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1. Run this town(完) >
마침내 모든 관객들이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영어 랩의 의미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상현이 주려는 느낌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Just Do!
단지 신나면 되는 것이었다.
상관없다는 듯이 흔들었지
이건 아주 좋은 기회
이미 준비가 된 아가씨와 함께
우린 춤을 추고 흔들었지
Walk this way!
talk this way.
Walk this way!
talk this way.
상현의 다듬어지지 않은 고음 뒤로 L&S 베이시스트의 즉흥적인 화음이 저음으로 깔렸다.
"Walk this way."라는 간단한 가사에 관객들도 참여했다.
런디엠씨가 1986년에 허물었던 랩과 록의 경계가 지금 이곳에서도 허물어지고 있었다.
Classic is forever.
명반은 결코 변하지 않으니까.
Walk this way!
talk this way.
Walk this way!
talk this way.
그렇게 정신없이 노래를 이어오던 상현은 노래를 끝내가며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런디엠씨의 Walk this way는 에어로스미스의 Walk this way를 샘플로 커버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가사의 방향성이 비슷했다. 에어로스미스의 walk this way처럼 소년이 여학생을 유혹하는 내용이었다.
상현이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이었다.
런디엠씨를 리스펙트하며 불렀지만 그는 MC가 되고 싶었다. 카피곡으로 래퍼 행세를 하는 가짜 래퍼가 되고 싶지 않았다.
노래가 끝났음을 짐작한 L&S의 기타리스트가 소리를 페이드 아웃하며 연주를 끝냈다. 이제 드럼, 키보드, 베이스 순으로 빠질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직 상현의 랩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 상현의 랩에서 나오는 것은 한국어였다.
Run this town. 광주City 전부 내 꺼
라임하나만 가져다 놔, 난 래퍼
마음대로 욕해봐 나만의 Origin
이미 무대와 조명이 어울리지
상현의 시선이 의도한 듯, 의도하지 않은 듯 이경민을 향했다. 모두 눈치 챘다.
이 고딩이 제법 성깔이 있으며, 지금 뱉는 랩이 이경민을 겨냥한 랩이라는 것을.
음악한단 애들이 뭐 그리 말아 많아?
꿀 냄새 나는 멘트로만 여자애들 잡아
배경 없이 랩 하려니 내 입만 닳아
스폰서가 필요해, 누구?
광주 city in my first home.
벌레들아 저리 비켜 세스코 옴
상현의 날이 선 짧은 랩이 끝났다.
드럼이 잠시 라인을 이어가다가 하이헷을 두드리며 연주를 끝냈다.
관객들은 참으로 얄궂다.
그들이 응원하는 골든 핑거의 멤버가 욕먹었음을 알지만, 신이나면 소리를 지를 수밖에.
“까아아!”
특히 여중생 무리들의 괴성이 대단했다. 가뜩이나 희귀한 랩 음악에 미친듯이 신나는 펑키 일렉트로닉이 더해졌으니 소리를 안지를 수가 없었다.
공연에 만족한 것은 비단 여중생뿐만이 아니었다.
밴드 음악을 좋아해 공연도 아닌 잼을 보기 위해 모인 다른 리스너도 단번에 상현의 얼굴을 기억하게 되었다.
“아…….”
미주는 손목을 주무르며 상기된 표정으로 상현을 보았다.
유명 음대의 피아노 전공자인 미주는 하드록 밴드 딥 퍼플(Deep Purple)의 키보디스트 존 로드(John lord)를 보고 록 밴드의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퍼켜선과 스트링으로 범벅된 강렬한 록음악 속에서도, 색다른 매력을 뽐내는 존 로드의 키보드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홍대의 몇몇 밴드를 전전하며 느낀 것은 깊은 실망이었다. 운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키보드를 제대로 이해하고 배치하는 밴드를 만난 적이 없었다.
맘에 들었다 싶은 메탈 밴드들은 오리지날 헤비메탈을 추구하며 키보드를 배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2년 정도 밴드 사이를 전전하던 미주가 고향으로 내려온 지 2달 만에, 그간 꿈꾸던 음악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랩 음악과 함께.
“감사합니다. 오늘이 첫 무대였는데 여기 밴드 분들 덕분에 재미있게 했습니다. 밴드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지……?”
