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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화. 결착(1) (197/249)

 198화. 결착(1)

 전후, 각성자들을 비롯한 일행은 짧은 휴식 시간을 가졌다.

“움직이는 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다섯 시간 뒤야.”

“꽤 여유가 있군.”

“놈들이 근거지에 도착해서 수면을 취할 즈음으로 시간을 잡았지. 일단 모두에게 최대한 내력과 체력을 보충하라고 일러둬.”

 로엘의 발언에 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다들 한 번씩 포션 목욕통에 들어갔다 나오고 있다.”

“난 그 목욕통은 거들떠보기도 싫어.”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르우벤이 경기를 일으켰다.

“인원 편성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일곱 팀으로 나눌 거야. 놈들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단숨에 몰아쳐야 하니까. 물론 팀 구성은 소수 정예로. 공간 마법으로 이동시켜야 하니까.”

“일곱 팀? 여섯 팀이 아니라?”

“어. 일곱. 여섯 팀은 놈들의 조직 거점을 치고 나머지 한 팀은 놈들의 보스가 폐관 수련 중인 유적으로 향하게 될 거다.”

“!”

“그쪽은 여기서 멀어서 많은 인원을 편성할 수 없어. 그래서 보낼 인원은 단 두 사람이야. 너와 르우벤.”

“왜 미리 말 안 해줬어?”

“딱히 고의는 아니야. 갑자기 상황이 변해서 계획도 능동적으로 수정한 거지. 어쩌다 보니 로빈을 좀 일찍 잡았거든.”

“…….”

“너와 르우벤 두 사람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는데, 괜찮겠지?”

“당연한 말을.”

 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딱히 걱정이 들어서 물은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그는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어떤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자신의 몸 정도는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넌?”

“나는 카트란과 함께 움직일 거다. 프레퍼의 최고 간부들이 이곳을 벗어날 때 두 패로 갈라져서 움직였는데, 그중 ‘리메라’가 속한 쪽으로 갈 거야.”

“놈들이 어디로 향할지 정확히 알 수 있어? 거점이 여섯이나 되잖아.”

 레인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놈들이 여섯 거점으로 흩어져서 이동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은 거기까지다. 이곳 알테라 시로부터 출발한 간부들이 정확히 어느 거점으로 향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 부분은 걱정할 것 없어. 정보를 제공한 ‘조력자’가 있거든.”

“……?”

 레인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조력자가 있다?

 그러다 이내 적당히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머지 간부들이 향한 쪽은 바르바젠이 맡을 거야. 그 외 남은 거점들엔 엘리제 양을 비롯한 전력을 적절하게 배분해서 보낼 거고.”

“이젠 정말로 마지막이군.”

“실질적으로 끝장을 내는 건 맞지. 대륙 전역에 퍼진 자잘한 하부 조직들이야 이후에 대륙통합 전쟁을 통해 정리하면 그만이니까.”

 두 사람이 한참 그런 대화를 나누던 와중. 한 가면인이 그들이 있는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로엘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흰색 무면탈을 착용한 그 사내는, 바로 지근거리까지 다가와 로엘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로엘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난 갈게. 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로엘이 레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레인이 어여 가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자리를 벗어나는 로엘과 가면인의 등을 바라보며 레인이 생각했다.

‘그런데, 저 가면 쓴 녀석은 대체 정체가 뭐지?’

 로엘이 새로운 전투팀을 창설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분명 팀명이 ‘트레이터스(Traitors)’라고 했던가.

 그런데 직접 대면해 보니 꽤나 비밀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것 하며, 가진 바 실력이 하나하나 범상치 않은 것 하며. 궁금증이 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물어보면 되겠지.’

 이내 레인은 궁금증을 거뒀다.

 그들은 적이 아니었다. 딱히 심각하게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은 그보다 컨디션을 만전의 상태로 만드는 게 중요했다.

 레인이 근방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곤 차분히 내력을 순환시켰다.

 마지막 결전을 치를 시간이 다가오기 전까지, 운공에만 집중할 생각이었다.

 * * *

 시간이 되었다.

 엘리제 파르테인이 순차적으로 공간 마법을 발현했다. 로엘이 편성한 인원이 공간문을 통해 차례차례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럼, 나중에 보자.”

