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3화. 전후(戰後)(2) (222/249)


 223화. 전후(戰後)(2)



 전쟁이 끝나고, 전 대륙을 집어삼킨 제국은 본격적으로 통합된 국가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먼저 논공행상.


 이번 전쟁에서 높은 공을 세운 인물들에게 작위와 영지, 그리고 재물이 하사되었다. 통합 전쟁으로 인해 영토가 크게 넓혀진 덕분에 자리는 넘쳐났다.


 아무래도 다섯 각성자의 공훈이 컸기에 그들에게 돌아간 것이 적지 않았다.


“이번 전쟁의 선두에서 수없이 많은 공훈을 세운 천검제에게, 본인의 요청에 따라 카르테리온 영지를 하사한다.”


 우선 레인의 경우, 정식으로 영지를 하사받고 국가적 지원을 약속받았다. 사실상 진작부터 이뤄지고 있었던 일이므로 짜고 치는 도박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 정도도 적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레인 스스로가 이 이상은 사양하겠다는 뜻을 밝혀 그것을 잠재웠다. 그 일로 인해 레인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늘어났다.


 실상은 어차피 필요한 게 있으면 꼭두각시 황제를 통해 얼마든지 끌어다 쓸 수 있기에 그런 것이었다. 원래 역사 속 감춰진 진실이란 그런 것인 법.


“이번 전쟁에서 야만 민족과 토우런트 왕국의 기습을 막아내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카트란에게 후작의 지위를 하사한다. 또한, 새롭게 정비될 제국군을 이끌 다섯 군단장 중 한 사람으로 임명한다.”


 반면, 카트란에게 주어진 직위는 너무 과하지 않냐는 반발의 목소리를 불러일으켰다.


 아무래도 카트란은 일개 평민의 신분이었던 데다, 레인처럼 압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전쟁에서 높은 공훈을 세웠다 해도 반발이 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에 카트란이 300년 전 대륙제일인이었던 ‘그’의 진전을 모두 이은 인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과거 알테라 시 공방전에서 활약했던 공로가 추가로 더해졌다. 그 덕분에 어떻게든 납득하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어졌다.


“마찬가지로 전쟁에 큰 공훈을 세운 바르바젠에게 후작의 지위를 하사한다. 그 또한 새롭게 정비될 제국군을 이끌 다섯 군단장 중 한 사람으로 임명될 것이다.”


 바르바젠의 경우엔 카트란과 달리 기이할 정도로 잡음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카트란보다도 논란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인물이 바로 그였음에도.


 목소리를 내야 할 자들이 침묵하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반발해야 할 자들이 몸을 사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번 전쟁에 본인의 용병대를 이끌고 참전, 수많은 공훈을 세운 르우벤에게 명예 백작의 지위를 하사한다. 그와 그의 용병대에 면세의 혜택을 부여하며, 막대한 금전적인 보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르우벤에게도 보상이 돌아갔다.


 아무래도 용병의 신분인지라 공훈에 비해 주어진 보상이 조금 짰지만, 그 또한 그것에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명예 백작의 지위와 대륙 전역에 퍼진 명성.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고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차피 정말로 필요한 게 있으면 로엘에게 요청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레인이 가지고 있는 마인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로엘의 경우엔,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아무래도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 역할인지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아는 자들’ 사이에서의 영향력은 크게 늘었다.


 논공행상을 마친 뒤엔 대대적인 제도 개혁이 벌어졌다. 병합된 구 왕국령에 제국의 법령을 준수할 것을 선포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노예 상인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그들은 가진 재산(노예)을 몰수당하고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당연히 반발이 있었지만, 제국의 황제가 누군가. 그 냉혹하기로 소문난 ‘철혈의 황제’가 아니던가. 제국은 반동분자를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탄압해 그들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이종족 차별이 금지되었음은 물론이었다. 다만 백성들의 의식 개혁까지 단번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으므로, 종족 간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기까진 시간이 좀 걸릴 듯했다.


 그리고 로엘의 상단과 황실이 막대한 재화를 풀었다. 통합 전쟁의 와중에 각국의 귀족들에게서 몰수한 재산이 고스란히 ‘교육 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투자되었다.


 대륙 각지에 초, 중, 고등 아카데미가 설립되었다. 그로써 고급 전력이 대거 탄생하기 위한 토대가 갖춰졌다.


