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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화. 그 뒤, 3년 동안(4) (209/249)
  •  210화. 그 뒤, 3년 동안(4)

     제국 전역을 들끓게 하는 화제가 있었다.

     초신성의 출현!

     제국 전역의 검성, 검존을 찾아다니며 그 모두를 무릎 꿇리는 젊은 청년의 등장!

     청년의 나이는 올해로 겨우 19세! 그러나 그 실력은 최소 초월자, 혹은 그 이상! 심지어 문무 겸비의 꽃미남!

     그 화제의 주인공은, 물론 레인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높이기 위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첫 제물로 삼은 이는, 제국의 국경을 수호하는 무장 중 하나였다. 높은 경지와 풍부한 경험, 그리고 지금까지 세워 온 혁혁한 전공으로 백성들 사이에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었다.

     레인은 황제의 칙서를 앞세워 군사 주둔지에 진입, 그를 도발해 결투를 벌였다. 화제가 되도록 구경꾼을 대거 끌어들였음은 물론이다.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레인의 승리였다.

     레인은 기세를 몰아 계속해서 비무를 행하고 다녔다. 계속해서 제국의 이름난 강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도발하고, 쓰러뜨렸다.

     당연한 수순으로 그의 악명이 높아졌다. 신흥 강자의 등장은 대중을 열광시켰지만, 그의 무례하고 건방진 태도는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악명은 고스란히 명성으로 화했다. 그가 무패행진을 계속해서 이어갔기 때문. 대중은 승자에게 관대했다.

     결국 제국의 초인들 사이에 레인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결국 제국민이었다. 그렇기에 황제를 등에 업고 있는 레인의 비무 요청을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요청에 응할 수밖에.

     초인의 영역에 이른 무인들과의 비무가 대충 마무리되자, 레인은 곧바로 초월자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초월자쯤 되는 이들은 다들 제국 내에서도 상당한 지위를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을 격파하고 돌아다니다 보니, 예견된 ‘견제’도 몇 번이나 경험하게 되었다.

     특히 남부 국경지대의 수호자인 ‘헬레느’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그녀가 있는 장소로 향하는 와중엔 상당한 규모의 습격까지 받았다.

     그녀는 남부 군벌 귀족의 수장으로 굉장한 영향력의 소유자였다. 심지어 그 아름다운 미모로 인해 추종자도 굉장히 많았다. 레인을 향한 습격은 그들 중 과격분자가 주도한 것이었다.

     게다가 거기서 끝나지도 않았다. 그녀의 가문을 찾아가 배정된 숙소에 머무는 동안, 주위에서 그의 컨디션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수작질을 벌였다.

     비무가 벌어지기 바로 전날엔 음식에 독이 들어있기까지 했다. 목숨에 지장이 갈 맹독은 아니었고,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신경독의 일종이었다.

     정작 그 사실을 헬레느 본인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비무를 대비해 주변 사람을 물리고 개인 연무장에 틀어박혀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었다던가.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은 승리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결국 레인은 제국의 다섯 검존 중 넷을 꺾었다. 군벌 귀족 헬레느부터 후작의 지위를 지닌 대귀족, 두 ‘검가’의 수장까지.

     다만 황제의 곁을 지키고 있는 제국 최강의 기사, ‘타이론 드 엑스페리온’에게 만큼은 비무를 요청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정치적 문제가 얽혀 있었기에.

     바르바젠이 꿍쳐 둔 숨겨진 초월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명성의 상승엔 도움이 되지 않으니 넘어갔고.

     제국 내 강자들을 모두 무릎 꿇릴 때 즈음엔 레인의 명성이 대륙 전역에 진동할 정도로 높아졌다. 아무리 제국 내의 일이라고 해도 그 정도로 파격적인 행보를 선보였는데 화제가 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부정적인 여론이 조금 퍼지긴 했다. 결국은 국내의 강자들만을 쓰러뜨렸을 뿐 아니냐고. 알고 보니 제국에서 짜고 치는 도박판을 구성한 것 아니냐고.

     그리고 그 여론에 정면으로 반박하듯, 레인이 연이어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국외의 초강자들을 찾아다니며 도전장을 내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전 대륙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관심사는 오직 한 가지. 가장 먼저 제국의 초신성에게 도전을 받게 될 인물은 누구인가?

     오래지 않아 그들의 시선은 대륙의 서남부로 몰리게 되었다.

     레인이 처음 도전장을 내민 대상이 바로 ‘토우런트 왕국’의 공작, ‘니에라 필 빌헬름’이었기에.

