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시가전(3)
오래지 않아 도시 동쪽은 난장판이 되었다.
레인이라는 슈퍼 플레이어의 등장으로 인해 한동안 반란군의 공세가 주춤하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습으로 인한 성과에 가까웠다. 오래지 않아 놈들은 진형을 다시 갖춰 진군해왔다.
아무리 레인이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여 놈들의 발걸음을 지연시킨다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개인. 도시 내부로 침입해 들어오는 모든 병력을 막을 수는 없었다.
레인을 우회해 도시에 진입한 비행형 몬스터들이 도시 동부에 하나둘 병력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반란군 소속 실력자들. 프레퍼 소속 마법사들. 대, 중, 소형을 넘나드는 골렘들. 테이머에 의해 통제되는 대형 몬스터들까지. 대군은 아니지만, 그 병력의 질이 굉장히 높았다.
이번 전쟁에는 공격 측도 방어 측도 일반병을 동원하지 않았다.
반란군 측은 비행형 몬스터에 탑승시켜 병력을 날라야 했기에. 그리고 각성자 측은 놈들을 함정에 끌어들이기 위해 병력을 제한했기에.
전쟁의 양상은 필연적으로 엘리트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지금 시점에선 이쪽의 전력이 열세지.’
레인은 이쪽을 우회해 이곳저곳에 내려서는 병력들을 힐끗 돌아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래도 적들의 방심을 이끌어 내기 위해 여러 조취를 취하다 보니, 이쪽의 병력이 열세였다. 병력이 있다고 해도 시민들이 대피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놈들과 대규모 충돌을 일으키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우선 시민들이 완전히 대피하기까지 시간을 버는 데에만 집중한다. 반격은 그 뒤다.’
레인은 그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그를 우회해서 내려서는 병력이 있다는 말은, 그에게 붙잡혀 있는 병력 또한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레인은 최대한 전면에서 날뛰어 놈들의 시선을 끌었다.
‘뒤로 빠져나간 병력은 알아서 잘 막겠지. 카트란도 이쪽으로 오는 모양이고.’
레인이 사슬낫을 거칠게 풀어 휘둘렀다. 자신을 붙들고 있어야 병력이 수월하게 내려설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인지, 초인 하나가 곧장 이쪽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뜻대로 되지 않을 거다.”
레인이 핫, 하고 웃으며 중얼거렸다.
경지가 올랐고, 가진 힘을 증폭시켜 줄 아티펙트도 충분히 갖췄다. 지금의 그가 겨우 초인 하나 정도에 애를 먹을 일은 없었다.
* * *
우우웅!
동부 첨탑이 가동되었다. 거대한 결계가 넓은 공간을 뒤덮었다.
빠르게 그 영역 내로 대피한 시민들이 한숨을 내뱉었다.
“뭐, 뭐야!”
“아직 우리 못 들어갔어!”
“열어줘! 놈들이 온다고!”
물론 모든 시민이 제때 대피하지는 못했다.
단숨에 혼란에 빠져드는 군중. 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굉장히 쉽게 이성을 잃는다. 순식간에 대열이 붕괴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들으라! 나는 현 황제의 여동생이자 공주의 신분을 지닌 이레닐 카이엔이다!]
확성 아티펙트를 통해 울려 퍼지는 청아한 음성. 군중의 혼란이 일시적으로 가라앉았다.
[대열을 유지해라! 너희는 버림받은 것이 아니다! 이곳에 ‘공간의 현자’의 제자가 있다! 그녀가 너희를 결계 내부로 들여보내 줄 것이다!]
현 황제의 친혈육이라는 발언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단순히 말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동아줄이 절실한 시민들에게 약간의 안정감과 신뢰감을 부여했다.
[갑작스러운 외적의 침입에 당황스럽겠지만, 이쪽에는 놈들을 물리칠 충분한 전력이 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말고 차례차례 결계 내부로 들어서라!]
[너희를 노리는 외적은 ‘우리’가 확실하게 막아내 줄 테니 조바심 내지 마라! 확실히 지켜내 보이겠다!]
우우우우웅!
그와 동시에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다섯 개의 통로. 공간 마법으로 생성된 이 통로는 결계 내부와 곧바로 이어지게 되어 있었다.
이어서 로엘이 군중에 미리 심어둔 선동꾼들이, 그리고 우락부락한 용병들이 군중을 향해 외침을 뱉어냈다. 그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차례차례 들어간다!”
“나 혼자 살겠다고 멋대로 대열을 무너뜨리면 다 죽는다! 어이 너 이 새끼야! 줄 서라고!”
