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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화. 바트레인의 여공작(3) (218/249)

 219화. 바트레인의 여공작(3)

 두두두두두두!

 이백여 명에 달하는 궁기병이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달려 나간다.

 이들의 정체는 연합군의 별동대. 전초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이 땅에 입성해 한껏 풀어져 있을 제국군의 옆구리를 급습하기 위해 파견된 특수병과였다.

 히히히히힝!

 마법 시약을 체내에 주입해 그 흉포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군마(軍馬). 그 군마들이 달려 나가는 속도는 가히 질풍.

“하아!”

“이럇!”

 안장 위에 탑승한 이들은 하나같이 숙련된 사수. 각각의 안장에 매인 화살통 속에 담긴 것은 마탑의 공방에서 제작된 마법 화살이다.

“…….”

 게다가 진형의 중앙에는 그들을 보조할 두 명의 바람의 정령사가. 진형의 최선두에는 한 사람의 초인이.

 초인의 경우엔 직접적인 활약을 펼치진 않을 예정이었다. 그는 여차할 때 별동대가 안전하게 후퇴할 수 있도록 배치된, 실력이 검증된 강자였다.

“이제 곧 제국군의 진영이다. 모두 준비하도록!”

“명심해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타격을 입히고 물러나야 한다! 깊숙이 들어가지 말고 외곽을 달리며 마법 화살을 쏴라! 화살을 모두 소모하고 나면 곧바로 퇴각한다!”

 지휘관들의 외침. 궁기병 전원이 긴장한 얼굴로 각자 등에 매인 활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제국군의 진영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올 무렵.

 갑자기 나타나 그들을 향해 마주 달려드는 거대한 실루엣이 있었다. 그 숫자만도 수십!

 쿠르르르르르르르.

“뭐, 뭐야!”

“퇴각! 퇴각하라! 기습 작전이 발각됐다! 기수를 돌려라!”

 최선두에서 달리고 있던 초인이 순식간에 상황을 이해하고 크게 소리쳤다.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난 사내였다.

 눈앞에 나타난 저 괴악한 것들의 정체는 모르겠다. 다만 기습이 들통났다는 것은 확실했고, 그 시점에서 별동대가 활약할 수 있는 무대는 사라져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두두두두두두두두!

 말들이 일제히 방향을 선회했다. 왔던 방향을 되돌아 달려 나가는 궁기병대. 최선두였던 초인 사내, ‘하르칸 르 델로그란’이 후미에 자리 잡았다.

 그런 그들을, 정체불명의 실루엣들이 맹렬하게 추격하기 시작했다.

“쯧.”

 하르칸이 혀를 차며 뒤를 돌아보았다. 저 거대한 곤충 같은 놈들이 속도는 왜 이렇게 빠른 것인지. 이대로라면 금세 따라잡힐 것 같았다.

 그가 손에 들린 검에 검강을 덧씌워 그것을 뒤쪽으로 크게 휘둘렀다. 길게 늘어진 검강이 날아들어 거대 곤충 무리에 직격했다.

 콰아아앙!

 둔중한 충돌음이 울렸다. 그리고, 거대 곤충들은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계속해서 별동대를 쫓았다.

“뭐 이런!”

 하르칸이 치밀어오르는 욕설을 삼켰다.

 외피가 어느 정도 박살 나긴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 정도는 큰 피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박살 난 외피 안쪽으로 보이는 놈의 동체. 놈은 애초에 생명체조차 아니었다.

“언데드였나!”

 거대 곤충의 정체는 ‘마충’.

 로엘이 부리는 특수 언데드 중 한 종류였다. 그 동체에 걸맞지 않은 압도적인 이동속도를 지닌 개체인지라 추격전에 가장 적합한 언데드이기도 했다.

 하르칸이 입술을 짓씹었다.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적의 전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직전에 이쪽의 기습을 알아채고 급하게 대비를 한 게 아니라, 사전에 함정을 파고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자신 혼자라면 이 상황을 피하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놈들의 이동속도가 빠르긴 하지만 이쪽은 초인. 떨쳐내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별동대. 이들의 이동속도로는 도저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백에 이르는 인원 전원을 들쳐메고 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 이들을 버리고 혼자라도 자리를 벗어나야 할까. 아니면 되는 데까지 버텨봐야 할까.

 하르칸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어느새 마충이 궁기병대를 완전히 따라잡았다.

 쿠르르르르!

 쿠르르르!

 그대로 들이받을 것만 같던 마충들은 두 갈래로 갈라져 기병대를 앞질렀다. 이내 최선두의 두 마충이 별동대의 진로를 가로막고 서로 충돌해 움직임을 멈췄다.