     * * *

    “오랜만입니다.”

    “그래. 이런 형태로 재회하게 된 것은 유감이다만.”

     레인의 인사에 공작이 쓴웃음으로 화답했다.

     이전에 그녀와 레인이 마주했을 때만 해도 레인은 왕국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제국민이 되어 나타난 것인지.

     주위에 온갖 관객이 가득했다. 무려 국왕을 비롯해 재상인 케이트 공작, 그리고 온갖 귀족과 기사, 무인들까지.

     빌헬름 공작의 제자들도 있었다. 이전에 레이나와 대련을 치렀던 스테반, 그리고 과거 레인이 스콜피온을 무너뜨리며 도움을 준 미르나의 눈빛이 특히 강렬했다.

    “도전을 거부하시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입니다.”

     레인이 핫, 하고 웃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빌헬름 공작에게 가장 먼저 도전장을 내민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과거에 그녀와 벌인 대련, 그 복수전을 위해서.

    “사실 거부할까 말까 고민이 많이 들었지.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없었거든.”

     불과 15세에 초인의 경지에 다다른 불세출의 천재. 그게 니에라 공작이 기억하고 있는 ‘레인’에 대한 정보였다. 지금 시점에는 대체 어느 정도로 강해졌을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럼에도 공작은 레인의 도전장을 받아들였다.

     물론 아예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쪽의 명성에 금이 간다. 그렇지만 그 정도는 패배했을 시의 명성 하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승리했을 때 얻게 될 이익은 패배 시의 리스크에 비해 월등히 높겠지만.

     그러나 공작이 도전을 받아들인 진짜 이유는 그런 이득, 손실의 계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레인이 얼마나 성장했느냐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호승심의 발로였을 뿐.

    “그럼.”

     공작이 검을 늘어뜨리며 숨을 골랐다. 눈에 정광이 어렸다.

    “시작하지.”

     말과 동시에 돌진해 오는 공작. 레인이 씩 하고 웃으며 그림자로부터 검을 뽑아 들었다.

     곧바로 마주 달려들어 충돌.

     콰앙!

     검과 검의 부딪침이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음이, 파장이 주위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지켜보던 어느 관중이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

     이날, 레인은 지난 대련에서의 패배를 설욕했다.

     * * *

     레인은 각 왕국을 순회하며 온갖 강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상대가 고위 귀족이든 검가의 가주든 개의치 않았다.

     아무래도 제국이 아닌 타국에서의 활동엔 장애물이 많았다. 그의 행보에 거부감을 느낀 이들은 수없이 많았으므로.

     하루가 멀다 하고 암살 위협을, 습격을 받는 나날. 레인은 그 모든 방해를 딛고 계속해서 비무행을 이어 나갔다.

     아무래도 모든 이들이 비무를 받아주지는 않았다. 국가 보안을 위해 전력을 내보이지 않겠다며 도전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었고,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비무 직전에 약조를 파기해 시간을 버리게 만드는 악질도 있었다.

     그럼에도 레인은 차곡차곡 명성을 쌓아갔고, 연승행진을 이어갔다. 어느새 사람들은 그를 ‘천검제(天劍帝)’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오히려 레인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자들도 간혹 있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카트넬 가의 전대 가주, 크레필만 카트넬이었다.

     그는 르우벤에게서 받은 아티펙트를 어느새 원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어 비약적으로 강해진 상태였다. 레인과의 비무에서, 그는 그 엄청난 실력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격돌. 두 사람의 비무는 굉장히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서로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접전이었다. 그 대결의 목격담이 퍼진 뒤, 세인들의 크레필만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높아졌을 정도였다.

     결국 승자는 스테미너에서 앞선 레인이었지만.

     레인이 비무행을 완전히 마무리 지은 것은 그가 스물한 살을 앞둔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더 이상 도전할 만한 상대도, 도전을 받아줄 만한 상대도 남지 않은 시점.

    “후.”

     그는 제국으로 복귀했다. 그리곤 마지막 비무 상대를 찾아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번만큼은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닌, 그 자신의 호승심을 해소하기 위한 도전이었다.

     도전을 받은 대상은 백발 백미의 노인이었다. 게다가 무인이 아닌 마법사였다.

     노인은, 가만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레인을 마주 응시하며 황당한 감정 가득 담긴 웃음을 흘렸다.

    “헛헛. 죽을 날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를 이겨 먹어서 뭘 하겠다고?”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인지라. 싫다면 거절하시면 됩니다.”

