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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화. 대회전(2) (235/249)

 236화. 대회전(2)

 로엘이 말한 ‘그 녀석들’이란 레인과 바르바젠을 의미했다.

 본래는 바르바젠이 맡은 일이었는데, 그 혼자서는 일손이 턱없이 부족했던 탓에 은밀한 활동에 능숙한 레인이 가세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통신을 나눴을 때도 순조롭다고 했으니까.’

 로엘은 몸을 뒤집어 침상에 똑바로 뉘곤 눈을 감았다. 아공간에서 언데드 몇 개체를 꺼내 주위를 경계하도록 지시를 내린 후, 천천히 수마에 빠져들었다.

‘첩자 색출이 완전히 끝나고 나면 그 뒤엔…….’

 이내, 그의 의식이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 * *

 레인과 바르바젠은 첩자 색출이 한창이었다.

 첩자 색출. 말이 간단하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심지어 그것이 마왕의 권능으로 심어진 첩자라면 더더욱.

 그래, 그들은 다름 아닌 바르바젠과 같은 권능을 가진 마왕, ‘오세’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인간들을 색출해 마탑으로 보내는 작업을 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정말로 교묘하게 인간 사회에 숨어들어 있었기에, 발견하는 것이 정말로 쉽지 않았다. 만일 오세의 권능을 흡수한 바르바젠이 없었다면 두 각성자도 굉장히 큰 어려움을 겪었을 터.

 물론 바르바젠의 권능이 있다고 해서 수많은 인간 하나하나를 살펴보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발견하면 또 발견하는 대로 마탑으로 보내기 위해 그들이 조종당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했고.

 그렇기에 한동안 두 사람은 갖은 고생을 다 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일단 발견만 하면 별다른 증명 없이도 마탑에 넘겨버릴 수 있을 정도로 신뢰와 성과가 쌓인 상태였지만.

“잡았다. 요놈.”

 이번 타깃은 빌레넘 백작가의 장자였다. 바르바젠이 권능으로 정체를 밝혀내자, 선한 인상이었던 사내가 한순간에 표정을 악귀처럼 일그러뜨렸다.

“쯧.”

 한 차례 혀를 찬 청년의 두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가족들의 눈앞에서 청년의 몸집이 울룩불룩 부풀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륵!]

“또 이 짓이군.”

 레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최근엔 이렇게 정체가 들통 나면 대상자가 곧바로 폭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차피 모르쇠로 일관해 봐야 오래잖아 정체가 탄로 날 테니 차라리 장렬하게 산화해버리는 것이다. 마왕 오세의 지시대로.

“꺄악!”

“아, 안 돼!”

 백작가 사람들의 비명을 뒤로하며, 레인이 그림자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주는 것 정도가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이미 폭주해버린 대상자는 마왕 오세를 처치한다고 해도 원래대로 되돌아올 수 없으니까.

 지금까지 찾아낸 꼭두각시 중에서 살아남은 자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구속구를 채워놔도, 의식을 잃게 해도, 하다못해 사지 근맥을 끊어 놔도 결국은 폭주해버렸으니까.

 그렇다고 첩자 색출을 게을리할 수도 없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미리 첩자들을 제거해두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비교도 되지 않는 숫자의 목숨이 사라지게 될 테니까.

“마음에 안 들어.”

“놈들과의 싸움은 항상 이런 식이었지.”

 바르바젠이 레인의 반대편으로 움직여 청년을 포위하듯 자리 잡았다.

 회귀 전. 그러니까 제국의 황제였던 시절의 그는, 이 빌어먹을 권능 때문에 그야말로 피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었다.

“후.”

 레인과 바르바젠 두 사람은 청년에게 따로 사죄의 말 같은 것은 전하지 않았다. 그저 동시에 몸을 날려 한순간에 청년의 숨통을 끊어 주었을 뿐.

 콰드득! 콰득!

[쿠와아아악!]

 쿠웅!

 백작가 인사들의 비명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쓰러진 청년의 눈이 천천히 감겨졌다.

 * * *

 레인과 바르바젠은 빌레넘 백작의 배웅을 받으며 백작가를 나섰다.

 백작은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어했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을 나쁘게 대하거나 하진 않았다. 저주 어린 외침을 토해내는 이들마저 몇 번이고 접했던 두 각성자는 백작의 그런 태도만도 감지덕지했다.

