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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화. 결착(2) (198/249)
  •  199화. 결착(2)

     그 공간은, 빛 한 줌조차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누구냐.”

     들려오는 노인의 목소리.

     레인이 내력을 돋워 안력을 높였다. 그러자 제단 위에 앉아 명상하고 있다가 방금 막 눈을 뜬, 웬 백발 백미의 노인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꾸어어어엉!

     워어어어어!

     공간 내부엔 수많은 사념이 떠다니고 있었다. 원망, 고통, 악의, 슬픔, 분노, 절규 등등의 감정이 가득 실린, 그 감정의 농도가 짙어 수시로 형상화될 정도의 사념이.

    “누구냐고 물었다.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디언들이 문 앞을 지키고 있었을 터인데.”

    “…….”

     딱히 정보를 줘야 할 이유가 없다. 레인은 대답하는 대신 검을 슬쩍 늘어뜨리며 상대와의 간격을 쟀다.

    “바깥이 시끄럽군. 동료를 끌고 온 건가? 그들이 가디언을 막아서는 동안 네가 이곳에 들어선 것이고?”

     노인이 비릿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검은색 일색의 로브. 소매 바깥으로 엿보이는 앙상하기 그지없는 손. 그 손에 들린, 커다란 보석이 박힌 지팡이.

     로카인 파르테인과는 다르게 적당한 길이로 정리된 머리칼과 수염. 그리고 고위 아티펙트일 것이라 예상되는 외눈 안경까지.

     생각보다는 멀끔한 생김새를 한 노인이었다.

    “이곳까지 ‘손님’이 찾아온 건 처음이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 어디 동화 속 악마가 용사를 맞이할 때 하는 대사라도 들려줘야 하나?”

    “…….”

    “농담이네. 그런 비생산적인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아.”

    “의외로 말이 많은 성격이로군.”

    “그런가?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걸핏하면 이렇게 음습한 공간에서 며칠씩 죽치고 있는 일상을 보내는 늙은이인데. 방문자에게 말이 많아지는 것 정도야.”

    “그 자신의 말과는 달리 비생산적인 이야기도 좋아하고.”

    “그렇게 보이나? 뭐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럼 생산적인 이야기를 좀 하지. 이곳엔 무슨 목적으로 왔지? 어디서 보낸 인물이고?”

    “가르쳐 줄 리가.”

    “그렇겠지. 그럼 다른 질문을 할까. 혼자서 나를 감당할 자신이 있나?”

    “어.”

    “후후. 우연이군. 이 늙은이도 젊은이에겐 지지 않을 자신이 있거든.”

    “…….”

     레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틈이 안 보이는군.’

     언뜻 실없는 늙은이처럼 보이지만, 실력만큼은 진짜였다.

     만 단위? 십만 단위? 백만 단위? 대체 이 공간 안에 얼마나 많은 인간의 사념이 떠돌고 있는 것일까.

     그 사념으로부터 비롯된 막대한 힘. 노인은 그 힘을 이용해 자신의 주위를 빈틈없이 감싸고 있었다.

    ‘기습으로 단숨에 승부를 보는 건 힘들겠군.’

     레인은 조급하게 굴지 않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냉정하게, 차분하게 상대를 살피는 데에 집중했다.

     한편, 노인은 노인대로 염두를 굴리고 있었다.

    ‘묘하군.’

     분명 눈앞의 상대에게선 별다른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초월자 특유의 이질감이 느껴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긴장감이 등을 타고 올라온다. 함부로 선수를 취할 수가 없다. 괜히 소모적인 대화를 유도한 것도 실은 그 때문이다.

    ‘이해할 수가 없군. 대체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그가 눈매를 좁혔다. 그는 마법사답지 않게 그 자신의 직감을 꽤 신뢰하는 편이었다. 일단, 성급하게 움직이지는 않기로 했다.

    ‘우선 조금 흔들어 볼까.’

     그가 재차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바깥의 네 동료들은 괜찮을지 모르겠군. 어서 날 쓰러뜨리고 도움을 주러 가야 하지 않겠나?”

    “…….”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그 둘은 내 인생 최고의 역작이야. 무려 십만 가까이 되는 사념을 몰아넣어 탄생시킨 괴물 중의 괴물이지. ……왜 그런 얼굴인가?”

     레인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노인을 응시했다. 저걸 지금 도발이라고 한 것인가.

     그 순간, 바깥에서 소름 끼치는 귀곡성이 들려왔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공간 내의 사념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귀신을 목격한 어린아이의 그것과도 같았다.

     카아아아악!

     히이이이이이!

    “이 무슨 해괴한!”

     노인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사망 직전의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감정의 편린에 불과한 사념이, 마치 공포를 느낀 것만 같은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적어도 노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빈틈.’

     그리고 그 순간을, 레인은 놓치지 않았다.

     레인이 단숨에 바닥을 박찼다. 그의 신형이 포탄과도 같은 속도로 노인을 향해 쇄도했다.

