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5화 (5/309)

< Intro. 한번뿐인 삶 >

그렇게 모은 돈을 재테크하여, 자신과 상미의 학업이 끝나기 전까지는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생활하는 것.

그게 상현이 원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2008년의 서브프라임 사태 이전까지는 주식시장이 전반적으로 상승장이지? 흠, 시기를 맞춰 미국 쪽의 건설주에 매도포지션을 잡아야 하나? 미친 듯이 폭락할 테니까…….’

미성년자가 보호자 없이 해외선물거래가 되던가?

그의 구체적인 목표는 외압에 의해 회사를 파산시켰던 과거처럼 되지 않는 것. 외부시장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상미에게 완전한 울타리가 되는 것이다.

‘울타리가 되고? 그 다음에는?’

그 순간 참을만하던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너무 아파서 신음소리도 못 내고 식은땀만 줄줄 흘렀다.

‘그게 끝인가? 결국 과거보다 빠르고, 편하게, 그리고 많이 돈을 버는 것이 끝인가? 또다시 텅 빈 사장실에서 충혈 된 눈으로 숫자놀음을 해야 하는가?’

또 한 번의 똑같은 삶을 살 생각인가?

하지만 나는…….

-불확실에 걸기엔, 난 너무 확실한 답을 알고 있다.

“뭐해?”

“어?”

“불확실? 뭐야, 가사 쓰고 있는 거야? 잠깐만 너 땀은 왜 이렇게 흘렸어? 어디 아프냐?”

정신을 차려보니 수업이 끝나고 준형이 그의 옆에 서있었다.

준형의 걱정스러운 표정.

두통이 서서히 사라졌다.

‘두통도 점심은 먹어야 하나보네.’

상현은 자리에서 간신히 일어났다.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가사는 무슨. 어제 책에서 읽은 문구야. 넌 무슨 이마에 골든크로스를 그렸냐?”

“골든크로스? 그게 뭐야?”

책에 이마를 대고 졸았는지 준형의 이마에는 일견 우스워 보이는 선들이 이리저리 새겨져 있었다.

“음…… 주식회사의 조크라고 알아둬.”

“아까부터 뭐라는 거냐? 미친놈아. 말투도 그지같고…….”

“밥이나 먹자.”

상현은 준형을 이끌고 식당으로 향하며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그렇다. 불확실에 투자하기에는 자신은 너무 확실한 미래의 답을 알고 있었다.

***

-학교 끝났어?

-응. 오빠도 4시에 끝난다고?

-그래. 저녁 먹지 말고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같이 먹자.

-알았어.

상현은 핸드폰을 닫았다. 여전히 문자판이 좁은 폴더폰은 익숙하지가 않다.

‘상미가 무슨 음식을 좋아했더라?’

상미의 상태는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로 조금이나마 나아졌지만, 안 그런 척 해도 여전히 우울해보였다.

당연했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그도 1년 이상을 힘들어했으니.

또한 사람 많은 곳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증상이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어떻게 전혀 모를 수가 있었을까.’

과거의 상현은 상미의 불안 증세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나 뿐인 가족에게 얼마나 나쁘고 무심했는지, 스스로에게 욕을 퍼붓고 싶은 기분이었다.

‘힘내서 전부 속죄해야지.’

자신이 더 힘을 내야지 상미도 부모님을 볼 수 없는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상미를 위해 보쌈을 사갈까 족발을 사갈까 고민하다가 그냥 집에 가서 직접 물어보기로 마음의 결심을 내렸을 때, 상현의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011-479-11XX(18?)

부재중이 18개?

자신에게 부재중 전화를 18번이나 한 번호.

그러나 상현은 전혀 기억나는 바가 없었다. 궁금증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여보세요?

“네, 말씀하세요.”

-이상현 학생 핸드폰 맞나요?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단호하고 자신감에 차있는 목소리.

“예, 맞습니다. 누구시죠?”

-간신히 연결이 됐군요. 저는 오경그룹 직원이에요. 혹시 오늘 만날 수 있을까요?

상현은 여자의 단어 선택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오경그룹 홍보부면 홍보부고, 비서실이면 비서실이지 오경그룹 직원이란 소개는 너무 개인적인 느낌이다.

“오경그룹 홍보부인가요? 아니면 비서실? 교통사고처리 때문에 전화하신 건가요?”

-아, 그런 건 아니고 사고에 관한 건 맞습니다. 절대 나쁜 의도는 아닙니다. 혹시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 당장이요?”