“…….”

 백작가 저택을 뒤로 하며, 레인이 짜증스럽게 목 뒤를 긁적였다. 청년의 시체 앞에서 울부짖던 가족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르바젠이 그런 레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신경 안 써.”

 대답과는 달리 신경 쓰고 있어 하는 게 눈에 보였다. 바르바젠은 후, 하고 숨을 불어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긴. 나도 그 놈과 별로 다를 게 없나.’

 정작 바르바젠 자신도 그 권능을 이용해 꼭두각시를 여럿 부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제국의 황제, 그러니까 배다른 형제마저 포함되어 있었고.

 물론 그가 꼭두각시로 삼은 자들은 딱히 동정할 만한 내력을 지닌 이들이 아니었다. 방금 상대했던 백작가 장남과는 다르게. 애초에 그런 자들이 아니었다면 꼭두각시로 삼을 이유도 없었을 테지.

‘…….’

 그럼에도 쓴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은 왜일까.

 이유야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게 단순히 그런 문제만은 아님을 스스로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허어엉. 오라버니!]

 꼭두각시 청년의 가족들이 흘리던 눈물이 괜스레 머릿속에 떠올랐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난 뒤엔…….’

 펼쳐뒀던 권능을 모두 거두고 자유롭게 대륙을 떠돌고 싶다. 바르바젠은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털어냈다.

‘아니, 이런 생각은 나중으로 미뤄둬야지. 먼저 지금 당장에 집중해야 한다.’

 사실 이런 종류의 고민을 파고들게 되면 끝이 없다. 그것은 딱히 바르바젠이 아닌 다른 각성자들이라도 마찬가지였다.

‘대의’를 위해 그들이 행한 악행을 하나하나 늘어놓자면 그야말로 한도 끝도 없다는 표현이 어울릴 터. 적어도 지금은 그것으로 인한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가자. 대회전이 벌어지기 전까지 변수가 될 만한 요인은 모두 제거해야 하니까.”

 어느새 표정이 되돌아온 레인이 아티펙트를 이용해 와이번을 부르고, 그 위에 올랐다. 원래 시대에서 활용하던 와이번은 함께 넘어오지 못했기에 이 시대의 야생 와이번을 붙잡아 새롭게 길들였다.

 바르바젠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따라 와이번에 올랐다. 이내, 두 사람을 태운 와이번이 기성을 내지르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 * *

 인류의 힘이 한데 결집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진 지금에 와서야, 그들은 완벽하게 힘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각성자들이 여러모로 활약하기도 했다.

 인류군은 그동안 마족과의 전쟁에서 꾸준히 밀려왔으나, 아직까지 결정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다. 내부적인 갈등은 이제 대부분 자취를 감췄고, 첩자를 비롯한 불온 분자도 대부분 색출해냈다.

 마법사들은 전 대륙적 비상사태 앞에 인건비와 재료비 계산은 미뤄둔 채 충분한 숫자의 마도 병기를 보급했고, 은거하고 있던 실력자들이 하나둘 나타나 군에 합류했다.

 상인들은 국가의 어음을 받고 식량을 풀었고, 지방 귀족들은 사병을 끌어 모아 전선으로 향했다.

 그동안은 목숨을 아끼느라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용병들이 전쟁 영웅들에게 감화되어, 국가의 보상 약조를 믿고 각자의 연장을 손질했다.

 이종족의 군대가 합류해 특수병과로 분류되고, 그들과의 연계 전투를 무사히 수행하기 위해 양측의 의견을 조율한 인력이 따로 선별되었다.

 그동안 시중에 풀리는 일이 없었던 고대의 아티펙트가 대량으로 풀려 군에 보급되고, 마탑과 황실의 창고 안쪽에 잠들어 있던 보구들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인류군의 전력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반격의 때가 도래한 것이다.

 인류군과 마족군은 대륙의 중앙에 자리 잡은 제국의 수도 근방 평야 지대에서 마주 보고 대치했다.

 쿠워어어어어어!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쿠르르릉! 쿠르르르르르!

 끝없이 도열한 인간의 군세. 그와 대치하듯 도열한 마족의 군세.