빠르게 안정화되어가는 군중. 어디까지나 적이 몰아닥치기 직전까지만 유지될 안정이지만, 어쨌든 한숨은 돌렸다.
카트란이 첨탑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이레닐에게 말했다.
“곧바로 내려간다. 네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고 시민들을 통제하는 데 힘쓰는 모습을 보이면 조금 더 오래 안정이 유지되겠지.”
그는 이전과 다르게 이레닐을 거침없이 하대했다. 그런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이, 이야기가 다르잖아요. 제 안전은 확실하게 지켜주시겠다고…….”
“네가 다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옆에 있는 한.”
“…….”
아니, 그 말만 믿고 나보고 저 아래로 내려가라고?
그녀는 그렇게 따지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카트란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이 너무나도 거대했기에, 차마 따지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으으. 그 오라비가 내게 평범한 호위를 붙였을 리가 없다는 걸 알아챘어야 했는데.’
그녀는 마지못해 카트란을 따라나섰다. 엘리제 파르테인이 그들이 바깥으로 향할 수 있도록 통로를 생성해 주었다.
통로를 타고 바깥으로 나선 카트란과 이레닐은 곧바로 군중을 통제했다. 위험한 장소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 시민을 돕는 데 힘쓰는 황족의 모습에 군중이 크게 감동했다.
‘오는군.’
카트란이 눈을 가늘게 만들었다. 예정된 일이라고 할지, 군중이 모두 결계 내로 들어서기 전에 적이 당도했다.
가장 먼저 몰려든 이들은 아무래도 무인들이었다. 준족이 빠른 순서대로 이곳에 당도하는 것일 테지.
기껏 안정을 찾아가려던 시민들이 다시 혼란에 빠질 기미를 보았다.
이레닐이 필사적으로 안심하라고, 적들은 이쪽에서 처리할 거라고 그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대열의 후미에 위치한 자들은 그녀의 설득에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꺄아아악!”
“오, 오지마!”
이내, 적들이 대열의 후미 바로 근처까지 다다랐다. 그들이 앞을 가로막는 방해물을 치우기 위해 각자 무기를 높게 쳐들었다.
그리고.
푹! 푹! 푹! 촤악! 콰득!
저마다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자해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 건가?”
대열의 후미에서 시민들을 독려하던 이레닐은 보았다. 저들이 자해하기 직전, 카트란이 그들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였음을.
‘말도 안 되게 강하다. 거기에, 그야말로 시민들을 보호하기에 최적화된 능력이다.’
카트란이 괜히 시민들을 보호하는 인력으로 배정된 게 아니었다.
그의 능력은 적과 아군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적과 아군이 아무리 뒤엉켜 있어도, 그 자신이 적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기만 한다면 적만을 골라 척살하는 게 가능하다.
게다가 그 힘은 격하의 존재를 학살하는 데 굉장히 뛰어난 효율을 보이기까지 한다. 레인이 적들을 압도하는 슈퍼 플레이어라면, 그는 아군을 ‘수호’하는 전투의 스페셜리스트라고 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는 최근에 벽을 넘어서기까지 했다.
“이, 이게 무슨! 컥!”
“왜 이래! 나는 아군이라고! 크악!”
시민들에게 해를 입히기는커녕, 그 스스로 자해하거나 동료를 공격해 들어가는 적들.
한동안 그 이해 불가한 상황이 지속되던 중, 지금의 상황이 카트란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눈치챈 초강자가 등장했다.
“네가 이 상황이 벌어지게 한 원흉이구나!”
그는 온몸에 기막을 덧씌우고 카트란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사내로 인해 카트란의 ‘영역’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카트란이 그를 힐끗 돌아보는가 싶더니, 마치 제지하듯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콰과과곽!
사내의 몸에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완전히 움직임을 멈추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안 됐지만, 내 경지는 그렇게 얕지 않다!”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카트란에게 접근, 검을 휘둘렀다. 접근전에 약한 마법사 따위 이 일격으로 확실하게 죽일 수 있으리라!
카앙!
그러나, 그의 검은 카트란의 손에 들린 검에 의해 가볍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레인이 초인이었을 무렵, 그는 카트란과 대련을 마치고 돌아와 이런 말을 한 바가 있었다.
[그 녀석의 경지가 한 단계만 더 높았다면, 내가 위험할 뻔했다.]
그 말은 절대 농담도, 과장도 아니었다.
“크윽!”
