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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화. 타임 트래블러(Time traveler)(4) (229/249)
  •  230화. 타임 트래블러(Time traveler)(4)

    [커르르릉!]

     헬 하운드가 마력포를 발출했다. 이변을 감지한 마족 사내가 금세 신형을 돌려 그것을 받아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

     콰드드드득!

     그리고, 곧바로 육중한 덩치로 밀어붙여 오는 마충을 막아내느라 신형이 살짝 뒤로 밀렸다.

     딱 포탈에 몸이 닿을 정도로.

    “젠장! 날 속였구나!”

     마족 사내가 분통을 터뜨렸다. 로엘이 쿡쿡 웃었다.

     상대를 완벽하게 속이는 데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열 가지 진실 속에 한 가지 거짓을 섞는 것이고, 두 번째는 상대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을 노리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자신의 진짜 의도를 그럴듯해 보이는 가짜 의도 뒤에 감추는 것이다.

     로엘은 그 세 가지 방법을 모두 이용했다.

     노린 타이밍이 상대와 동맹을 맺은 지 10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몇 시간씩 공을 들였든, 10분 만에 뒤통수를 치든. 결과만 같으면 장땡 아니겠는가.

     로엘은 잘 가라는 듯 마족 사내를 향해 친히 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두고 보자!”

     슈욱!

     금세 마족 사내의 모습이 공동에서 사라져 자취를 감췄다. 공허한 메아리만을 남기고.

     * * *

     로엘이 싱글싱글 웃으며 언데드들을 아공간 내부로 수납했다.

     그런데.

     짝. 짝. 짝. 짝.

     어디선가 들려오는 박수 소리.

    “?!”

     로엘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대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한 여인이 깔깔거리며 웃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경계하진 않아도 되는데.”

    “…….”

     로엘의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상대의 접근을 알아채지조차 못하다니, 지금의 경지에 이르고 난 뒤로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타났단 말인가.

    ‘용인족?’

     여인은 용인족이었다.

     성형공을 익힌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에 푸른색 머리칼과 눈동자. 굽어진 뿔과 터질 듯한 몸매, 거기에 비늘에 뒤덮인 뭉툭한 꼬리와 앙증맞은 피막 날개까지.

    ‘잠깐, 꼬리와 날개?’

     로엘이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용인족의 신체적 특성에 꼬리와 날개라는 요소는 존재하지 않을 터.

     금세 머릿속으로 계산이 이루어졌다.

     용이 세운 유적. 그 내부에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범상치 않은 존재. 그리고 용인족과 비슷하게 생긴 외견. 여기서 떠올릴 수 있는 가정은…….

    “혹시 당신은 용족입니까?”

    “오. 머리 회전이 꽤 빠른 인간이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주자면, 비슷하지만 틀리다고 할까.”

    “……?”

    “용족은 아니고, 용족이 남긴 사념쯤으로 이해하면 돼. 이 공간 전체를 총괄하는.”

     로엘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것도 가능하다는 말인가.

    “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신 겁니까?”

    “응? 그냥.”

    “예?”

    “그냥이라고. 덕분에 간만에 크게 웃었거든. 대화나 몇 마디 하고 싶어져서.”

     로엘이 살짝 안도했다. 적어도 이쪽을 제거하기 위해 나선 ‘적’은 아니라는 말이렷다.

    “이렇게 유적 공략자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도 되는 겁니까?”

    “그거야 내 마음이지. 종일 유적만 지키고 앉아 있는 것도 심심한 일이거든. 이렇게 가끔 침입자들과 대화 정도는 나누곤 해.”

     무언가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일단 가벼운 질문을 던져 보았는데, 의외로 선선하게 대답해왔다.

     로엘은 혹시나 싶어 계속해서 말을 붙여 보았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몇 가지 질문을 좀 해도 되겠습니까?”

    “말했잖아? 대화하려고 모습을 드러낸 거라고. 얼마든지 대답해줄게. 날 웃게 한 보답이라고 생각해.”

     로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이쪽이 사양할 이유가 없다.

    “어째서 용족은 이 유적을 건설한 겁니까?”

    “특별한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그 물건을 찾아올 ‘전인’을 기다리기 위해서.”

     꽤나 핵심적인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대답에 거침이 없다.

     딱히 거리낄 이유나 제약이 없어서? 아니면 상대가 어차피 오래지 않아 죽을 침입자이기 때문에? 모를 일이었다.

     로엘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 물건이라는 건 대체 뭡니까? 이런 기형적인 공간을 만들어서까지 지키는 이유가 있을 테지요.”

