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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화. 대회전(1) (234/249)

 235화. 대회전(1)

 로엘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한 여인과 마주앉았다.

 여인은 전신을 가리는 로브를 착용하고 있었다. 청색 계열에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로브였다. 화려한 장신구를 주렁주렁 착용하기도 했다.

 나이는 대략 스무 살 전후일까. 객관적으로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을 만한 여인이었다. 모자는 쓰지 않았기에 그 뛰어난 용모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테이블의 중심에는 검은색 광택이 나는 보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수십 장에 달하는 카드가 뒤집힌 채 놓여 있었다.

 여인의 이름은 ‘엘리시안 하르베르그’. 제국에 몇 존재하지 않는 점성술사였다. 달리 ‘운명의 현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음. 기후는 별다른 이상이 없겠네요. 바람이 좀 세긴 하겠지만 전장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준을 아닐 거예요.”

“그렇군요.”

 엘리시안의 말에 로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대에는 점성술사들이 기후를 체크했다. 그게 마도문명과 결합되어 굉장히 정확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이렇게 체계화된 시스템이 갖춰져 있을 줄은 로엘도 몰랐다. 지난 시간 동안 입지를 쌓고 정보를 모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로엘은 원래 시대로 되돌아가기 전까지 ‘운명 마법’을 어떻게든 습득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시간 마법사’는 용족의 특수한 비술이 없으면 육성할 수 없다는 말에 포기했지만, 운명 마법사는 충분히 육성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사전에 기후를 체크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굉장한 메리트였다. 마치 현대 지구의 그것과 같은, 아니 어떤 의미론 그 이상으로 정확한 기후 관측이라니. 탐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마족 측에 기후 관측이 가능한 존재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72마왕의 일원인 ‘비프론즈’. 그의 권능은 점성술과 관련되어 있어 전장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적군엔 존재하면서 아군에겐 존재하지 않는 유용한 시스템이 있다? 로엘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았다.

 운명 마법을 터득해 미래로 가져갈 수만 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할 터. 탐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즘 명성이 자자한 케르티아 백작님을 뵙게 돼서 영광이네요. 들은 것보다 훨씬 잘 생기셔서 놀랐답니다.”

 여인이 빙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얼굴에 약간 홍조가 어려 있었다.

 로엘은 전장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지금은 명예 백작의 지위를 얻었다. 그에게 임시로 주어진 군사 지휘권도 상당했다.

 물론 평범한 방식으로 얻어낸 지위는 아니었다. 보통 논공행상은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이뤄지지 않는 법. 로엘과 바르바젠이 그동안 무슨 짓을 벌이고 돌아다녔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었다.

“제 얼굴에 금칠을 하시는군요.”

 로엘이 빙긋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상대가 호의를 표해오면 거절하지 않는 것이 그였다. 거기에 그 상대가 운명 마법사임에야.

“이렇게 뵙게 된 것도 인연인데, 점을 좀 봐 드릴까요?”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그럼요. 뭐 세세한 것까지 엿보는 건 무리고, 점을 보는 순간 미래가 바뀌게 될 테니 그렇게 큰 의미는 없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나름 도움이 되기도 한답니다.”

 로엘이 흥미 어린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일부러 지은 표정이었다. 이쪽이 그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마침 잘 됐군. 이 기회에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더 얻어두는 게 좋겠지.’

 로엘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기대되네요.”

 이미 서른 살이 넘었음에도 로엘의 외모는 여전히 빛이 났다. 그런 그가 밝은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주위 배경이 밝아지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엘리시안의 얼굴에 어린 홍조가 조금 더 짙어졌다.

“그럼 그쪽의 보옥에 손을 얹어주시겠어요? 손을 통해 마력이 흘러들어갈 텐데, 거부하진 마시고요.”

“예.”

“결과가 나오기까진 시간이 좀 걸릴 테니 기다려 주세요.”

 엘리시안이 그렇게 말하며 분주하게 손을 놀렸다. 카드를 정리했다 탁자에 펼쳐 놓길 몇 차례 반복하고, 종이 위에 무언가를 열심히 써내려갔다.