-제가 지금 서울에 있어서요. 저녁 열 시는 너무 늦나요?

지금 서울에서 출발해서 광주로 온다는 말인가? 상현은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던 기억이 전혀 없었기에 당황스러웠다.

너무 사소한 일이어서 기억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차 막힐 시간에 서울에서 광주까지 오는 게 사소한 일인가?

“문자로 집 주소 찍어드릴게요. 네비 찍고 오세요. 근처로 오셔서 전화하시고요.”

-죄송한데 제가 아직 차에 네비게이션이 없어요. 동 이름이랑 큰 건물 좀 말씀해주세요. 광주 지리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요.

상현은 2005년도에 네비가 보편화 되지 않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니, 보편화 되었는데 그냥 이 여자가 네비를 안 단 걸 수도 있구나.’

“네, 알겠습니다. 문자로 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가도록하겠습니다. 광주 톨게이트 지나면 문자 넣어드리죠.

전화를 끊고 상현은 집으로 가며 과거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20년 전의 일이라 흐릿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상황은 없었던 것 같다.

“아무 것도 안했는데 벌써 과거가 바뀌나?”

아무리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킨다지만 정말 자신은 아무 것도 안했다. 변한 거라고는 부모님에 대한 아픔을 갈무리한 것. 상미를 챙기는 정도?

그리고 두통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병원에서 두통도 치료가 되나?’

결국 상현은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만나면 알게 될 일이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 씻고, TV를 보다가 상미와 밥을 먹는데 문자가 도착했다.

-30분 정도 뒤에 톨게이트 도착할 것 같아요. 용봉동이면 대학교 있는 곳이죠? 제가 지금 대학교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대학로 후문에서 만나요.

-후문은 복잡해요. 주차할 곳도 없고.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만나죠.

-알겠어요. 서광주 톨게이트 지날 때 전화할게요.

“뭔데? 무슨 문자야?”

“나 잠깐 친구 좀 만나고 와야겠다.”

“곧 밤인데? 벌써 아홉시야.”

“잠깐만 다녀올게. 중요한 일이라서 그래. 미안해.”

상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상미를 텅 빈 집에 혼자 있게 하고 싶지 않다.

“이 근처에 사는 친구 없어? 오빠가 용돈 줄게 잠깐 친구랑 맛있는 거 먹을래?”

“방금 밥 먹었는데 무슨 맛있는 걸 또 먹어.”

“아, 그렇지. 미안.”

상현은 미안함에 상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빠 요즘 이상해.”

“뭐가?”

“그냥…….”

머뭇거리던 상미가 어렵게 운을 뗐다.

“꼭…… 아빠 같아…….”

“부담스러워?”

“아니…… 그건 아닌데…… 오빠, 나 아빠 보고 싶어. 흑, 엄마도 너무 보고 싶어.”

결국 상미는 울음을 터트렸다.

상현은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다. 38살이었던 그에게 16살의 상미는 동생이라기보다는 가져본 적 없는 딸처럼 느껴졌다.

“미안해. 오빠가 미안해.”

“오빠가 왜 미안해…….”

내가 한 달만 더 빨리 돌아왔어야 하는데. 그러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는데. 오빠가 미안해.

상현은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상미의 울음에 전염된 상현도 결국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어른의 정신보다 소년의 몸이 더 정직한 것일까?

상현은 자신이 이렇게 펑펑 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상미를 붙잡고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보니, 정서적 불안함이 잦아드는 것 같았다. 두통도 호전되는 것 같고.

‘그래, 내가 과거로 돌아오게 된 것은 상미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을 해주라는 부모님의 뜻이 아닐까?’

과거 회귀라는 믿기지 않는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조금은 가시는 기분.

과거에 그는 분명 나쁜 오빠였다. 상미의 아픔은 생각도 못하고 자신의 아픔만 생각한 이기주의자였다.

대학에 합격해 서울로 이사할 때도 고2의 중요한 시기인 상미의 의견은 전혀 묻지 않았다. 상미가 등록금 걱정에 대학진학을 포기할 때도 깊은 이야기 한 번 나누지 않았다.

‘미안해.’

한참을 울다 지친 상미는 잠이 들었다.

상현은 상미를 재우고는 밖으로 나왔다. 약속 장소로 천천히 걸어갈 생각이었다. 어둑어둑한 밤사이로 봄과 여름의 냄새가 섞인 바람이 불었다.

< Intro. 한번뿐인 삶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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