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ro. 한번뿐인 삶 >
[입원 환자들을 위한 희망 콘서트]
한 밴드가 인기 있는 가수의 노래를 밴드사운드에 맞춰 편곡해 부르며, 어린 입원 환자들에게 꽃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상현은 특실 병동과 일반 병동이 이어지는 테라스 형 복도에서 공연을 내려다보았다.
보이밴드의 신나는 노래.
“그대와 나! 두 손을 잡고 걸어요!”
뒷머리를 잔뜩 기르고 왁스로 샤기컷이라 불리는 사자머리를 완성한 리드보컬의 노래는 아쉬웠다. 대신 드럼과 베이스의 솜씨가 뛰어나 신나는 무대였다.
바람을 쐬며 노래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거긴 한데 정말 촌스럽네.”
리드보컬의 옷과 머리는 최신 유행이지만 조금 과했다. 상현이 보기에는 너무 촌스러웠다.
기력을 회복한 상현은 희망콘서트를 지켜보았다.
보이밴드가 내려가고 4인조 여성 댄스팀이 올라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쿵쿵 거리는 비트에 저절로 고개가 까닥거렸다.
확실히 음악에는 힘이 있다. 사람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힘이.
상현이 블랙뮤직, 그 중에서도 랩 음악을 유독 사랑하는 것은 장르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음악들은 ‘대중의 감성’을 노래한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평화를 이야기하고 희망에 대해 노래한다. 증오와 분노를 이야기할 때도 비유와 은유가 섞인다.
예를 들면 밴드 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은 행복을 추구했지만 패배한, 패배자들의 입장에서 세상에 날린 ‘Fuck-You’였다.
그런지(Grunge), 혹은 얼터너티브(Alternative)라는 장르를 등장시킨 Fuck-You.
하지만 그 가사는 모호하다. 어떻게 보면 10대 소년이 말하는 단순한 허세처럼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당시 Nirvana의 드러머였던 Dave Grohi는 Smells like teen spirit의 가사에 대해, 연주를 완성하고 곡을 불러보기 5분 전에 써진 것이기에 단순히 여백을 채우는 것 이상의 큰 의미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랩 음악은 다르다.
랩은 통상 16Bar(마디)로 1 Verse(절)를 구성하고, 여러 개의 Verse(절)로 한 곡을 구성한다.
때문에 곡에는 아주 많은 가사가 들어가게 된다.
때문에 대부분의 가사는 실제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 토해내게 된다. 대중의 감성이 아닌, 내 감성을 토해내고 ‘너가 나와 같은 경험을 해서 공감할 수 있다면, 어디 한 번 공감해봐!’라고 말하는 것이 랩 음악이다.
물론 모든 랩 음악이 개인적이고 진실하다 가정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지만, 상현은 가장 솔직한 음악이 랩 음악이라고 생각하기에, 랩을 사랑했다.
래퍼 커먼(Common)의 2005년 앨범 는 2006년 그래미 어워드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이런 앨범 의 첫 번째 트랙 Be는 커먼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 딸의 눈을 바라보고
그녀에게 배울 것이 있음을 깨닫지.
메시아는 어쩌면 그녀의 몸으로 돌아올지도.
해야 한다면 그녀를 통해 세상을 바꾸겠어.
평론가들에게 최고의 첫 번째 트랙, 더 이상 좋을 수 있는 intro라는 찬사를 들은 이 곡에서 커먼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래퍼 에미넴이 ‘Encore-약물, Relapse-극복, Recovery-회복’이라는 앨범을 만든 것도 같은 이치다.
그가 약물에 중독되었고, 극복하고 있으며, 마침내 회복했다는 감정을 음악에 담아낸 것은 그가 래퍼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아, 안녕하세요.”
보이밴드, 댄스팀, 발라드 보컬 등의 다양한 아마추어 가수들이 무대에 오르고 내렸다. 환자와 간호사, 의사들은 공연자들의 실력과 상관없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무대에 올라왔을 때도 힘찬 박수가 쏟아졌다.
