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대회전(3)
전투의 시작을 알린 것은 대륙 유일의 ‘마도 비행선’.
마도 비행선으로부터 쏟아져 나온 거대한 규모의 광선이, 마족군 선두에 그대로 작렬했다.
콰아아아아! 콰드드드드드드드!
“쿠악!”
“그라아악!”
한순간에 녹아내려 버리는 군의 일각. 실력이 뛰어난 이들은 사전에 그 영역을 벗어났지만, 그러지 못한 이들은 단숨에 소멸해버리고 말았다.
과연 이번 전투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전략 병기답게 위력이 무시무시했다. 가성비가 최악이라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적을 위압하는 수단으로는 이만한 게 없었다.
“막아라!”
“달라붙어! 저 빌어먹을 마도 병기의 포신이 우리 군을 향하지 못하게 해!”
마도 비행선을 경계한 마족군 측 공중 병단이 곧바로 날아들었다.
상당히 기민한 대응이었다. 필시 마왕 아스타로드가 권능 ‘텔레파시’로 빠르게 정보를 취합, 다른 마왕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승인받아 지시를 내린 것이겠지.
[캬아아아아아!]
[캬악!]
비행형 마수들이 거칠게 울부짖으며 날아드는 것을 인류측 공중병단이 앞으로 나서 막아냈다. 그들이 마도 비행선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저지했다.
[구우우우우우우우우우.]
그것도 잠시, 두 괴조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들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덩치가 주는 위압감만도 굉장한데 괴수 주제에 권능까지 발현하는 게 가능한 모양. 주위에 떠도는 회색 불꽃이 불길한 빛을 토해냈다.
“후우.”
그리고 인류군 진영의 중앙, 그 공중에 자리 잡은 마도 비행선 위에서 카트란이 가볍게 몸을 풀었다.
“계획대로군.”
그가 거대한 괴조들이 실시간으로 가까워져 가는 광경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인류군 비장의 무기, 마도 비행선.
이 비행선을 견제하기 위해 마족군이 공중 병단을 보내올 것임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예상했기에 그것을 이용할 계획도 세워두었다.
물론 간파당하기 쉬운 의도이자 계획이었다. 간파했다고 그 대응책까지 마련할 수 있느냐 하는 건 또 다른 문제겠지만.
마도 비행선을 막아내기 위해선 아군 공중 병단에게 불리한 전투를 강요해야 함을 저들도 뻔히 안다.
그럼에도 저들은 인류군 진영으로 공중 병단을 보낼 수밖에 없다. 더 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이 마도 비행선의 존재와 출격에 관한 것을 감추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수고를 들여왔는지 모른다. 황제가 직접 의뢰한 ‘내부정리’를 레인과 바르바젠이 열심히 수행했다지.
“이렇게 대규모 전쟁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게 얼마 만이더라.”
이전에 아파에르 영지에서 마족군과 첫 전투를 치렀던 때 이후로, 카트란은 공식 석상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겨왔다. 다른 각성자들과 상의하면서 그러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어차피 인류가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카트란이 아무리 활약해 봐야 열세를 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차라리 그의 능력을 결정적인 순간이 오기 전까지 숨기기로 한 것이다.
카트란의 능력은 상대가 그것을 파악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큰 효율성의 차이를 보인다.
그러니 결정적인 순간까지 숨겨두자. 그것이 카트란 본인을 포함한 각성자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그도 소규모 전투나 이런저런 분쟁에서는 많이 활약했다. 결정적인 내용이 마족군 수뇌부에 알려지지는 않게 주의해가면서.
사실 본신의 경지에 자기강화가 더해지는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강했다.
“쏴라!”
“떨어뜨려!”
아래쪽에서 적측 공중 병단을 요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그럴 수 있도록 아군 공중 병단은 일부러 그렇게 높지 않은 고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구와아아아아아아아!]
“우왁!”
물론 아주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적측 공중 병단에 포함된 괴조들은 강하기도 하지만, 그 신체의 내구도가 이루 말할 수 없게 높았다. 그치들이 체중과 권능을 무기로 밀고 들어오니 아군 공중 병단이 버틸 도리가 없었다.
괴조들은 인류 측 공중 병단의 견제도, 아래쪽에서 날아드는 마법도 몸으로 때워 가며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그대로 마도 비행선의 좌우에 달라붙었다.
두 괴조가 마구잡이로 신형을 뒤틀거나 발톱을 내리찍고, 이빨로 물어뜯었다.
마도 비행선의 좌우 기계문이 열리고 내부에서 수많은 마도 병기가 출현해 두 괴조를 요격했다.
