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결착(3)
각성자를 포함한 일행이 인원을 나눠 습격한 프레퍼의 여섯 거점. 그 모든 거점에 피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중 엘리제 파르테인이 향한 거점의 경우.
“크악!”
“이, 이건 말도 안 돼!”
우우웅! 콰각! 콰가가가가각!
이곳 거점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파괴당하고 있었다. 그것도 엘리제 파르테인 단 한 사람에 의해서.
공간 마법을 통해 그녀와 함께 이동한 전투팀원들은 그녀의 의사에 따라 달아나는 이가 없도록 주위를 포위하고 있을 뿐이었다. 거점에는 엘리제 혼자서 진입했다.
공간문을 열어 상대의 공격을 되돌려보내고. 대규모 공간 절삭 마법으로 한데 뭉쳐 대항하려던 조직원들을 단숨에 쓸어버리고. 공간의 균열을 일으켜 거점 이곳저곳을 폭파시키는 등.
그녀는 그 압도적인 능력을 조금의 제한도 없이 마음껏 활용해 프레퍼의 조직원들을 몰아쳤다. 주위에 존재하는 이들 중에 아군은 아무도 없다. 그 모두가 적. 거리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딱히 우리는 올 필요도 없었네.”
“진짜 말도 안 되게 강하군. 과연 대현자의 모든 진전을 물려받은 인물이라는 건가.”
“그걸 감안해도 저 나이에 저 경지인 건 말이 안 되지. 이건 그냥 저분이 괴물인 거야.”
멀찍이서 망원경으로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전투팀원들이 서로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눴다. 감탄과 경외가 그대로 묻어나는 목소리로.
엘리제 파르테인은 그동안 과장 좀 보태서 뼈를 깎고 또 깎는 수련을 거듭해 왔다.
원래 역사에서의 그녀였다면, 지금 이 시점에 이만큼이나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이지 못했을 터였다. 그녀가 현자의 경지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원래라면 조금 나중의 일이었을 테니까.
현시점의 그녀는 이미 현자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것도 그중 최상위권에 랭크될 수준이었다. 길다고 할 수 없는 그 시간 동안, 그녀는 그야말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냈다.
본래부터 압도적인 천재성을 가진 그녀였다. 게다가 스승은 대륙 최고 수준의 강자. 심지어 로엘로부터 현대의 지식을 전수받았고, 르우벤 덕분에 공간 계열 아티펙트를 마음껏 연구할 수 있었다.
거기에 그녀는 마법사였다. 마법사라는 족속은 그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자질에 따라 짧은 시간 내에도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는 이들.
그야말로 짧은 시일 내에 강해지기 위한 조건을, 그녀는 모조리 충족하고 있던 셈이었다.
그나마 원래 역사의 그녀에게는 뼈를 깎는 수련에 매진할 ‘동기’가 부족했었다. 반면 각성자들이 미래를 바꿔나가고 있는 현 역사의 그녀는 그 ‘동기’마저 차고 넘쳤다.
그녀는 과거 투기장에서의 대련에서 로엘에게 패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로엘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그 과정에서, 로엘이라는 존재는 그녀에게 있어 하나의 ‘목표’로 자리매김했다. 언젠가는 따라잡아야 할, 그리고 뛰어넘어야 할. 입이 찢어져도 로엘 본인에게는 그것을 말할 수 없었지만.
그런 그녀에게 있어 로카인과 세 각성자의 대련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녀는 그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그 대련을 지켜보며 실감했다.
그들은 천재가 아니었다. 단순히 천재라는 표현으로 정의하기엔, 그들은 너무나도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굳이 표현할 말을 찾자면, ‘괴물’. 괴물이라는 단어만큼 그들에게 어울리는 말이 없었다.
그 괴물들을 바라보며, 그 괴물들 사이에 당당히 끼어 있는 로엘을 바라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 또한 저들과 대등한 위치에 서고 싶다고.
그들과 같은 ‘괴물’의 대열에 끼고 싶다고. 그가 그러하듯이, ‘특별한’ 자들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싶다고.
동시에 세 각성자를 압도하는 로카인의 모습을 통해 그녀는 확신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를 활용하면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분명 저들도 성장하겠지만 자신 또한 스승님의 모든 진전을 잇는다면. 스승님이 이른 영역에 다다른다면, 아니 스승님마저 넘어선다면.
분명히 뜻을 이룰 수 있으리라. 그녀는 그것을 확신했다. 그것이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 그녀를 가파르게 성장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번 프레퍼와의 전면전은 그녀에게 있어 지금껏 쌓아 온 실력을 실전에서 활용해 보는 시험의 무대이기도 했다. 전투팀을 물리고 혼자서 프레퍼의 거점을 쳐부수고 있는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오, 온다!”
“이젠 틀렸어!”
콰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아직 부족해.’