 쿠웅!

“억!”

“정지! 정지! 충돌한다!”

 히히히힝!

 별동대가 급히 말고삐를 잡아당기는 사이.

 쿵! 쿵! 쿵! 쿵! 쿵!

 연속해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뒤따르던 마충들이 연이어 앞쪽에서 멈춘 개체의 뒤꽁무니를 들이받고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이, 이런.”

 기병대의 전방에서부터 좌우, 그리고 끝내 뒤쪽까지 둥글게 자리 잡은 마충의 무리. 순식간에 포위망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퍼득, 퍼득.

 가장 먼저 움직임을 멈춘 마충의 등 위로 내려서는 본 와이번 하나. 그 뼈로 이루어진 와이번의 등 위에서, 가면을 쓴 사내 하나가 훌쩍 뛰어내렸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사내의 정체는 로엘이었다.

 * * *

 로엘은 별동대 인원 전부를 완전히 제압해서 제국군 진영으로 되돌아왔다.

 하르칸의 격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무리 없이 제압할 수 있었다. 지금의 로엘이라면 설사 상대가 검존일지라도 여유롭게 제압하는 게 가능했다. 물론 제반 사항이 받쳐줘야 하겠지만.

“깔끔하게 끝났네.”

 처음부터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제압할 생각이었다. 적측에서 정황을 파악하기 힘들도록.

 그런 의미에서, 하르칸이 홀로 탈주하려 들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비교적 쉽게 상황을 종결시킬 수 있었다.

 탈주했더라도 비행형 언데드를 부리는 로엘이 그를 놓쳤을 리는 없겠지만.

 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날이 밝았다.

“흠. 이자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지금의 제국군은 포로까지 관리할 여력이 없는데.”

 바르바젠이 물었다.

 제국군은 본토에서 한참 떨어진 이곳까지 원정을 나온 상태. 포로를 관리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이 정도 소규모 부대면 공간 마법으로 수용소로 보낼 수 있을 테니 괜찮아.”

“그렇군.”

 대규모 포로라면 모를까, 이들은 제국군의 신경을 긁기 위해 파견된 별동대다. 그런 것치곤 검성씩이나 되는 거물이 섞여 있긴 했지만, 아무튼.

 이만한 숫자라면 로카인과 엘리제 두 사람이 몇 번에 걸쳐 옮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앞으로 생포하게 될 모든 별동대는 이런 식으로 처리할 예정이었다.

“다만 검성의 경우엔 지속적으로 약물을 투여하라고 일러둬야겠지.”

“네가 개발했다는 그 약물 말인가.”

 검성쯤 되는 인물은 구속하고 싶다고 구속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다. 그러니 마침 기절한 김에 아예 전쟁이 끝날 때까지 깨어나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약물을 투여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은 내가 처리했지만, 앞으로는 너나 다른 녀석들이 대신해줘야 해. 난 할 일이 있으니까. 카트리나에게도 일러뒀다.”

“그러지. 적측에 정보가 전해지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하면 되는 거겠지?”

“어. 어차피 몇 번 반복되다 보면 그쪽도 눈치채지 않을 수가 없겠지만.”

“뽑아먹을 수 있는 이득은 최대한 뽑아먹어야지.”

 한쪽에서 병사들과 시시덕거리던 르우벤이 어느새 대화에 끼어들었다.

“난 이제 너랑 같이 움직이면 되는 거지?”

“그래.”

“흐흐흐흐흐.”

 르우벤이 음충맞은 웃음을 흘렸다. 로엘이 세운 ‘계획’이 어지간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로엘이 바르바젠을 돌아보며 물었다.

“진격은 언제 다시 시작할 생각이야?”

“내일.”

“이쪽 일은 잘 부탁할게.”

 바르바젠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날. 바르바젠의 말대로 제국군이 진격을 시작했다.

 * * *

 제국군이 진격을 시작하자, 연합군 측은 기다렸다는 듯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제국군을 피곤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툭하면 써먹는 청야전술. 별동대를 이용한 기습은 예사였다.

 한 번 크게 붙을 것처럼 모션을 취해 긴장감을 한껏 높여 놓고는 맥 빠지게 얌전히 군대를 물리기도 했다. 식사 시간에, 아닌 밤중에 위협하듯 북을 비롯한 타악기를 두드리기도 했다.

 게다가 막상 제대로 맞붙지는 않는 주제에 욕 잘하는 병사들을 선별해 확성 마법으로 도발해대기 일쑤였다. 알면서도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수법.

