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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화. 시가전(4) (195/249)
  •  196화. 시가전(4)

     지원군이 공간 마법을 타고 도시에 도착했다. 장소는 도시의 중심, 영주관.

    “왔군.”

     마침 영주를 도와 영주관을 지키고 있던 카트란이 그들을 맞이했다.

    “바로 움직이도록. 우선 네 개 군단으로 나눈다.”

     영주관의 방비는 완벽했다. 안 그래도 영지 자체의 병력이 잔뜩 집중되었는데 카트란까지 가세했으니까. 지원군은 이곳이 아닌 영지 사방으로 지원을 가야 했다.

    “로열 나이츠는 도시 남 측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르우벤과 합류해라.”

    “예!”

    “로엘 직속 전투팀은 인원을 반으로 갈라 각각 북측과 서 측을 지원 가도록 한다. 단, 상대적으로 서 측의 전력이 부족하니 적룡대를 비롯한 상위 전력은 서 측으로 가는 무리에 합류하도록.”

    “나도 서 측으로 가면 되겠지?”

     이번 작전에서 전투팀과 함께 움직이게 된 플로라였다. 그녀가 손을 들고 질문하자 카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인 휘하 무력대는 동 측으로 가라. 그곳에서 레인과 합류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흩어지는 군단. 하나하나가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특수병들이 일제히 도시를 달려 나갔다.

    “크악!”

    “이, 이것들은 또 뭐야!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냐!”

     그들이 향하는 경로에 있던 반란군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안 그래도 전력이 크게 밀리는데 카트란의 지원까지 더해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결계가 깨어지기까지 대충 1시간 정도 남았나.”

     카트란이 사방으로 진군하는 병력을 뒤로하고 결계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기까진 충분한 시간이군.”

     * * *

     한편, 도시 동부에서 한참 반란군과 전투를 벌이던 레인은 위화감을 느꼈다.

    ‘동부에 몰린 전력이 좀 적은 것 같은데.’

    “괴물 자식!”

    “저놈은 지치지도 않는 건가!”

     촤아악!

     치를 떨며 공격을 가해오는 적들을 한 차례 훑어내며, 레인이 생각을 이어갔다.

    ‘그러고 보니, 이놈들 뭔가 움직임이 조금 소극적인 것도 같고.’

     딱히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거나, 시간을 끌려고 한다거나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느낌에 가까웠다.

    ‘지원이라도 기다리고 있는 건가?’

     레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적들의 얼굴을 훑었다. 그리고 이내 한 가지 사실을 알아챘다.

     놈들의 고개가 간혹 한 번씩 뒤쪽으로 돌아가곤 했다. 정확한 방향은, 이제는 무너져 내린 외성벽 쪽이었다.

    “…….”

     일단 이질감이 한 번 느껴지면 그것이 사소해 보일지라도 절대 무시하지 않는 레인이다. 그는 곧바로 귀걸이의 통신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로엘.]

     * * *

    “왜?”

     로엘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 자신이 제작한 비행형 언데드, ‘본 와이번’의 등 위에 탑승한 채로.

    [동쪽 성벽 바깥에 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로엘은 살짝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이내 피식,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알아.”

     여전히 감이 좋은 녀석이었다. 그걸 눈치챈 건가.

    [뭐?]

    “내가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거든.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쩐지. 왜 지금까지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나 했더니, 뭔가 꾸미고 있구나. 너.]

    “하하.”

    [그럼 알아서 처리할 거라 믿는다.]

    “그래.”

     뚝.

     로엘이 통신을 끊었다. 그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전방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많기도 하군.”

     캬아아악!

     퀘에에에에에!

     수없이 많은 비행형 몬스터가 허공을 가로질러 무언가를 나르고 있는 광경이 로엘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번 시가전에서, 반란군 측은 비행형 몬스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공중 병단을 오로지 ‘운송’에만 활용했다.

     왜 그랬을까?

     공중 병단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전력이다. 그런데 반란군은 병력의 운송을 마치자마자 공중 병단을 뒤로 물려버렸다. 대체 왜?

     해답은 간단하다. 공중 병단을 추가로 활용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전부터 정말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마주하게 되는군.”

     로엘이 아공간에서 가면을 꺼내 착용했다. 그리곤 가면 아래서 섬뜩하게 웃었다.

     비행형 몬스터들이 일사불란하게 나르고 있는 것들의 정체는, 바로 ‘뼈 무더기’였다.

