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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화. 끝과 시작(1) (239/249)

 240화. 끝과 시작(1)

 대대적인 반격의 봉화가 올랐다.

 인류군은 지금까지 당했던 울분을 토해내듯, 빼앗겼던 그들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전격적인 진격을 시작했다.

 마족의 군대는 지난 대회전으로 인해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단숨에 너무 큰 피해를 입은 탓에, 그들은 군대의 재정비에 상당히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모시는 군주를 잃고 졸지에 붕 떠버린 군대들이 문제였다. 대회전에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마왕의 숫자가 제법 되었고, 그 뒷수습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인류군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 영웅들, 작심하고 풀어낸 마도 병기와 아티펙트들, 거기에 성녀까지 내세워 대대적인 탈환전을 벌였다.

 물론 그 전쟁의 최선두를 달리는 영웅 중엔 다섯 각성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 * *

“쏴라!”

“놈들은 독 안에 든 쥐다! 이대로 매장시켜 버려라!”

 파테린 협곡.

 마왕 아스타로드, 그리고 그녀와 우호 관계가 깊은 마왕들은 휘하 군세를 이끌고 이 협곡 내부로 진입했다.

 그리고 그 직후에 기습을 받았다.

“크악!”

“기, 기습이다!”

 대회전에서의 패배 이후, 마족군은 몇 갈래로 쪼개져 움직였다. 물론 그들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고, 상황에 쫓기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중 한 군세를 아스타로드가 이끌었는데, 이유는 물론 그녀의 권능이 도주에도 큰 도움이 되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마왕들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것이다.

 그녀는 마족 최고의 정보상답게 곧바로 최적의 도주 루트를 계산해냈다. 그녀는 그 경로를 따라 움직이며, 휘하 세력을 부려 주변 정찰에 공을 쏟았다.

 도주 경로상에 협곡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녀는 진군을 강행했다.

 일단 최대한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 쫓아오는 인류군으로부터 무사히 달아나 전력을 온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사전 경계까지 게을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휘하 세력을 파견해 협곡 내부에, 바깥에, 절벽 위쪽에 매복이 있지는 않은지 확인했다.

 그녀 밑에서 철저하게 훈련받은 정보원들의 역량은 뛰어났다. 그들은 오래지 않아 조사를 마치고 돌아와 이상이 없음을 보고했다.

 아스타로드는 곧바로 군대를 진군시켰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의 뛰어난 판단력과 적합한 도주 경로 선정이 빛을 발한 줄로만 알았다.

 갑자기 협곡 위에서 궁병을 비롯한 인류의 군세가 대거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이,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분명 매복은 없다고!”

“안 돼! 놈들이 기름을 붓고 있다!”

 이미 협곡의 입구와 출구는 인류군에 의해 틀어 막혔다.

 마법 화살이 간간이 섞인 화살비가 쏟아지고, 마법사들이 발현한 화염 계열 마법이 작렬하고, 바위와 통나무가 떨어져 내려오고, 기름과 유황이 바닥을 적시고.

 마족들의 비명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야말로 학살의 현장이었다. 일방적인 유린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로엘은 협곡 위 절벽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앉아 무참히 죽어 나가는 마족들을, 정확히는 그 가운데서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마왕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안 됐지만 아스타로드, 당신은 최우선 제거 대상이라서. 기회가 생겼을 때 없애둬야 하거든.”

“방금 그 발언 뭔가 되게 악당스럽게 느껴졌다는 것 압니까?”

 시간의 현자, ‘파프닐’이 피로에 절은 얼굴로 다가와 로엘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일이 잘 풀렸네요.”

“그거 아십니까? 요즘 저를 부려 먹는 횟수와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거?”

“받은 만큼은 일하셔야죠.”

“……내가 어쩌다 이런 위험한 사람에게 코가 꿰였을까.”

 로엘은 파프닐의 한탄을 못 들은 체했다.

“그런데 어떻게 저들이 이곳으로 도주할 거라는 걸 알아챈 겁니까? 진짜 신기하네.”

“별로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저 상대의 성향을 파악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 가볍게 예측을 해보았을 뿐이죠.”

 로엘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하품을 내뱉으며 말했다.

