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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화. 끝과 시작(3) (241/249)
  •  242화. 끝과 시작(3)

     수천에 달하는 언데드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통로 제작에 힘을 쏟았다.

    “누가 그런 말을 했다지.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우수한 노동력은 언데드라고.”

     르우벤이 로엘과 함께 식사하며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물론 농담이었다. 언데드가 우수한 노동력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언데드를 부리는 마법사의 몸값은 말도 안 되게 비싸니까.

     이 상황의 경우엔 노동력이 필요한 주체가 로엘 본인이었기에 그 문제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언데드에겐 휴식도, 수면도 필요하지 않았다. 식사 제공과 급여 지급에 관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었고, 하다못해 안전 장비를 챙겨줄 필요조차 없었다.

     몇몇 큼지막한 일들은 일부러 몇 개체 남겨둔 고위 언데드를 이용해 처리했다.

     뒤처리나 다듬기. 통로가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한 구조물과 아티펙트의 배치. 그리고 안정화 작업까지. 나머지 작업은 모두 하위 언데드를 이용해 처리했다.

     작업은 빠르고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인간 기술자들의 건설 작업 속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어. 저쪽 조금 위험한 것 같은데?”

     콰앙! 콰르르르르르!

     사건 사고가 조금 많긴 했다.

     낙석에 깔리고, 폭발에 휘말리고. 이런저런 산업재해에 된서리를 맞는 언데드가 속출했다.

    “언데드인데 뭐.”

     악덕 사장 로엘은 그것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소모된 언데드를 다시 보충했다. 그 태도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어째 악당스럽게 느껴져서, 르우벤은 쿡쿡 웃고 말았다.

     공사는 별 게 없었다.

     그저 통로 하나를 뚫고, 그 끝에 공동 하나를 마련하는 것뿐. 함정이나 키메라, 고차원적인 마법진 같은 건 일절 배치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이곳 유적을 공략했던 때는 저 통로 지나면서 큰 위화감을 느꼈었지.”

     로엘이 과거의 일을 회상하며 중얼거렸다.

    [뭐야 이거. 왜 아무런 제지가 없어?]

    [제2 유적까지 공략한 이들을 위해 준비된 보너스 같은 건가?]

     꼭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것만 같은 통로였기에 한껏 긴장해서 들어갔건만, 그 내부엔 아무런 위험도 존재하지 않았다. 맥이 빠질 정도로.

     우연이라는 요소를 그다지 신봉하지 않았던 로엘은 그 떨떠름한 상황에 의문을 품었었다. 그 의문이 이런 식으로 풀리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애초에 내가 만든 공간이었으니 위험한 것들이 배치되어 있었을 턱이 없지.”

     이곳 하르넴의 유적에 존재하는 것들과 같은 고차원적인 함정. 혹은 강력한 가디언.

     그런 것들을 로엘이 준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걸 제작할 기술력도 없을뿐더러, 제작할 수 있다 해도 그 과정을 뒷받침해줄 휘하 세력이나 조직이 지금의 그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애초에 그가 그런 것들을 준비할 이유부터가 없었다. 뭣 하러 그런 수고를 들인단 말인가. 미래의 자신을 골탕이라도 먹이려고?

    “그러고 보니. 그걸 달아야지.”

     로엘이 먹던 샌드위치를 잠시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이미 깔끔하게 완성되어 있는 통로의 입구로 다가간 뒤, 언데드 두 개체를 불러들였다.

     두 언데드가 딱 붙어 엎드렸다. 그렇게 생긴 발판을 딛고 올라선 로엘이, 아공간에서 하나의 간판을 꺼내 들었다.

    [제3 유적]

    [시간의 현자의 유적]

    로엘은 잠시 달그락거리며 입구 위에 간판을 고정시켰다. 이내 간판 설치를 마친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언데드의 등 위에서 내려섰다.

    “이야. 희대의 낚시꾼이네. 이젠 낚을 게 없어서 자기 자신까지 낚냐.”

    “그러게. 그때는 나도 저게 우리들을 유혹하기 위해 내걸린 위조 간판이라는 걸 몰랐지.”