“실질적인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다. 신경 쓰지 말고 진군하도록.”

 그러나 제국군의 총사령관은 우직하게 군대를 진군시키기만 했다. 물론 바르바젠이 그렇게 하도록 지시했다.

 그의 말마따나 제국군이 입은 실질적인 피해는 미미했다. 특히 별동대의 기습로 인한 피해는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정신적인 피해는 계속해서 누적되고 있었지만.

 연합군 총사령관, 이나벨은 몇 번 별동대를 보내는가 싶더니 금세 공중 병단의 존재를 눈치챘다. 그러더니 별동대의 운영 방식을 변화시켰다.

 사실 제국군은 그녀가 별동대의 운영을 포기할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그녀는 오히려 별동대의 숫자를 크게 늘렸다. 대신 그 구성원을 얼마든지 소모해도 좋은 잡병들로 채워 넣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대책 없이 제국군을 들이받도록 지시했다.

 제국군은 가장 짜증 나는 타이밍만 골라 달려드는 자살특공대를 한숨을 내쉬며 제압했다. 생포한 지휘관 몇 사람을 취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특공대에게 마약의 한 종류를 투여하기까지 하는 모양이었다.

“불쾌하게 만드는군.”

 레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성정에 대해 사전에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런 종류의 일이 벌어질 것임을 사전에 알고 있었음에도 스트레스가 쌓여가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전장에 비겁하고 말고가, 불쾌하고 말고가 어디 있나. 우린 그냥 이대로 우직하게 밀어붙이면 된다. 실질적인 피해는 미미하니 문제는 없다.”

 반면 바르바젠은 태연한 얼굴이었다.

 그는 72마왕과의 전쟁마저 겪어본 인물. 이보다 더한 상황도 얼마든지 경험해봤다.

“그리고 우리도 마냥 당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물론 제국군이 그저 당해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연합군이 그런 방식으로 나오는데, 제국군이 가만히 있었을 턱이 있나.

 제국군이 택한 대응 방식은 쉽게 말해 ‘맞불 작전’이었다.

 적측에서 자꾸 신경을 긁는다?

 그대로 갚아주면 그만이었다. 이쪽에는 공중 병단이 있으니까. 공중 병단을 통한 기습엔 낮도 밤도, 식사 시간도 수면 시간도 없었다.

 아무래도 실질적인 피해는 연합군 측이 더 컸다. 제국군 측은 그래도 수단 방법을 가리는지라 정신적인 피해 쪽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졌지만.

 그렇게 수없이 신경전을 주고받는 나날이 이어지고.

 전장의 무대는 점점 서쪽으로 이동해 갔다. 굉장히 자연스럽게.

 다름 아닌 연합군 총사령관, 이나벨 펠 부르클린의 솜씨였다. 그녀는 예상보다 제국군의 대응이 기민한 것에 당황했지만, 그렇더라도 그 자신이 세운 전략을 어떻게든 실행해 보이는 저력을 발휘했다.

 어느새 제국군과 연합군은 구(舊) 이비츠 왕국령 북부의 평야 지대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한 번 크게 전투가 벌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제국군 병사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연합군은 이번에도 시늉만 하고 물러날 것인가, 아니면 이번엔 정말로 크게 충돌하게 될 것인가.

 사실 전쟁 중인 군대는 기본적으로 적과의 충돌을 상정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토론이 오간다는 것 자체가 이나벨이 그동안 얼마나 제국군을 약 올려 왔는지, 지치게 했는지를 드러내는 반증이었다.

 다만 각성자들은 확실히 알았다. 부르클린 공작이 이곳을 결전의 무대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뭐, 이제 할 만큼 했지.”

“시간은 충분히 끌었으니까.”

“슬슬 시작하려나.”

 세 각성자, 바르바젠과 레인, 그리고 카트란이 각자 한 마디씩 내뱉었다. 로엘과 르우벤은 자리에 없었다.

“이제 여유롭게 기다리자고.”

 레인이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고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쪽에서 반응이 올 때까지.”

 * * *

 그 시각.

 로엘은 노러츠 왕국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정확한 위치는 플뢰비르 자작령.

 그와 르우벤의 뒤쪽으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군세가 도열 해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놀라운 것은, 군대의 규모가 아닌 질이었다.

“슬슬 움직여야겠지.”

“흐하하하!”

 로엘이 도열해 있는 제국군을 쭉 둘러보며 중얼거리자, 르우벤이 사악함에 쾌활함이 가미된 웃음을 터뜨렸다.

“자아!”

 르우벤이 크게 소리쳤다.

“빈집털이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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