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7화. 끝과 시작(8) (246/249)
  •  247화. 끝과 시작(8)

     로엘이 ‘마신의 심장 조각’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를 비롯한 각성자들은 지난 10년간 계속해서 전장의 최전선에서 활약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어냈다. 마신의 심장 조각에 관한 것도 그렇게 획득한 정보 중 하나였다.

     로엘은 그 정보를 접하자마자 깨달았다. 자신을 비롯한 각성자들이 세 번째로 달성해야 할 ‘조건’이, 바로 그것에 관련되어 있음을.

     그는 지난 시간 동안 끌어모은 ‘믿을 수 있는 조력자들’을 활용해 최대한 정보를 긁어모았고, 마신의 심장 조각들이 ‘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마왕들과 함께 대륙에 풀려나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듣자 하니 마계에도 72마왕에 반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모양이었다. 72마왕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그들이 마신의 심장 조각을 탈취하는 일이 없도록, 아예 마왕들이 그것을 관리하게 되었다던가.

     정보를 모은 로엘은 곧바로 계획을 세웠다. 마신의 심장 조각을 탈취할 계획을.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아쉽게도 ‘푸르카스’가 관리하고 있던 마신의 심장 조각은 어떻게 손대볼 수가 없었다. 후방에서 보급을 담당하던 마왕인 만큼 가장 먼저 마계로 도주해버렸으니까.

     그렇지만 비프론즈가 관리하고 있던 심장 조각은 결국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그로써 인과를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안 들어가네.”

     대형 금고를 아공간에 집어넣으려던 로엘이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억지로 집어넣으려고 했다간 아공간이 붕괴되어 버릴지도 모르겠군.”

     지금까지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기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긴, 이러니 마족들이 아공간 마법과 관련된 아티펙트를 이용해 심장 조각을 보관하지 않은 거겠지.”

     남들 눈에 띄기 전에 조용히 빼돌려야 하건만, 이래서야 그럴 수가 없다.

     로엘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집무실 창문을 열고 턱, 하고 내려서는 인물이 있었다. 레인이었다.

    “안 챙기고 뭐 해.”

    “아니, 내포된 힘이 너무 커서 아공간에 들어가질 않아서.”

    “그럴 수도 있나?”

     레인이 고개를 기울이다가, 금고 속에 자리 잡은 붉은 구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휘리릭!

     검은 줄기들이 구체를 휘감고, 그것을 그대로 그림자 속으로 빨아들였다. 로엘이 오오, 하고 감탄사를 흘렸다.

    “그런가. 아공간은 결국 마력을 이용해 제작한 공간이지만, 암흑정령은 그런 것 없으니.”

     뭐가 어찌 됐든, 이것으로 문제는 해결되었다. 일이 복잡하게 흘러가지 않게 되어 다행이었다.

     로엘은 그 속이 텅 빈 금고를 잠시 응시하다가, 아공간에서 상당히 좋은 품질을 자랑하는 아티펙트를 하나 꺼내 내부에 배치했다.

    “그걸 거기다 왜 둬?”

    “이 정도는 해야 의심을 피하지. 깊숙이 파고드는 사람이 생겨나면 귀찮아지니까, 이거 하나 던져두려고.”

    “그런 목적으로 사용하기엔 너무 아까운 물건 같은데…….”

    “마신의 심장 조각에 비하면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그리고 회수하려고 하면 어떤 식으로든 회수할 수 있어.”

     로엘이 어깨를 으쓱였다.

    “자, 이제. 돌아가자. 제도로.”

     그가 한 차례 쭉 기지개를 켜며 그렇게 말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마무리 지을 때가 되었다.

     * * *

     마족군이 대륙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인류는 빼앗겼던 영토를 모두 되찾았고, 다시 대륙의 주인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인류는 이 승리에 도달하기까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어야만 했다. 너무나도 많은 것을 희생해야만 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방대한 토지가 불모지로 화했다.

     인류가 세운 문명의 흔적. 그 절반 이상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말았다. 막대한 분량의 기록과 서적이 불타 없어져 버렸다.

     온갖 비전을 일신에 지닌 기인이사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과거의 문명을 재현하기 위한 수많은 유물들이 전쟁의 승리를 위해 소모되고 말았다.

     그러니 마족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성과가 없는 전쟁이었던 것만도 아니었다. 전 대륙이 전화에 휩싸인 이번 전쟁으로 인해, 엘레노어 대륙의 문명 수준은 크게 쇠퇴해버리고 말았으니까.

