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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화. 시가전(1) (192/249)
  •  193화. 시가전(1)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각성자들은,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되자 다시 쳇바퀴 돌아가는 일상을 구가하게 되었다.

     다면 몇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그들이 거주하는 숙소에 로엘과 바르바젠이 머물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너 안 바쁘냐?”

    “당분간은 휴가야. 프레퍼 관련 일이 마무리되기 전까진 이곳에서의 일에만 집중할 생각이거든. 겸사겸사 남는 시간엔 개인 수련도 좀 하고.”

     여유롭게 치킨을 튀기고 있던 로엘이 레인의 물음에 가볍게 대답했다.

    “휴가? 할 일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

    “이번에 새로 직속 무력팀을 하나 만들었거든. 꽤 유능한 친구들이라 웬만한 일은 맡겨둘 수 있어.”

    “그러고 보니 전에도 새로운 무력팀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지.”

    “어. 일단 편의상 0팀이라고 부르고 있어. 조만간 정식 명칭을 붙일 생각인데, 트레이터스(Traitors)정도가 되려나.”

    “…….”

    “놈들과 결전을 치르기 전에 미리 비행형 언데드를 제작해두고 싶기도 하고.”

    “근데 아침부터 웬 치킨이냐. 순살치킨?”

    “순살치킨 맞아. 왜, 아침이라서 안 먹으려고?”

    “그럴 리가.”

     두 사람이 가벼운 잡담을 나누는 사이, 각자에게 배정된 개인실이 있는 2층으로부터 바르바젠이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그가 피곤한 듯 눈을 비비며 로엘에게 말했다.

    “내게 배정된 숙소를 좀 바꿔 줬으면 좋겠군.”

    “뭔가 불편한 점이라도 있었어?”

    “아니. 편의적인 시설은 문제없었다. 오히려 굉장하다고 생각했지. 솔직히 규모만 작다 뿐이지 어떤 면에선 황실 생활보다도 나은 점이 많던데.”

    “그런데 왜?”

    “옆방에서 밤새 신음 소리가 들려와서 수면을 취하는 데 방해되더군.”

    “…….”

     레인과 로엘이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바르바젠의 옆방에는 르우벤이 거주하고 있었다.

    “아주 고삐 풀린 망아지가 다 됐네, 그 녀석.”

    “짐 챙겨 두면 정 반대편에 위치한 방으로 옮겨 줄게.”

    “부탁하지.”

     바르바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와 식탁에 앉았다. 그리곤 로엘이 직접 조리 중인 치킨을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침부터 튀김 요리를 하는 건가……?”

    “먹어볼래?”

     로엘이 갓 튀겨진 치킨 두어 점을 작은 접시에 담아 포크와 함께 바르바젠의 앞쪽에 내려놓았다. 바르바젠이 조금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그것을 응시하다가, 이내 한 점 찍어 입 안에 넣었다.

    “……!”

     치킨교 신자 한 사람이 추가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레인은 지난 학기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일상을 구가했다. 학업에 힘쓰고, 제자들과 무력대 구성원들을 지도하고, 개인 수련에도 힘쓰고.

     실기평가 때문에 주기적으로 영주관을 찾아가게 된 것도 지난 학기와 같았다. 다만 이번엔 기사단이 아닌 영지 재정 업무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빌어먹을 기사단 단장, 부단장 커플이 이번에도 자꾸만 개인 작업실에 쳐들어왔다. 이젠 기사단과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지도 않건만, 아주 제대로 만만하게 여겨진 모양이었다.

    “…….”

     레인은 언젠가 이 짜증을 몇 배로 환산해 되돌려주리라 결심했다.

     짬짬이 시간을 내서 리나도 가르쳤다.

     당장 제자들이나 무력대 구성원들과 그녀를 대면시키진 않았다. 일단 최소한의 기초는 쌓게 한 뒤에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녀를 지도하는 장소는 카트란 전용 수련장. 하루 한 번씩 짧게 그녀에게 기초 무공을 전수했는데, 그 모습을 자주 로난이 지켜보곤 했다.

    “아쉽네요. 저도 한 번쯤 배워보고 싶은데.”

    “무공을?”

    “네. 기존의 것과 완전히 다른 체계의 무술에 흥미가 동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전 함부로 제국의 인물을 스승으로 모실 수 없는 입장이라.”

    “그러냐.”

     레인은 심드렁하게 로난의 발언을 흘려넘겼다.

    “그런데 선배님은 현재 경지가 정확히 어떻게 되죠? 5년 전에 초일류였다고 했으니, 설마 이미 초인의 경지에 오른 건가요?”

    “글쎄다.”

     마찬가지로 성의 없는 답변. 로난이 살짝 볼을 부풀렸다.

    “저기, 대답에 조금 성의를 담아주시죠? 이렇게나 씩씩하고 아름다운 후배의 질문인데.”