    “노코멘트. 그건 내 입으로 말할 수 없게 되어 있거든.”

     로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런가.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었던 건가.

     그 ‘물건’이라는 게 이 유적을 공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일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말해줄 수 있지. 그건 굉장히 위험한 물건이야. 잘못 사용하면 인과율을 통째로 어그러뜨려 버릴 수도 있을 정도로.”

    “…….”

     다른 이도 아닌 ‘고대 용족의 사념’이 경고하는 위험성이기에 더욱 무게감이 있었다.

     로엘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 ‘물건’이 있는 곳에 다다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수없이 많은 포탈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이 유적에서, 올바른 ‘길’을 찾는 방법은 존재하긴 합니까?”

     일단 찔러나 보자는 생각으로 던진 질문이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 질문에 내포된 내용은 그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이 아닌가. 이 또한 ‘제약’에 걸릴 확률이 높을 것이라 여겨졌다.

    “방법?”

     그런데 사념체 여인의 반응은 완전히 예상을 빗겨 갔다. 오히려 반문하며 고개를 기울였으니까.

     그리고, 예상을 벗어나기로는 이어진 그녀의 발언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건 없는데?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나 통로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

     일순 로엘의 표정이 멍해졌다.

     애초에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럼 대체 이 유적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물건의 ‘전인’을 기다린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길 자체가 없는데 대체 누가 그곳으로 향할 수 있는 겁니까. 유적을 공략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면, 그 물건을 취할 ‘전인’도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 아닙니까? 모순이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로엘의 항변과도 같은 물음에 여인이 깔깔 웃으며 대답했다.

    “난 전인을 기다린다고 했지, 유적의 공략자가 전인이 된다고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데?”

    ‘그렇군.’

     로엘은 그녀의 말뜻을 이해했다. 이해해 버렸다.

     말인즉, 전인은 애초에 ‘정해져 있다’는 말이었다.

     상황을 이해함과 동시에 머릿속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그 말은, 결국 이 유적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뜻 아닌가!

    “그럼 전인을 제외하고 이 유적에 발을 들인 이들은…….”

    “죽겠지? 끊임없이 유적 내를 배회하다가.”

    “…….”

     일순 부정적인 생각이 들 뻔했으나, 로엘은 그것을 떨쳐냈다.

     언뜻 희망이라곤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수렁에 빠진 듯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상황에 절망하는 건 나중으로 미뤄둬도 충분할 터.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었다. 동아줄이 있지 않은가. 그것도 바로 눈앞에.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응? 뭔데?”

    “전인이 나타났을 때, ‘존재하지 않는 길’을 열어 그를 ‘그 물건’이 있는 장소로 안내하는 게 당신의 역할인 겁니까?”

    “오. 거기까지 생각한 거야?”

     역시.

     로엘의 눈이 매서워졌다. 이 유적을 벗어나기 위해선 눈앞의 ‘관리자’를 설득해야 한다는 게 확실해졌다.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회유해야 하나? 힘을 이용해 굴복시켜야 하나?

     회유는 아마 무리겠지. 이 사념체가 유적의 시스템을 거스를 것이라 여기긴 힘들었다.

     그렇다면 남는 방안은 전투를 통해 굴복시키는 것뿐인데…….

    ‘이길 수 있는 건가? 저런 걸?’

     여인은 자신을 유적의 ‘관리자’라고 했다. 필시 그녀는 유적 내 최강의 생명체, 아니 사념체일 터.

     그녀의 존재를 인지하고서부터 그 압도적인 존재감을 계속해서 느껴왔다. 어쩌면 그녀는, 이 유적 내부의 모든 가디언을 합한 것보다도 강할지 몰랐다.

    ‘그리고 애초에, 전투를 벌여 쓰러뜨린다고 그녀를 내 뜻에 따라 움직이게 할 수는 있는 건가?’

     고민이 깊어진다.

     그런 로엘의 내적 갈등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인이 흥미로운 얼굴로 ‘어딘가’를 바라보며 뭔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너와 네 일행에게는 관심이 갔었지. 흑룡(黑龍)의 일족이 힘을 모아 제작한 검을 사용하는 녀석도 그렇고, 기존의 것과 완전히 다른 체계의 무술을 사용하는 녀석도 그렇고. 그렇지만 역시 가장 재미있는 건 너인 것 같아.”

    “……?”

    “재미있는 걸 많이 가지고 다니는구나, 너? 내가 마법에 조예가 깊어서 흑마법도 좀 아는데, 그런 종류의 언데드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해 봤어.”