“아스타로드 같은 경우엔 강력한 권능을 지녀서 그런지 그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더군요. 자기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도 상당하고. 덕분에 예측이 편했습니다.”

 그리고 마족군보다 먼저 협곡에 도착해 매복하는 것쯤이야 언데드 공중 병단과 아공간의 조합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뭔가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정말로 쉬운 일인가 싶기도 하고.”

 파프닐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기울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게 정말로 쉬운 일일 리가 없다.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것도, 확실하지 않은 예측을 기반으로 과감하게 행동에 나서는 것도.

“오래잖아 정리되겠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앞으로 편해지겠네요.”

 로엘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투의 성과는 어떤 의미로는 대회전에서의 승리보다도 값지다고 할 수 있었다. 마왕 ‘아스타로드’는 그만큼 마족군 내에서 중요한 존재였다.

“이걸로 얼추 시간을 맞출 수 있으려나.”

 로앨이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냥 혼잣말입니다.”

 파프닐의 물음에 로엘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 꺼내는 것이 좋겠지.

 두 사람이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도 마족군은 빠른 속도로 그 숫자가 줄어들어 가고 있었다.

 인류와 마족의 전쟁에서, ‘포로’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류와 인류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에서나 통용되는 개념이다.

 로엘은 차가운 눈빛으로 협곡 아래를 내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곳 협곡에 갇힌 마족군은 그 누구도 살아서 바깥을 향하지 못하리라.

 그 누구도.

 * * *

 레인의 경우엔 바르바젠과 함께 별동대를 운영해 마족군을 요격했다.

 각각 키메라 기병과 늑대 기병. 이 두 특수기병대는 달아나는 마족군을 그야말로 집요하게 괴롭혔다.

 물론 그들이 아무리 고급 전력이라고 해도 근본적으로 숫자가 부족하기에 마족의 대군을 압도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들의 뒤로 엄청난 숫자의 일반 기병이 따라붙고 있다는 것.

 마족군은 뒤쫓아 오는 인간의 기병에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달아나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 탓에 별동대와 맞서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었다.

 별동대와 맞서 싸우면 시간이 지체된다. 시간이 지체되면 잘못했다간 뒤를 쫓고 있는 대군과 맞붙어야 한다. 그랬다간 끝장이다.

 그렇다고 별동대를 방치하자니 그치들이 수시로 전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정말이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인류의 본대가 들이치기 전에 별동대를 빠르게 전멸시키고 달아나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게 또 그럴 수가 없었다.

 분명 별동대의 전력은 마족의 대군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압도당할 만큼 약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을 이끄는 지휘관들의 능력이 워낙 뛰어났다.

 마족군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결국 한 가지뿐이었다. 울분을 삼키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며, ‘합류 지점’까지 도달하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입장이 된 별동대는 아주 신이 나서 날뛰었다.

“돌격!”

“이대로 들이받는다!”

 레인과 바르바젠이 선두에 선 기병대가 마족군의 후미를 들이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마족군 진영에서 분노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또 온다!”

“지긋지긋한 놈들!”

 끊임없이 이어지는 별동대의 습격으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고위 전력을 후미에 대거 배치해둔 마족군이었다. 마왕을 비롯해 군단장, 상위 마족들이 응전할 준비를 마쳤다.

 별동대가 가까이 접근해옴에 따라 긴장감이 높아져 갔다. 어느 마족이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기수를 돌려라!”

 두두두두두두!

 그리고, 별동대가 별다른 습격 없이 갑자기 물러나 버렸다. 애초에 긴장감 조성 및 도발이 목적이었을 뿐, 정말로 공격할 마음은 없었던 것이다.

“크으. 젠장할! 우리를 아주 물로 보고 있어!”

“참아. 도발에 말려들지 마라. 루바루나가 그런 식으로 저들에게 당했다.”

“그건 알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고위 마족들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그러나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저들이 노골적으로 도발을 걸어오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기에.

 연이은 별동대의 습격에 대비해 마족군 수뇌부가 병력 배치에 크게 신경을 기울이면서, 별동대의 전과는 크게 줄어들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수월하게 놈들을 들이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자 레인과 바르바젠은 곧바로 작전에 변화를 주었다. 습격에 허실을 섞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습을 드러내 긴장감을 조성하곤 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별동대. 호전적인 성향의 마족 투사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는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그렇다고 긴장을 놓을 수도 없는 게, 중간중간 진짜로 습격을 해오기도 했다.

