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14화 (14/309)

< Verse 1. Run this town >

“런디엠씨의 Walk this way 가능한가요?”

그러나 골든 핑거에는 런디엠씨의 ‘Walk this way’를 아는 사람이 없었고, 런디엠씨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다. 관객 중 일부는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라고 말하는 정도.

‘2005년 한국에서 힙합의 위치가 보이는 군.’

상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어…… 그쪽 밴드 이름을 모르겠네요. 뭐라고 불러야하죠? 아무튼 밴드 에어로스미스(Aerosmith)는 아시나요?”

골든 핑거의 리더는 자신들의 이름을 모른다는 상현의 말에 약간 발끈하다가 에어로스미스 이름을 말하는 것에 코웃음을 쳤다.

“저희 밴드 이름은 골든 핑거에요. 그리고 에어로스미스를 모르는 밴드도 있을까요?”

1970년에 결성된 록 밴드 에어로스미스.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했고 30장이 넘는 플래티넘 앨범을 발표하는 등, 전 세계에서 1억 5000만 장의 음반을 판매한 역대 미국 최고의 록 밴드로 평가받는 그룹.

일반인들에게는 빌보드 1위를 기록한 11집 앨범 <겟 어 그립(get a grip)>과 영화 ‘아마겟돈’의 OST이며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한 I Don't Want To Miss A Thing으로 한국에서 유명한 밴드였다.

그러나 상현은 에어로스미스가 유명한 밴드인지 잘 몰랐다.

그가 에어로스미스의 노래를 들은 것은 딱 한 곡뿐이기에.

“아, 그렇게 유명한 밴드인지 몰랐네요.”

상현이 골든 핑거 쪽으로 다가왔다.

“그럼 에어로스미스의 walk this way는 연주 가능하겠네요?”

상현의 말에 골든 핑거의 리더가 머뭇거렸다.

‘들어본 노래인 것 같기는 한데…….’

일렉 기타 사운드가 제법 좋았던 노래였다는 것은 기억나는데 멜로디나 사운드가 기억이 안 난다.

그때 어디선가 펑키한 드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기본적이지만 가벼운 드럼 라인…… 그리고 이어지는 세련된 일렉 기타.

연주자는 마침 오늘 보컬이 없는 L&S 밴드의 드러머와 기타리스트였다. 곧 이어 베이스도 사운드에 끼어들었다. 순식간에 펑키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완성됐다.

지루하게 쳐다보면 관객들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1977년 빌보드 싱글차트 10위를 기록했던 에어로스미스의 walk this way. 70년대에 만들어졌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세련된 라인에 2005년의 연주자들이 가세하자 금방 굉장한 사운드가 분출됐다.

“2001년 슈퍼볼 노래 맞죠? 브리트니 스피어스 나온?”

밴드 L&S의 기타리스트가 상현에게 물었다. 그러나 슈퍼볼은 상현이 모르는 내용이었다.

“그런 건 잘 몰라요.”

“아무튼 골든 핑거 분들은 이 곡을 모르시는 것 같은데 저희가 연주해도 될까요?”

“아, 그러세요.”

골든 핑거의 리더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연주의 스펙트럼이 좁게 보였을까?

‘한 곡 정도는 모를 수도 있지 뭐.’

어차피 중요한 것은 골든 핑거의 이미지가 상실되지 않는 것이고 저 고딩이 후진 실력으로 엿 먹는 것이다. 골든 핑거가 연주하든 L&S가 연주하든 중요한건 노래실력이다.

“어이, 이름이 뭐냐? 참고로 형도 운산고 출신이다.”

L&S의 베이시스트가 상현에게 물었다.

“이상현이요.”

“좋아. 연주에 대해 뭐 요구할 거 있어?”

상현은 방금 들었던 밴드 L&S의 Walk this way를 떠올렸다. 완성도 높고 펑키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지만 그것은 에어로스미스의 곡이다. 상현은 Run DMC의 사운드를 원한다.

“아, 제가 음악 용어나 연주법을 잘 몰라서 풀어 설명할게요. 여기 혹시 키보드 치는 사람 없어요?”

“내가 칠게!”

안절부절 못하던 미주가 앞으로 나왔다. L&S의 기타리스트가 웃었다.

“미주, 너 알바는 어쩌고? 사장님한테 혼난다?”

“아, 몰라. 어떻게 치면 돼? 상현아?”

뻔뻔하게 몇 초 전에 들은 이름을 친근한 척 부른다. 상현이 피식 웃으며 연주에 대해 빠르게 설명했다. 관객들이 너무 오래 기다렸다.