“그냥 기다리자니 조금 심심할 것 같은데, 몇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로엘이 자연스럽게 물었다. 엘리시안이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와중에도 ‘얼마든지요’ 하고 대답해왔다.

“운명 마법으로 전쟁의 승패를 점쳐볼 수는 없는 겁니까?”

“불가능해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엿봐도 무의미하죠. 전쟁이란 건 승패를 가를 수 있는 요소가 많아도 너무 많거든요. 당장 거기에 동원되는 지적 생명체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과연. 그런 것이었던가.

‘지적 생명체’는 운명 마법의 사용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요소인 모양이었다. 하긴 사람 하나를 점치는 데만 해도 저렇게 번거로운 절차가 동원되는데, 전쟁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고대 용족들은 그조차 가능했다고 하더군요. 특정 사건의 진행 상황과 변수 등을 종합해 결과를 점치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미래를 점치는 식으로.”

“운명 마법으로 미래를 점치는 것조차 가능하단 말입니까?”

“어디까지나 고대 용족들이 가능했다는 이야기에요. 미래를 점치기 위해선 일단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아야 하는데, 그걸 무슨 수로 알아내나요. 모순이죠.”

 그녀는 계속해서 손을 놀리며 ‘고대 용족은 특수한 비술로 단편적인 미래를 엿보는 게 가능했다는 모양이지만요’ 하고 중얼거리듯 첨언했다.

“…….”

 고개 숙인 채 바쁘게 무언가를 적어 내리고 있던 엘리시안은 보지 못했다. 로엘의 입가에 순간적으로 혹한 표정이 떠오른 것을.

‘저 말대로라면, 미래에 벌어질 사건을 확실하게 알고 있기만 한다면 그것을 점쳐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거로군.’

 그리고 로엘 본인은 미래에서 왔다. 굉장히 재미있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점을 쳐 봐야 그리 큰 의미는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눈앞의 여인이 말하지 않았는가. 점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나름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쯤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지.’

 로엘은 속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어?”

 한참 분주하게 움직이던 엘리시안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왜 그러시죠?”

“아니, 점의 결과가…….”

 엘리시안은 한껏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이런 상황은 생각해본 적 없다는 듯.

“……?”

“결과가 ‘혼돈’이라니,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혼돈?”

“원래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 점에서 나올 수가 없는 결과거든요. 마법 적용 대상이 인과율을 완전히 벗어난 존재이지 않고서야.”

 엘리시안이 표정을 찡그리는 가운데, 로엘은 태연하게 ‘그렇습니까?’ 하고 반문했다. 실상은 그녀가 언급한 ‘인과율’이란 단어 때문에 머릿속이 어지러웠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한번 봐 드릴까요? 무언가 착오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괜찮습니다. 슬슬 약속 시간이 가까워져서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네. 또 봐요.”

 로엘은 엘리시안의 아쉬워하는 눈길을 뒤로 하고 그녀의 실험실을 나섰다.

 다시 점을 쳐 봐도 아마 같은 결과가 나올 터. 굳이 붙들려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는 그대로 마탑을 나서 본 와이번에 탑승, 몇 시간에 걸쳐 전선으로 복귀했다.

 그는 전선으로 되돌아가자마자 한 막사로 향했다. 바로 제국군을 이끄는 일곱 군단장 중 한 사람인 ‘루버렌 후작’이 머물고 있는 막사였다.

 * * *

“와, 왔군.”

 로엘이 막사로 들어서자, 막 식사를 하고 있던 루버렌 후작이 사레가 들렸는지 기침을 내뱉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루버렌 후작은 ‘온건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풍성한 체형에 반쯤 벗겨진 머리가 인상적인 중년의 사내였다. 거대한 규모의 도시를 통치하는 영주이기도 했다.

 그 후작의 몸속에는 현재 로엘 특제 나노머신이 주입되어 있었다.

 로엘과 바르바젠은 이 시대에서 어떤 식으로 영향력을 떨치는 게 좋겠느냐는 주제로 깊은 토의를 나눴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바로 이것.