두 괴조는 그 모든 것을 몸으로 때워 가며 마도 비행선을 무력화시키는 데에만 집중했다. 어느 쪽의 내구도가 먼저 바닥나느냐의 싸움이었다.
그 혼란스러운 전투의 중심에서, 어느새 눈이 붉게 물든 카트란이 차갑게 웃었다.
“이 정도 거리까지 왔으면 벗어날 수 없겠지.”
그렇다. 애초에 카트란이 이곳에 배치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두 괴조는, 어찌 되었든 ‘그리 지능이 높지 않은’ ‘생명체’니까!
그가 흔들리는 비행선 위에서 능숙하게 균형을 잡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만.”
* * *
인류군과 마족군은 그야말로 격렬하게 맞붙었다. 공중 병단끼리의 충돌은 그저 시작이었을 뿐.
공중 병단의 상황이 열세인 만큼, 마음이 급한 쪽은 마족군이었다. 그들의 마수 기병대가 일제히 인류군 진영을 향해 달려 나갔다.
인류군은 마찬가지로 기병을 내보내는 대신 방패병과 장창병을 내보내 진을 구축하게 했다.
쿵! 쿵! 쿵! 쿵!
마법적 처리가 완료된 방패를 든 병사들이 방패를 대지에 박아 넣고, 후열의 병사들이 그 사이사이로 장창을 배치했다. 그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마치 급한 건 이쪽이 아니라고 상대를 도발하는 것만 같았다.
콰아아앙! 쾅! 콰앙!
[크아아앙!]
“크윽!”
“버텨! 버티라고!”
“내 앞길을 가로막지 마라! 빌어먹을 인간들아!”
그대로 양측이 충돌, 연속적인 소음을 자아냈다. 중형 마수들의 육탄돌격, 상위 마족의 권능, 하위 마족들의 투창이 연속적으로 방어진 위에 작렬했다.
수없이 많은 마족과 인간이 죽어 나갔다.
방어진과 거센 충돌을 일으키고 기절한 마수에게 후열의 장창병이 창격을 박아 넣었다. 상위 마족의 권능에 방어진의 일각이 흔적도 없이 소멸해 버렸다.
충돌 직후 마수의 등 위에서 뛰어내린 마족들이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고, 방패병들이 진형을 변화시켜 그것을 막아냈다.
마수 기병 사이에 간간이 섞인 군단장, 혹은 마왕에게는 마찬가지로 병사들 사이에 섞여 있던 인류군 측 강자들이 달라붙었다.
[쿠워어어어어!]
그 뒤를 잇듯 대형 마수들이 지축을 울리며 돌진해왔다. 마수 기병들이 양옆으로 빠져 길을 터주었다.
“물러나라, 물러나!”
“어물쩍거리면 다 죽는다! 훈련했던 대로 대열 무너뜨리지 말고 골렘이 지나갈 길을 만들어!”
상대적으로 기동성이 부족한 인류의 보병은 진형을 변화시켜 대형 골렘들이 지나갈 길을 터주었다. 그리곤 골렘과 대형 마수가 맞붙는 사이에 뒤로 물러나 다시 진형을 갖췄다.
물론 그게 잘 풀리지만은 않아 많은 사상자가 생겨났다. 거대 괴수나 마수 기병의 방해 공작으로 죽어 나간 이도 있었지만, 골렘에 깔려 죽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자리를 지켜라!”
“저들은 곧 격전지를 우회해 다시 들이칠 것이다! 진형을 탄탄히 갖춰라!”
“마도 병대는 신속히 자리 잡고 전방을 지원하도록!”
무사히 후퇴한 병사들이 다시 진형을 짜고, 뒤이어 도착한 보병들이 합세해 뒤를 받치고, 마도 병대가 맨 뒤에 자리 잡은 채 마법을 발현할 준비를 마쳤다. 공성 마도 병기를 활용할 준비까지 마쳤음은 물론이다.
“기병대는 대기하라! 놈들의 본대가 가까이 다다르면 그때 움직인다!”
기본적으로 인류군의 기병은 마수 기병과 정면으로 맞붙을 수 없다. 아무리 약물로 말의 흉폭성을 증폭시켜도 근본적으로 중형 마수를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철저하게 보병만을 노린다. 불가피하게 마수 기병과 충돌하게 되더라도 거기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계속되어온 전쟁을 통해 인류가 터득한 노하우였다.
물론, 그것은 일반적인 기병에 한한 이야기였다. 인류 측에도 마수 기병에 견줄 만한 특수한 종류의 기병대가 존재하긴 했다. 그 규모가 적들의 그것에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 그렇지.