“저는 앞선 팀들과는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하는 사람이에요. 제 이름은 신하연입니다.”
조곤조곤한 목소리와 동양적으로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소녀였다.
“저는 사실 이런 무대에 설 실력은 아닌데, 병원과 인연이 있어서 떼를 써서 무대에 서게 됐어요.”
신하연의 목소리는 낭랑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다.
관객들은 그녀의 말에 집중했고 몇 명의 의사와 간호사는 인연이 있는지 ‘신하연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신하연은 그런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손을 흔들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 저희 엄마가 이 병원에서 아주 오랫동안 치료를 받으셨어요. 그때 간호사 언니, 의사 선생님들과 친해졌고요. 저희 어머니는 유방암이었고 결국 돌아가셨어요.”
조용히 집중하던 상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관객 중에는 암 환자도 많을 텐데 저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까?
과연 상현의 말처럼 환자들 사이에 무거운 기색이 돌았다.
“처음에 엄마는 세 달 안에 돌아가실 거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그리고 삼 년을 사셨죠. 우리 엄마가 저에게 해준 이야기가 있어요. 전 그걸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어요.”
신하연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손짓했다.
반주가 흘러나왔다.
“노래 제목은 Remission이에요. 병의 완화, 투병이라는 의미에요. 여러분이 꼭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상현은 반주를 듣자마자 이것이 블랙 뮤직의 비트라는 것을 알았다.
병에 관한 이야기라더니 비트는 차분하거나 조용한 비트가 아니었다.
오히려 일렉 기타와 신디사이져 소리를 배경으로 둔탁한 드럼 스네어가 마디를 구성하는, 소위 말하는 힙합 적인 비트였다.
R&B보컬처럼 보이는 신하연이 소화하기에는 너무 랩 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힙합적인 비트.
노래의 처음은 신하연의 힘 있는 보컬로 시작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곧 죽는다고 말해
그때마다 천 원씩 받았다면
난 아마 부자가 됐을 거야
나는 벽에 몰렸지만
그 벽에 기대어 있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싸워서 이겨냈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싸워서 이겨냈어
상현은 자극적인 단어 선택에 놀랐다. 시한부의 심정을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단어다.
보컬이 끝남과 동시에 잠깐의 정적.
일렉기타 사운드가 사라지고 신디사이져와 드럼소리만이 비트를 가득 채우며 갑작스런 신하연의 랩이 시작되었다.
보컬처럼 보이던 하연이 랩을 할 줄 몰라 잠시 놀랐지만, 상현은 금방 그녀의 랩에 몰입했다.
그녀의 가슴에는 혹이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랑 다른 게 아니야
계속 이겨내고 극복할거야
의사는 세 달동안만 살 수 있다 했지만
그녀는 시간의 단위를 한 단계 올려놔
그녀는 말하지 ‘내 인생이고, 한 번 뿐인 인생이야’
의기소침하면서 살기에 그녀라는 꽃의 향기가 너무 좋아
이제는 방법을 찾는 거야, 즐겁게 사는 거야
“유방암은 내 인생을 붙잡지 못해”
병원에서 나온 그녀의 첫 마디
이미 난 준비가 다 되었지, 절대 그만두는 일은 없지
‘안 돼’ 라고 말한 적 없어,
진짜로 괜찮아 보여, 그러니 해보자
노래할 때는 기교 있는 목소리였지만, 랩을 시작함과 동시에 그녀의 목소리에 남은 것은 ‘진심’ 뿐이었다.
하나의 벌스가 끝나고 브릿지가 이어지는 동안 상현은 무대로 향했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그녀는 말하지 ‘내 인생이고, 한 번 뿐인 인생이야’
의기소침하면서 살기에 그녀라는 꽃의 향기가 너무 좋아
그 향기로 그녀는 케이크 촛불을 꺼
넋두리 같은 브릿지가 반복되었다.
상현은 신하연을 처음보고, 그녀의 어머니를 본 적도 없지만 알 수 있었다.
