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대회전(5)
추격대를 이끌던 마왕 중 하나, ‘안드로말리우스’는 그야말로 경악했다.
‘이 미친! 이렇게 가까이 접근하면서도 저것들의 존재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저 언데드의 존재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그동안 마족군을 무던히도 괴롭혀온 인류의 전쟁 영웅 중 하나가 다루는 놈으로, 그야말로 압도적인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그 힘의 발현을 위해 마력을 밀집하는 시간이 길고 움직임이 굼뜨며 눈에 잘 띄는 데다 공격이 직선적이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고위 마족 정도만 되어도 웬만해선 놈에게 당하는 일이 없었다. 사전에 공격 궤도 바깥으로 몸을 피하면 그만이니까.
물론, 안드로말리우스 본인도 그 굼뜨기 짝이 없는 언데드 따위에게 자신이 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마왕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무장인 그이기에 더더욱.
“······!”
아주 제대로 걸렸다. 도저히 피할 방도가 없다. 그가 급히 권능을 끌어 올려 공격을 받아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열 줄기의 빛의 기둥이 달려드는 마족군 추격대를 통째로 휩쓸고 지나갔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릉.
“크윽.”
안드로말리우스는 옅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뜨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사방을 뒤덮은 연기가 걷히고, 참혹한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절망으로 물들었다.
“이런 빌어먹을.”
추격대가 통째로 증발해버렸다. 시체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그나마 마왕이나 군단장 일부 정도는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살아남았다고 해서 무사하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지만.
당장 안드로말리우스 본인만 해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 상태로 전투를 치르게 되면 본래 역량의 반도 내보이지 못할 터였다.
그나마 튼튼한 육신을 지닌 안드로말리우스니 이 정도였다. 실력이 떨어지는 군단장들이나 권능에 크게 의존하는 전투 스타일을 지닌 마왕들은 상태가 훨씬 심각했다.
그때였다. 허망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안드로말리우스의 귓가에 이 사태의 원흉인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뭐해? 곡식이 익었잖아. 추수하러 가야지.”
안드로말리우스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뚝, 하고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포효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자신을 향해 검격을 날려오는 인간을 향해 마주 주먹을 날렸다.
익히 아는 얼굴. 이 인간 또한 인류의 전쟁 영웅 중 한 사람이었다. 분명 이름이 ‘레인’이라고 했던가.
콰아아앙!
그 크기만 3미터에 이르는 거검과 마왕의 권능이 덧씌워진 주먹이 충돌해 막대한 소음을 자아냈다.
오래지 않아, 결착이 났다.
* * *
별동대는 곧바로 부상자를 돌보고 전력을 재정비했다.
로엘은 아공간에서 재료들을 쏟아내 부서진 헬 하운드를 보충했다. 베히모스는 인류군 본진이 아닌 별동대와 함께 운용하기엔 적합하지 않아 아공간에 수납해 두었다.
“정비를 마친 뒤엔 곧바로 다시 진격할 거다. 가능한 한 체력을 보충해 두도록.”
“예!”
준비한 함정이 제대로 효과를 봤다. 이것으로 마족군 방어병력에 일시적인 공백이 생겼을 터. 이제는 다시 마음껏 몰아치는 일만 남았다.
“이제 슬슬 시작하려나.”
운기조식으로 체력을 보충한 레인이 언데드 복구 작업이 한창인 로엘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렇겠지. 그동안 뭣 때문에 그런 비밀병기를 써먹지 않고 숨겨왔는데.”
로엘이 한 차례 기지개를 켜며 대답했다.
이내 재정비를 마친 별동대가 다시 돌진했다. 목표 지점은 방금 전 고위 마족들이 대거 빠져나와 전력의 공백이 심각할, 바로 그 위치!
“원래 때린 데 또 때리고 상처 난 데 소금 뿌려야 제맛이지.”
로엘이 달려 나가며 사악하게 웃었다. 레인이 그런 로엘을 짜게 식은 눈으로 응시하고, 주위 병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두두두두두두두!
“으, 으아! 또 온다!”
“추격대는?! 추격대는 어떻게 된 거냐!”
콰드드드드드드!
그대로 마족군 진영으로 돌진, 그들의 진영을 유린하는 별동대. 이젠 한동안 진격을 방해할 고위 마족도 나타나지 않을 테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양 떼 사이에 뛰어든 늑대처럼 마구 날뛰었다.