“방금 일렉 기타 라인을 키보드로 그대로 칠 수 있어요? 그럼 그 멜로디를 좀 듬성듬성하고 날카로운 음으로 바꿔서 쳐주세요. 옥타브 확 올려서.”

“무슨 요구가 이따위로 추상적이야? 듬성듬성?”

미주가 투덜거리며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듬성듬성이란 게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소리가 좀 비어있길 바라는 것 같았다.

본래 런디엠씨의 Walk this way에는 키보드가 없고 디제이의 턴테이블이 있다. 상현은 디제잉과 세컨 기타가 채웠던 사운드의 풍성함을 키보드로 대체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는 악기나 음악적 이론에 대해서 몰랐지만 그렇다고 감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조금 만 더 빠르게! 아니, 너무 빨라요. 살짝 느리게…….”

상현의 지시를 받은 키보드의 속도에 맞춰 드럼이 들어갔다. 보통과는 반대의 경우였기에 드럼이 잠시 애먹다가 곧 속도를 맞췄다.

에어로스미스의 오리지날 버전보다는 조금 빨라지는 비트. 이어 들어오는 일렉 기타와 베이스.

“기타 사운드 좀 더 키워주세요. 더, 더. 이건 드럼보다 기타 중심의 곡이에요. 드럼의 역할은 마디를 결정짓는 스네어 역할이에요. 때문에 드럼에서 중요한 건 소리를 칼같이 끊는 거예요.”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힙합 같은 블랙뮤직에서 마디를 스네어로 나누잖아요. 약간 컴퓨터 사운드 같은? 그런 느낌으로.”

상현의 부연설명에도 L&S의 드러머는 이해를 못했다.

어찌 생각하면 2005년의 밴드들이 힙합에 무지한 것이 당연할 지도 몰랐다. 상현이 음악적 용어를 몰라서 설명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상현은 결국 설명을 포기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사운드가 잡혔다. 머릿속으로 기억하는 런디엠씨의 Walk this way와는 차이가 있지만, 이건 또 나름의 느낌이 있었다.

특히 미주의 키보드가 의외로 맛깔났다.

상현은 마지막으로 가사를 점검했다.

이 노래는 상현이 가사를 외우고 있는 몇 안 되는 외국의 랩 트랙(Track)이다. 그러나 Walk this way에 대해 알고 있는 힙합 매니아는 이 노래를 외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할 것이다.

“준비 됐지?”

“네.”

운산고 선배라 그런지 유난히 친절한 L&S의 베이시스트가 상현의 어깨를 툭 쳤다.

‘교복 괜히 입고 왔네.’

그러나 점차 함부로 대해짐(?)에 익숙해지는 상현이었다.

“소개 한 번 해봐”

상현이 앞으로 나서며 마이크를 잡았다. 참으로 오래 기다렸던 관객들이 상현에게 집중했다.

“30분도 넘게 기다리신 것 같네요. 맞죠?”

“괜찮아요. 재밌었어요!”

한 무리의 여중생들이 대답했다. 다른 관객들도 처음에는 지루했지만, 즉석에서 하나의 곡을 쌓아가는 과정 덕분에 지루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저는 운산고 2학년인 이상현이라고 합니다. 조금 긴장되네요. 시작하겠습니다.”

상현이 살짝 앞으로 나오며 마이크를 잡았다. L&S의 드러머가 우렁찬 소리를 질렀다.

“Just Rock N Roll!"

"Just Rock N Roll!"

L&S 연주자를 비롯한 관객들이 함께 소리 질렀다. 이것은 L&S가 연주를 시작할 때마다 외치는 시그니쳐 사운드(Signature Sound)였다.

둔탁한 드럼이 터지며 볼륨을 잔뜩 키운 일렉기타가 울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들어오는 날카로운 키보드!

그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연주 좀 중단해주세요.”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출발했던 사운드가 상현의 훼방으로 중단됐다. 완벽하게 ‘합’이 맞는, 실제 공연 중에도 느끼기 힘든 드문 느낌을 받았던 연주자들이 불만스럽게 연주를 멈췄다.

“오해가 있는 모양이네요. 제가 하려는 건 록음악이 아니에요.”

상현이 마이크를 잡고 아주 작게 말했다.

“Respect Run DMC."

런디엠씨를 존경하며.

“Shout out to mine."

내 음악을 위하여.

“Let's go!"

상현의 목소리에 드럼이 포문을 열었고, 곧이어 일렉 기타 사운드가 공연장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 Verse 1. Run this town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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