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4화. 전후(戰後)(3) (223/249)
  •  224화. 전후(戰後)(3)

     카르테리온 검가의 출범은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대륙제일검사라 일컬어지는 ‘천검제’의 가문. 과연 그 가문은 대륙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

     일반인들은 막연히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세운 가문이니 대단하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그쪽 세계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신흥 검가가 가질 영향력을 그리 높게 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검가라는 건 단순히 가주와 무력대의 강함만으로 그 위세가 결정되는 단체가 아니었다.

     검가를 구성하는 요소를 늘어놓자면 이러했다. 가주와 그 혈족, 원로원, 무력대, 수련생, 빈객, 그리고 관광객.

     그런데 카르테리온 가는 가주와 무력대만큼은 최상위에 랭크될 수준이지만 나머지가 영 부실했다. 아무래도 신흥 검가인 것도 있고 하다 보니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가문을 구성하는 이들의 평균적인 나이가 낮은 만큼 원로원 구성원의 숫자가 적었다. 역사가 깊지 않아 수련생과 빈객이 적었다. 구 메르타 왕국령이라는 입지 때문에 관광객도 아직 그리 많지 않았다.

     관계자들은 생각했다. 카르테리온 검가는 분명 잠재성이 굉장히 높은 가문이지만, 그 잠재성이 개화되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일 것이라고.

     그런데, 그런 그들의 생각을 송두리째 뒤엎는 변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카르테리온 가가 정식 검가로 인정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그 변수란 바로 수인족, 그리고 야만 민족의 전사들.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몰려든 그들로 인해, 카르테리온 가는 단숨에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다.

     그들 전사들의 계층은 단순 전사에서 대전사, 일정 영역을 다스리는 족장의 자제까지 다양했다. 그들은 처음엔 단순 관광객으로 찾아온 것인가 싶더니, 상당수가 수련생이나 빈객으로 눌러앉아 버렸다.

     카르테리온 가에 대한 평가에 큰 변화가 일었다. 수련생은 그렇다 치고, 지금껏 중앙 대륙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강자들이 대거 빈객으로 머무르겠다 선언했으니 그럴 수밖에.

     그뿐만 아니었다. 현재 제국은 아인종과 야만 민족에 대한 차별을 금하고 그들과의 동맹을 선언한 상황. 아직 본격적인 교류는 벌어지지 않고 있는 시점인지라(로엘 휘하 상단 제외) 상인들이 애가 타 있었다.

     아인종의 영토와 야만 민족의 영토. 아직 ‘기존 세력’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은(로엘 휘하 상단 제외) 무풍지대. 이 얼마나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말인가.

     그런 상인들의 눈에, 갑자기 튀어나온 대밀림과 야만 민족의 ‘고위층’들이 어떻게 비쳐 보였을지는 말할 것도 없다.

     수많은 상인들이 카르테리온 영지로 몰려들었다. 막대한 물자가 함께 움직였음은 물론이다.

     거기에 중앙 대륙에는 생소한 ‘전사’라는 존재들을 만나기 위해 많은 무도가들이 몰려들기까지. 안 그래도 명성만은 높은 카르테리온 가였던 만큼 인구가 집중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물자와 사람이 모여든 결과? 물론 더 많은 물자와 사람이 몰려들게 되었다.

     한창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는 검가임을 증명하듯, 카르테리온 가문에 대한 평가는 나날이 높아져만 갔다. 그리고 여기에, 새로운 정보가 추가로 전해졌다.

    [카르테리온 가문이 수련생에게 전수하는 무예는 두 종류인데, 그중 한 가지는 과거 흑마검사 게르반을 물리친 대영웅과 그 동료들이 익혔던 것들이다.]

    [나머지 한 가지는 기존의 체계와는 완전히 다른 무예로, 천검제 본인이 익히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무예이다.]

     본래 영약 수급을 비롯한 여러 가지 현실적인 요건 때문에 좌공 수련자를 더 늘리진 않으려던 레인이었지만, 최근 제국이 대륙을 통합하고 주변 상황이 크게 변하면서 인식이 바뀌었다.

     이 소식에 대륙 전역이 크게 들끓었다.

     이전에 레인이 유적에서 습득한 대영웅과 그 동료들의 무예는, 후인 양성을 위해서인지 단계별 수련법이 나뉘어 있었다. 덕분에 검가에서 타인을 가르치는 용도로 활용하기 굉장히 유용했다.

