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10화 (10/309)

< Verse 1. Run this town >

Verse 1. Run this town

상현은 다음날 퇴원했다.

의사 소견으로 스트레스성 질환은 완치의 기준이 모호하다고 했지만 상현은 스스로 완전히 나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정말로 신기한 일이었다.

의사는 며칠 더 입원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불안해하는 상미를 위해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서도 마냥 병원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주말을 이용해서 상미와 광주에서 멀지 않은 전주로 나들이를 갔다.

사실 여동생과 단 둘이 어딘가를 놀러가는 것은 어색한 일이었다.

과거에 그와 상미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매였고, 사춘기 시절의 남매란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친한 친구만 못한 법이니까.

“오빠는 이제 괜찮아?”

“뭐가?”

“스트레스가 심해서 병원에 입원까지 했잖아. 괜히 나 때문에 이렇게 나와도 되나 싶고…….”

상미의 입장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별 것도 아닌 걸로 싸우고 다투던 철없던 오빠가 갑자기 아빠처럼 행동하는 게 어색한 일이었다.

그녀가 보기에 상현은 가장이 됐다는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서 억지로 어른 행세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요즘 학교는 어때?”

“별 일 없지. 시험기간 다가오니까 쌤들이 닦달하는 거 말고는.”

“곧 기말고사지?”

“곧은 아니야. 이십 일도 넘게 남았으니까!”

상현이 피식 웃었다.

그의 기억에 상미는 공부를 못했다. 그런데 그게 못한 건지,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을 지레짐작으로 포기하고 안한 건지가 기억이 안 났다.

“상미야. 넌 꿈이 뭐야?”

“꿈? 에이, 오빠 너무 앞서갔다. 심각한 아빠 코스프레야, 그거.”

상미가 웃고 상현도 민망함에 웃었다.

그러나 상현은 이것이 꼭 필요한 대화라고 확신했다.

“상미야. 오경그룹 오 과장님이 소개해주신 변호사가 부모님 보험금과 사고보상금을 받아내면, 사치는 못해도 우리 두 명이 학업을 끝낼 때까지 돈 걱정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오빠 말은, 네가 배우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야.”

“그러는 오빠는 뭘 하고 싶은데?”

“음…… 사실 오빠는 음악을 하고 싶어. 그리고 병원에서 앞으로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어.”

상현은 상미에게 꿈에 대해 말하는 것이 긴장됐다.

아직은 가수에 대한 인식이 팬덤을 이끌고 다니는 우상보다는 딴따라에 더 가까운 시기다. 특히 래퍼는 더욱 그런데, 2005년의 힙합은 ‘21세기가 밝으며 죽었다’는 평가를 받는 록음악보다 더 인기가 없었다.

청소년들의 우상이자 장래희망 1순위가 연예인이 되는 것은 조금 나중의 일.

지금이 2005년이니 내년, 내후년을 기점으로 ‘K-Pop 아이돌 음악’이라는 장르가 펑 터진다.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등의 그룹들이 데뷔하고 나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YG랑 SM 주식이라도 사둘까? 내년부터 장난 아닐 텐데. 아직 YG는 상장이 안됐던가?’

힙합은 2008년을 기점으로 확실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2012년 즈음부터 오디션 프로그램을 비롯한 다양한 매스미디어를 적극 이용해 대중화에 성공한다.

그러나 힙합의 본토인 미국처럼 ‘가장 잘하는 래퍼가 가장 성공한 래퍼’라는 시스템은 결국 자리 잡지 못한다.

실력의 중요성은 커졌지만 잘하고 재미없는 래퍼보다는, 조금 덜 잘하지만 상품성 있는 래퍼가 각광받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음악이면 랩 말하는 거지?”

“어? 어떻게 알았어?”

“뭘 어떻게 알아. 작년에 오빠 학교 축제 때봤지. 그리고 오빠 생각보다 유명해.”

“내가? 왜?”

“무대에서 넘어졌잖아. 그것도 엄청 크게.”

