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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화. 시가전(2) (193/249)

 194화. 시가전(2)

 그날도 리나와 로난은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단짝처럼 늘 붙어 다녔는데, 이번 축제 기간 동안 도시 전체를 순회하며 먹거리와 볼거리를 즐기기로 약속했다.

 사실 각성자들이 워낙 삭막한 학창 생활을 구가하고 있을 뿐이지, 보통의 학생들이라면 이 정도 유흥은 즐긴다. 바로 직전까지 학기말 시험을 치르느라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그런데, 그날은 어째 일진이 좋지 못했다. 그들이 도시 동쪽의 한 거리를 걷고 있던 그때.

[시민 여러분들은 지금 당장 대피를 시작해 주십시오!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갑자기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확성음.

 캬아아아아악!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비행형 몬스터와 대형 골렘.

“으아악!”

“도, 도망쳐!”

 패닉에 빠져 달아나는 시민들.

 리나와 로난 두 사람은 크게 당황했다.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설상가상으로 와이번이 두 사람의 머리 위쪽으로 대형 골렘을 떨어뜨렸다. 달아나고자 해도 사방이 시민들로 가로막혀 피할 공간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

“리나! 정령술로 방어막을 만들어줘! 잠시만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으면 돼!”

 로난은 말과 동시에 리나의 허리를 들쳐 메었다. 그리곤 진각을 밟았다.

 쿠드드드득!

 발목에 새겨진 일족 특유의 주술 문신이 빛을 발했다. 지면을 옅게 파고 들어간 발끝에 막대한 힘이 응축되었다.

‘일단 어떻게든 이 영역을 벗어난다!’

 저 거대한 골렘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위 사람들을 모두 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리나 하나쯤 들쳐메고 시민들을 단숨에 뛰어넘어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가능하다!

 그녀가 도약을 위해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머리 위로부터 폭음에 가까운 충돌음이 들려왔다.

“어?”

 로난이 고개를 들었다.

 복부가 움푹 패여 들어간 골렘이 훨훨 날아 도시 외곽 성벽에 처박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상황을 연출한 장본인으로 보이는, 이색적인 복장의 인물 또한.

 쿠콰콰콰콰쾅!

“후우.”

 탁.

 골렘과 성벽이 충돌해 거대한 소음을 일으키는 사이, 이색적인 복장의 사내가 대지에 가볍게 내려섰다. 공교롭게도 그 위치가 로난의 바로 옆이었다.

“어라, 너희 여기에 있었냐.”

“……!”

 소름 끼치게 잘생긴 사내였다. 그러나 그보다도 놀라운 건, 그 사내의 목소리가 자신이 아는 누군가의 그것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정말로 그렇다면, 그 모습은 변장이라기보단 거의 역변에 가깝다.

“설마 레인 오빠야?”

 로난의 옆구리에 들려 있던 리나가 버둥거리며 내려선 뒤 물었다.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어.”

“헉!”

 설마설마하던 두 여인이 기겁했다. 레인은 그런 두 여인에게 빠르게 말했다.

“아카데미로 가면 결계가 펼쳐져 있을 거다. 가서 얌전히 대기해.”

“오빠는?”

“시민들이 대피할 시간을 벌 거다.”

“우리가 도울 건 없어?”

“방해돼.”

 리나는 무공을 전수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고, 로난은 수인족과의 교섭을 위해 안전하게 보호해야 했다. 두 사람 모두 결계 내부에서 대기하고 있어 주는 편이 좋았다.

‘그러고 보니 이 두 사람에겐 미리 귀띔해 준다는 걸 깜박했군.’

 아무래도 요새 신경 쓸 일이 좀 많았다 보니 잊고 있었다. 이 둘은 사실상 아군이나 마찬가지니 어느 정도는 정보를 전해줬어도 괜찮았을 텐데.

 두 여인 모두 실력이 실력인 만큼 결계가 펼쳐진 위치까지 도달하지도 못하고 해를 입는 일은 없을 거라고 여기긴 했지만.

“그러고 보니 너희, 내 경지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지.”

“……?”

“잘 봐둬라. 특히 리나 넌 앞으로 널 지도할 사람에 대해 조금 알아둘 필요가 있겠지.”

 레인이 그림자로부터 거대한 검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곧바로 검 표면에 응축되는 강렬한 기파. 두 여인이 저도 모르게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날 정도의 강렬한 백광이 검에 맺혔다.

 그것을, 크게 도약해 추가로 날아들고 있는 비행형 몬스터를 향해 사출했다.

 슈아아악!

 거대한, 정말로 너무나도 거대한 검강이 순식간에 비행형 몬스터 수십을 집어삼켰다. 비행형 몬스터에 의해 날라져 오던 골렘, 인간의 무리가 함께 참격에 휩쓸렸다.