     중원의 무공 쪽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수련생에게 기본적인 무공을 전수하고, 그들이 무력대에 들면 상위의 무공을, 원로원에 들면 그보다도 상위의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물론 입문자에겐 무예와 무공의 차이점, 그리고 장단점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게 되어 있었다. 검가에 입문한 수련생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 내릴 수 있도록.

     대영웅와 그 동료들이 익혔던 무예! 그리고 현 대륙제일검사인 천검제의 무공!

     안 그래도 화제의 중심이었던 카르테리온 가문이다.

     거기에 그동안 부족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채워지고, 다른 검가들에선 찾아볼 수 없는 막대한 메리트가 드러났다. 입문을 신청하는 이들의 숫자가 단숨에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당연지사.

     카르테리온 가문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이제는 그저 ‘미래가 기대되는 검가’가 아니었다. 가주, 무력대, 빈객, 수련생, 관광객이라는 요소가 모두 충족되다 못해 넘치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이미 다른 검가들에 못지않은, 혹은 그보다도 더한 위세를 지닌 가문. 그럼에도 아직 성장 중인 가문이라는 평가였다.

     비록 원로원이 약간 부실하긴 하지만, 그 정도야 나머지 장점으로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부분이기도 했고.

     카르테리온 가는 순조롭게 대륙제일검가로 거듭나가고 있었다.

     * * *

     제국군이 크게 개편되었다.

     기존의 제국군 편제는 더 이상 유지될 수가 없게 되었다. 영토가 과거의 제국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늘어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우선 군대의 규모가 크게 늘었다.

     포로로 잡은 병사들을 흡수했고, 새롭게 지원자를 받았다. 아카데미 제도를 통해 지휘관을 확충할 토대도 갖췄다.

     규모뿐 아니라 병과도 다양해졌다.

     우선 로엘 직속 공방에서 제작된 아티펙트를 사용하는 전투팀의 규모가 크게 늘었다. 게다가 지난 전쟁 동안 모은 사념을 마옥(魔玉)에 저장해 상당한 규모의 특수전력을 양성해내는 데에 성공했다.

     이후 아인족과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그들과 연수하게 된다면 훨씬 더 강력한 전력이 되리라.

     군이 개편되면서 군을 이끄는 지휘관의 인사고과에도 큰 변동이 일었다.

     그중 가장 큰 변동사항을 꼽으라면, 역시 새롭게 군단장으로 거듭난 두 사람을 들 수 있었다.

     카트란 르 하르페넘 후작.

     바르바젠 론 아르판 후작.

     두 사람 이외의 세 군단장은 대륙 통합 이전의 제국에서도 군단장의 직위를 맡고 있던 이들이었다. 그런 탓인지, 두 각성자는 취임 이후 한동안 나머지 세 군단장과 비교당하며 은연중에 무시당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 두 사람이 어디 보통 사람이던가.

     통합 이후, 한동안 대륙 각지에서 걸핏하면 저항군, 독립군이 출몰하곤 했다. 그 반란군들을 처리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카트란이었는데,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의 능력은 강력함뿐만 아니라 유용성이 굉장히 높았기에, 그와 함께 토벌에 나선 휘하 병력들이 크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그 본인의 인품도 좋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인정받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반면 바르바젠의 경우엔 별달리 대단한 일을 벌이지는 않았다. 분명 별다른 ‘계기’는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기로는.

     그럼에도 내부의 불만이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기이할 정도로 휘하 군단을 빠르게 장악, 그들의 절대적인 충성을 이끌어 내는 그의 모습에 관계자들이 의아함을 품었을 정도였다.

     그 내막을 아는 인물의 숫자는 극히 적고, 그들이 입을 열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의문을 품는다고 그 진실을 알아낼 수는 없을 터였다.

     아무튼, 제국군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앞으로도 더욱 강대해질 예정이었다.

     계획했던 모든 준비가 착착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 * *

     용병계에도 거센 풍랑이 일었다.

     다름 아닌 ‘용병왕’의 출현.

     르우벤은 지난 전쟁으로 압도적인 명성을 손에 넣었다. 거기에 제국의 황제에게 직접 하사받은 명예 백작의 지위가 더해지기까지.

