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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화. 전사의 시험(1) (203/249)

 204화. 전사의 시험(1)

 엘리제 파르테인은 대밀림을 찾아와 엄청난 분량의 물자를 쏟아놓고 되돌아갔다.

 가히 동산에 비견될 만큼의 물자가 쌓였다. 그 광경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수인족들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저, 정말로 가져왔어. 이만한 분량의 물자를!”

“대, 대체 저게 다 얼마야?! 그건 그렇고 저 분량을 이틀 만에 이곳까지 들여놓는다는 게 말이 돼?!”

 수인족의 영토, 대밀림은 폐쇄적이다. 딱히 수인족들이 그것을 원한 건 아니고, 인간의 아인종 차별이 그러한 결과를 낳았다.

 그나마 교류가 잦은 제국과는 그 거리가 굉장히 멀었다. 애초에 제국이 대륙 최강국이 아니었다면 교류 자체가 불가능했을 터였다. 주변 왕국들이 수인족이 제국으로 향할 길을 열어주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기에 수인족의 문명은 인간의 그것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다.

 엘프처럼 세계수를 베이스로 한 독자적인 문명을 구축한 것도 아니다. 드워프처럼 높은 기술력을 활용해 오히려 인간의 그것을 능가한 문명을 이룩한 것도 아니다. 그들의 문명 수준은 딱 이웃인 야만 민족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나마 보유하고 있는 특수한 힘, ‘주술’은 문명의 발전과는 그다지 가깝지 않은 종류의 것이다. 자연의 힘을 빌어다 쓰는 개념에 가까운 힘이기에.

 주술은 어떤 의미에선 굉장히 한정적인 힘이었다. 그저 전사의 힘을 강화하고, 압도적인 식생을 자랑하는 대밀림에 ‘진’을 형성해 외적을 환혹시키는. 딱 그 정도의 힘.

 그렇다 보니 수인족에게 이만한 물품을 접할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지금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신천지나 마찬가지였다.

“질 좋은 무구가 저렇게나.”

“꿀꺽. 저건 대체 무슨 음식이지? 달콤한 향기가 나는데.”

 어느 수인 사내는 쓸 만한 무구에 눈독을 들였다. 그 옆의 수인 여성은 예민한 후각을 자극하는 기호식품의 냄새에 코를 벌름거렸다.

 그야말로 온갖 수인족들이 주위를 배회하며 제국산 물자에 관심을 토해냈다. 주변을 통제하는 전사들이 진땀을 빼야 할 정도였다.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며, 대족장이 레인에게 말했다.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준다는 게 무슨 뜻인가 했는데, 정말로 말 그대로의 의미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군.”

 그는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이자, 대체 정체가 뭐지?’

 생각한 것보다 눈앞의 사내가 거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만한 물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마련한 것 하며, 공간의 현자와 친분이 있는 것 하며.

“그런데 괜찮겠나? 미리 저렇게 물자를 가져다 둬도.”

“어차피 다시 가져갈 때도 공간 마법을 활용하면 그만이니, 그다지.”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너희들이 약조를 무시하고 물자만 꿀꺽해버릴 가능성?”

 레인은 킬킬 웃었다. 순간적으로 대족장의 팔뚝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한 웃음이었다.

“한번 시험해 보는 게 어때.”

“…….”

 저건 허세가 아니다.

 대족장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눈앞의 이 제국인은, 단순히 수인족 전사의 자존심을 믿고 저 물건들을 가져다 놓은 게 아니었다.

 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 애초에 그는 수인족들이 저 물건을 강탈해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눈빛에서 오히려 그런 상황이 벌어지길 내심 기대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것은, 이쪽의 착각일까.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쪽에서 먼저 신뢰를 저버리는 태도를 보였다간 그 뒤에 감당하기 힘든 일이 몰아닥치게 될 것임은 확실히 알겠다.

‘경비 인원을 늘려야겠군.’

 대족장이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전사의 시험을 위한 준비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최대한 빠르게 준비해 줬으면 좋겠군.”

“왜 그렇게 서두르지?”

“별건 아니고. 여기 밥이 더럽게 맛없어서 빨리 제국으로 돌아가고 싶거든.”

 대밀림에서 제공되는 식사는 레인의 입맛에 영 맞질 않았다. 로엘이 제공하는 온갖 편의에 길들여진 현시점의 레인은, 그야말로 입맛이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

 대족장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단 말인가. 정말이지 한결같은 마이페이스의 소유자였다.

“후우.”

 뒤쪽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로난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 * *

 전사의 시험.

 그것은 대밀림 전체에 도전장을 내민 인물만이 치를 수 있는, 전사로서 치를 수 있는 최고의 시험이다. 대족장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시험이기도 했다.