 캬아아악!

 키이이이이익!

“와아아악!”

 기성을, 비명을 내지르며 대지로 추락하는 몬스터와 인간. 그리고 골렘이었던 것의 잔해들.

 레인이 광경을 바라보며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듯 혀를 찼다.

‘강기에 의념을 실을 수 있었다면 훨씬 큰 피해를 입혔을 텐데.’

 아무래도 참격의 스케일이 스케일인지라 의념을 싣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적어도 전생의 경지를 완전히 회복하거나 그 이상의 영역에 이르러야 하지 않을까.

“뭐, 뭐야!”

“방금 그건 대체?!”

 움직임의 입체성이 높은 비행형 몬스터가 상대다 보니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놈들이 크게 당황해 진형이 엉망이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과는 충분히 있었지만.

 레인은 완전히 쐐기를 박기로 했다.

 그가 근방에서 가장 높은 건물 옥상에 안착, 재도약해 처음에 날려버렸던 골렘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동시에 그림자로부터 한 자루 창을 뽑아 들었다.

 버둥거리며 쓰러진 동체를 일으키던 골렘의 머리 위로 날아드는 투창.

 콰과과과과곽!

 회전력 듬뿍 실린 장창이 골렘을 머리끝부터 사타구니 끝까지 꿰뚫었다. 내부의 마력 회로가 사정없이 갈려 나가 기능이 정지된 골렘이 우뚝, 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 골렘의 머리 위에 사뿐히 안착한 레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크게 벌렸다. 마치 짐승처럼.

 대포효.

“커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지금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드래곤의 포효가 이러했을까.

 천지를 진동시키는 거대한 포효에, 비행형 몬스터들이 일제히 겁을 집어먹고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눈을 까뒤집고 지상으로 추락하는 놈들마저 있었다.

“후읍!”

 레인이 곧바로 새로운 무기를 손에 쥐었다. 사슬낫 아티펙트가 거칠게 풀려나며 허공을 휩쓸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신위. 그 모든 장면을 목격한 로난과 리나가 순간적으로 자리를 벗어나는 것도 잊고 멈춰 서서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멋지다!”

 * * *

 마력과 영혼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록 마력으로 영혼에 간섭하는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증명되어 있다.

 한때는 가설이었던 그 이론을 증명한 존재들은, 바로 ‘포식자’의 이능을 지닌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특수한 마력 패턴을 지닌 몬스터의, 혹은 같은 이능력자의 심장을 섭취함으로써 그들의 능력을 흡수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 그들에게서, 대륙의 마법사들은 가설을 입증할 명확한 증거를 발견해낼 수 있었다.

 흔히 알려지길 포식자들이 흡수한 마력 패턴은 그들의 심장에 새겨진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

 그들이 흡수한 마력 패턴은 그들의 심장이 아닌 그들의 영혼에 새겨진다. 그 정확한 위치가 심장부에 가깝기에 일반인들에겐 그렇게 알려진 것에 불과했다.

 아무튼, 대륙의 마법사들은 그 사실을 통해 그들의 가설을 입증했다. 정작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이론이었기에 금세 외면받기는 했지만.

 * * *

 레인이 한참 압도적인 신위를 떨치던 그 시각.

 세 명의 사내가 도시 북쪽 외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세작에게서 마지막으로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현 황제의 누이가 이곳에 있다고 한다. 정확한 위치는 펜타트리움 아카데미 교정. 지금부터 우리는 그녀의 신병을 확보한다.”

 온몸을 두꺼운 갑주로 감싸고 있는 중년 사내의 발언에 나머지 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세 사람 모두가 이번 ‘반 황제파 반란’에 가담한 제국의 초인들이었다.

“본대가 도시 동쪽을 휩쓸고 있을 지금이 기회다. 바로 움직인다.”

 세 사내가 동시에 몸을 날렸다. 곧바로 성벽을 뛰어넘어 진입할 작정이었다.

 정작 그들의 목표인 공주가 카트란과 함께 도시 동쪽으로 이동했음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만 멈추지.”

 그런데, 갑자기 한 사내가 유령처럼 나타나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음?!”

 사내들이 신형을 멈추고 자신들을 가로막은 인물을 시선으로 훑었다. 선두의 사내가 의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백금발 머리칼?”

 사내들을 가로막은 인물의 정체는 바르바젠이었다.

“제압한다. 혹시 황족일지도 모르니, 되도록 생포하도록.”

 지체할 시간은 없다. 선두의 사내는 상대의 정체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기로 하고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곧장 뒤쪽의 두 사내가 바르바젠을 향해 달려들었다.

