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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화. 시가전(5) (196/249)

 197화. 시가전(5)

 어느새 가세한 무력대를 이끌며 적을 몰아치던 레인의 시야에, 웬 헐벗은 여인 하나가 들어왔다. 이 복잡하고 정신없는 전투의 와중에도 굉장히 돋보이는 여인이었다.

“……?!”

 그 순간, 레인은 자신의 감각에 이상이 생겼음을 인지했다.

 가장 먼저 이상이 생긴 것은 시야. 멀쩡하던 시야가 갑자기 파스텔 톤 색채로 물들었다.

 시야에 든 인간의 형상이 고정성을 잃고 일렁이다가, 이내 주위 배경에 섞여들어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비단 인간뿐 아니라 주위 지형지물까지 모두.

“…….”

 레인은 우선 기감으로 주위를 인지, 신형을 뒤로 물렸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이번엔 청각에 이상이 생겼다. 마치 벌레가 날아다니는 듯한 이명이 울리며, 주위의 소리가 조금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은 촉각에 이상이 왔다. 분명 검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그 검을 들고 있는 감각이 소실되었다. 기감으로 미뤄 보아 분명 검은 제자리에 있음에도.

 입고 있는 옷이 피부와 마찰을 일으키자, 기이할 정도의 쓰라림이 느껴졌다. 어떤 이유에선지 신발로부턴 뼛속까지 시린 냉기가 전해져 왔고, 머리를 고정시킨 비녀로부턴 살이 타들어 갈 것만 같은 열기가 전해져 왔다.

 끝내 기감까지 비틀어졌다. 거리감이 무뎌지고, 걸려드는 감각이 아군의 것인지 적군의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게 되었다. 갖가지 왜곡된 정보가 쉴 새 없이 전해져오자 두통이 일 지경이었다.

‘이게 르우벤이 말했던 그건가. 감각이 제멋대로 뒤틀리고 어그러진다는.’

 레인이 내력을 순환시키며 컨디션을 되돌리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는 얻지 못했다. 회복된 감각이 금세 다시 뭉그러져 버렸다.

 시야가 되돌아오면 청각과 촉각, 기감이 말썽을 일으켰다. 거리감을 회복하면 시각과 청각이 문제를 일으켰다. 한 가지 감각이 되돌아오면 또 다른 감각이 문제를 일으키는 식이었다.

“쯧.”

 레인이 혀를 찼다.

 이전에, 르우벤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프레퍼에는 ‘리메라’라는 녀석이 있는데, 난 그 녀석이 어떤 면에선 놈들의 보스보다도 더 껄끄러워.]

[그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선, 그 녀석의 ‘영역’을 어그러뜨릴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영역’을 구축할 수 있는 마법사가 동원되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아.]

[말하자면 그 녀석은 무인의 천적이야. 보통 현자는 검성에게 약하기 마련인데, 이 여자만큼은 반대지. ‘상성’이라는 게 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할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레인은 머리를 굴리며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검격을 어떻게든 피해냈다. 마구 뒤틀려 전해져 오는 정보를 어떻게든 걸러서 받아들이며, 오로지 그 자신의 경험과 육감에 의지해 쉼 없이 신형을 날렸다.

 핏!

 잘생긴 얼굴에 얇은 선이 그어졌다. 선을 따라 핏방울이 맺히더니 흘러내렸다.

‘이거 열 받네.’

 레인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이렇게 답답한 기분을 느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현생’에는, 이런 상황을 맞이할 만한 일이 지금까지 없었다.

“하, 시X.”

 한동안 속으로 화를 삼키던 레인이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냥 ‘하던 대로’ 하고 말지. 도저히 답답해서 못 살겠다. 역시 이런 소극적인 자세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발목이 붙들려선 안 된다. 이쪽이 위험한 것은 일단 그렇다 치고, 무력대가 입을 피해가 급격히 커지게 된다.

 레인이 단숨에 내력을 폭발시켰다. 찰나의 시간 동안 정상으로 돌아온 기감을 의지해 신형을 띄우고, 곧바로 천근추로 대지에 떨어져 내렸다. 발끝에 밀집되는 막대한 기운.

 콰아아아아앙!

 지면과 충돌한 지점을 중심으로 거대한 균열이 번져 나갔다. 주위 도로와 건물이 마구 부서져 나갔지만, 레인은 개의치 않고 재차 감각을 총동원에 모종의 기척을 찾았다.

 그리고, 이내 한쪽을 향해 이기어검을 날리며 소리쳤다.