 다섯 번째 차례. 로엘이 카트란과 함께 공간문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레인과 르우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열린 공간문으로는 레인과 르우벤이 들어섰다. 놈들의 보스가 폐관 수련 중인 유적이 숨겨져 있는 산이었다.

“수고해.”

“그쪽도.”

 공간문 저편에서 엘리제 파르테인이 격려의 말을 건네오자 레인이 가볍게 대꾸했다. 마지막으론 그녀가 이끄는 팀이 조직 거점 중 하나로 이동하게 될 터였다.

 이내 공간문이 닫혔다.

“후우.”

 레인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바위산의 정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디로 가야 해?”

“어디 갈 것 없어. 바로 여기니까.”

“여기?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레인이 미간을 모았다. 그들이 위치한 공간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기감을 돋워 봐도 그것은 마찬가지. 특별히 이질감이 느껴지거나 하지도 않았다.

“숨겨져 있다고 하더라고. 유적의 입구가 닫혀 있으면 주위에 발견되지 않도록. 억지로 찾아서 들어갈 수도 없게 되어 있고.”

 로엘이 ‘조력자’로부터 얻어낸 정보였다.

 유적의 입구를 개방시키는 방법은 딱 두 가지였다. 유적 내부에서 직접 열어주거나, 아니면 입구와 연동된 아티펙트를 작동시키거나.

 그리고 그 아티펙트를 소지하고 있던 게 바로 프레퍼의 최고 간부 중 하나이자 ‘보스’의 직계 제자인 ‘로빈’.

“자. 이 아티펙트에 내력을 불어넣으면?”

 르우벤이 로엘에게서 미리 받아 둔 아티펙트를 작동시켰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대지가 크게 진동하는가 싶더니, 바닥으로부터 자그마한 신전 하나가 밀려 올라왔다. 레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초월자의 감각까지 동원해서도 찾을 수 없는 신전이라. 확실히 이런 곳에 숨어 있는 자를 찾아내는 것은 일반적으론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졌다.

“들어가자.”

 두 사람이 신전 내부로 들어섰다. 무언가 기괴한 조각상이 잔뜩 늘어서 있는 신전의 한가운데에, 지하로 향하는 통로가 있었다.

“선두는 내가 맡지.”

 레인이 앞장서서 통로에 들어섰다. 이젠 르우벤이 탱커 세트를 활용할 수 없으니 그가 선두로 나서는 것이 옳았다.

 통로를 모두 주파하자 거대한 지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는 유적이었던 것을 거주자들이 개척한 모양인지, 곳곳에 생활감 넘치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치, 침입자다!”

“어떻게 여길?!”

 레인과 르우벤을 발견한 이들이 경악한 외침을 토해냈다.

 그들 모두가 프레퍼의 조직원들. 정확히는 조직원이 되기 위해 ‘보스’에게서 사념을 부여받고, 그것을 활용하는 수련에 매진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일정 이상의 실력을 쌓으면 주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로빈’이 픽업, 그들을 외부 활동을 위한 전력으로 써먹게 되어 있었다. 그 로빈이 이번에 로엘에게 붙잡혀 버렸지만.

 촤악!

 피보라가 일었다. 레인과 르우벤이 가타부타 말도 없이 그들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크악!”

“지, 지원을 불러! 이놈들은 우리 선에선 감당이 안 된다!”

 모두가 개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로브를 걸친 양산형 마법사들. 그들 중, 후방에 위치한 몇 사람이 지하 공간 깊숙한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레인과 르우벤은 굳이 그들을 억지로 뒤쫓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 유적 내에 있는 자들은 모두 죽여야 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정리하고 뒤따라가면 될 일이었다.

 이내, 장내가 모두 정리되었다. 레인은 기감을 크게 돋워 구석구석에 숨은 로브인들까지 모두 찾아내 베었다.

“가자.”

 레인과 르우벤이 곧바로 공동을 주파했다.

 그들은 오래지 않아 또다시 로브인들이 모여 있는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번엔 철저하게 진형을 갖춘 채 습격을 대비하고 있었다.

“후읍.”

 그러나 유적을 침입한 두 사람은 그들이 아무리 작정하고 맞서도 어쩔 수 없는 실력자들. 나름 분전했지만, 그들도 모두 쓸려나가고 말았다.

“아아악!”

“이, 이렇게나 강하다니!”

 촤르르르르륵!