     문득, 로엘은 알아차리고 말았다. 여인이 허공이 아닌 자신의 ‘아공간 내부’를 바라보고 있음을.

    ‘정말로 별의별 게 다 가능하군.’

     그가 내심 투덜거렸다. 저런 괴물 같은 상대와 싸워야 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부딪쳐 보긴 해야 할 듯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별다른 방도가 없지 않은가.

     그가 마음속으로 결심을 굳히고 막 아공간으로부터 언데드를 불러내려 했을 때였다.

    “어?”

     갑자기, 사념체 여인이 눈을 크게 떴다. 마치 무언가를 발견하고 크게 놀란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어어어?”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다 이내 탄성을 토해내기까지.

    “이야. 전인이 나타나면 단숨에 알아볼 수 있을 거라더니, 그게 이런 의미였구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그녀가 로엘의 양손을 덥석 붙잡고 붕붕 흔들었다. 그러더니 꽃 같은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환호하듯 말했다.

    “반가워, 전인! 이제야 나도 내 역할을 끝내고 잠들 수 있겠네!”

     아무리 로엘이라도 이 상황에서는 당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라?

     * * *

     여인은 로엘을 이끌고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손을 휘젓자 갑자기 생겨난 포탈. 로엘은 그 포탈을 타고 몇 번이고 공간을 넘어 이동했다.

     강력하기 짝이 없는 언데드가 배회하는 동굴을 지나고.

     맹수형 키메라들이 어슬렁거리는 밀림지대를 통과하고.

     흉폭한 설인이 뛰어다니는 혹한지대를 가로지르고.

     무언가에 침식되었는지 눈이 푸르스름한 불의 정령들이 날아다니는 용암지대를 뛰어넘고.

     마법 합금으로 코팅된 골렘 기사들이 정렬한 궁궐에 발을 들이고.

     그 외에도 온갖 특이한 공간을 구경하며 발걸음을 옮기다 이내 유적의 끝. ‘제단’에 다다랐다.

    “자, 제단 위로 올라가서 ‘그걸’ 가지고 오면 돼.”

    “괜찮은 겁니까? 이렇게 쉽게 그런 중요한 물건을 내어줘도?”

    “그럼~. 그러니까 얼른 올라가.”

     로엘은 얼떨떨해하면서도 성큼성큼 제단의 계단을 올랐다.

     제단은 상당히 높았고, 그 꼭대기에는 딱 사람 허리까지 올 법한 단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런 단상 위쪽. ‘그 물건’이 저 홀로 허공에 둥둥 뜬 채 자리 잡고 있었다.

    “뭐야 이거.”

     로엘은 홀린 듯이 그 물건, ‘회중시계’를 손에 쥐었다.

    [타임 트래블러(Time traveler)에 첫 번째로 접촉하셨습니다.]

    [접촉자의 생체 정보를 기록합니다.]

    [기록되었습니다.]

    [타임 트래블러의 마스터로 등록됩니다.]

    [타임 트래블러를 기동하실 수 있습니다.]

    [타임 트래블러에 내장된 모든 기능을 열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순식간에 회중시계 위로 떠오르는, 룬 어로 이루어진 문장들. 그중 유난히 눈에 밟히는 문장이 있었다.

    “생체 정보 기록……?”

     그래. 분명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하르넴의 유적에서 타임 트레블러를 발견하고 손에 쥐었던 그 순간. 머릿속으로 직접 전해지듯 들려왔던 음성에 분명 그런 내용이 있었지.

    [<타임 트래블러(Time traveler)>의 마스터 인증이 시작됩니다.]

    [접촉자의 생체 정보를 사전에 저장된 생체 정보와 대조합니다.]

    [인증에 성공하셨습니다.]

     지금까지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잊었을 리가 있겠는가.

    “…….”

     로엘은 아공간을 열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시곗바늘이 존재하는’ 회중시계를 그 안에 집어넣고, 대신 ‘시곗바늘이 존재하지 않는’ 회중시계를 꺼내 마력을 주입했다.

    [‘타임 트래블러(Time traveler)’가 기동 중입니다.]

    [사전에 입력되어 있던 시간 축으로의 이동이 완료되었습니다.]

    [아티펙트의 기동 가능 횟수가 1회 남았습니다. 재기동 시, 원래의 시간 축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아티펙트를 재기동하기 위해선 3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아티펙트 기동을 위한 조건 달성 - 0/3]

    [제한 시간 : 10년]

    [제한 시간 내에 재기동이 이뤄지지 않을 시, 아티펙트는 파괴됩니다.]

    “하.”

     로엘은 끝내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런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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