 공격 측인 별동대와는 달리 마족군 쪽은 매번 철저하게 경계 태세를 갖춰야만 하는 상황.

 물리적인 피해보다도 정신적인 피해가 누적되었다. 군대의 사기가 가라앉고 분위기가 침체되어 갔다.

“제기랄! 힘을 내란 말이다! 합류 지점에 도착하기 전에 놈들에게 따라잡히기라도 하면 정말로 끝장이다!”

 지휘관이 필사적으로 병사들을 독려했지만, 사기가 회복될 길이 보이질 않았다.

 결국 그들 마족의 군대가 ‘합류 지점’에 도달해 병력을 추스르기 전까지, 전체 병력의 삼분지 일 가까이가 증발해 버리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별동대는 그런 그들을 비웃듯,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적당한 시점에서 물러나 본대와 합류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말하듯.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성과인 것 같은데.”

“병력은 크게 줄여뒀고, 고위 마족도 꽤 잡았으니까. 이것으로 이쪽의 전투에선 인류군 측 전력이 모자랄 일은 없겠지.”

 레인과 바르바젠은 작전 수행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며 그런 대화를 나눴다.

 이번 작전을 통해 그들이 척살한 마왕의 숫자는 둘. 군단장의 숫자는 열셋이나 되었다.

“그건 그렇고, 르우벤과 카트란이 공중 병단을 이끌고 있다고 했던가.”

“그래. 아마 이쪽이 세운 것보다 더한 전과를 세웠으면 세웠지, 덜하지는 않을 거다.”

“적측 공중 병단이 거의 궤멸되다시피 했으니 말이지.”

 레인이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입장이 되어 움직이는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아마 이쪽보다도 더욱 큰 활약을 펼쳤을 것이다. 그들이 이끄는 것은 다름 아닌 공중 병대니까. 기동성도, 전투 시의 유리함도 이쪽과는 차원이 다를 테니까.

“순조롭군.”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목표한 기간 내에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지을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레인이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뱉어냈다.

 문득, 어서 이곳의 일을 마무리 짓고 원래 시대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제자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 * *

 그로부터 4년이 흘렀다. 다섯 각성자가 과거로 떨어진 지도 벌써 9년하고도 반년이 더 흐른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어떻게든 다시 전력을 결집시킨 마족군이 다시 진군해오고, 인류군이 그들을 다시 격파하고.

 밀고 밀리는 땅따먹기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음유시인들이 환장하며 달려들 법한, 반전이 넘치는 전투가 몇 번이고 일어나고.

 그 과정을 모조리 생략하고 결과만 말하자면, 인류는 끝내 마족들을 대륙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수많은 희생의 끝에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부분의 마족이 죽거나 그들의 세계로 쫓겨나듯 귀환했다. 마왕 ‘바알’을 위시한 일부 마족들은 마계로 귀환하지조차 못하고 펠라키 산맥 인근 영지에 고립되었다.

 째깍.

 바로 그즈음이었다. 로엘의 귓가에 이명이 들려온 것은.

 로엘은 예상했다는 듯 빙그레 웃음 지으며 아공간을 열었다.

 그가 손에 타임 트래블러를 쥐고, 마력을 주입했다. 이내 회중시계 위로 떠오르는 반가운 문구.

[아티펙트의 재기동을 위한 조건이 1가지 충족되었습니다.]

[아티펙트 기동을 위한 조건 달성 - 1/3]

로엘은 그 길로 르우벤을 찾아갔다. 그리곤 그에게 다짜고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잠시 나랑 어디 좀 다녀오자.”

“응? 어디를?”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됐거든. 이제 두 번째 조건을 충족시켜야지. 하르넴의 유적으로 간다.”

“하르넴의 유적? 거기는 왜? 아니 이유는 둘째치고, 거기 입구가 개방되려면 한참이나 남았잖아. 무슨 수로 거길 찾아가겠다는 건데?”

“그 부분에 대해선 걱정할 것 없어.”

 로엘은 훗, 하고 웃으며 말했다.

“입구를 통하지 않고서도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 내가 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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