     * * *

    “이걸로 모두 마무리된 것 같으니, 우린 슬슬 도시 측 전투에 가세하도록 하겠다.”

    “그러던지.”

     로브를 깊숙이 눌러쓴 사내의 선언에 주근깨 청년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청년의 태도에 로브인의 뒤에 선 마법사들이 발끈했으나, 로브인이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시켰다.

    “그럼, 잠시 뒤에 다시 보지.”

     로브인, 프레퍼의 최고 간부이면서 ‘보스’의 두 직계 제자 중 하나인 사내, ‘로빈’이 신형을 돌렸다. 그런 그를 휘하 테이머들이 뒤따랐다.

    “흥.”

     마찬가지로 프레퍼의 최고 간부인 흑마법사 ‘제파스’가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뼈 무더기에 마법을 발현했다.

    <사자 소환(Summon the dead)>.

    <사자 소환(Summon the dead)>.

    <사자 소환(Summon the dead)>.

     모든 준비가 이미 갖춰진 후였기에, 금세 언데드의 대군이 완성되었다.

     그 개체 수만 해도 수천. 전쟁의 판도를 통째로 뒤엎을 수 있는 숫자였다.

     제파스의 영역 지배가 일대를 뒤덮었다. 불사의 군대가 진군을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쿵!

     마치 오랜 시간 훈련된 인간의 군대와도 같이 오와 열을 갖추고 규칙적인 발걸음으로 진군하는 언데드의 대군.

     그중 대부분이 하위 언데드라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율의 이야기. 고위 언데드의 개체 수도 절대 적지 않았다.

     고위 언데드가 다수 배치된 진형의 중앙. 제파스는 대형 언데드 넷이 함께 짊어진 가마 위에 비스듬히 자리 잡고 앉았다. 그리곤 무료한 눈빛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전형적인 골방지기 마법사의 기질을 지닌 그였다. 그는 이런 전쟁 따위엔 아무런 흥미도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빠르게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연구에나 매진하고 싶다, 정도였다.

    “······뭐야?”

     그런 그의 나태함과 무료함 가득한 눈빛은 이내 깨어지고 말았다. 눈앞에 들어온 믿지 못할 광경 때문에.

     눈앞에 위치한 사내의 손에 붙들려 의식을 잃고 있는 로브인. 그는 아까 전 먼저 움직이겠다며 수하들을 이끌고 사라졌던 로빈이 분명했다.

    ‘대체 어떻게?’

     로빈은 저렇게 쉽게 누군가에게 붙잡힐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사념 마법을 테이밍 계열 마법에 접목시켜 다수의 몬스터를 부리는 인물. 상당한 강자이기도 했지만, 가진 힘의 특수성은 훨씬 더했다.

     그러나 제파스가 그토록 놀란 진정한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를 정말로 놀라게 한 것은, 그의 군대를 가로막고 있는 수십의 언데드 무리였다.

    ‘어떻게 저런 말도 안 되는 언데드를 제작한 거냐!’

     수십의 언데드. 언뜻 듣기엔 굉장히 초라하게 느껴지는 숫자다. 수천에 달하는 제파스의 군대와는 그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그 규모의 차이로 인한 우월감을, 제파스는 조금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 원인은 상대측 진영 후위에 자리 잡은 초거대 언데드 세 개체.

     동체의 크기만도 각각 수십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그 세 언데드가 이쪽을 향해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었다. 그 아가리에 밀집된 거대하고 흉폭한 마력의 흐름이, 제파스를 전율케 했다.

    “······.”

     그가 순간적으로 무슨 행동을 취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살짝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콰르르르! 콰르르르르릉!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세 줄기의 재앙이 쏟아져 나와, 언데드 대군을 집어삼켰다.

     * * *

    “운이 좋았네.”

     로엘은 레일건에 의해 단숨에 삼면이 녹아내린 언데드 대군의 진형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잡을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풀릴 줄이야.”

     로엘이 이 자리에 온 것은 어디까지나 ‘제파스’를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로빈’의 생포는 본래 조금 나중에 이뤄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제파스를 잡기도 전에 로빈부터 잡게 되었다.

     운 좋게도 기습이 제대로 통했다. 주위 테이머들은 제쳐 두고 오로지 로빈만을 노려 기습을 가했는데, 그 작전이 주효했다.

    ‘비행형 언데드를 하나라도 제작해둔 게 이런 결과로 이어질 줄이야.’