     르우벤이 낄낄거리며 웃는 가운데, 로엘이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자리로 되돌아와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식사가 이어졌다.

    “진짜 시간의 현자는 따로 존재하는데 말이지. 그건 그렇고, 꽤 오래 걸리겠지? 저 공사?”

    “어. 아무리 언데드를 이용한 단순한 종류의 공사라지만, 규모가 규모니까. 이틀은 걸리지 않을까.”

    “이틀밖에 걸리지 않는 시점에서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다만, 그동안 뭐 하고 있을 건데? 그냥 이렇게 하릴없이 기다리기만 하려고?”

     르우벤이 샌드위치를 꿀꺽 삼키며 그렇게 묻자, 로엘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아니지. 일단 르우벤 너는 마검 가지고 유적을 구석구석까지 전체적으로 한 번 훑어. 혹시 방금의 단약이 담긴 상자처럼 추가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너는?”

    “난 그동안 챙겨온 재료들로 이것저것 좀 만들고 있으려고. 어차피 해야 할 거, 지금 미리 해치워두는 게 좋겠지. 오랜만에 공방 마법사로서의 실력 좀 발휘해 볼까.”

     입속으로 남은 샌드위치 조각을 털어 넣은 로엘이 아공간에서 음료를 꺼내 목을 축였다. 그런 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이틀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 * *

    “잘 만들었네. 진짜 똑같은데?”

    “안면이 있는 실력 좋은 장인에게 부탁했지. 도면대로 만들어 달라고.”

     로엘과 르우벤은 최후의 관문 역할을 할 문을 올려다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과거 로엘은 저 문을 보며 이질감을 느꼈다.

     제3 유적은 유적의 내부 양식 자체는 1, 2 유적의 그것과 판이하게 다른 주제에, 보상이 잠들어 있는 최후 관문만은 똑같은 양식이었다. 괴리감이 느껴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정작 그 이질감 때문에. 그리고 제1, 2 유적의 최종 관문에 배치된 것들과 똑같은 형태를 띤 저 철제문 때문에. 유적의 제작자가 대영웅과 연관성이 없는 생판 남일 가능성은 떠올리지 못했다.

    “들어가자.”

     쿠구구구궁.

     로엘과 르우벤이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앞서 지나온 공동들과 같이 웅장한, 그러나 형태는 훨씬 단순한 공간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로엘은 우선 공동의 가운데에 서서 아공간을 열었다. 그로부터 다양한 종류와 숫자의 아티펙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거 예전에 여기서 얻었던 아티펙트들이랑 같은 종류의 것들이지?”

    “그래. 그때엔 무슨 이런 형편 좋은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만. 그게 사실은 선불로 계산된 물건들이었다니.”

     시간 여행을 와서 온갖 고생은 다 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소득 중 쓸 만한 것들을 추려 이곳에 가져다 놓는다. 제3 유적의 터무니없는 보상은 그렇게 마련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곳의 유물들은 특히 내게 도움이 됐었지.”

     로엘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미래의 그는 이곳의 유물들을 습득함으로써 성장에 날개를 달았다.

     통신형 아티펙트와 베히모스의 제작을 위한 마력 집적 아티펙트, 거기에 나노머신을 제작하는 계기가 된 공간 압축 아티펙트까지. 그 모두를 유용하게 활용했다. 남김없이 깔끔하게.

    “이렇게 배치하는 게 맞아?”

    “어. 다 맞게 됐다.”

     로엘은 르우벤과 함께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위치에 아티펙트들을 배치했다. 모든 작업을 마무리한 뒤, 그가 고개를 들어 한쪽 벽을 응시했다.

    “그럼 다음은.”

     벽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일부러 언데드를 부려 뚫어둔 구멍이었다.

     로엘은 지난 이틀 동안 손수 제작한 ‘기척 차단 아티펙트를 베이스로 한 마법진’을 구멍 내부에 설치했다. 세심하게 공을 들여서.

    [야, 여기 좀 와봐.]

    [왜?]

    [여기 벽 너머에 빈 공간이 있는 것 같지?]