 최근 새롭게 인류군의 대열에 합류한 후방의 귀족들. 그들을 꼭두각시로 삼기로 한 것이다. 인류군의 행보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은, 이익집단에 가까운 그들의 군대를 집어삼키기 위해서.

 꽤나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했다. 작위가 낮은 귀족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갔다. 상당히 속이 곪아 터진 집단이었기에 그럭저럭 파고들 틈은 많았다.

 전면에선 바르바젠이, 이면에선 로엘이. 그들은 적절하게 역할을 나눠 움직였다. 그렇게 인류군이 앞으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때 내부에서 잡음이 일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고, 겸사겸사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을 확보했다.

 그 과정에서 로엘의 나노머신이 깔끔하게 소진되었다. 사실 유용성만 놓고 보면 바르바젠의 ‘눈’이 더 나았지만, 그의 권능은 사용 한계가 있어서 최대한 아끼기로 했다. 어차피 모든 일이 마무리된 이후론 돌아가야 하는데 아깝지 않은가.

 나노머신의 경우엔 몇 가지 조건만 갖춰지면 회수할 방법이 존재했다. 게다가 나중에 시간이 되면 아예 새롭게 제작하는 것도 가능할지 몰랐다. 만들고 싶어도 재료가 부족한 미래와는 달리 이 시대라면 충분한 물량의 재료를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

“제가 식사를 방해한 모양이군요.”

“아니. 방해랄 것도 없다. 이미 배는 충분히 채웠으니까.”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의례적인 인사말이 오갔다. 배를 채우긴커녕 이제 막 숟가락을 들다가 놓은 후작이 거짓부렁을 늘어놓있지만, 로엘은 그것을 모른 체했다.

 로엘은 곧바로 본론을 꺼내들었다.

“군 편제는 확실하게 개편되었겠지요?”

“물론. 지시받은 대로 확실하게 개편했네.”

“지시라니요. 그저 좋은 의견이 있어서 건의 드린 것뿐이지 않습니까.”

 로엘이 빙긋 웃으며 후작의 말을 정정했다. 입조심 하라는 뜻이었다.

“그, 그렇지. 내가 실언을 했네.”

“오래지 않아 인류군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게 될 겁니다. 대회전(大會戰)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네요. 그땐…….”

“알고 있네. 사전에 ‘상의한’ 대로 군을 움직이면 되는 거겠지?”

 로엘은 긍정의 의미를 담아 빙긋 웃었다.

 그는 그 뒤로 후작 맞은편에 앉아 차를 기울이며 몇 가지 사안을 더 논의했다. 사실 논의라기 보단 통보, 지시에 가까웠지만 아무튼.

“그럼,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배웅하지 않겠네.”

 볼일을 마친 로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를 나섰다. 그 뒷모습을 후작이 곱지 않은 눈길로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로엘이 막사를 나서다 말고 갑자기 후작을 돌아보았다. 후작이 화들짝 놀라 눈에 힘을 풀고 헛기침을 내뱉었다.

“얼마 전에 하이단 마탑을 방문하셨더군요. 그것도 주위에 알리지 않고 극비리에.”

 로엘은 싸늘한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그렇게 말했다.

 하이단 마탑은 마도 생명 공학, 골렘 제작, 독과 저주 전반에 두루 뛰어난 마법사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기로 유명한 국가기관이었다.

 필시 후작은 체내에 주입된 나노머신을 제거하기 위해 그곳을 찾았으리라.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했겠지만.

“…….”

 후작은 일순 전신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을 느꼈다.

‘전부 파악하고 있다 이건가.’

 이쪽의 행적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렇게나 정보의 통제에 신경을 기울였거늘.

“이번엔 그냥 넘어가 드리겠습니다만, 두 번은 없습니다.”

 로엘은 그렇게 말하며 막사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후작은 결국 표정을 관리하는 것도 잊고 처참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말았다.

 * * *

 로엘은 자신에게 배정된 개인 막사에 들어서 곧바로 침상에 몸을 묻었다. 요즈음 너무 바쁘게 움직이느라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문득 그가 중얼거렸다. 자신 못지않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두 사람을 떠올리며.

“그 녀석들, 잘 하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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