“거기냐!”

 * * *

 여인, 리메라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먹혀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저 사내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결국 목숨을 잃는 수밖에 도리가 없을 터였다.

 그녀가 가진 힘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바로 ‘환혹’.

 괜히 그녀가 그렇게나 파격적인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대의 시선을, 주의를 자신에게로 붙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래야 마법을 발현하기가 더 수월해지니까.

 아무래도 상대의 경지가 경지인지라 끊임없이 마법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뿐.

 이미 완벽하게 발현된 마법을 벗어날 방법 따위, 그에겐 없었다. 리메라는 확신했다.

 저 정도로 컨디션이 엉망으로 망가진 상대다. 반란군의 실력자들을 쏟아부으면 결국 무너지고 말겠지. 리메라가 사내를 응시하며 입가에 고혹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그때였다.

“응?”

 그런 그녀의 그런 생각을 비웃듯, 사내가 갑자기 신형을 띄우더니 강렬한 충격파를 퍼뜨리며 대지에 충돌했다. 도로는 물론 주위 건축물들이 잔뜩 말려들어 바스러지고 무너져 내렸다.

 후웅.

 막대한 파장이 주위를 휩쓸었다. 그 바람에, 리메라의 머리칼이 살짝 흔들렸다.

“거기냐!”

 그리고, 갑작스레 이기어검이 진로상에 놓인 모든 것들을 꿰뚫고 그녀의 얼굴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촤악!

 리메라가 헛숨을 들이켰다. 설마 이쪽의 위치를 간파당했다는 말인가? 대체 어떻게?

 당황한 그녀의 귓가에, 사내가 얼굴을 팍 찌푸리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아닌가? 뭔가 이쪽인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간파당한 게 아니었나? 단순히 그냥 찔러보는 공격에 불과했단 말인가?

 그녀가 심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생각과 동시에 몸도 움직였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최대한 떨어질 심산이었다.

 그런 와중, 사내가 다시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쪽인가?”

 사내가 갑자기 그림자 속에서 사슬낫을 꺼내 들더니, 그것을 최대 길이까지 늘려 강기를 덧씌웠다. 그리곤 정확히 리메라가 있는 방향을 향해 그것을 휘둘렀다.

 방향에 있는 모든 것들이 갈려 나갔다. 지형지물도, 건축물도, 반란군도, 심지어 황제를 본떠 제작된 청동 조각상마저도!

 쾅! 쾅! 콰르르르! 콰드드득! 콰르르르르륵! 콰앙!

“꺄악!?”

 마구 휘어지고 뒤틀리는 사슬의 궤적에 따라 주위에 위치한 모든 것들이 파괴되어 갔다. 리메라가 비명을 내지르며 가까스로 공격들을 피해냈다.

“이상하군. 분명 이쪽인 것 같았는데.”

 여전히 감각이 돌아오지 않은 탓인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사내.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틈을 노리고 달려든 반란군들을 향해 의형강기를 뿌렸다.

 감각으로 그들의 접근을 느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이 타이밍에 달려들 것이라 미리 예측한 것이었다.

‘대, 대체 뭐야? 내 위치를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리메라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일단 또다시 위치를 옮겼다.

 그녀는 몰랐다. 알 도리가 없었다. 상대가 전생에 대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따위, 그녀가 알 게 뭐란 말인가.

 분명 그녀는 가진 힘의 특수성 덕분에 상성상 사내와의 전투에 유리했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가 그 ‘상성’이라는 개념을 수없이 깨부숴온 괴물 중의 괴물이라는 것.

 사내, 레인은 이와 같은 상황을 맞이해본 경험이 굉장히 많았다. ‘현생’이 아닌 ‘전생’에. 그를 죽이는 데 힘을 보탠 진법가가 하나둘이 아니었으니 오죽했겠는가.

 그렇게 온갖 진법으로 움직임에 제약이 생겼을 때, 그가 항상 의지한 것은 별다른 게 아니었다. 그가 의지한 것은 수없는 전투를 치르며 쌓아 올린 압도적인 경험치, 그리고 오감, 육감과는 또 다른 그 자신의 직감이었다.

 레인은 정말로 리메라의 위치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리메라의 생각처럼 그녀가 위치한 곳을 정확히 인지하고 공격을 날린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냥 직감대로 공격을 날린 것에 불과했다. 다만 뛰어나다 못해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그 직감이, 너무나도 정확했을 뿐. 그뿐인 이야기였다.