이에 마족군 수뇌부는 크게 당황했다. 처음 별동대가 들이쳤을 때만 해도 그렇게까지 크진 않았던 피해가, 이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전세에 영향을 끼칠 정도가 되어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는 더욱 커질 터. 이러다가 인류군 본대와 전투를 치르고 있는 군사들에게 불안감이 번지기라도 하면 그땐 끝장이었다.
그때, 한 마왕이 질풍처럼 별동대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 마왕은 순식간에 전력의 공백이 심각한 서쪽에 도착해, 한창 아군을 유린하고 있는 키메라 기병대를 거칠게 덮쳐 들어갔다.
“!”
그 기척을 느낀 레인이 표정을 굳히며 곧바로 대응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저 존재를 감당할 수 있는 자는 자신뿐이라는 것을!
콰아아아앙!
레인의 일장과 근육질 마족 사내의 주먹이 충돌해 폭음을 일으켰다. 막대한 파장이 주위를 잠식해 들어갔다.
마치 야수처럼 뛰어올라 공격해온 마족 사내의 공격은, 정말로 강력하기 그지없었다. 지금껏 레인이 겪어온 마족들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레인이 발을 딛고 선 바닥에 쩍쩍 금이 갔다. 급히 대처하느라 자세가 조금 모자랐던 탓일까, 그의 입가에 한 줄기 피가 흘렀다.
“크.”
끝내 그가 신음을 내뱉었다. 지금의 경지에 오른 후로 상대와의 충돌이 이렇게까지 버거웠던 적이 없었건만.
레인이 이를 악물고 막대한 내력을 단숨에 폭발시켰다. 맞닿은 두 무인의 손이 재차 폭음을 일으키며 떨어져 나갔다.
근육질 마족 사내가 공중제비를 돌아 바닥에 내려서고, 레인이 훌쩍 뛰어 뒤로 물러났다.
“놀랍군. 인간 중에 이 정도 역량을 지닌 무인이 있었다니.”
“…….”
상대가 감탄의 말을 뱉어냈으나, 레인은 그에 반응하지 않고 입가의 피를 손등으로 슥슥 문질러 닦아냈다.
레인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상대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72마왕은 딱히 서열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들은 모두가 군주고, 서로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런 마왕들 사이에서도 경외 받는 존재가 하나 있다. 그 존재야말로 마족군의 실질적인 총사령관임을, 마족 중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설사 자존심이 드높은 다른 마왕들이라고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72마왕의 일인이자 모든 마족들의 정신적인 지주. 동시에 마족 최강의 무장으로 이름 높은 강자.
바알.
‘마족 최강의 무장이라더니.’
레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과연 그 칭호에 걸맞은 실력이었다.
터엉!
잠시간 레인을 경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던 바알은, 여전히 아군 진형을 누비고 있는 별동대를 제지하기 위해 단숨에 신형을 뽑아 올렸다.
“그렇게는 안 되지.”
레인이 곧바로 그에 따라붙었다.
쾅! 쾅! 콰앙! 콰르르륵!
두 사람의 신형이 몇 번이고 격렬하게 맞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파장에 휩쓸리는 것만으로도 주위 마족들이 죽고 별동대원이 낙마했다. 괴물들의 싸움이 아닐 수 없었다.
퉷!
대지에 족적을 남기며 주르륵 밀려난 레인이 입에서 피를 한 모금 뱉어냈다. 충돌이 이어짐에 따라 몸에 무리가 가고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그는 밀리고 있었다. 그것도 다수의 적이나 마법사가 아닌, 같은 무인에게!
“좋잖아.”
레인이 사납게 웃으며 쿵, 하고 진각을 밟았다. 호승심에 제대로 불이 지펴졌다.
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기파의 흐름이 생겨났다. 주위 마족들이 겁에 질려 주춤주춤 물러날 정도로 압도적인 기세였다.
그리고, 로엘의 욕설이 날아들었다.
“멍청아! 적진에서 일기토라도 벌일 셈이냐! 당장 별동대에 합류해! 빠져나간다!”
“쯧.”
레인이 혀를 차곤 곧바로 신형을 물렸다.
로엘의 말이 옳았다. 놈과 결판을 짓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어딜 마음대로 빠져나가려 하느냐!”
당연하게도 바알이 달려들어 별동대를 제지하려 했다.
쿠콰콰콰콰콰콰!
그러나 레인의 그림자로부터 쏟아져 나온 거대한 검은 줄기들이 마치 벽처럼 바알의 전방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움직임이 일순 지체된 바알의 머리 위로 레인의 거검이 떨어져 내렸다.
