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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화. 전사의 축제(1) (201/249)

 202화. 전사의 축제(1)

[실화냐.]

“?”

[실화냐고.]

“뭔 소리야.”

[레인을 대밀림에 제국의 사자로 보냈다는 거, 실화냐고.]

 귀걸이를 통해 전해져 오는 르우벤의 황당한 감정 가득 담긴 목소리.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로엘이 저도 모르게 큭큭 웃고 말았다.

[야, 웃을 일이 아니야. 난 진지하다.]

“괜찮을 거야, 아마.”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그거? 상대는 ‘그’ 레인이다.]

“그래서 대족장의 손녀와 함께 움직이게 했잖아. 그리고 그 성격이 오히려 도움이 될지도 몰라.”

[…….]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걱정하는 건지는 알겠는데, 나도 나름 여러모로 정보를 모으고 엠페러 아이즈의 수장에게 조언도 듣고 해가며 내린 결정이야. 너무 심각하게 여기진 마.”

[일단 묻겠는데,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조치는 취해 뒀어?]

“그건 당연하고.”

[네가 그럼 그렇지.]

 기본적으로 이런 일에 있어 레인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는 로엘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쪽 일은 어때?”

[잘 될 것 같아. 애초에 엘프의 왕족들은 ‘세계수’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미래를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까. 당근과 채찍을 좀 적당히 조절하면 못 이기는 척 넘어오겠지.]

“귀찮겠지만 잘 좀 부탁해. 그쪽 일은 네게 맡길 수밖에 없으니까.”

[요정 여왕의 유산을 협상 재료로 넘겨줘야 하는 건 조금 아깝지만, 그 정도면 그래도 싼값이라고 할 수 있겠지.]

“너무 아쉬워하진 마. 제국 차원에서 확실하게 보상해 줄 테니.”

[그거 그렇게 네 마음대로 결정해도 되냐.]

“훗. 이래 봐도 제국의 숨은 실세 중 하나이시다.”

[너나 바르바젠을 보다 보면 권력이 무상하다는 옛 현자의 격언이 심정적으로 와 닿는단 말이지.]

“하하.”

[그러고 보니 넌 어디서 뭐 하고 있어?]

 로엘은 주위를 쭉 돌아보았다. 그리곤 입가에 빙긋, 웃음을 그리며 대답했다.

“나는 지금 카트란과 함께 움직이고 있어.”

 사방을 포위한 채 이쪽에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는, 중무장한 아인종의 무리. 과연 그 종족 특성에 부합하는 모습이라고 할지, 착용하고 있는 장비의 수준이 인간의 군대와 비교를 불허했다.

“마침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한 참이고.”

 그렇다. 현재 그와 카트란이 위치해 있는 장소는 ‘드워프’들의 영역. 대륙 최대의 철광석 생산지이자, 험지로 이름 높은 땅.

 바로 ‘대협곡’이었다.

 * * *

“선배가 와이번까지 다룰 수 있는 줄은 몰랐네요.”

 레인과 로난. 두 사람이 대밀림에 도착했다. 함께 움직여준 로난 덕분에 주술진으로 가려져 있던 수인족의 영토, 그중에서도 대족장의 영역인 ‘루바둠’에 곧바로 진입할 수 있었다.

“누구냐!”

“엇! 로난 아가씨!?”

“어째서 아가씨께서 인간을 수인족의 영토에?”

 레인과 로난이 와이번에서 내려서자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는 수인들.

 현재 대밀림은 축제가 한창이었다. 그런 탓에 루바둠은 각 부족에서 몰려든 온갖 전사들로 인해 북적이고 있는 실정이었다.

‘문신 투성이로군.’

 주위 수인족 모두가 전신에 주술 문신을 새긴 주술 전사들이었다. 이국적인 풍경에 특색 있는 사람들. 나름 특별한 볼거리라고 할 수 있으리라.

 로난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 자는 제국의 사자다. 대족장님을 뵙기 위해 찾아온 자이니 길을 열어라.”

 수인족들 사이에 웅성이는 소음이 퍼져 나갔다. 그들 중 누군가가 손을 들고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우선 기별을 넣고 오겠습니다.”

“그래.”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인이 그런 그녀의 모습을 멀뚱하게 지켜보았다.

 그런 와중, 한 수인이 레인을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이봐, 인간!”

“……?”

