런디엠씨의 Walk this way.
아니, 키보드 세션이 있으니 상현의 Run this town이었다.
‘와, 장난 아니네.’
드럼과 일렉 기타 라인은 런디엠씨의 라인을 탄탄하고 충실하게 따라갔다.
특히 리더 겸 기타리스트는 에어로스미스의 느낌을 완전히 버리고, 런디엠씨의 Walk this way에다가 자신들만의 느낌을 섞어 완벽하게 연주하고 있었다.
‘열심히 들었나본데?’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용준의 베이스와 미주의 키보드였다.
본래 베이스는 밴드 사운드에서 튀는 소리가 아닌데, 용준은 일부러 강한 사운드를 만들며 일렉 기타의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새로운 느낌을 내고 있었다.
또한 미주가 이전 공연에서는 일렉 기타 라인 그대로를 쳤다면,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멜로디 라인을 치고 있었다. 일렉 기타와 하모니를 이루게 맞춰 만든 것 같은데 속주(빠른 연주)가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 두 번째 브릿지의 키보드 솔로는 숨이 턱 막히는 속도였다.
-타탕!
거센 드럼 소리를 마지막으로 연주가 끝이 났다.
상현은 진심으로 박수를 쳤다.
세종악기사 공연이 끝난 지 일주일도 안됐는데 이렇게 완벽한 연주라니. 그들의 노력이 보였다.
“어때?”
“완벽한데요.”
“조금 더 힙합적인 느낌이지?”
L&S의 리더의 말에 상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요. 이건 더 팝(Pop) 적인 느낌이죠.”
“무슨 소리야? 이게 어떻게 팝 적이야?”
상현이 어설프게 웃었다.
생각해보니 2005년의 팝 적인 느낌과 2025년의 팝 적인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는 지금 L&S의 사운드를 2012년에 데뷔하고 2019년에 커리어 하이를 찍은 이매진 드래곤스(Imagine Dragons)의 느낌과 흡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매진 드래곤스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까?
물론 그래미 밴드와 비교하기에는 아직 밴드 L&S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아니에요. 제가 좀 착각했네요. 힙합적이기도 하네요.”
“그렇지? 막 들으면 랩하고 싶고 그러냐?”
상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우리 밴드 좀 도와줄래?”
“네?”
“이번에 전주에서 열리는 월드 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발에 L&S가 참가할 거야.”
L&S의 리더가 상현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네가 좀 도와주지 않을래?”
“저 노래 잘 못해요.”
“너한테 노래를 바라는 건 아니야. 당연히 랩이지.”
“그래도 보컬하시는 분이 따로 있지 않나요?”
“혹시 너 우리 무대 본 적 있어? 아, 아니구나. 원래 우리 팀 이름도 몰랐었지?”
“아니에요. 이름만 몰랐지, L&S가 노래하는 거 본 적 있어요.”
“언제?”
상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갑자기 병원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그, 저기 일곡동쪽 병원에서…… 입원환자를 위한 콘서트?”
“어? 정말? 너 거기서 공연했었어? 우리가 앞쪽 순서에다가 다른 공연이 있어서 뒤를 못 봤거든. 전혀 몰랐네. 무슨 곡 했어?”
“공연은 아니고 아파서 입원해 있었어요.”
“엥?”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미주가 껴들었다.
“무슨 입원?”
“그냥 잠깐 아팠어요. 별 건 아니었고요.”
“잠깐 아프다고 입원씩이나 해? 어디가 아팠는데?”
“보험금 좀 받으려고요. 제가 들어놓은 보험이 좀 많거든요.”
상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L&S 리더가 미주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손짓했다.
“그래. 우리 보컬 봤다면 알겠네. 무대가 어땠어?”
상현이 머뭇거렸다. 솔직한 대답은 ‘연주가 아까운 보컬 실력이었어요’라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표정 보니 알겠다. 그런데 그건 네가 오해하는 거야. 우리 보컬은 절대 노래를 못하지 않아. 단지 음역대가 너무 낮을 뿐이지. 중저음에서 보컬 컨트롤과 감정 표현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다고 자부해.”
의외의 말에 상현이 L&S 보컬의 무대를 떠올렸다.
리더의 말대로 목소리는 좋았는데 음이 안 올라가서 악을 쓰는 느낌이었던 것도 같다.
상현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리더가 몇 마디를 덧붙였다.
“우리 L&S는 네오소울과 컨츄리를 추구하는 팀이야. 실제로 우리 음반은 매니아들이 ‘고음병치료제’라고 부르거든. 판매도 지방 인디밴드 치고는 나쁘지 않았고.”
상현은 너무 진지한 리더의 어투에 당황했다.
고음병치료제라니 이거 농담인가? 웃어야하나?
밴드하는 사람들이 한국은 고음만 먹히는 시장이라고 욕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덕분인지 몰라도 그룹사운드 열풍이 끝나고 몇 년 지나면 대중들 사이에서 ‘인디 음악 = 조용한 음악’이라는 이상한 편견이 생기기도 한다.
‘한 마디로 시대를 앞서 태어났다 이거군.’
자기들 주장일 뿐이니 제대로 들어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이번에 전주 월드 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발은 기회이면서 위기야. 보컬의 불안한 고음이냐, 음악성은 있지만 대중에게 외면 받는 중저음이냐를 선택해야하니까.”
“대중을 위한 상업성을 무시하지는 않네요?”
“음…… 날카로운 질문이네. 상업성을 배제하지는 않아. 단지 평소에는 우리 음악을 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돈 되는 음악’을 하고 싶은 거지. 물론 목적은 우리의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서. 이렇게 버티고 버티다보면 언젠간 우리 음악이 돈 되는 음악이 되지 않겠어?”
상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은 자세다.
“그래서 보컬의 장기를 살리면서도 관객의 귀를 사로잡기 위해서 백업 랩이 필요하다 이건가요?”
“너를 무작정 들러리로 세우려는 건 절대 아니야. 우리가 밴드 서바이벌에 참여하면 6곡을 준비해야하는데, 일단 Walk this way는 확실히 네가 메인으로 가겠지.”
“흠…….”
밴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이라.
페스티발의 밴드 서바이벌부분이라니까 상위권으로 랭크되면 상금과 인지도를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Verse 2. 움직여야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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