 레인의 사슬낫이 놈들이 발현한 마법을 막아냈다. 그들이 구축한 진형을 분쇄했다. 르우벤이 진형 한가운데로 난입, 무자비하게 마검을 휘둘렀다.

 르우벤이 웃음기 어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굳이 찾아다닐 필요 없어서 좋네. 알아서 이렇게 똘똘 뭉쳐 있어 주면 이쪽이야 고맙지.”

 이내 그들을 전멸시킨 두 사람이 재차 신형을 날렸다. 막아서는 이들을 모조리 격파하고, 끝내 유적의 최후 관문에 다다랐다.

 기괴한 장식이 새겨진 거대한 문이 두 사람의 시야에 들어왔다.

“보스룸인가. 아무래도 ‘보스’는 저 안쪽에 있겠군.”

“그런데 저놈들은 뭐지? 전생에 프레퍼와 최후 결전을 치를 땐 저런 녀석들이 없었는데. 바르바젠에게서도 저런 녀석들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고.”

 르우벤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두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우워어어어어!

 키아아아악!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주위를 온갖 사념이 떠돌고 있었다. 음습하고 암울한 느낌이 전해져 오는, 일그러진 얼굴의 형상을 띈 그것들이 수시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르우벤이나 바르바젠에게 놈들에 대한 기억이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한때 전 대륙을 떠돌던 ‘보스’의 눈에 띈, 사념 마법과 가장 상성이 좋은 신체를 가진 이들. 이지를 제압당해 끌려와 방대한 분량의 사념을 보관하는 ‘그릇’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들이었다.

 원래 역사에서, 그들은 폐관 수련을 마친 프레퍼의 보스에게 ‘흡수’당했다. 두 회귀자에게 그들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곤란한데.”

“뭐가?”

“보아하니 저 녀석들, ‘보스’가 직접 사용하는 사념 마법과 관련된 놈들이야. 놈들을 해치우면 보스가 그 사실을 눈치챌 가능성이 높아.”

“?”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얼굴로 레인이 르우벤을 응시했다. 그러자 르우벤이 뒷목을 긁적이며 설명했다.

“물론 저놈들을 해치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문제는 ‘보스’ 녀석이 그 사실에 경계심을 품고 이곳에서 달아나버리는 경우야. 그럴 가능성은 굉장히 낮겠지만, 혹시라도 그렇게 되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지니까.”

 유적 중에는 간혹 보스룸에 바깥으로 향하는 출구가 존재하는 유형의 것들이 있었다. 이곳이라고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었다.

“그럼 한 사람이 저놈들을 붙잡아두는 동안 나머지 한 사람이 바로 보스룸에 진입하면 되잖아. 놈이 달아날 틈 없도록.”

 레인은 여전히 뭐가 문제냐는 얼굴이었다.

“위험해. 프레퍼의 보스는 정말로 강해. 수없이 많은 인간의 사념을 이용해 놈이 발현하는 마법의 위력은 정말로 규격 외야.”

 르우벤이 진중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원래 역사에서, 프레퍼의 보스를 제거하기 위해 동원된 전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무려 제국의 검존 둘, 대현자 하나, 거기에 ‘단장’까지 힘을 보탰으니 말 다 했다.

“물론 지금 시점의 그는 지닌 힘이 완전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심각한 표정인가 했더니.”

 레인이 갑작스레 르우벤의 말을 끊었다.

“역시 문제 될 게 아무것도 없잖아.”

“너다운 대답이네.”

 한 마디로 자신이 혼자서 보스룸에 진입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르우벤이 쓴웃음을 흘렸다.

“정말로 위험할지도 몰라. 지금 시점의 그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절대 방심할 수 없는 상대임은 분명해.”

 르우벤이 시선으로 물었다. 정말로 그만한 적을 혼자 상대해도 괜찮겠냐고. 굳이 그렇게 위험을 감수할 것 없이, 둘이서 함께 상대하는 게 안정적이지 않겠느냐고.

“…….”

 레인은 대답 대신 한 차례 핫, 하고 웃었다.

 그것은, 그 어떤 대답보다도 확실한 답변이자 의사 표현이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나도 최대한 빠르게 놈들을 정리하고 뒤따를 테니까.”

 르우벤이 재차 쓴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동시에 보스룸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들의 존재를 인지한 두 문지기 괴인이 마주 달려들었다.

 곧바로, 거센 충돌이 벌어졌다.

 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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