 그리고 제국의 수도가 이전되었다. 대륙의 중심, 구 보르단 왕국령으로. 아무래도 수도가 너무 북부에 치우쳐 있으면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으니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제국이 산재해 있는 온갖 일을 처리하는 동안, 어느새 계절은 겨울을 지나 봄, 여름, 가을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 맞추어, 대륙에 새로운 검가의 출범이 선포되었다. 바로 레인의 검가, 신(新) 카르테리온 가의 건설이 마무리된 것이다.



 * * *



 웅성웅성.


 카르테리온 가는 대륙 각지에서 몰려든 온갖 사람들로 인해 북적였다.


 단순히 구경, 관광이 목적인 이들도 있었고, 신흥 검가에 입문하거나 몸을 의탁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다. 거기에 축하 사절로 찾아온 귀족들까지.


 그런 카르테리온 가문의 드넓은 부지 중심에 위치한 가장 높은 건축물. 가주관(家主館). 그 꼭대기 층에서 창문 밖으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레인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 이날이 오고야 말았군.”


“왜 그러세요, 스승님. 좋은 날이잖아요?”


 뒤쪽에서 레이나가 쿡쿡 웃으며 물었다. 물론 정말로 레인이 한숨을 내쉰 이유를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손에 들린 그건?”


“오늘 입으셔야 할 예복이에요. 멋지지 않나요?”


“끔찍하군.”


“황제 폐하께서 직접 행차하시는 자리인데 이 정도 격식은 갖춰야죠.”


 말하는 레이나의 눈이 기대감으로 빛났다.


 레인은 원래도 잘생겼지만, 제대로 가꾸면 한층 더 굉장해진다. 그러나 정작 그 본인이 그 꾸미는 작업을 번거롭다며 기피하는 탓에 제대로 가꾼 모습을 보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그래, 며칠 정도는 참아야지.”


 레인이 체념한 듯 중얼거리자 레이나가 재차 쿡쿡 웃었다. 레인의 이런 모습은 평소엔 정말로 구경하기 힘들다.


 잠시 후, 레인은 말끔하게 정리된 머리칼을 질끈 묶어 정리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의복을 갖춰 입었다. 허리춤엔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된 예식용 칼까지 찼다.


 마찬가지로 볼륨감 넘치는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예식용 의복을 갖춰 입고 긴 생머리를 풀어서 늘어뜨린 레이나. 그녀가 레인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가는 길에 셀린과 루미아, 일리나, 그리고 두 전투팀과 합류했다. 세 제자 또한 각각 화사한 의복을 착용했고, 전투팀의 구성원들은 통일된 제복을 갖춰 입었다.


 그들이 가주관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단숨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천검제다!”


“허. 젊고 잘생긴 미청년이란 말은 들었지만…….”


“제자들 미모도 장난 아니다!”


“저쪽 천검대의 대주들도 엄청 예쁘다. 오늘 눈이 엄청 호강하네.”


 바글바글한 인파가 갈라지고 길이 생겨났다.


 별다른 통제도 필요치 않았다. 천검대가 내뿜는 기세만으로도 일반인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인파를 가르고 나아간 곳은, 가문의 부지 내에 설립된 특설 연무장.


 초인 이상의 실력자들이 겨룰 것까지 상정해 제작한 이 연무장의 크기는 굉장했기에, 무력대를 포함한 모든 인원이 그 위에 올라가 대열을 갖추고 설 수 있었다. 그러고도 자리가 남았다.


 오래지 않아,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제 폐하께서 행차하고 계시다! 길을 비켜라!”


 웅성웅성.


 방금 전 레인이 등장했던 때와는 또 다른 소음이 장내를 가득 메웠다.


 홍해처럼 갈라지는 인파 사이로, 젊고 잘생긴 백금발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근위병과 시종들을 주렁주렁 대동하고 있는 황제의 모습은 자못 위엄이 넘쳤다.


 황제, ‘카르테닉스 루엘 카이엔’은 성큼성큼 연무장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레인을 비롯한 검가의 인사들이 모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일어나도록.”


 황제의 지시가 떨어지고서야 다시 몸을 일으키는 레인. 그리고 제자들과 휘하 무력대.


“천검제, 레인은 앞으로 나와 예를 갖추라.”


“예.”


 근위대장, 타이론 드 엑스페리온의 말에 레인이 황제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부복했다. 황제가 타이론으로부터 화려한 보검 하나를 받아 들고, 그것을 검집째로 레인의 어깨 위에 툭 가져다 대었다.