주위에 재앙에 가까운 힘을 뿌리며, 그녀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녀는 알테라 시 공방전을 통해 확인했다. 각성자들이 그녀가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큰 폭으로 성장했음을. 그렇기에 이렇게나 강해진 지금도 그녀는 만족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과의 거리는 확실히 좁혀졌어.’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지금이라면 손을 뻗기만 해도 그들이 서 있는 영역에 다다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앞으로 한 걸음. 단 한 걸음만이 남았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고 나면 다시 폐관 수련에 들어가자. 그리고 그 수련을 마치고 나온 뒤엔…….’
쿠콰과과과광!
그녀의 상념은 그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내부 인원이 말끔하게 정리된 프레퍼의 거점이 그녀가 연속으로 터뜨린 마법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기 시작했기에.
<공간 이동(Space movement)>.
그녀가 마법을 발현했다. 그 결과로 눈앞에 생성된 공간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내 그녀의 육신이 공간문 저편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그 직후.
콰르르르르르르르!
프레퍼의 거점으로 쓰이고 있었던 지하 공동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 * *
바르바젠이 향한 거점의 경우엔, 엘리제 파르테인이 향한 거점의 그것보다도 상황이 훨씬 심각했다.
엘리제가 향한 쪽은 그나마 시체라도 온건했다. 반면 이쪽은 그야말로 더 이상 처참할 수 없을 정도로 갈가리 찢어진 시신이 거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미관상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이곳 거점은 완전히 공략된 유적을 재활용해서 만든 곳이었는데, 바르바젠은 입구에서부터 천천히 내부로 걸어 들어가며 경로에서 마주치는 모든 조직원들을 처참하게 살해했다.
그 또한 엘리제 파르테인처럼 혼자서 거점에 진입했다. 마치 그러기로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행동양식이었다. 함께 온 전투팀에겐 일대를 포위하도록 지시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바르바젠이 공포에 질린 얼굴의 로브인 한 사람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로브인의 얼굴이, 육신이 마치 물이 끓는 것처럼 울룩불룩 들끓더니 이내 펑! 하고 터져 나갔다.
72마왕 중 하나이자 뱀파이어 군주인 ‘크로셀’의 권능. ‘혈액 지배’.
“컥!”
은신 계열 마법으로 근처까지 접근해 단검으로 뒤를 찌르려던 로브인 하나가 자신이 무엇에 당한 것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온몸을 난자당해 쓰러졌다.
마찬가지로 72마왕 중 하나이자 미치광이 살인마인 ‘글라시아 라볼라스’의 권능. ‘천참만륙(千斬萬戮)’.
“으아아아아아! 끄아아아악!”
동료들이 연속해서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광경에 두려움을 느끼고 도주하던 로브인 한 사람은, 갑작스레 온몸이 검은 불꽃에 뒤덮여 바닥에 쓰러진 채 버둥거렸다.
또 다른 72마왕의 일원이자 불의 지배자인 ‘하우레스’의 권능. ‘지옥염’.
그의 발길을 막아설 수 있는 이가 없었다. 그를 피해 달아날 수 있는 이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프레퍼의 조직원들이 절규하며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오래지 않아, 바르바젠은 거점 내의 모든 하위 조직원들의 목숨을 거두었다. 두 명의 최고 간부 또한 목숨만 붙여뒀을 뿐, 일말의 자비도 없이 난도질해 구석에 처박아 버렸다.
두 최고 간부 중 한 사람이 악에 받친 목소리로 바르바젠에게 소리쳤다.
“너희 제국 놈들은 모른다!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앞으로 대륙에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시끄럽다. 버러지.”
“그래, 너희들은 우리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대륙에 온갖 분쟁을 일으켜가며 사념을 모아왔는지 모르겠지! 관심도 없겠지!”
“…….”
“크흐흐흐흐. 프레퍼가 가진 힘은 오래지 않아 대륙에 반드시 필요해지게 된다! 반드시! 너희 제국 놈들의 알량한 정의 놀음은, 결국 머지않은 미래에 대륙을 파탄으로 밀어 넣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바르바젠이 성큼성큼 걸어와 사내의 복부에 발을 올렸다. 그리곤 발에 무게를 실어 비틀었다.
“끄으으으으아악!”
“잘 들어라. 버러지.”
바르바젠은 감정이 엿보이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우선 마족의 대륙 침공에 관한 일이라면, 이미 제국 황실은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너희 머저리들보다도 확실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뭣!”
“단적으로 말해서, 너희 같잖은 쓰레기들이 미래를 대비한다는 웃기지도 않는 핑계로 대륙 전역에서 분탕질을 치는 것. 굉장히 거슬린다.”
사내가 고통조차 잊고 경악에 찬 표정으로 바르바젠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대답을 듣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듯.
“그리고 한 가지 더. 제국은 딱히 ‘사념 마법’의 활용 자체는 그다지 나쁘게 보지 않아. 언제나 문제가 되는 건 힘 그 자체가 아닌, 그 힘을 활용하는 방식이지.”
“그게 무슨.”