“아…….”

상현은 뒤늦게 잊고 살았던 흑역사가 떠올랐다.

상현의 모교인 운산고는 엄격한 두발 단속, 핸드폰 단속, 복장 단속 등으로 보수적인 명문 고등학교 느낌이지만, 축제시즌에는 예외였다.

보통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다른 학교의 축제와 다르게 운산고는 강당전체에 소리를 채울 수 있는 고급 음향장비가 갖춰져 있었다.

또한 매년 축제마다 나름 인지도 있는 인디밴드들이 꼭 한 팀씩은 섭외되었다.

축제시즌이 되면 광주 대다수의 중, 고등학생들은 자기 학교 축제는 안가도 운산고의 축제는 방문하고는 했다.

‘그리고 난 그 축제 무대에서 드롭킥을 하듯이 엄청 크게 넘어졌고.’

생각해 보니 작년에 있었던 ‘이상현 드롭킥’은 여전히 놀림이 진행 중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의 눈치를 살피는 친구들의 일시적인 배려일 뿐이지,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동창회에 나갔을 때도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사건이었다.

“난 망했어…….”

상현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역시 일 년 전으로 회귀했어야한다.

그러나 상현이 모르는 것이 있다면, 그가 유명해진 것이 단순히 넘어졌기 때문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저 그런 무대를 한 학생이 넘어졌다면 잠깐의 놀림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상현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력으로 자신을 각인시킴과 동시에 넘어졌기 때문에 더 회자되는 것이었다.

상미는 그런 사실까지 알고 있었지만 굳이 상현의 생각을 정정해주지는 않았다.

아무리 오빠가 착해졌다고는 해도 잘난 척하면 꼴배기 싫으니까.

“그래서 랩을 하려고? 가수가 되려는 거야?”

“가수라기보다는 언더그라운드 래퍼지”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어?”

“아주 잘한다면 먹고 사는 것을 넘어서 큰돈을 벌수도 있지.”

2005년인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2012년만 넘어가도 순수한 힙합 음악활동만으로 억 단위의 돈을 버는 시장이 형성된다.

어떤 면에서는 대형 기획사에 착취당하는 아이돌보다 낫다.

그리고 2020년 안팎으로는 K-Pop의 중심이 2010년 이후의 빌보드처럼, 보이그룹, 걸그룹에서 블랙뮤직 중심의 그룹으로 바뀌게 된다.

“음, 그렇구나.”

생각보다 상미의 반응이 미지근하다. 상현은 상미가 놀란다던지, 무시한다던지, 한심해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안 이상해?”

“뭐가?”

“오빠가 음악 하겠다는 게.”

상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빠 성격상 음악 한다고 갑자기 학교 때려치울 거 아니잖아? 대학도 갈 생각이지? 오빠야 진지한 마음으로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했겠지만 사실 그게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그, 그렇긴 하지.”

“앞으로 열심히해봐. 괜히 똥폼만 잡지 말고.”

상현은 상미의 말에 머리가 명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랩으로 어떻게 성공해야하는지 고민이 많았는데 생각이 정리됐다.

그래, 그냥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다. 정말 열심히 하고 또 열심히 해서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것도 미래에 가진 불확실의 일종이니까.

“내 얘기는 그만하고, 그래서 넌 뭘 하고 싶은데?”

“아직 잘 모르겠어.”

“뭐든지 하고 싶은 거나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오빠한테 말해. 알겠지?”

“알았어.”

상현이 상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전주에 왔으니까 점심은 비빔밥 먹을까?”

“전주에서 비빔밥 먹는 게 젤 멍청한 짓이라던데?”

“왜?”

“나도 몰라. 그건 마치 새내기 커플이 성수기 해운대로 여행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랬어.”

“누가?”

“내 친구가.”

“친하게 지내지마.”

그렇게 남매는 맛집을 찾아 전주 시내를 누비고 다녔다.

< Verse 1. Run this town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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