    “이, 이놈!”

     노인이 급히 사념을 끌어모았다. 제멋대로 날뛰는 사념을 순식간에 제어, 그 자신의 전방에 막대한 힘이 실린 ‘막’을 형성시켰다.

     그리고 레인은 그것을 단숨에 우회해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흐읍!”

     노인이 급히 주위 사방팔방으로 막대한 기운을 폭사시켰다. 마치 해일과도 같은 기운이 쏟아져 나와 레인을 향해 몰아닥쳤다.

    ‘들었던 대로 다루는 힘의 용량 자체는 대륙의 누구도 못 따라가겠군.’

     레인이 그 해일을 단숨에 갈라내며 생각했다.

     물론 레인도 비기스트나 사슬낫 아티펙트를 이용하면 인간의 한계를 한참이나 초월한 출력을 낼 수가 있다. 가능이야 하다.

     그러나 레인에게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내력의, 체력의 한계가. 반면 노인은 압도적인 물량의 사념을 통해 끊임없이 마력을 보충받는다.

     르우벤의 말대로였다. 아마 전 대륙을 통틀어 눈앞의 노인 이상으로 압도적인 출력을 선보일 수 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적어도 지금 시점에는.

     그렇지만.

    ‘아직, 힘의 제어가 미숙하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겨우 이 정도 돌발상황에 저 정도로 흐트러지다니. 지닌 힘에 비해 그 힘을 활용하는 능력은 크게 미치지 못함이 분명했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힘이다. 게다가 그 힘의 근원은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것. 필시 그 힘을 완벽히 제어하기 위한 수련에 들여야 할 시간이 막대할 터였다.

     분명 지금 시점의 노인은 그 시간을 충분히 들이지 못한 것이겠지.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미세한 빈틈. 거기에 승기가 있었다.

     레인은 조금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계속해서 노인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척(刺).

     섬광과도 같은 찌르기. 찬란한 백광에 뒤덮인 검이 노인이 재차 급하게 끌어모은 기운의 덩어리를 꿰뚫었다.

     분명 힘의 절대량은 노인 쪽이 위지만, 힘의 밀집도는 레인 쪽이 위였다. 노인이 다루는 힘이 아무리 압도적이더라도 이만큼이나 몰린 상황에서 급히 발현한 마법으로 버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계속해서 검의 진로를 가로막는 마법. 마법. 마법.

     레인의 검이 그 모든 마법을 꿰뚫고 노인의 바로 앞까지 쇄도했다. 힘과 힘의 충돌로 인해 그가 검에 불어넣은 기운이 대부분 소모된 상태였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눈앞에 위치한 노인의 연약한 육신을 베어버리는 데에는.

     촤악!

     피가 튀었다.

     노인의 오른팔이 허공을 날았다. 커다란 보석으로 장식된 지팡이와 함께.

    “크아아악!”

     끔찍한 비명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 * *

     꾸어어어엉!

     거대한 사념의 파도가 레인을 집어삼킬 듯 몰아쳐 왔다. 레인이 신형을 가속, 그 범위 바깥으로 벗어났다.

     받아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소모될 내력이 극심할 테니 그러지 않았다. 심지어 한 번 공격을 맞받게 되면 이격, 삼격까지 감당해내야 하니 더더욱.

    “아주 미쳐 날뛰는군.”

     팔 한 짝을 잃은 후부터, 노인은 완전히 이성을 잃고 날뛰기 시작했다. 레인은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대규모 마법을 피해 다니느라 눈이 핑핑 돌아가는 접전을 치러야만 했다.

    “초반에 기습으로 피해를 입혀두지 않았으면 조금 힘들 뻔했나.”

     레인이 날아드는 거대하고 불길한 마력의 탄환을 잔상을 남기며 피해냈다. 그리곤 곧바로 노인을 향해 불규칙한 움직임으로, 그러나 빠른 속도로 쇄도해 들어갔다.

     바닥에서 솟아올라 오는 마력의 창날을 피해 도약. 그림자 줄기를 발판 삼아 이동해 노인의 머리 위에서 비기스트를 뽑아 들고, 그것을 슬쩍 손에서 놓았다.

     콰지지지지지직!

    “?!”

     노인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방어막 위로, 공간검이 떨어져 내렸다. 압도적인 힘과 무게가 충돌해 격렬하게 스파크를 튀겼다.

    “크으으.”

     노인이 얼굴을 사정없이 일그러뜨리더니 먼저 힘을 풀고 물러났다. 그것이 쓸데없는 소모전임을 자각한 것이다.

     촤악!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드러난 미세한 틈을 노려, 레인의 검격이 그의 옆구리를 얕게 훑고 지나갔다.

    “크윽!”

     노인이 신음을 흘렸다. 그리 대단찮은 상처지만, 지금까지 공격을 허용한 횟수가 너무 많았다.