 대밀림 역사상 그 모든 시험을 격파한 전사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바로 대영웅과 함께 게르반을 무찌른 전설적인 영웅, ‘수인왕’.

 현 대족장의 경우엔 모든 시험을 격파하진 못했으나, 그래도 대다수 부족장의 지지를 얻어낼 만큼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였다. 지금의 대족장이 수인족들로부터 받고 있는 경외와 존경은 그 시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둥! 둥! 둥! 둥!

 수인족 사회의 전통 의상을 갖춰 입은 사내가 거대한 북을 두드렸다. 주술사들이 북소리에 맞춰 특이한 허밍의 전통 민요를 불렀다.

 점차 고조되는 분위기. 대족장이 크게 원을 그리며 자리 잡은 각 부족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했다. 각 부족의 전사들이 우렁찬 함성으로 그에 화답했다.

 그 원의 중심에 선 레인이, 작게 하품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뭐가 이리 길어.’

 그에게 있어서만큼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절차였다.

“우선, 각 부족에서 도전자를 받도록 하겠다!”

“내가 먼저 나서겠다!”

 대족장의 외침에 곧바로 크게 도약해 레인의 앞으로 내려서는 한 전사. 그는 거대한 해머를 짊어진 웅인(熊人)족 전사로서, 대밀림을 전역을 통틀어 손에 꼽힐 정도의 강자였다.

 사실 즉흥적인 참가는 아니었다. 이미 사전에 논의된 대로 무대 위에 오른 것일 뿐. 말하자면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일종의 쇼맨십이었다.

“긴말은 필요치 않겠지. 바로 결투를 시작하라!”

 대족장의 외침. 직후, 결투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둥둥둥둥둥둥!

“후웁!”

 웅인족 사내의 전신에서 미약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이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 표면을 기막이 뒤덮기 시작했다.

‘초인의 영역에 이른 주술 전사는 오라를 전달할 매개체로 갑주 대신 주술 문신을 활용한다더니, 그게 저런 뜻이었군.’

 레인이 한가한 감상을 떠올리며 가만히 팔을 늘어뜨렸다. 언뜻 빈틈투성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자세였다.

“무기를 들지 않는 건가?”

“무기는 뭐, 너 하는 것 봐서.”

“듣던 대로 오만하구나!”

 웅인족 사내가 광포한 포효를 내지르며 레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10분 후, 그의 신형이 크게 날아가 전사들이 이룬 원진 한구석에 거칠게 처박혔다.

 콰드드득! 콰르르르르!

“…….”

 너무나도 압도적인 격차. 그로부터 비롯된, 대결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일방적인 패배. 수인족들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장내에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레인이 툭, 하고 내뱉었다.

“다음.”

 * * *

“이번엔 내가 나서겠다!”

“다음은 나다!”

“내 창도 한번 받아봐라!”

 계속해서 도전자가 등장했다.

 두 번째로 나선 것은 호인족의 전사. 그녀는 권각술의 달인으로, 역시 초인의 영역에 이른 실력자였다. 안타깝게도 5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세 번째는 견인(犬人)족의 검사. 뛰어난 전투 센스의 소유자였으나 그 역시 채 7분을 버티지 못했다.

 네 번째는 묘인족 창술사. 정교하기 짝이 없는 기술의 소유자였으나, 그 또한 10분을 버티지 못했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도. 레인은 모든 도전자의 안면에 차례차례 주먹을 꽂아 넣었다. 무기 하나 없이 오로지 권각술만으로 그 모든 초인들을 제압한 것이다.

 시험의 대상자에겐 총 세 번의 ‘휴식을 요청할 권리’가 주어지지만, 레인은 단 한 번의 휴식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압도적인 무위로 적을 찍어 누르고 바로 다음 도전자를 부르는 것을 반복했을 뿐.

 와아아아아아!

 처음엔 싸한 분위기였던 주위 수인 전사들은, 어느새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강자를 숭상하는 수인족의 전사들. 그들은 설사 그 대상이 적일지라도 비겁하지만 않다면, 그 대상에게 승자의 자격이 충분하다면 거리낌 없이 찬사를 던지는 이들이었다.

 정작 환호를 받는 레인 본인은 그 분위기를 잘 이해할 수 없었던 탓에 미묘한 표정이었다.

“시이잇. 다음은 내 차례로군.”

 여덟 번째 도전자는 ‘사인(蛇人)족’의 전사였다. 그들 뱀의 일족은 수인족 사이에서도 굉장히 희귀한 축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달리 리자드맨(Lizard man)이라고 불리는 일족이기도 했는데, 모든 부족을 통틀어 유일하게 맹독을 활용해 전투에 임하는 부족으로 유명했다.