     로엘은 지난 시간 동안 비행형 언데드의 제작에 많은 시간과 자본, 노력을 투자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 노력은 보답받지 못했다.

     언데드의 제작, 그리고 현대 병기와의 조합까지는 어떻게든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는 비행형 언데드의 통제 그 자체였다.

     도저히 복수의 비행형 언데드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 무리 없이 활용 가능한 비행형 언데드는 한 개체밖에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낭패였다. 프레퍼의 뒤를 잇는 제2의 공중 병단 창설을 꿈꾸던 로엘은 정말로 오랜만에 현실의 벽에 좌절해야만 했다. 막연히 ‘게르반의 흑마법이니 충분히 가능하겠지’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그런데 그 노력이 의외의 곳에서 보상을 받았다. 노력의 결과가 늘 풍족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보상이 따르긴 한다는 로엘의 지론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자, 이제.”

     로엘이 시선을 돌려 얼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는 제파스를 바라보았다.

    “메인 디쉬를 먹어 볼까.”

     전부터 제파스와는 대면하고 싶었다. 그 또한 게르반의 전인이 아닌가. 서로 대화를, 정보를 주고받다 보면 얻는 것이 많을지도 모른다고 매번 생각해왔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그와의 교류(?)를 통해 다수의 비행형 언데드를 통제할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역사서에 기록되길 게르반은 비행형 언데드를 대거 부렸다고 하니, 그것도 아주 헛된 희망은 아니리라.

     어떻게든 정신을 차린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이성을 잃어버린 것인지.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지르며 언데드 대군을 진군시키는 제파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로엘은 마충과 헬 하운드를 전진시켜 대군의 진군을 지연시키고, 베히모스에게 제2격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압도적인 마력의 파장. 베히모스를 중심으로 막대한 에너지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그 기색을 느꼈는지, 제파스의 얼굴색이 시시각각 변화했다.

     로엘이 가면 아래서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거대한 세 빛의 기둥이, 재차 언데드 대군의 진형을 크게 휩쓸었다.

     * * *

     이번 알테라 시 공방전에 프레퍼는 사활을 걸었다. 당연하게도, 최고 간부 또한 대거 동원되었다. 이미 절반 이상이 제국에 당해버리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그들 하나하나는 강대한 전력이었다.

     그중에는 조직의 실질적인 2인자라는 평가를 받는 여인, ‘리메라’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검은 머리칼과 눈동자. 살결이 대부분 노출될 정도로 헐벗은 복장. 수없이 착용한 번쩍이는 장신구가 굉장히 특별한 매력을 자아내는 여인이었다.

    ‘이 전쟁은 틀렸다.’

     그녀는 전황을 지켜보며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분하지만, 이번 전쟁은 패배가 확실시되었다.

     솔직히 패배의 기미는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쉽사리 후퇴 명령을 내리지 못한 것은, 이번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 정말로 조직에 미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 돼. 오기로 밀어붙이기엔 이미 상황이 너무 기울었다.’

     아무리 상황이 절망적이라도 완전히 포기해선 안 된다. 살릴 수 있는 자들은 살려야 한다. 그래야 어떻게든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그녀는 주위 조직원들에게 모종의 지시를 내렸다. 그녀의 지시는 때마침 전쟁에 가세한 테이머들을 통해 대부분의 조직원에게 전달되었다.

     이내 프레퍼의 조직원들이 비행형 몬스터를 이용해 하나둘 전쟁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함께해온 반란군을 도시에 그대로 남겨두고서.

     한편, 리메라는 결연한 얼굴로 모종의 결심을 했다.

    ‘이대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어. 하다못해 놈들에게 어느 정도 타격을 입혀야 해.’

     그녀의 시선이 한 사내에게로 고정되었다. 검 한 자루를 손에 쥔 채 신들린 활약을 펼치고 있는, 특이한 복장의 사내였다.

    ‘저자는 이전에 조직의 일에 크게 훼방을 놨다던 ‘성자’가 분명하다. 그가 제국의 최종비밀병기라는 설이 사실이었던 모양이야.’

     그녀의 눈이 매서워졌다.

    ‘저자를 죽이면, 분명 제국에 큰 타격이 가겠지?’

     생각을 정리한 그녀가 사내를 향해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그녀가 가진 힘은, ‘무인’을 상대하는 데 있어 최고의 상성을 자랑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설사 상대가 검존일지라도 그 상대를 거꾸러뜨릴 자신이, 그녀에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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