    [그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다음’을 기약하며 물러난 것일 뿐!]

     여기에, 마족이 언젠가 대륙을 재침공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마신의 심장 조각에 관한 이야기 또한.

     전쟁에 참여해 대륙에서 마족을 몰아내는 데 크게 기인한 한 영웅, 로엘은 이렇게 말했다.

     대륙인 모두를 향해, 경고를 던졌다.

    [이대로라면 ‘다음’ 전쟁이 벌어졌을 때, 대륙은 마족의 손아귀에 떨어져 버리고 만다.]

     정황상 대륙의 문명은 날이 갈수록 쇠퇴하게 될 터였다.

     언젠가 다시 문명이 부활할 날은 올 테지만, 적어도 그것이 마족의 재침공 시기보다 빠르진 않을 터였다. 로엘을 비롯한 각성자들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인류의 존망을 두고 여러 현자가 격렬한, 그러나 의미 없는 토론을 벌였다. 답이 나오지 않는 논의가 수없이 벌어지고 파해졌다.

     그리고 그사이에 인류의 전쟁 영웅, 로엘은 행동을 취했다.

     그는 시간의 현자와 운명의 현자를 은밀히 불러들였다.

    “이런 것을 숨겨두고 계셨던 겁니까?”

    “국가 상층부에 들키면 그냥으론 끝나지 않을 거예요.”

     각각 시간의 현자 파프닐, 그리고 운명의 현자 엘리시안 하르베르그.

     쾌활한 성격의 중년 사내와 성숙미가 돋보이는 여류 마법사는, 눈앞에 놓인 붉은 구체를 바라보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니 몰래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로엘이 하하, 하고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언젠가는 들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딱히 상관없었다. 그날이 오기 전에 원래 시대로 날라버릴 예정이니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도와주지 않을 겁니까?”

    “에휴.”

     파프닐이 체념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옆에서 엘리시안 하르베르그가 쓴웃음을 흘렸다.

     두 사람 모두 그동안 로엘에게 빚진 것이 많았다. 딱히 로엘이 사특한 목적으로 이것을 활용할 인물이 아님을 알았기에, 두 마법사의 마음은 결국 도움을 주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문득 든 생각인데. 저희가 거절했으면 어떻게 하려 했습니까?”

    “그런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젠장. 묻는 게 아니었어. 겁나게 찝찝하네.”

     화사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로엘에게서 무언가 불길한 기색을 느꼈는지, 파프닐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 와중에 엘리시안은 얼굴을 붉혔다.

    “그래서, 구체적으론 뭘 하면 되는 겁니까?”

    “저와 같이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이것을 조정하는 작업을 도와주시면 됩니다.”

    “조정? 그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거, 완성품입니다. 이미 가공된 물건이지요. 다만 이대로는 인간이 사용할 수가 없으니, 활용 방향성을 조금 틀어볼 생각입니다.”

     로엘은 그렇게 말하며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다.

     72마왕이 이 물건을 활용하는 방식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엘레노어 대륙으로 통하는 차원의 문을 여는 것.

     둘째는 마족 최대 전성기 시절의 전력을, 후대에 그대로 계승시키는 것. 참고로 마족들은 이 계승의 때를 ‘대격변’이라고 칭한다고 했다.

     로엘은 마신의 심장 조각을 조작해 두 번째 활용 방식이 마족이 아닌 인간에게 적용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기본적으로 마신의 힘이 기반이 된 물건이었다. 마족이 아니면 활용할 수 없고, 활용한대도 효과를 볼 수가 없는 물건이기도 했다.

     아마 활용 방향성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사용 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그 효율성이 크게 저하되고 말 터였다. 딱히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후대의 인류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 거대한 힘을 내포한 붉은 구체가 무사히 미래로 ‘전송’되도록. 마족들이 그러하듯, 그들이 재침공해올 머나먼 미래에 ‘가능성’을 가진 자들이 개화할 수 있도록.

    “이런다고 후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까요? 정말로?”

     엘리시안이 의문을 제시했다.

     타당한 질문이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도박이라고도 할 수 있었으니까.

     마신의 힘이 대륙인들에게 정말로 도움이 될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도움이 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마왕들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을 거라 여기기는 힘들고.

     그러나 그 예리한 지적에도 로엘의 표정에는 동요가 없었다. 오히려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기까지 했다.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움이 됩니다. 반드시.”

     마치 미래를 직접 엿보기라도 한 것만 같은 단호한 대답이었다.