 그는 바로 무대 중앙으로 나서지 않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족이 준비해온 온갖 맹독을 사용해 가진 장비를 정비하며, 레인을 힐끗 돌아보았다.

 씨익.

 그가 파충류의 그것과 같은 누르스름한 눈동자를 휘며 불길하게 웃었다. 인간의 그것이라 여기기 힘든 긴 혀를 날름거렸다.

 그가 말했다.

“네 실력은 잘 보았다. 아무리 봐도 육체를 억지로 젊게 되돌린 흔적이 없거늘, 믿을 수가 없는 경지로군.”

“…….”

“키힛. 그렇지만 나는 앞서의 녀석들과는 다를 것이다. 지켜보니 알겠더군. 너는 몸에 기막을 두를 수 없는 모양이지?”

“…….”

“그렇다면 네게 승산은 없다. 내 전투법은 너와 상성적으로 극악일 테니까.”

 신체에 기막을 두를 수 있는 검성의 방어조차 뚫고 상대에게 독을 주입하는 게 가능한 실력자가 바로 그였다.

 기막조차 두를 수 없는 눈앞의 사내가 자신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는 그 가능성을 굉장히 낮게 보았다.

 설사 어찌어찌 자신에게서 승리를 따낸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뒤의 두 사람에게 패배하고 말 터였다. 자신과의 결투는 그에게 반드시 후유증을 남길 테니까.

 그런데, 레인이 눈을 껌벅이더니 무대에서 내려서 사인족 사내가 있는 방향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뭐, 뭐냐.”

 사인족 사내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레인을 응시했다. 레인은 그 시선엔 아랑곳하지 않고 거치대에 놓인 온갖 독물들을 둘러보았다.

“이게 그나마 좀 쓸 만해 보이는군.”

“?!”

 그가 불쑥 손을 내미는가 싶더니 한쪽에 놓인 독단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그리곤 그것을 단숨에 입속으로 털어 넣어 으적으적 씹었다.

 그것만으론 성에 차질 않았는지, 옆에 놓인 자그마한 항아리를 집어 들어 그 안에 담긴 독수를 벌컥벌컥 들이키기까지 했다. 사인족 사내가 황망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탱그랑.

 레인이 내용물을 깔끔하게 비운 항아리를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쯧. 생각보단 밋밋하군. 오랜만에 몸보신 좀 하나 했더니.”

“…….”

 레인은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다시 무대로 되돌아갔다. 사인족 사내가 그런 레인과 한참 정비 중이던 자신의 무기들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폭포수처럼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 * *

 여덟 번째도, 아홉 번째도, 열 번째도.

 레인은 모든 도전자를 격파했다. 한 번의 휴식도 없이. 조금의 고전도 없이.

 전사의 시험에서 개인 도전자를 받는 횟수는 총 열 번. 그렇게, 레인은 첫 번째 시험을 완벽하게 통과했다.

“…….”

 아무래도 충격이 가볍지 않았는지 대족장의 얼굴이 한껏 굳어졌다.

 옆에서 부관이 무언인가를 속삭인 후에야 정신을 차린 그가 크게 소리쳤다.

“이것으로 첫 시험은 종료되었다! 대상자가 훌륭하게 시험을 통과했으므로, 다음 시험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이틀간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다시 오도록!”

“잠깐.”

 그런데 레인이 갑자기 대족장의 말을 자르고 나섰다.

“무슨 할 말이 있나?”

“휴식 시간은 필요 없다. 지금 바로 다음 시험으로 넘어가지.”

“아니. 그럴 순 없다. 이후에 이견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라도 절차에 맞춰서 진행하도록 하지.”

“혹시 내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휴식을 못 취해서라느니 하는 핑계는 대지 않을 테니까 그냥 넘기지. 이틀이나 더 기다릴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뭐라 할 말이 없다. 당사자가 원한다는데 어쩌겠는가.

 결국, 대족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가 전사들을 쭉 둘러보며 크게 소리쳤다.

“다음 시험은, 일 대 다 대련이다! 대상자는 각 부족의 고유한 주술 합격진을 일정 시간 버텨내거나, 혹은 격파해야 한다!”

 오오오오오오!

 쿵! 쿵! 쿵! 쿵! 쿵! 쿵!

 전사들이 발을 구르고 함성을 내질렀다. 곧바로 다음 시험이 진행된다는 사실에 분위기가 한껏 들뜨고 고조되었다.

“어느 부족이 가장 먼저 나서 대상자를 시험하겠는가!”

“첫 번째로는 우리 부족이 나서겠다!”

 대족장의 외침에 호응해 가장 먼저 나선 부족은 바로 묘인족, 그중에서도 ‘흑묘(黑猫)’의 일족이었다.

 두 번째 시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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