 양측의 총사령관이 연설전을 벌이고, 지휘관들이 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확성 마법의 도움을 빌려 갖가지 외침을 토해냈다.

 마족군의 마수들이 불길한 울부짖음을 토해내고, 마족의 전사들이 광소를 내뱉었다. 인류군의 골렘과 마도 병기들이 소음과 먼지를 일으키며 적절한 위치에 배치되고, 전사들이 힘찬 기합성을 터뜨렸다.

 마족군 공중 병단의 중심에 두 마리의 초거대 괴조가 모습을 드러내 그림자를 드리우고, 인류군 공중 병단의 중심에 대륙 유일의 ‘마도 비행선’이 나타나 그 위용을 떨쳤다.

 그런 전장의 한편.

“후. 여기까지 오는데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다 한 것 같다.”

 로엘이 양측의 군세를 둘러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이번 전투에서 별동대를 이끌고 적의 옆구리를 들이치기로 되어 있었다. 그 일환으로 다른 언데드는 다 부수고 헬 하운드로만 한계 용량을 꽉 채워 두었다.

 참고로 준비된 별동대는 총 둘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르우벤과 바르바젠이 맡기로 되어 있었다. 카트란은 군의 중심에서 활약하기로 했고.

“언데드 숫자가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었네.”

“이게 다 템빨이지.”

 함께 별동대를 이끌기로 한 레인의 물음에 로엘이 가볍게 대꾸했다. 그는 마법사의 마력 한계 용량을 늘려주는, 미래에는 구하려 해도 구할 수 없는 사기적인 아티펙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마법사에겐 별다른 의미가 없는 물건이었다. 로엘과 비슷한 마법적 특성을 지닌 이가 아니라면 별다른 효과를 못 볼 터였다.

 그런 주제에 귀하기는 또 더럽게 귀했다. 심지어 소모성 아티펙트이기까지 했다. 충분한 물량을 확보하기는 힘들겠지.

‘원래 시대로 되돌아가기 전까지 최대한 긁어모아 봐야지.’

 일단 구할 수 있는 데까진 구해 보자고, 로엘은 생각했다.

“군 통솔권자도 충분히 능력 있는 사람이고, 병력도 이제 충분하긴 한데, 괜찮을지 모르겠군. 아무래도 군대의 통일성이 높지 못하다는 게 마음에 걸려서.”

“그 부분은 충분히 대비를 해 뒀으니 어떻게든 될 거야. 게다가 그 문제에 한해선 마족군이 이쪽보다 훨씬 심각한 처지이기도 하고.”

“그것도 그런가.”

 인류군은 정규군에 귀족들의 사병, 거기에 용병과 이종족의 군대까지 혼합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마족군은 72마왕과 그 휘하 군세의 연합체. 군대의 통일성 문제는 이쪽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으리라.

“지진 않겠지.”

“여기서 지면 답이 없지.”

 그야말로 대륙의 존망이 걸린 일전이 지금 이 순간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양측의 병력은 비슷, 아니 인류군 측이 약간 모자란 정도. 그렇지만 그 정도 차이는 전투 양상에 따라 얼마든지 뒤집어 질 수 있었다.

“그리고 지지 않는 정도로는 안 돼. 완벽하게 이겨야 해. 아무래도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인류군 쪽이 손해니까.”

 인류군은 마족군에 비해 전쟁에서의 ‘소모율’이 높다. 그렇기에 근본적으로 인류군이 불리한 판인 것은 여전했다. 그 열세를 뒤집기 위해 지난 시간 동안 온갖 준비를 다 해온 것이긴 했지만.

 레인이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주물렀다.

“그렇게 말하니 조금 긴장되는군.”

“이길 거다. 분명.”

 로엘이 확신하듯 중얼거렸다.

 사실은 그도 살짝 긴장했다. 이번 전투는 지금까지의 전투와는 그 스케일부터가 완전히 달랐으니까. 사람인 이상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족과 인류의 모든 전력이 이 자리에 모였다. 대회전(大會戰)이라는 표현이 이렇게나 어울리는 광경이 또 있을까.

 뿌우우우우우!

 오래지 않아 진군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확성 마법을 타고 울려 퍼졌다.

 두 군세가 서로를 향해 맹렬히 달려 나가, 거센 충돌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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