 레인이 그 수인을 돌아보았다. 그는 멧돼지 수인이었는데, 온몸에 근육이 실하게 박힌 것이 굉장히 강인해 보였다.

“한 가지만 묻자!”

“뭐.”

“네가 이곳 대밀림을 찾은 목적은 무엇이냐! 혹시 대밀림에 해가 되는 일을 하러 온 것은 아니겠지?”

“해가 되진 않을 거다.”

 레인은 짧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수인족 사내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사실이길 빌지.”

 레인이 사내를 묘한 눈길로 응시하며 생각했다.

‘확실히 그렇게까지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군.’

 사전에 로엘이 말해준 내용이 들어맞았다.

 기본적으로 아인종은 인간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인간이 아인종을 차별하고 노예로 부리는데, 그들이 인간에게 호의적일 턱이 있나.

 그렇긴 하지만, 그 명제는 어디까지나 일반론적인 이야기일 뿐. 절대적이지도 않고, 종족에 따른 정도의 차이도 있었다.

 우선, 수인족은 다른 아인종에 비해 인간에 의한 피해가 적었다. 정확히는 노예상에 의한 피해가.

 엘프는 늙지 않고 드워프는 손재주가 뛰어나며 용인족은 수명이 길다. 반면 수인족은 타 종족에 비해 별다른 특이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 대다수는 그저 강자를 숭상하는 근육뇌일 뿐. 노예상의 입장에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인간 노예를 두고 힘들게 ‘사냥’까지 해가며 구할 정도의 가치가 없는 이들이었다.

 간혹 동물 귀 달린 사람을 좋아하는 특이 취향을 가진, 혹은 괴악한 수집벽을 가진 귀족들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들의 숫자는 굉장히 적었다. 실상 수요층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레인의 제자인 루미아의 경우엔 그나마 수인족 사회에서도 굉장히 희소한 종족이라 ‘가치’가 있었다. 돌려 말하면, 그 정도 희소성조차 없으면 높은 가치가 부여되지 않는 게 바로 수인족이라는 종족이었다.

 게다가 수인족은 모든 이종족 중 제국과 가장 활발한 교류를 펼치고 있는 종족이었다. 당장 라일리아가 엠페러 아이즈의 수장이고 로난이 펜타트리움 아카데미로 유학 온 것만 놓고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인족들도 일단 자신을 차별하는 왕국의 인간들은 싫어한다. 그러나 상대가 제국의 인간이라면 적어도 무턱대고 적개심을 표출하진 않는다.

 거기에 바로 이웃이라 할 수 있는 ‘야만 민족’과 문화를 교류하며 그들과 같은 생활양식을 공유한다는 특수한 배경도 있었다. 그들이 ‘모든 인간’을 배척하지 않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레인은 ‘제국의 사자’라는 명목으로 수인족들의 영토를 방문했다. 그것도 수인족 대족장의 손녀인 로난과 함께.

 그렇기에 경계는 받을지언정 적대 받지는 않았다. 로엘이 그렇게나 걱정하면서도 결국 레인을 대밀림에 보낼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것을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대족장께서 알현을 허락하셨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이내 방금 전 모습을 감췄던 수인족이 다시 나타나 레인과 로난을 이끌었다.

 너무 쉽게 허락이 떨어진 것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대족장’은 가장 강한 전사만이 쟁취할 수 있는 자리. 이와 같은 태도는 부주의함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단 자신감의 발로에 가까웠다.

“난리도 아니군.”

“축제가 한창이니까요.”

 이동하는 와중, 레인은 주위 곳곳에 세워진 단상 위에 올라 결투를 펼치고 있는 수인족들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하압!”

“크라아아! 옆구리가 비었다!”

 그들 모두가 축제의 참가자들이었다.

‘전사의 축제’. 즉 최고의 전사를 가려내기 위한 대회의 참가자들.

레인이 가늘게 뜬 눈으로 주위를 쭉 훑었다. 마치 품평하듯이.

일행은 이내 모든 단상을 내려다보는 것이 가능한 높은 제단 위에 앉아 있는 한 사내의 앞에 다다랐다. 곧바로 로난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대족장님을 뵙습니다!”

 대족장이라고 불린 사내는 로난과 같은 전형적인 백호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각진 얼굴에선 고집스러움이 엿보였고, 얼굴을 크게 가로지르는 흉터에서 야성미가 느껴졌다.