상현의 질문에 관객들이 L&S라고 대답했다. 상현이 밴드 L&S에 감사를 표하는 사이, 여중생들이 위험한 발언을 했다.
“오빠 첫 무대 아니잖아요! 넘어진 사람!”
어쩐지 과한 반응을 해준다더니 무려 ‘20년 전’의 무대를 본 학생들이었다. 상현은 가볍게 여중생들을 무시하고 인사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앵콜소리가 나왔지만 당장 생각나는 곡도 없고, 상미의 학교가 끝날 시간이었다.
“앵콜을 할 만한 곡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골든 핑거의 이경민은 어느새 없어져있었고, 함께 연주했던 L&S가 다른 밴드와 함께 엔딩 잼을 시작했다.
구경하던 상현의 옆으로 미주가 다가왔다.
“이상현이라고?”
“알면서 왜 또 물어요.”
“누나 이름 알아?”
어우 저놈의 누나 소리.
“미주라면서요.”
“신미주야. 혹시 너 어디 소속된 밴드 있어?”
“제가 밴드에 왜 소속 되겠어요? 밴드음악 하는 사람이 아닌데.”
미주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밴드 사운드에다가 랩하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오늘 처음 해봤어요.”
“이거 노래 제목 뭐야?”
“말했잖아요. 런디엠씨의 walk this way. 오리지날 트랙은 에어로스미스의 walk this way."
미주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아니, 원곡 말고 마지막에 부른 네 노래의 제목이 뭐냐고.”
“제 노래요?”
상현은 머뭇거렸다.
“……Run this town."
Run this town. 광주 City 전부 내 꺼
상현은 갑자기 튀어나왔던 랩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프로 래퍼의 곡을 도용한 건 아니었다.
이건 분명 내가 쓴 가사이다.
“런디스타운이라.”
상현의 얼굴이 빨개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쟁쟁한 밴드들 앞에서 대담한 단어 선택이다. 하지만 뭔가 뿌듯함이 느껴졌다.
투팍과 비기는 미국 동부 힙합과 미국 서부 힙합을 대표하며 디스(Diss)전을 벌이다가 총격으로 사망했다.
에미넴을 비롯한 디트로이트 래퍼들은 ‘Detroit vs everybody‘라는 곡을 냈다.
래퍼들에게 있어 연고지에 대한 자부심은 내가 이 도시에서 내 음악을 완성했어! 라는 자부심이자, 일종의 선전포고다.
“내 키보드 솜씨 괜찮지? 혹시 나중에 키보드 필요하면 연락해.”
“아무 때나요?”
“오늘 같은 음악할 거면 아무 때나.”
상현이 피식 웃으며 미주와 핸드폰 번호를 교환했다.
“그리고 이 번호 밴드들이 달라하면 준다? 저기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보는데?”
엔딩 잼을 하고 있던 L&S 밴드의 멤버들이 가방을 들고 내려가려는 상현을 애타게 쳐다보고 있었다. 특히 운산고 선배라는 베이시스트는 눈으로 협박을 하고 있었다. 너 내려가면 죽는다고.
상현은 잠시 인사라도 나눌까 하다가 핸드폰에 상미의 이름이 뜨자 L&S 밴드들에게 고개를 까닥거려 인사하고는 미주와 함께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미주는 1층에서 손님을 응대하고 있는 사장님의 무시무시한 눈빛을 받아야만했다.
“악! 사장님! 그게 아니고!”
“죽을래? 얼마나 가게를 비워놓은 거야? 미쳤어?”
상현은 피식 웃으며 세종악기사 밖으로 나왔다. 상미의 학교가 멀지 않으니 밖에서 만나 밥이라도 먹고 들어가야겠다. 전화를 받았다.
-오빠 어디야?
“광주.”
-아…… 미쳤어? 집이지?
“집 아니야.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나 오 분이면 너희 학교에 도착해.”
-어? 우리학교로 오게? 오지 마. 친구들 있어, 창피해.
“그냥 기다리고 있어.”
-아, 어딘데!
“기다려.”
상현은 전화를 끊었다. 상미가 기다릴 테니 뛰어가야겠다.
말 그대로 Run this town.
피식 웃은 상현이 달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상현의 첫 공연 날이자, 알음알음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 날이었다.
< Verse 1. Run this town(完)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