     이 비밀공간은 차후 레인의 직감에 의해 발견될 터였다. 벽 너머의 빈 공간을 인지하고 퉁퉁 두드리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했다.

    [어쩔까?]

    [뭘 물어. 부숴야지.]

     그리고 이 공간 안쪽으로 손을 뻗어 그 물건을 얻었었다. 시간의 현자의 유산, ‘타임 트래블러’를.

    ‘지금은 그 회중시계가 시간의 현자의 유산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마법진의 설치를 마친 로엘이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곤 ‘시곗바늘이 존재하는’ 타임 트래블러를 꺼내 들었다.

     그것에 마력을 주입하자, 문구가 떠올랐다.

    [타임 트래블러를 기동하실 수 있습니다.]

    [타임 트래블러에 내장된 모든 기능을 열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로엘은 아티펙트를 작동시키기 전, 내장된 성능을 이용해 기록을 심었다. 우선 아티펙트의 기동을 위한 조건을 입력했다.

     첫 번째 조건은 아티펙트의 습득 그 자체.

     두 번째 조건은 암흑조직 프레퍼의 토벌.

     세 번째 조건은 모든 이종족과의 동맹 체결.

     네 번째 조건은 대륙통합 전쟁의 시행.

     다섯 번째 조건은 평화기를 이용해 전쟁을 대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다섯 각성자 전원이 참석한 회합을 가질 것.

     물론 모든 조건이 충족되면 아티펙트가 강제로 기동하게 조작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전엔 막연히 그런 가정을 떠올렸었다.

    [이 조건의 달성이라는 것, 소유주가 어떠한 행보를 보이느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건가?]

     하고.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소유주의 행보에 연동되어 작동하는 아티펙트 같은 걸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냥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자신이 직접 입력한 것이었을 뿐.

    ‘용족이 건설한 유적에 관한 기록은 처음부터 담겨 있었으니 넘어가고. 대호수의 비밀통로와 그 표식에 대한 기록도 이틀 전에 미리 심어뒀고.’

     다음으로는 아티펙트를 이용해 여행을 떠날 ‘시간축’을 설정했다.

    [사전에 입력된 시간 축이 존재합니다. 시간 축 고정.]

    [사전에 입력되어 있던 시간 축으로의 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전에 아티펙트에 떠올랐던 문구들.

     당시에는 그 문구들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이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만.

    ‘다음으로는.’

     마지막으로, 원래 시대로 되돌아가기 위해 달성해야 할 조건들을 입력했다.

     첫 번째 조건은, 마족군과의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할 것.

     두 번째 조건은, 이곳 하르넴의 유적에 와서 인과를 맞출 것.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다 됐군.’

     제한 시간 설정을 마지막으로, 기록의 입력은 끝이 났다.

     로엘은 마력을 불어넣어 아티펙트를 작동시켰다.

     스르륵.

     그러자 회중시계의 시곗바늘이 녹아내리듯 그 모습을 감췄다.

     로엘은 아티펙트가 제대로 작동되었음을 확인하고, 자신이 무언가 잊은 게 없는지 잠시 되짚어보았다. 이내 빼먹은 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가 아티펙트를 마법진이 설치된 비밀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그 입구를 감쪽같이 은폐했다.

    “이제 다 된 거야?”

    “어. 전부 끝났다.”

     르우벤의 물음에 로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그 순간.

     째깍.

     로엘의 귓가에 이명이 들려왔다. 그가 곧바로 아공간으로부터 또 다른 타임 트래블러를 꺼내 들었다.

    [아티펙트의 재기동을 위한 조건이 1가지 충족되었습니다.]

    [아티펙트 기동을 위한 조건 달성 ? 2/3]

    마력을 주입하자 떠오르는 문구. 이것으로 이곳 유적에서의 일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와 현재가. 아니 현재와 미래가.

    지금 이 순간, 이어졌다.

    “오. 두 번째 조건 달성인가. 이제 하나밖에 안 남았네?”

     르우벤이 아티펙트에 떠오른 문구를 따라서 확인하더니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

     로엘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그리곤 뒷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바로 이어서 세 번째 조건을 충족시키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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