    “…….”

     그 말에 레인이 고개를 돌려 로난을 잠시 응시하더니,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방금 굉장히 기분이 나빴는데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신 거죠?”

    “아무 생각도 안 했어.”

     로난이 눈매를 매섭게 뜨며 노려보았지만, 레인은 그것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리곤 리나에게 다가가 명문혈(命門穴)에 손을 대고 그녀의 운기행공을 도왔다.

     로난의 볼이 한층 더 빵빵하게 부풀었다.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서도 남는 시간엔 로엘과 함께 프레퍼의 침공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논의하곤 했다.

    “프레퍼가 내세울 주력 전력 중 하나는, 아마 ‘골렘’일 거야.”

    “골렘? 관련 현자를 바르바젠이 이미 잡아 왔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긴 한데, 그가 그동안 제작해온 온갖 골렘들은 아직 그대로 놈들의 손에 남아 있거든. 골렘의 소유권도 놈들의 보스에게 미리 넘겨뒀다는 모양이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레인뿐 아니라 로엘과 르우벤도 그 자신의 수련에 힘을 쏟았다.

     로엘은 비행형 언데드의 제작에, 르우벤은 마검의 힘을 끌어내는 데에 집중했다. 노력한 만큼의 성과도 얻어냈다.

     바르바젠의 경우엔 어딘가를 자꾸만 다녀오곤 했다. 아침 일찍 나가 밤에 들어오는 것은 예사요, 아예 외박하고 들어오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카트란의 경우엔 큰 진보를 이뤘다. 무려 1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초일류의 경지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그가 익힌 무술이 좌공이 아닌 동공임을 감안한다면, 그것은 굉장한 쾌거였다.

     레인은 그런 카트란을 데리고 영지 외곽 평야 지대로 나가 대련을 해 보았다.

     상당히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 자신의 힘은 증폭시키고 상대의 힘은 반감시키는 카트란의 능력은 상당히 까다로운 종류의 것이었기에, 레인조차도 어느 정도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각성자들이 저마다 충실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어느새 축제 시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로엘의 주도하에 세워지게 된 다섯 첨탑은 이미 내부 공사까지 완전히 마무리된 상황. 각성자 일행은 점점 다가오는 결전의 때를 각자의 방식으로 담담하게 준비해 나갔다.

     그리고, 결국 그날이 왔다.

     그날, 황제의 명령에 따라 진작부터 비상 체제로 운영되고 있던 엠페러 아이즈로부터 보고가 들어왔다.

     프레퍼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는 보고가.

     * * *

     축제 시즌이 돌아왔다.

     레인과 르우벤, 카트란은 학기말 시험을 치렀다. 아무래도 세 사람 모두 신경이 조금 곤두서 있었기에 성적이 약간씩 떨어졌다.

     특히 레인의 경우엔 다시 학년 전체 1등의 자리를 라미엔느 카트넬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대자보를 올려다보며 라미엔느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카트란은 이번 무투대회에는 불참하기로 했다. 본래 기사학부 학생은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대회지만, 전 대회 우승자인 카트란에게 그것은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도시가 축제 분위기에 물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각 아카데미에서 화려한 행사가 벌어졌다. 수많은 노점이 도시 곳곳에 자리 잡았다.

     떠돌이 악사부터 대형 유랑단까지. 다양한 예인과 예인의 집단이 도시 내로 들어서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제공했다.

     어린아이부터 나이 든 어르신까지 모두가 즐거운 얼굴로 각종 이벤트를 즐겼다. 아이들은 맛있는 먹거리와 흥겨운 볼거리에서,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행복을 찾았다.

     근방에서 가장 높은 건물 위에 자리 잡고 앉아 그 축제의 현장을 내려다보며, 레인이 어느 노점에서 구매한 꼬치구이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조금 조미료의 맛이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맛이 나쁘진 않았다.

     금세 고깃점이 모두 사라지고 덩그러니 남은 나무 꼬치를 입에 물며, 레인은 아침에 로엘이 이야기한 내용을 떠올렸다.

    [놈들은 오래지 않아 이곳 알테라 시를 침공해 들어올 거야.]

    [다만, 그 시기는 정확히 특정할 수가 없어. 놈들은 지상을 통해 진군해 오지 않을 테니.]

    [그래도 며칠 내로 습격이 있을 것임은 분명해. 그러니 오늘부턴 교대로 수면과 휴식을 취해가며 움직이기로 한다.]

     따로 혼자서 움직이겠다고 선언한 바르바젠 이외의 모든 각성자들이 영지 곳곳에 자리 잡고서 주위를 경계하는 중이었다.

     각성자들뿐만이 아니었다.

     레이나도, 셀린도, 밀리아도. 로엘이 새롭게 창설한 전투팀 ‘트레이터스’의 구성원들도. 심지어 황제의 밀명을 받고 몰래 알테라 시를 찾아온 ‘엘리제 파르테인’도.