     * * *

     시간이 흘러, 마신의 심장 조각을 쏘아 올리기로 한 날짜가 다가왔다.

     다섯 각성자와 파프닐, 엘리시안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눈앞에 온갖 마법진으로 도배가 된 붉은 구체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로엘이 구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관리자 인증을 시작합니다.]

    [인증되었습니다.]

    “…….”

     로엘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 붉은 구체는 세월을 건너뛰어 ‘전송’될 것이다. ‘관리자’인 ‘로엘’에게로.

     본래라면 구체가 전송된 시간 축에 ‘관리자’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 전에 진작 수명이 다할 테니까. 딱히 신경 쓸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그렇지만 시간 여행 중인 로엘의 경우엔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이 구체가 전송될 시간 축에는, 분명히 로엘이라는 인물이 존재할 터.

     로엘은 이 사실을 연구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에 눈치챘다. 어렸을 적에 경험한 ‘불행한 사고’가, 사실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되돌릴 수는 없었다.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로엘은 확실히 관리자로 등록되었고, 그 권한을 타인에게 이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이전할 수 있다고 해도 그래서는 안 되었다. 인과가 어긋나고 말 테니까. 그렇게 되면 원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될 테니까.

     로엘이 잠시 멍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레인이 다가와 그의 등을 툭 하고 두드렸다.

    “네 잘못 아니야. 물론 내 잘못도 아니고.”

    “……그래.”

     로엘은 그제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래. 분명 그 사태가 벌어지게 된 원인은 자신이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이곳에 모인 인원 전부가 그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어쨌단 말인가.

     이 일에 대해선 그 누구에게도 죄를 물을 수 없었다. 아니, 물어선 안 되었다.

     로엘은 상념을 털어버리듯 구체의 조작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고 보니.’

     작업이 거의 마무리 되갈 즈음에, 로엘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각성자들의 나이와 성별이 모두 같은 이유는…….’

     이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72마왕 전원의 나이가 대체로 고만고만하다는.

     혹시 마신의 심장 조각으로 인한 각성에는 이쪽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법칙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 각성의 대상을 인간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법칙성이 강화되거나 뒤틀린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로군.’

     모든 작업을 마무리한 로엘이 구체에 대량의 마력을 흘려 넣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이내, 구체로부터 막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표면에 새겨진 마법진들이 주위에 새빨간 빛을 뿌렸다.

     구체의 위쪽 허공에 일곱 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각 마법진 사이의 거리가 상당한지라, 마지막 마법진의 경우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상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작하는 건가.”

    “어쩐지 기분이 묘해지는군.”

    “그야 뭐.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니까. 특별한 느낌이 들 수밖에.”

     뒤쪽에 모여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각성자들이 한마디씩 내뱉었다.

     한순간.

     슈왁!

     마신의 심장 조각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대로 마법진들을 투과해 나아가는 구체.

     붉은 궤적이 꿰뚫고 지나간 마법진들이 마치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빛의 입자가 허공에서 춤을 추며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했다.

     여섯 개의 마법진을 통과한 마신의 심장 조각이, 그대로 일곱 번째 마법진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그리고.

     파아아아앗!

     마신의 심장 조각이 마법진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 그 모습을 감췄다. 한차례 찬란한 광채를 뿌리던 마법진 또한, 이내 허공에 녹아들듯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과연 이게 정말로 의미가 있는 일이었을까?’

     엘리시안이 복잡한 표정으로 빛의 궤적을 응시했다. 여전히 그녀에게는 확신이 부족했다.

     반면 마신의 심장을 쏘아 올려보낸 영웅, 로엘은 그저 담담하게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마치 이를 통해 대륙이 정말로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

     째깍.

     귓가에 울려 퍼지는 시곗바늘 움직이는 소리.

    [‘타임 트래블러(Time traveler)’가 기동 중입니다.]

    [사전에 입력되어 있던 시간 축으로의 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아티펙트의 기동 가능 횟수가 1회 남았습니다. 재기동 시, 원래의 시간축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아티펙트를 재기동하기 위한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습니다.]

    [아티펙트 기동을 위한 조건 달성 ? 3/3]

    [제한 시간 : 10년]

    [제한 시간 내에 재기동이 이뤄지지 않을 시, 아티펙트는 파괴됩니다.]

    [아티펙트를 재기동하시겠습니까?]

     회중시계를 꺼내 들고 마력을 주입, 그 위로 떠오르는 문구들을 응시하며, 로엘이 슬쩍 미소 지었다.

     기나긴 여행의 끝. 그리고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지금 이 순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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