     바로바로 포션으로 상처를 치료했지만 이미 소실되어버린 혈액이 너무 많았다. 벌써부터 빈혈이 일 정도였다.

     노인이 레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당했으니 갚아준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면, 도저히 이쪽의 범위 공격을 피할 도리가 없을 터!

     그 순간. 레인이 진각을 밟았다.

     터엉!

     약간이지만, 노인의 신형이 흔들렸다. 그의 손이 향하는 방향이 미세하게 틀어졌다.

     레인은 그로 인해 생겨난 아주 자그마한 빈틈을 파고들어 오히려 카운터를 날렸다.

     푸욱!

    “커억.”

     가슴팍을 꿰뚫린 노인이 바람 빠진 비명을 토해냈다.

     레인은 곧바로 내력을 폭사시켜 노인의 육신을 헤집어 놓으려 했으나, 그 꼴이 되고서도 노인이 막대한 충격파를 터뜨리는 통에 검을 손에서 놓고 신형을 물릴 수밖에 없었다.

    “후우.”

     그가 노인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위치에 내려선 뒤 숨을 골랐다. 노인이 가슴에 박힌 검을 뽑아내며 발광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생각했다.

    ‘이길 수 있다.’

     곧이어 날아드는 노인의 마법. 이형환위(移形換位)의 수법으로 그것을 피해냈다.

     그림자로부터 언월도를 뽑아 들어 그것을 바닥에 박아넣었다. 창대 위에 올라앉아 궁신탄영(弓身彈影)의 수법으로 신형을 날리며, 레인이 생각을 이어갔다.

    ‘그것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분명 노인은 강자였다. 대륙 전체를 놓고 봐도 그를 감당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존재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완성되지 않은’ 강자일 뿐이기도 했다. 그리고 레인은 ‘그런’ 유형의 상대와의 전투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었고.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빈틈이 없다면 만들어내서라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레인의 전투방식. 그런 의미에서 노인은 오늘 상대를 잘못 만났다.

    “빌어먹으으으을!”

     그에게 시간이 주어졌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년만 더 주어졌다면, 상황이 지금과는 크게 다르게 흘러갔을 터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의 이야기일 뿐이다. 당장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 따위, 노인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촤악!

     오래지 않아 레인은 노인의 목을 베어낼 수 있었다.

     깔끔하다 못해 시원스럽기까지 한 절삭음이, 공동 내부를 크게 울렸다.

     * * *

     르우벤이 보스룸 내부로 들어섰다. 그리곤 피곤한 얼굴로 숨을 고르고 있는 레인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진짜로 혼자서 쓰러뜨렸구나.”

    “그렇게까지 힘든 일은 아니었다.”

    “난 전생의 기억이 남아있어서 그런가, 그 노인네가 이렇게 허무하게 골로 갔다는 게 좀처럼 믿기질 않네.”

     르우벤이 안도감과 허탈함이 공존하는, 어딘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 상황이 기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쉬이 납득되질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원래 세상일이 그런 법이었다.

     전생에 온 중원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레인조차, 환생 후엔 경지가 부족했던 탓에 크레틸 자작에게 크게 고전했다. 로카인 파르테인과의 대련에선 처참한 패배를 경험했다.

     분명 원래 역사에서 프레퍼의 수장은 충분한 수련 시간을 통해 가진 힘을 완전히 수습했다. 그로써 명실상부한 대륙 최강자로 거듭났다. 전 대륙에 그 힘을 크게 떨쳤다. 그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현생에는 폐관 수련을 마무리 짓지조차 못한, 가진 힘을 완전히 수습하지도 못한 어정쩡한 시점에 레인의 습격을 받았다. 그렇기에 패배했고, 그 힘을 떨쳐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단지 그뿐인 이야기였다.

    “바깥은?”

    “그 두 녀석은 갑자기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져 버렸어. 네가 노인네를 쓰러뜨린 탓이겠지”

    레인은 지친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공동의 한편에 위치한 거대한 제단을 향해.

    제단 위에, 기괴한 형상의 조각이 새겨진 단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단상 위에는 거대한 보옥이 둥둥 떠 있었다.

     끼아아아악!

    우우우우우우우우!

     그 보옥을 향해, 공동 내부에 자리 잡고 있던 모든 사념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프레퍼의 수장인 노인의 시체에서도. 그리고 바깥의 두 ‘그릇’에서도. 엄청난 숫자의 사념이 빠져나와 함께 보옥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게 그건가.”

     레인이 보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르우벤이 옆에서 함께 보옥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겠지. 바르바젠이 챙겨오라고 했던 물건.”

    “프레퍼라는 조직을 출범시킨, 그들 조직의 근간이 된 아티펙트.”

     레인은 손을 뻗었다. 새까만 광택이 돋보이는 거대한 보옥을 향해.

     그가 보옥을 손으로 붙잡으며, 뒷말을 이었다.

    “마옥(魔玉)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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