“전생엔 너희들을 모두 죽였었지.”

 바르바젠이 툭, 하고 내뱉었다.

“이번 생에는, 한 번 정도는 기회를 주겠다. 미래를 대비할 전력은 아무리 많이 모아도 모자라니까.”

 그가 오른쪽 눈을 한 차례 감았다가, 떴다. 어느새 그 눈동자가 악마의 그것과 같은 형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화아악!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기세. 마치 농도 짙은 액체와도 같은 느낌을 주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 주위 사방을 잠식해 들어갔다.

 바르바젠이 웃었다. 그의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죽 찢어졌다.

 * * *

 바르바젠은 선천적인 이능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였다. 무려 다섯의 능력을 흡수할 수 있는 압도적인 ‘포식자’의 자질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원래 역사에서, 그는 그 자신의 목숨을 건 마지막 결전이 다가오기 전까지 그 이능을 개화시킬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황위에 등극하기 전까지는 ‘별 볼 일 없는 방계 황족’이란 이미지가 필요했기에. 황위에 오른 뒤로는 그 자신의 무력(無力)이 수많은 귀족들을 함정에 끌어들이고 제거할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수단이 되었기에.

 그러나 바르바젠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 자신이 가진 힘을 개화해 봤자 쓸 데가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았다.

 그 위엄이 바닥까지 추락한 제국을 개혁시키기 위해서라면 그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제국의 환부를 도려냈고, 국내외적으로 산재한 문제들을 대부분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하늘이 그의 노력을 비웃었음인가.

 대륙에 마족의 대군이 침공해 왔다. 72마왕 및 휘하 군단장들에 의해 통제되는 그 압도적인 대군은, 파죽지세로 대륙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제국 또한 그들의 침공을 받았다. 무려 스무 명에 달하는 마왕이 제국을 집어삼키고자 그 영토에 진입해 들어왔다.

 바르바젠은 필사적으로, 정말로 필사적으로 놈들의 침공을 막아냈다. 제국의 모든 여력을 쥐어짜 내 한계까지, 아니 한계 이상으로 그들의 공격을 버텨냈다.

 성과도 거뒀다. 거대한 함정을 파고 놈들을 끌어들여, 무려 여섯 마왕의 목숨을 한 번에 거두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제국과 마족 대군의 전력 차를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기적적인 성과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적의 군세는 여전히 압도적인 데에 비해, 제국에 남은 전력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바르바젠은 그 자신의 젊음을 바쳐 일궈낸 제국이 놈들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광경을 두 눈 멀쩡히 뜬 채로 지켜봐야만 했다.

 대부분의 영토를 놈들에게 빼앗길 즈음, 바르바젠은 큰 결심을 했다. 그는 그나마 남은 최상위 전력을 긁어모아 특공대를 편성, 그들에게 명했다.

[마왕의 시체를 가져와라.]

 실로 기적적이게도, 특공대는 바르바젠의 명을 수행해냈다.

 마족들이 전장을 정리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데 게을렀음이, 그들에게 죽은 자를 애도하는 풍습 따위는 존재하지 않음이 특공대에게는 행운이었다.

 마족의 시체가 잘 부패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공간의 현자’인 엘리제 파르테인이 생존해 특공대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 또한 그들에게는 행운이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특공대원 대부분이 목숨을 잃는 정도로 바르바젠의 명령이 완수되는 기적 따윈 일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바르바젠은 특공대로부터 완전히 소멸되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된 한 구를 제외한 다섯 구의 시체를 받아들었다. 그리곤 피눈물을 흘리며 직접 그들의 심장을 도려냈다.

 그는 신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들의 심장을 씹었다. 입가에 피를 덕지덕지 묻혀가며, 게걸스럽게.

 그렇게 그는 충성스러운 기사들로부터 보호받는 ‘군주’에서, 전쟁의 최선두를 달리는 ‘장군’으로 거듭났다.

 제국은 그로부터 2개월 뒤 멸망을 맞이했다.

 그리고 최후의 결전에서 목숨을 잃기 전까지, 바르바젠은 세 마왕의 목숨을 추가로 거두었다.

 * * *

 바르바젠이 웃었다. 그의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죽 찢어졌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입가가 길게 찢어졌다. 그 내부에 섬뜩한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그 웃음은 마치, ‘악마’의 그것과도 같았다.

‘무슨?’

 바르바젠을 향해 달려들던 사내들이 그의 갑작스런 변화에 당혹감을 드러냈다.

 그 순간.

 훅.

 바르바젠이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순간에, 그는 한 사내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허억!”

 기겁해서 신형을 멈추려는 사내를 향해, 바르바젠이 그 괴기스러운 입을 크게 벌렸다.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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