하연의 어머니는 강인한 믿음과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병원에 있어도 병원 냄새를 이기는 그녀만의 향기를 지닌 사람이었다.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면서 ‘내년에도 이 촛불을 끌 수 있기를…….’이라고 기도하는 유쾌한 사람이 분명했다.
브릿지가 끝나고 두 번째 벌스가 시작되었다.
의사는 안 믿어 난 엄마를 믿지
엄마는 보러갈 때마다 살이 빠져 있지
위로의 말을 해드리고 싶었는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울었네
벽에 걸린 사진을 보면서 생각해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에 대해 말해
엄마는 불가능은 없다고 했지만
논리적이시진 않았지
의사들이 하는 일이 뭔지
신이 하시는 일은 뭔지
어머니는 가슴이 아프다고 하셨고,
그것에 대해 설명하기 어려워하셨어
처음 병명을 알았을 때 난 놀랐고
하루 종일 울다가 기도를 시작했어
어쩌면 카운트다운은 점점 줄어가고 있지
하지만 그건 건강한 사람도 마찬가지
그러나 영원히 산다고 생각해보는 거야
그러면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살 건지
신하연의 랩이 끝나는 순간 비트가 점점 잦아들었다. 마침내 비트가 꺼지고 완전한 침묵이 이루어졌다.
신하연은 울고 있었고, 몇몇 환자와 간호사들도 울고 있었다. 그들은 아는 것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죽음을 치료하려는 사람들.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연의 가사는 본능적인 감성을 자극하고 있었다.
‘엄마 어디가 아파?’라고 물어보는 딸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비단 하연에게만 일어났던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비트가 꺼진 상태에서 울음기 섞인 그녀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스피커로 토해졌다.
혹을 발견했을 때, 병원에서는 이미 늦었고
이 병을 이겨낼 가능성이 없다고 했지
정확히 보지 못한 거야
의사는 계속 내가 죽는다고 말했는데
지금 내 다리는 걷고 있고
내 심장은 뛰고 있어
내 딸이 알고 있는 사실이야
암 따위 저리 꺼지라해, 인생은 내가 주인이고
내가 죽는다면 그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싸울 거니까
중간 즈음부터 천천히 커지던 비트 소리가 마지막 랩을 기점으로 폭발했다.
신하연이 다시 한 번 힘있는 보컬을 내질렀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곧 죽는다고 말해
그때마다 천 원씩 받았다면
난 아마 부자가 됐을 거야
나는 벽에 몰렸지만
그 벽에 기대어 있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싸워서 이겨냈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싸워서 이겨냈어
‘모든 사람이 내게 곧 죽는다고 말해. 그때마다 천 원씩 받았다면 난 아마 부자가 되어있을 거야.’
처음에 후렴구를 듣고 받은 느낌은 자극적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하연에게는 이 가사를 부를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이것은 딸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어머니의 노력이었을 테니까. 어머니의 말이었을 테니까.
이것은 어머니의 노래이고, 그녀의 노래이다.
투병기간 동안 어머니와의 대화를 엮은 가사이다. Remission이라는 제목처럼 그녀의 노래는 투병을 권유하고 병의 완화를 돕는다.
하연의 노래에 기술적인 점수를 매긴다면 그다지 높지는 않을 것이다.
단순한 라임에 단순한 플로우.
그러나 기술을 뛰어넘는 진심이 Remission에는 있었다.
그녀는 말하지 ‘내 인생이고, 한 번 뿐인 인생이야’
의기소침하면서 살기에 그녀라는 꽃의 향기가 너무 좋아
그 향기로 그녀는 케이크 촛불을 켜
마지막 속삭이는 듯한 브릿지를 끝으로 노래가 끝이 났다.
환호 소리는 없었지만 뜨거운 박수가 환자, 간호사, 의사들에게 흘러나왔다. 단 한 곡뿐인 무대였지만 다른 무대보다 훨씬 긴 박수였다.
< Intro. 한번뿐인 삶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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