“크윽?!”
콰아아아아앙!
공격을 받아쳐내려던 바알은 레인이 휘두른 거검, ‘공간검’의 무게에 일순 신형을 휘청이다가 간신히 그것을 흘려내는 데에 성공했다. 공간검이 대지에 떨어져 내리며 거대한 충돌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그 시점에 레인은 이미 공간검에서 손을 떼고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공간검은 암흑정령에 의해 회수되었고, 별동대는 그 길로 무사히 마족군 진영을 벗어났다.
“…….”
마왕, 바알은 인상을 찌푸리며 손목을 털었다.
그가 순식간에 멀어져 가는 별동대의 뒷모습에 시선을 던졌다. 별동대의 후미에 자리 잡은 채 달려 나가던 레인이 그를 돌아보았다.
일순 두 무인의 시선이 교차했다.
“…….”
그것도 잠시, 레인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나중을 기약하며.
그땐, 지금과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싸움의 배경이 되는 장소도, 서로의 입장도, 그리고 레인 본인의 실력도.
레인이 한 차례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다시 뜬 그의 두 눈이 한층 깊어져 있었다.
* * *
인류군 본대에 숨겨왔던 마지막 비장의 패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비장의 패란, 한 사람의 여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에 운명처럼 탄생한 신의 대리자. 신의 의지를 대변하는 존재.
성녀.
그녀는 양손에 한 가지씩의 물건을 쥐고 있었다. 각각 교단의 최고 신물인 ‘법전(法典)’과 ‘성광(聖光)’.
그녀가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리자, 법전과 성광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성스럽고 웅장한 광채가 주위를 떠다녔다.
그리고 그녀가 기도를 마치고 눈을 번쩍 뜬 순간.
화아아아악!
성녀가 행사할 수 있는 최고의 기적, ‘대축복’이 인류군의 본진 전체를 뒤덮었다.
법전과 성광이라는 최상위 신물을 소모해 한껏 증폭된 축복에 병사들의 체력이 회복되고 소모된 마나와 오라가 차올랐다. 사기가 진작되고 육체 능력이 강화되었으며 일시적으로 ‘마(魔)’를 상대로 강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지휘관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신의 가호가 함께하고 있다!”
“반격을 시작한다! 지금까지 당했던 것을 되갚아줄 시간이 왔다!”
“저 무도한 마족 놈들을 쓸어버려라!”
장기전에 따른 체력고갈. 그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인류군이 단숨에 반격을 개시했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수비적인 태도가 거짓말인 양 광포하게 내달려 마족군을 밀어붙였다.
“크악!”
“쿠륵! 빌어먹을! 이놈들 갑자기 쌩쌩해졌어!”
순식간에 전황이 뒤집혔다.
안 그래도 별동대로 인한 피해가 누적되어 피폐해져 가고 있던 마족군이다. 거기에 공중 병단은 이미 괴멸 직전이었다. 불온한 분위기를 감지한 병사들이 크게 불안해하고 있던 시점.
성녀의 대축복은 그런 마족군의 사기를 완전히 떨어뜨리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그 압도적이던 마족군의 진형이, 끝내 붕괴되기 시작했다.
“성녀가 대단하긴 하네. 정말로.”
어느새 자신의 할 일을 모두 끝마치고 지상에 내려서 있던 카트란은 순식간에 회복되는 체력과 마력, 오라를 느끼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는 곧바로 인류군의 최전선에 합류에 병사들에게 용맹하게 외쳤다.
“이 전쟁은 우리가 이겼다!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모두 쓸어버려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병사들이 그에 호응하듯 일제히 포효를 내질렀다.
한 번 붕괴되기 시작한 마족군의 진형은 다시 복구되지 않았다.
인류군은 피눈물을 흘리며 퇴각하는 마족군을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몰아쳤다. 마치 숨통을 끊어 놓겠다는 듯.
지금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 일제히 출격하는 기병들. 약물로 인해 강화된 말들이 흉폭한 울음소리를 토해내며 마족군의 뒤를 쫓았다.
별동대는 별동대대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마족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황금빛으로 익은 곡식을 눈앞에 둔 농부의 마음으로 추수에 박차를 가했다.
이날, 인류군은 대승을 거뒀다.
지금까지 수없이 겪어온 패배. 그 모든 패배를 단숨에 만회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승리를.
그리고 이날을 기점으로, 마족군은 더 이상 인류에게 있어 압도적인 포식자가 아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