    “거절하기 힘들게 압박을 넣은 당사자가 할 말이 아니구나.”

     이날을 위해, 레인은 황제와 로엘의 영향력을 빌렸다. 물론 그 정도로 제국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인 노인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의 마음이 기울게 할 수는 있었다.

    “그래. 어디 그동안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보자꾸나.”

     결국 노인은 재차 허허로운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이전’과 같이 도시의 명물인 투기장으로 향했다.

     이미 로엘이 손을 써 둔 덕분에 투기장은 비어 있었다. 그 중앙에 선 두 사람이, 서로를 가만히 응시했다.

    “곧바로 시작하겠느냐?”

    “예.”

    “표정이 아주 자신만만하군. 이길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지?”

    “말하지 않았습니까.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고.”

    “기대하도록 하마. 이전엔 보여주지 못한 비기가 많다.”

     레인이 혀를 찼다. 하여간에 괴물 같은 늙은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렇다고 해도 충만한 자신감은 여전했지만.

    “흡!”

    “헛헛.”

     비무가 시작되었다. 레인이 신형을 날림과 동시에, 그의 주위 사방에 공간의 칼날이 출현했다. 레인은 달려드는 기세를 조금도 줄이지 않고 그대로 모든 마법을 검격으로 받아쳤다.

     콰콰콰콰콱!

     그리고 노인, 로카인 파르테인은 초장부터 비기를 꺼내 들었다.

     이전에 레인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던, 고대의 마법.

     마법을 발현할 틈을 줄 생각은 없다. 레인이 그림자로부터 공간검을 꺼내 들고, 그것을 거칠게 휘둘러 두껍게 형성된 공간역장을 두드렸다.

     쿠콰아아아아아아앙!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는 관객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비무였으므로.

     이날 있었던 비무의 결과는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 * *

     각성자들이 각자의 일을 마무리할 기간으로 잡은 3년이라는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바르바젠은 제국을 완전히 안정화시켰다.

     카트란은 이전보다 훨씬 높은 역량을 갖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르우벤은 정식으로 용병단을 출범시켰다. 단원의 숫자만 400에 이르는, 대규모 용병단을.

     로엘은 국외에서의 활동을 마무리 지었다. 언데드 공중 병단을 완성시켰고, 제국의 각 군사요충지에 전투팀과 초대형 골렘을 보급했다.

     레인은 휘하 무력대를 완벽하게 정비했다. 대원 모두가 초일류의 경지에 이른, 대주 ‘리나’를 주축으로 한 인간의 무력대도. 대원 모두가 주술 전사면서 남만의 무공을 익힌, 대주 ‘로난’을 주축으로 한 수인의 무력대도.

     그 외에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는데, 그중 큼지막한 것들만 간추려 설명하자면 이러했다.

     먼저, 레인의 제자이자 연인인 레이나의 경지가 올랐다. 무려 초인의 경지에 발을 들였다.

     마찬가지로 레인의 제자인 백랑족 소녀 루미아 또한 초일류의 대열에 들어섰다. 셀린 또한 오래지 않아 초인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 여겨졌다.

     그리고 르우벤은 전생의 은인 ‘세이라’의 언니 되는 인물, ‘이비안’을 용병단의 단원으로 받아들였다.

     세이라의 경우엔 그녀를 찾아온 ‘예정된’ 기연, ‘하늘고래’에 올라 그 모습을 감췄다. 달리 ‘천공성’이라고도 불리는 이 고래는, 대륙의 4대 신비 중 하나이기도 하다는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변수’가 생겼다. 왕국 ‘바트레인’이 갑작스럽게 주변 국가를 침략해 들어간 것이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시점에, 초라하고 볼품없는 군세를 이끌고.

     바트레인은 도저히 침략전쟁을 수행할 여력이 없는 국가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얼마 되지 않는 군대를 결집시켰다. 그 군대를 진군시켰다.

     로엘과 바르바젠은 그 일에 ‘그녀’가 관련되어있음을 인지, 전쟁 일자를 앞당기기로 했다.

    “자, 이제. 시작할 때가 됐지.”

    “드디어 시작인가.”

    “결국 이날이 왔구나.”

    “걱정되냐?”

    “그럴 리가.”

    “벌써부터 피곤함이 몰려온다.”

     각성자들이 저마다 한두 마디씩 내뱉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는 준비한 것들을 세상에 내보여야 할 때였다.

     이듬해 봄. 제국은, 자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다섯 왕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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