     용병들 사이에선 거의 살아있는 전설쯤으로 여겨지게 된 그였다. 그의 용병대에 소속되고자 신청해오는 강자들이 크게 늘었고, 아예 자신들을 휘하 용병대로 받아달라는 대형 그룹마저 심심찮게 등장했다.

     그의 용병대는 꾸준히 활약했다.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잠재웠고, 제국 황실의 요청에 따라 4개 대산맥의 몬스터를 청소했으며, 수없이 많은 범죄자 집단을 소탕했다.

     르우벤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직속 용병대의 규모는 점차 거대해져 갔고, 휘하에 든 대형 용병대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갔다. 대륙 전역에 존재하는 용병들의 열렬한 지지를 등에 업고서.

     르우벤 하른 갈포드 명예 백작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올랐다. 대륙의 그 누구도, 그 어떤 신분을 지닌 인물도 그를 일개 용병이라 폄하하지 못할 정도로.

     그러던 어느 날, 르우벤의 용병대에 입단 신청서를 들고 찾아온 여인이 있었다.

     허리까지 닿는 붉디붉은 머리칼. 볼륨감 넘치는 탄력적인 몸매. 미의 화신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강함에서 비롯된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

     여인의 이름은 ‘세이라’였다.

     대륙의 4대 신비. ‘천공성(天空城)’ 하늘고래, ‘수중성(水中城)’ 레비아탄, ‘지하성(地下城)’ 용맥거북이. 그리고 르에센 대화산 아래에 묻혀 있다 전해지는 ‘실험실’, ‘화중성(火中城)’.

     그 모든 기연을 거쳐 이제는 단순한 인간이 아닌, ‘호문쿨루스’라는 명칭의 인조인간으로 거듭난 인물. 열여덟의 나이에 대륙에서 ‘초월자’라 불리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경지에 발을 디딘 강자.

     그리고, ‘성검(聖劍)’의 주인이기도 한 여인.

     그녀는 용병대의 입단 조건을 여유롭게 충족시켰다. 거기에 시험관으로 내정된 고위 용병들을 모조리 꺾었다. 심지어 여차여차해서, 용병왕인 르우벤과 직접 대면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르우벤의 앞에 서서 깊숙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과거에 언니를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드린다며. 그리곤 정중하게 대련을 요청했다.

     르우벤은 그녀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넓은 평야 지대로 자리를 옮겨 맞붙었고, 성검과 마검은 마치 재회를 축하하듯 거친 소음을 토해냈다.

     오랜 시간에 걸친 대련이 마무리되고, 르우벤은 쓰러진 채 거칠게 숨을 고르는 세이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마주 내미는 손을 붙잡아 일으킨 후, 르우벤이 말했다.

    ‘플리아스 용병대’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원래 역사에선 ‘세이라 실린 플리아스 명예 백작’으로 불렸고, 지금은 용병대의 신입 대원이 된 적발의 여인.

     그녀는, 더없이 아름다운 미소와 경례로 르우벤의 환영 인사에 화답했다.

     * * *

     통합 전쟁 이후, 로엘은 플로라에게 단둘이서 휴가를 떠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물론 승낙의 답변이 돌아왔다.

     로엘은 그녀와 함께 대륙 각지를 유람하고 다녔다.

     유명한 관광 명소도 찾아다녔고, 시기를 맞춰 어느 도시의 축제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거물 범죄자의 은신처나 탈세 혐의가 걸린 대귀족의 저택을 방문하기도 했다.

     중간에 이게 무슨 휴가냐는 플로라의 항의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아무튼 두 사람은 한껏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스릴이 넘치는 여행이었다.

     여행의 와중에 라면도 먹었다. 엘레노어 대륙에는 라면이라는 요리가 존재하지 않지만, 아무튼 실컷 먹었다.

     그렇게 한참 대륙 유랑을 다니던 와중의 일이었다.

     구(舊) 벨리아 왕국령에 볼일이 있어 본 와이번을 타고 날아가던 두 사람은, 이동 도중에 ‘대호수’를 지나게 되었다.

     로엘은 본 와이번을 조종해 고도를 낮췄다. 아름답다고 소문난 에메랄드빛 호수를 구경하고 갈 생각이었다.

     이내, 보기만 해도 속이 시원해지는 절경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플로라가 감탄사를 뱉어냈다.

     그리고 그 순간.

     째깍.

     로엘의 귓가에 시곗바늘 움직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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