“후읍.”

 레인이 진각을 밟았다. 천마군림보.

 콰아아아아앙!

 전심전력을 다한 그 진각에, 단숨에 주위 대지가 통째로 터져 나갔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일대가 크게 흔들렸다. 레인을 향해 달려들던 반란군 다수가 일제히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레인이 연속해서 진각을 밟았다. 원하는 느낌을 찾지 못했기에.

 천마군림보. 천마군림보. 천마군림보.

 쾅! 콰앙! 콰아아아앙!

 대지가 흔들리는 수준이 아니라 거대한 크레이터마저 생겨났다. 주위 기물들이 또 잔뜩 말려들어 부서지고 말았음은 물론이다.

 흠칫.

 무언가 감을 잡은 레인이 이번엔 곧장 다른 무기를 꺼내 들었다. 무려 ‘비기스트’를.

“이번엔 확실하게 끝내주지.”

 바로 그다음 순간, 레인은 시가전에서 절대 벌이지 말아야 할 짓을 태연히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비기스트에 검강을 실어 휘둘러버린 것이다.

“꺄아아악!”

“우아아아아!”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경로에 위치한 모든 것들이 갈려 나갔다. 다행히 시민들은 모두 대피한 상태였지만, 막대한 재산 피해가 일어났다. 반란군 측에서 입은 피해야 말할 것도 없었고.

 리메라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치다 돌부리에 발이 걸려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녀가 아예 바닥에 몸을 밀착하다시피 뉘인 채로 자신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거대한 검강을 바라보았다.

“…….”

 뭐라 말이 나오질 않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이곳 알테라 시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인물은 반란군도, 프레퍼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레인이었다.

 * * *

 오래지 않아 전쟁이 마무리되었다.

 프레퍼는 조금씩 조금씩 전력을 빼내는가 싶더니, 결국 저들끼리만 비행형 몬스터를 이용해 모두 탈출해 버렸다, 리메라는 끝내 레인을 제거하지 못하고 휘하 테이머와 합류해 모습을 감췄다.

 반란군의 경우엔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방어 측에서 웬만해선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초일류 이상의 고위 전력은 조금 많이 살아남았다. 각성자들이 일부러 살려둔 이들이 꽤 되었다. 이유야 물론 전력 확충을 위해서였다.

 끝까지 가망이 없겠다 싶은 이들은 결국 내쳐지게 되겠지만.

“…….”

 외성 바깥에서 제파스와의 싸움을 마치고 돌아온 로엘은, 도시 동부에 일어난 참상을 바라보며 황망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가 곧바로 레인을 찾아가 따졌다.

“뭐라 변명할 말이 있으면 좀 해 보시지.”

“…….”

 레인이 슬쩍 로엘의 시선을 피했다. 로엘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시부흥계획의 실행을 위해 쏟아부어야 할 돈의 단위가 확 커지겠군.’

 하여간에 이 웬수는 절제라는 걸 모른다.

“됐다. 피곤할 텐데, 일단 가서 쉬어.”

“그래.”

 로엘의 축객령에 레인이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벗어났다. 그 뒷모습이 굉장히 얄밉다고, 로엘은 생각했다.

“후우.”

 로엘은 우선 마음을 추슬렀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나중으로 미뤄둬도 충분했다. 아직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것이 아니니까.

 현재 프레퍼의 조직원들은 각자 공중 병단을 이용해 뿔뿔이 흩어져 비밀 은신처로 향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로엘은 그들이 그대로 달아나게 해줄 생각 따위 없었다.

‘프레퍼의 조직원들이 이곳에서 출발해 향할 만한 비밀 거점은 총 여섯.’

 정확히는 그럴 만한 거점을 일부러 딱 여섯 군데 ‘남겨’ 뒀다. 놈들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겠지만.

 놈들도, 그들을 태운 비행형 몬스터들도 지쳤을 테니 아마 오늘 하루 정도는 각 거점에 들러 휴식을 취하고 이동하려 할 터였다. 그때가 기회였다.

‘놈들이 이동하느라 체력을 축내는 동안 우리는 휴식을 취한다. 그러다 놈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각 거점에 도착할 즈음에 맞춰, 공간 마법을 통해 이동해 단숨에 각개격파한다.’

 애초부터, 이번 전쟁의 최종 목적은 프레퍼를 대륙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 목적을 완수할 때가 되었다.

 오늘 내로 모든 일이 마무리될 것이다.

 이젠 정말로, 끝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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