 직후, 황실 마법사가 확성 마법을 발현했다.


“지난 전쟁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자 대륙제일검사인 레인을, 이 시간부로 ‘카르테리온’ 가문의 주인으로 선포한다. 더불어 이제는 일가의 주인인 그에게 ‘펠’이라는 중간성을 하사하도록 하겠다.”


 본래 검가의 가주에게는 중간성이 부여되지 않는다. 그들은 권력자이되 귀족은 아니니까. 일종의 상징적인 의미가 강한 관례였다.


 다만 레인은 ‘초대’ 가주였다. 그렇기에 황제로부터 직접 성을 하사받아야 했고, 중간성까지 부여받게 되었다.


 참고로 전직 카르테리온의 영주인 비앙카는 영지가 회수된 시점에서 ‘카르테리온’이라는 성을 잃었다.


“카르테리온 가문은 앞으로 제국을 떠받치는 기둥, ‘검가’가 될 것이다. 가주인 레인 펠 카르테리온은 아래로는 백성들을 위하고 위로는 국가에 충성하는 일가의 주인으로 거듭날 준비가 되었는가?”


“예. 폐하.”


 황제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크게 외쳤다.


“나, 제국의 지배자인 카르테닉스 루엘 카이엔의 이름으로 선언한다! 지금 이 순간, 카르테리온 가문은 정식으로 제국의 검가로 인정받았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장내가 떠나갈 듯 요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 가운데, 레인이 부복한 자세 그대로 황제가 하사하는 검을 양손으로 받아들었다.


 그런데 그때.


 황제가 툭, 하고 말했다. 레인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도록 조그마하게.


“축하한다.”


 레인은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저건’ 황제가 아닌 바르바젠이라는 것을.


 그가 부복한 자세 그대로 작게 대답했다.


“어.”


 황제가 큭큭 웃었다. 그러다 순식간에 진지하고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함성이 잦아들고, 레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제가 자리를 비켜주듯 신형을 돌려 연무장 아래로 내려갔다.


 레인이 내력이 가득 실린 목소리로 짧은 축사를 했다. 이 자리의 장인 만큼 행사의 마무리는 그가 도맡아야 했다.


“축사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후로 3일간 축제가 이어질 테니, 모쪼록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가 고개 숙여 인사하고 축사를 마무리하자, 재차 우렁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레인은 정식으로 검가의 가주가 되었다.


 그의 나이 스물셋에 내디딘 거보(巨步)였다.



 * * *



 이후 레인의 말마따나 거대한 축제가 벌어졌다.


 수많은 노점이 들어서고 극단이 방문했으며, 검가답게 무투대회도 벌어졌다. 물론 귀족들을 위한 연회나 만찬회도, 무도회도 따로 준비되었다.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축제를 즐겼다. 그 흥겨운 분위기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그런 사람 중에는, 로엘과 플로라도 포함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노점에서 사온 간식을 들고 무투대회를 관전하고 있었다.


“오. 저쪽의 참석자, 루미아 아냐?”


“그렇네요. 천살성이 무투대회 같은 걸 참석해도 되나?”


 말하기 무섭게 어디선가 우르르 나타난 무력대에 둘러싸여 질질 끌려가는 루미아. 플로라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그렇고, 진짜 규모 엄청나다. 여기도 그렇고 지나오면서 본 건축물들 전부 스케일이 장난 아니던데.”


“다 제 돈에서 비롯된 것들이죠.”


“큰 손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아무리 친구 사이라지만 이만한 규모의 지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주다니.”


 플로라가 살짝 질린 표정으로 로엘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로엘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곤 조금은 과장된 어조로 말했다.


“무슨 소리이신지? 대가는 확실히 받았습니다만.”


“음?”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돈 문제는 확실히 해야 하는 법이죠.”


 플로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가를 받았다고?


 로엘이 레인에게 해 준 지원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주위를 살짝 둘러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어놓았다? 대체 무슨 수로?


 그런 그녀의 의문을 풀어주듯, 로엘이 후후, 하고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여전히 과장스러운 어조로.


“기뻐하셔도 좋습니다.”


“……?”


“제가 레인에게서 받아낸 대가는, 바로 ‘성형공’을 타인에게 전수해도 좋을 권리이니 말이죠.”


“……!”


 플로라의 눈이 크게 뜨여지는 것을 보고, 로엘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만금을 줘도 사지 못할 권리를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뜯어낸 보람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