     그 모두가 영지 곳곳에 흩어져 고지대에 자리 잡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상은?]

    [없어.]

    [이쪽도.]

    [이쪽도 마찬가지다.]

     십자검 귀걸이 아티펙트를 통해 주기적으로 통신을 주고받으며 계속해서 주위를 경계하는 일행. 모두가 풍족하고 즐거운 축제의 와중, 그들만이 초조함과 긴장감, 스트레스가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덧없이 흘렀을까.

    [온다.]

     모두가 기다려온, 그러나 절대 반갑지는 않은 그 통신이 귀걸이를 통해 전해져 왔다. 통신을 전해온 이는 놀랍게도 홀로 움직이겠다며 모습을 감췄던 바르바젠이었다.

    [방향은?]

    [영주관을 중심으로 3시 방향. 세 자릿수 단위의 비행형 몬스터가 중력 마법의 힘을 빌려 거대한 골렘과 병력을 실어 나르고 있다.]

     동부로군.

     로엘은 고개를 끄덕이곤 곧바로 귀걸이를 조작했다. 금세 각 첨탑에서 대기 중인 결계사들과 통신할 수 있었다.

    [시작해.]

    [알겠습니다.]

     결계사들이 일제히 첨탑 상층부에 배치된 두 개의 아티펙트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도시 전역에 그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게 해줄 확성 마법이 내장된 아티펙트였다.

     오래지 않아, 결계사들의 외침이 온 도시에 쩌렁쩌렁하게 퍼져나갔다.

    [비상 상황입니다! 현재, 이곳 알테라 시를 노리는 대병력이 영지 바로 근처까지 접근해온 상황입니다! 이것은 축제의 이벤트 같은 게 아닌, 실제 상황입니다!]

    [시민 여러분은 모두 지금 당장 대피를 시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피난소의 위치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성 안쪽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영주관으로! 도시 동쪽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베르파룸 아카데미로! 도시 서쪽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파르베리온 아카데미로!]

    [도시 남쪽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카르탄 아카데미로! 도시 북쪽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펜타트리움 아카데미로!]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알테라 시는……!]

     영지 전역을 강타한 비상사태 선언에, 축제를 즐기던 모든 이들의 움직임이 굳었다.

     그런 와중에도 로엘의 통신은 신속하게, 계속해서 이어졌다.

    [카트란! 공주 전하를 모시고 바로 동쪽 첨탑으로 이동해! 가서 대피 행렬을 이끌어!]

    [이미 가고 있어!]

    [레인! 너도 동부로! 시민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시간을 끌어!]

    [가고 있다.]

    [르우벤과 밀리아, 레이나와 셀린은 제자리에서 대기! 오래지 않아 그쪽도 전쟁터가 될 거다!]

    [오케이.]

    [동부 첨탑은 곧바로 결계를 기동시켜!]

    [예!]

    [엘리제 양은 마침 동부 첨탑에 계시니 곧바로 사전에 이야기된 대로 움직이시면 됩니다!]

    [그래.]

     캬아아아아악!

     로엘이 모든 지시를 내림과 동시에, 도시 동쪽에 첫 번째 비행형 몬스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최선두에 위치한 몬스터라고 할지, 무려 와이번이었다.

     와이번은 그 자신의 발톱을 이용해 거대한 골렘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 크기만도 10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골렘이 시야에 들어오자, 근방에 위치한 시민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악!”

    “도망쳐어어어어어!”

    “비켜! 비키라고!”

    “으허억! 밀지 마!”

     본래라면 와이번의 완력으로 그만한 질량의 골렘을 실어나르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필시 일시적인 중력 조작, 혹은 무게 감소 마법이 골렘에 부여되어 있는 것이리라.

     시민들이 필사적으로 달아났지만, 어찌 그 속도가 와이번의 비행 속도에 비할까. 와이번은 금세 시민들이 밀집된 장소 위에 다다라 그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캬아아아아악!

     와이번이 발톱을 놓았다. 동시에 골렘에 부여되어 있던 마법이 해제되었다.

     순식간에 본래의 무게를 되찾은 초대형 골렘이, 지상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 안 돼!”

    “비켜! 거기서 비키라고오오오오!”

     그림자가 드리워진 영역 내에 위치한 시민들이 비명을 질렀다. 앞사람을 밀치고 욕설이 난무하는 등, 아비규환의 현장이 벌어졌다.

     그대로라면 거대한 골렘의 동체에 짓눌려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고 말 상황.

     그때, 구원이 등장했다.

     슈아악!

     막대한 파공음을 동반하며 그곳에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바로 레인.

     그가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그대로 달려들어, 떨어져 내리고 있는 대형 골렘의 복부에 앞차기를 먹였다!

     콰아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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