카트란의 능력은 상대의 힘을 제한한다. 반면 그 자신의 힘은 강화한다. 그렇기에 그를 쓰러뜨리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그보다 한참 격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카트란과 검을 맞대고 있는 이 사내의 경우엔 그 기준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푸욱! 촤악! 촥! 카드드득!
카트란은 한마디 말도 없이 사내를 가볍게 요리했다. 오래지 않아 벌집이 되어버린 사내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
카트란은 별다른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왕이면 골렘까지 이곳에 도달하기 전에 대피가 완료되면 좋을 텐데.’
* * *
전쟁은 오래지 않아 도시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로엘은 수시로 전해져 오는 보고를 통해 정보를 취합, 머릿속으로 전황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쉴 새 없이 일행에게 지시를 내렸다.
엘리제 파르테인은 동쪽이 안정화된 이후, 로엘이 일러준 순서대로 각 첨탑을 순회하며 일행을 지원했다. 카트란과 이레닐이 그녀와 함께 움직였다.
르우벤은 남측에 몰려드는 전력을 상대했다. 마검의 힘을 끌어내 폭발적인 출력을 낼 수 있게 된 그는, 마치 레인과도 같은 슈퍼 플레이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밀리아의 경우엔 도시 서 측을 맡았다. 그런 그녀를 레인의 두 제자가 지원했다. 그녀들은 알지 못했지만, 로엘의 새로운 전투팀 ‘트레이터스’ 또한 암중에서 그녀들을 도왔다.
도시 북측은 바르바젠이 맡았다. 그는 제국의 비밀전력으로 감춰 뒀던 검존 사내와 함께 압도적인 힘으로 적들을 찍어 눌러 펜타트리움 아카데미를 지켜냈다.
도시 중앙의 경우엔 영주 휘하 기사단을 비롯한 도시 자체의 전력이 지켜냈다.
본래라면 분산되었어야 할 전력을 각성자들 덕분에 중앙 지역에만 집중시킬 수 있었기에, 그들 또한 대부분의 시민을 결계 내부에 보호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모든 시민이 대피를 완료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모두를 구해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워낙에 각성자들의 사전 준비가 철저했고, 로엘의 지시가 제때 정확히 떨어졌기에 대부분은 구해낼 수 있었다.
다만 지켜낸 것은 그들의 목숨뿐. 재산적인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었다. 그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시가전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승리하든 패배하든 방어 측에선 어마어마한 금전적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자 그럼 이제.”
귀걸이를 통해 모든 대피 완료 보고를 전해 들은 로엘이, 스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반격의 시간이다.”
* * *
엘리제 파르테인이 움직였다.
이번 시가전의 핵심은 다름 아닌 그녀였다.
그녀는 공간 마법을 익혔으면서도 로카인과는 달리 별다른 정보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었다.
당연하게도, 아직 수행 중이라 알려진 그녀의 행적에 큰 관심을 가진 이는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로엘은 손쉽게 그녀를 비밀전력으로 초빙해 알테라 시에 배치시킬 수 있었다.
그녀는 공간 이동을 통해 옆 영지인 ‘발티움’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농업 중심 영지로, 로엘이 대량의 토지를 매입해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 세 자릿수에 달하는 인원이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군이 아니라 겨우 수백의 인원에 불과한 이유는 그 정도가 엘리제가 전송할 수 있는 한계 숫자이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이 일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역할은 끝이었다.
공간 마법이라는 것은 보다 멀리 떨어진 곳에 무언가를 전송할수록 힘의 소모율이 극심해진다. 그것을 이용한 대규모 군대의 이동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나마 수백의 인원이라도 이동시킬 수 있는 것도 르우벤이 그녀에게 넘겨준 증폭 계열 아티펙트 덕분이었다. 이곳 영지가 알테라 시 바로 옆 영지인 덕분이기도 했고.
대신, 그 수백의 인원은 하나하나가 강력한 전력이었다. 그 구성원을 설명하자면 이러했다.
‘적룡대’를 비롯한 로엘 직속 최상위 전투팀들. 총원 100명.
레인과 그의 제자들로부터 무공을 사사한 무력대원 중 가장 뛰어난 50명.
마지막으로, 르우벤이 지난 3년 동안 지속적으로 끌어모은 옛 동료들에게 ‘왕의 유적’에서 습득한 유물들을 지급해 탄생시킨 ‘로열 나이츠(Royal knight)’. 총원 50명.
우우우웅!
엘리제가 거대한 규모의 공간문을 열었다. 총원 200에 달하는 고위 전력이 일제히 알테라 시로 진입해 들어갔다.
로엘의 말마따나, 반격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