“크라하하하하! 내가 왔다, 버러지들아!”
“부숴라! 죽여라! 유린하라!”
오래지 않아 소형 마수와 마수기병, 고위 마족과 군단장, 심지어 마왕까지도 전열에 자리 잡은 마족군의 본대가 들이쳤다.
“놈들이 온다!”
“격발하라!”
인류군이 이를 악물고 그들에게 맞섰다. 마도 병대의 마법이 허공을 수놓고, 마도 병기로부터 격발된 마법, 바위, 거창, 마법 폭탄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마족군의 진형에 떨어져 내렸다.
치열하기 그지없는 혈투가 벌어졌다.
가로막는 것을 모조리 분쇄하려는 마족. 그런 마족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는 인간. 그들로부터 비롯된 소음이 혼잡하게 뒤엉켜 전장을 가득 메웠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족군은 조금씩 조금씩 인류군을 밀어붙여 갔다. 인류군의 진영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전투가 장기화되면서 인류군이 지치기 시작한 것이다. 마족군의 뛰어난 스테미너가 빛을 발했다.
그러나 인류군은 끈질기게 버텼다. 계속해서 밀려나는 와중에도 악착같이 진형을 유지했다. 무너진 진형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복구해냈다.
계속해서 인류군의 전선을 밀어붙이던 마족들은, 어느 순간 자신들이 제국 수도를 둘러싼 성벽을 눈앞에 두게 되었음을 인지했다.
“크하하하하!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게 되었구나!”
“힘을 내라! 놈들의 진형을 분쇄하고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모든 것을 약탈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환호성을 내지르는 마족의 병사들. 사기충천한 그들이 한층 더 거세게 인류군을 압박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
“뭐, 뭐야! 왜 갑자기 인간의 기병이 모습을 드러내는 거냐!”
이변이 벌어졌다.
마족군의 양쪽 측면을 향해, 마치 유령처럼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인류군의 별동대가 들이닥친 것이다!
* * *
‘거대한 공동 내부에’ 자리 잡은 채 ‘수정구를 통해’ 양측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로엘. 그가 눈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시작한다! 유적의 입구를 열어라!”
별동대를 구성하는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기병들이 말을 베이스로 제작된 키메라의 등 위에 올라 오와 열을 맞춰 도열했다. 통신병들은 분주히 이곳저곳에 연락을 가했다.
그리고, 사전에 ‘컨트롤 룸’에 배치해둔 마법사들이 ‘지하 유적’의 출구를 개방하기 위해 유적의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그그그그그그그긍.
쿠구구구구구궁.
공동의 천장 한편이 묵직한 마찰음과 함께 밀려나 출구를 생성한다. 그리고 유적의 형태가 변화해 출구로 이어지는 비스듬한 길이 생겨난다.
“돌격!”
그렇게 생겨난 길을 따라 별동대가 일제히 달려 나간다. 진형의 선두에는 레인이, 진형의 가운데에는 로엘이 자리 잡았다.
이곳 유적을 공략한 인물은 바로 제국의 초대 황제였다고 한다. 이곳을 공략함으로써 통합 제국을 세울 기반을 손에 넣었다던가.
제국의 초대 황제는 수도 근방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유적의 가치를 높게 보았다. 그렇기에 공략 후 빈껍데기가 된 유적의 존재를 은폐하고 관련 정보를 차기 황제, 즉 황태자에게만 공개했다.
그렇게 역대 황제들에게만 암암리에 전해져 내려온 비밀 전략 거점이 바로 이곳, ‘아크레온 유적’.
순식간에 유적 바깥으로 달려 나온 별동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레인이 쩌렁쩌렁한 외침을 뱉어냈다.
“전속력으로 달려라! 마족 놈들의 옆구리를 단숨에 꿰뚫어버린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
지금까지 인류군이 치러온 전투는,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놈들을 유적 인근으로 끌어들여 단숨에 그 숨통을 끊어 놓기 위해!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돌진하는 별동대. 키메라들이 거칠게 내달리며 포효를 터뜨렸다.
오래지 않아, 레인의 시야에 한참 인류군을 몰아치고 있는 마족군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
“뭐, 뭐야! 왜 갑자기 인간의 기병이 모습을 드러내는 거냐!”
경로상에 위치한 마족들이 경악에 찬 외침을 토해내는 가운데, 레인이 그림자로부터 공간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에 검강을 씌워, 크게 휘둘렀다.
“이 미친!”
“아, 안 돼!”
콰드드드드드드드드!
전장의 한 축이 통째로 갈려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길’을, 일제히 거창한 별동대가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