 그는 제단 위 호피에 뒤덮인 태사의에 비스듬하게 걸터앉아 한 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있었다. 그가 살짝 나른한 눈빛으로 제단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것을, 레인이 마찬가지로 가만히 올려다보는 것으로 맞받았다.

“…….”

 정적의 시간이 흘렀다.

 일단 아무리 제국의 인물이라도 ‘사신’인 만큼 수인족의 지배자에게 예를 취할 것이라 여긴 주위 사람들의 생각은 보기 좋게 틀렸다. 로난마저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당황한 얼굴로 레인의 얼굴을 힐끗힐끗 올려다보았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레인이 대족장을 빤히 응시하며 한 생각은,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대충 전대 카트넬 가주와 호각, 혹은 그 이상이라고 보면 되려나.’

 본신의 경지가 높다는 것은 어렵잖게 알 수 있었다.

 젊은 외견, 그리고 풍기는 기세만 놓고 봐도 틀림없이 초월자였다. 그것도 수위권에 들 정도의.

 거기에 주술 문신의 힘이 더해진다면 전대 카트넬 가주를 압도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듯했다. 크레필만이 르우벤을 통해 획득한 아티펙트를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게 되면 또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대족장이었다. 그는 레인을 향해 상체를 약간 숙이고, 팔꿈치를 무릎 위에 올린 채 깍지낀 손으로 살짝 턱을 괴며 말했다.

“제국의 사자라고 들었는데. 내게 전할 말이 있어서 여기까지 찾아온 것 아닌가? 왜 그렇게 멀뚱히 서 있기만 하고 있지?”

“전할 말? 있었지. 방금까지는.”

 레인이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목소리에 내력이 실려 있었기에, 주위 사람들 모두가 그의 발언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있었다? 왜 거기서 과거형 발언이 나오는 건지 궁금하군.”

 대족장이 살짝 눈을 가늘게 만들며 물었다. 예를 취하지 않은 것은 그렇다 치고, 다짜고짜 반말이라니. 아무리 제국의 사신이라지만 이건 태도가 좀 심하다.

“딱히 대단한 이유는 아니고.”

 레인이 주위를 한차례 죽 둘러보았다. 어느새 대부분의 전사들이 잠시 결투를 중단한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인은 다시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마치 김이 샌다는 듯 흥, 하고 숨을 불어냈다.

“원래는 그쪽에 국가 차원의 동맹을 제안하려고 했었지. 동맹의 목적, 그로 인한 상호 간의 이득, 세부사항 같은 것들은 시간을 두고 설명, 논의할 생각이었고.”

“그런가.”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

“분명 난 제국 황실로부터 수인족에게 동맹을 제의하라는 명을 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그것을 포기해도 좋을 권한도 함께 받았지.”

“그게 무슨.”

“솔직히 이곳을 찾아오면서 기대가 컸다. 수인족의 주술 전사들이 그렇게 강인하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으니까.”

 레인은 잠시 말을 끊고 주위를 다시 한차례 죽 둘러보았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곳까지 오는 길에 직접 살펴보니, 상상 이상으로…….”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그가 비웃듯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수준 이하더군.”

“뭣!”

“이 건방진 놈! 방금 그 말은 대체 무슨 의미냐!”

 곧바로 주위에서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호전적인 수인족 전사들의 자존심을 제대로 긁는 발언이었으니 반발이 튀어나오는 것이 당연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국 측에서 이렇게 굽히고 들어가면서까지 동맹을 제안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군. 너희에게 그렇게까지 해야 할 ‘가치’가, 적어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아.”

 레인은 뚜둑 소리 나게 목을 좌우로 꺾으며 선언하듯 말했다.

“그러니 내게 증명해봐라. 너희 수인족의 가치를. 이야기는 그다음이다.”

“…….”

 결국 레인의 모습을 옆에서 힐끔거리며 지켜보던 로난의 턱이 툭, 하고 떨어지고 말았다.

 레인이 대밀림으로 향하기 전, 로엘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인족과 접촉해 그들과 협상을 벌이게 되면, 철저히 갑(甲)의 입장에 서도록 해. 적어도 수인족과의 관계 형성에 있어서만큼은 그 방식이 효과적인 면모를 보일 거다.]

 로엘의 그 지시를, 레인은 정말로 충실히 이행해내고 있었다.

 그 정도가 조금, 아니 많이 지나치다는 게 문제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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