“앞으로 너희 조직의 모든 것이었던 사념 마법을, 우리 제국에서 활용하게 될 거라는 말을 하는 거다.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앞으로 제국은 대륙통합 전쟁을 벌일 예정이다. 그 전쟁은, 수없이 많은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게 되겠지.
제국은 그 수많은 죽음조차 앞으로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이용할 작정이었다. 대륙통합의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날 전력의 감소’마저 ‘재활용’할 예정이었다.
앞으로 맞이하게 될 적들은 그렇게 모든 가능성을 끌어모아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하기에. 이쪽은 전력을 모음에 있어 수단 방법을 가릴 처지가 아니기에.
“그러니 앞으로의 미래를 대비하는 데에 있어, 너희 버러지들은 조금의 쓸모도 없다.”
“크윽.”
“그렇지만 너희 간부 놈들이 이룩한 경지만큼은 꽤 쓸 만한 수준이지. 특히 너희 두 사람이 가진 힘의 특수성은 여러모로 탐이 나는 종류의 것이고.”
사실, 그가 이곳 거점을 맡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바르바젠이 섬뜩한 웃음을 흘렸다. 간부 사내가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어깨를 움츠렸다.
“지금부터, 고개를 돌리지 마라.”
바르바젠이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단숨에 사내의 오른쪽 눈을 파고 들어갔다.
“크아악! 아아아아악!”
그가 손가락을 몇 번 휘젓는가 싶더니, 사내의 눈알을 단숨에 뽑아냈다.
촤악!
“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사내가 유적이 떠나가라 비명을 내지르는 가운데, 바르바젠이 비웃듯이 말했다.
“저런. 눈 한쪽이 없어져서 불편하겠군. 사죄의 의미로 선물을 하나 주도록 하지. 분명 마음에 들 것이다.”
그가 왼팔의 소매를 걷었다. 희고 매끈한 팔뚝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내 그 팔뚝을 통째로 뒤덮는…….
눈.
눈. 눈. 눈. 눈. 눈. 눈. 눈. 눈. 눈. 눈. 눈. 눈. 눈. 눈. 눈. 눈. 눈. 눈.
끄지지지직!
바르바젠은 수많은 눈 중 하나를 오른손으로 붙잡고, 주위 살점째 그대로 뜯어냈다. 피와 살점이 튀며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가 갓 뽑아낸 꿈틀거리는 눈을, 그대로 사내의 오른쪽 빈 안구에 쑤셔 넣었다.
“어억.”
미처 저항하지 못하고 눈을 받아들이고 만 간부 사내가 입을 살짝 벌리고 몸을 떨었다.
그것도 잠시.
“어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지금까지 중 가장 크고 끔찍한 비명 소리가, 그들이 자리한 공간 내부를 크게 울렸다.
* * *
로엘과 카트란이 향한 거점의 경우엔, 꽤나 격렬한 저항이 있었다. 그곳 거점에는 가장 많은 숫자의 간부가 모여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저항은 로엘과 카트란이라는 전대미문의 조합에 의해 그야말로 처참하게 깨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그 두 사람과 동행한 전투팀, ‘트레이터스’는 하나하나가 간부에 못지않은 실력자들이었다. 그들 거점의 간부들로선 도저히 그 모든 인원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어, 어째서 내 마법이.”
특히 카트란의 능력은 그들 중 최고 실력자인 ‘리메라’의 능력에 대한 완벽한 카운터였다. 그나마 다수의 강자에게도 통용되는 그녀의 힘이 봉인되어버린 시점에서, 그들에겐 가망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든 간부가 제압당해 무릎 꿇려졌다.
로엘은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후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그동안 가려져 있었던, 소름 끼치도록 잘생긴 얼굴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간부 중 유일한 여성이자 그들의 장인 리메라를 향해 다가갔다. 허리를 굽히고,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려 시선을 맞추었다.
“…….”
잠시간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동자를 응시하는 두 사람.
먼저 입을 연 것은 로엘이었다.
“선택지를 두 가지 드리겠습니다.”
“……?”
“지금 이 자리에서 죽거나, 제 휘하로 들어와 죽을 때까지 일하시거나. 어느 쪽을 고르시겠습니까?”
로엘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 두 가지 선택지 중 어떤 것을 고를지. ‘조력자’로부터 그녀에 대한 정보는 이미 전해 들은 상태였다.
그녀는 삶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한 유형의 인간이다. 그러니, 필시 후자의 선택지를 고를 터였다.
“이쪽의 뭘 믿고 살려주겠다고 말하는 거죠?”
빙고.
로엘이 빙긋, 하고 웃었다.
“방금의 대답은 후자의 선택지를 고른 것이라 여기겠습니다.”
“…….”
로엘은 아공간을 열어 한 가지 물건을 꺼내 들었다. 한 손으로도 쥘 수 있을 정도로 조그마한 물건을.
그 물건의 정체는 바로, ‘주사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