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0화. 삼화(三花)(1) (189/249)
  •  190화. 삼화(三花)(1)

     방학이 끝났다.

     아카데미 생활도 3년 차로 접어들었다.

     레인과 르우벤, 카트란은 작년과 같이 상급생들의 졸업식에 참가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머리 교장의 자학 개그가 빛을 발했다.

     연설 도중, 각성자 세 사람이 잡담을 나눴다. 이야기의 스타트를 끊은 것은 르우벤.

    “너희 들었어? 올해 신입생 중에 그렇게 예쁜 애들이 많대.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세 명에겐 벌써 삼화(三花)라는 칭호까지 붙었다더라.”

    “매번 궁금했는데, 대체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듣는 거야?”

    “후후. 이 몸의 교우관계는 너희처럼 삭막하지 않지.”

     카트란이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친화력이 뛰어난 친구이긴 했다. 어떨 땐 르우벤의 그런 성격이 조금 부러웠다.

    “아무튼, 그중 두 명의 출신이 보통이 아닌가 봐.”

    “출신?”

    “한 명은 수인족 대족장의 손녀. 그리고 또 한 명은 현 황제의 여동생. 즉, 공주.”

    “공주라고?!”

     놀라운 사실이었다. 황실의 일원이 아카데미에 입학하다니.

    “아니, 공주가 뭐가 아쉬워서 아카데미에 입학을 해?”

    “그게, 공주에게 마법의 소양이 있다는 모양이야.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그런데 그녀가 마법을 배울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는 모양이더라고.”

     카트란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여동생씩이나 되는 인물인데 왜 마법을 익힐 곳이 없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그만한 지위의 인물이기에 마법을 배우기 더 힘들다.

     그만한 지위의 인물을 국가기관인 마탑에 집어넣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궁정 마법사에게 맡기자니 궁정 마법사가 그렇게 한가한 이들도 아니고. 어디 듣도 보도 못한 적당한 마법사에게 맡기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게다가 뭐가 어쨌든 그녀는 황위 계승권에서 밀린 한 명의 황족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그 본인이 원하는 만큼의 편의가 돌아가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치이고 치이다가 밀려온 케이스구나.”

    “그렇지. 야, 근데 넌 왜 이리 시큰둥하냐?”

     르우벤이 레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레인이 가볍게 하품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삼화니 뭐니 해봐야 뭐.”

    “이 자식. 지금 자기 제자들 자랑하고 있어.”

    “확실히 그녀들에 비하면 대부분의 여인은…….”

     카트란이 쓴웃음을 흘렸다. 아름다움의 기준을 레인의 제자들로 잡는 건 조금 너무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성형공이라는 거 나한테도 가르쳐 달라니깐.”

    “싫어.”

    “어째서!”

    “내가 왜 굳이 시커먼 남정네에게 그걸 전수해야 하는데.”

    “이 더럽게 치사한 자식.”

     르우벤이 분통을 터뜨렸다.

    “하다못해 밀리아에게라도 가르쳐 줘!”

    “안 돼. 밀리아에게 가르치면 그게 결국 너한테도 가잖아. 그녀는 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니까.”

    “이익!”

     르우벤은 성형공의 존재를 알게 된 그 날부터 레인에게 지속적으로 그것을 전수해줄 것을 요구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레인은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절대 가르쳐줄 생각이 없었다.

     카트란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천마신공 같은 희대의 무공은 아무렇지도 않게 전수했으면서.”

    “가치가 비교되질 않지. 그런 찌끄레기 무공과는.”

     레인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르우벤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모든 마공의 정점이라는 천마신공이 한순간에 ‘찌끄레기 무공’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르우벤과 레인이 아웅다웅하는 사이, 교장의 연설이 끝났다. 가벼운 행사가 이어지고, 졸업식이 마무리되었다.

     * * *

    “이거 그건가.”

    “어. 겉보기로는 그냥 석제 첨탑인데 내부 구조물을 제작하는 데 쓰인 재료를 나열해 보니 진짜 상상 초월이더라. 로엘 그 녀석 돈 많은 건 알아줘야 해.”

     아카데미 부지 내. 깔끔하게 조성된 공원 한편.

     그곳에 한참 건축 중인 첨탑이 하나 있었다. 석제 외벽을 먼저 세우고 내부 구조물을 배치하는 데 한창인 모양이었다.

    “확실히 여길 중심으로 결계가 펼쳐지면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많겠군.”

    “주위가 탁 트여서 괜찮은 것 같긴 하네.”

     첨탑을 올려다보며 세 각성자가 두런두런 의견을 교환했다. 이걸로 인명 피해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둥, 역시 로엘 녀석의 일 처리 능력은 알아줘야 한다는 둥.

    “여긴 공원인가.”

    “와. 되게 잘 가꿔져 있네. 가끔 여기에 도시락 싸 와서 먹어도 괜찮겠다.”

     아무래도 신입생이 막 입학한 시점이라 공원을 찾아오는 학생이 많았다. 풋풋한 새내기들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내뱉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르우벤이 그런 신입생들을 둘러보며 풍파에 찌든 웃음을 흘렸다.

    “그래. 지금이 한참 꿈과 희망이 가득한 시기겠지.”

     어느새 그도 최고 학년이 되었다. 1년만 있으면 졸업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 입학했을 때의 자신도 저 신입생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건만.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제군들.”

     공원에 도시락 싸 와서 먹어도 좋겠다?

     하하. 농담이 심하군. 교내 식당에서 제대로 끼니라도 챙겨 먹으면 다행이다.

     펜타트리움 아카데미의 교육과정은 정말로 빡빡하다. 저들이 꿈꾸는 캠퍼스 라이프는 오래지 않아 박살이 날 터였다. 대충 학기말 시험을 칠 때쯤이면 저들도 현실을 깨닫겠지.

     저 밝고 생기 넘치는 얼굴이 육포처럼 쭈글쭈글하게 말라비틀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못내 기대된다고 르우벤은 생각했다.

    “뭐 하냐 너.”

     레인이 사악한 웃음을 흘리는 르우벤을 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와중, 일행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들이 있었다.

    “어, 저 사람 공주 아니야?”

    “그렇네. 백금발에 이목구비도 그렇고. 바르바젠하고 비슷한 느낌인데.”

     바로 공주가 공원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역시 황족이라고 할까. 상급생인 귀족 여성이 옆에 붙어서 이곳저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을 건네고 있었다. 아카데미 부지를 안내하는 모양이었다.

    “어라.”

     레인이 고개를 기울였다. 아는 얼굴이 눈에 띄었다. 다름 아닌 공주를 안내하고 있는 귀족 여학생.

     분명 지난 학기에 두들겨 팼던 그 여학생이었다. 르뤼렌 백작가의 여식이었던가.

     그녀, 리비아 르뤼렌이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돌렸다. 레인과 그녀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히익.”

     그녀가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오 저쪽에 삼화 중 나머지 두 명도 있다.”

     그때 르우벤이 호들갑을 떨었다.

     레인과 카트란이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에 새로 모습을 드러낸 두 소녀가 있었다. 두 소녀는 서로 친해 보였는데, 뒤쪽에 웬 남학생 추종자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수인족인 건 알겠는데, 무슨 종류의 수인인지는 모르겠네.”

     카트란이 눈매를 좁히며 중얼거렸다.

    “호인(虎人)이야.”

    “호랑이 수인이라고? 귀도 머리칼도 새하얀데?”

    “정확히는 ‘백호(白虎)’의 일족이지. 현재 대족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수인의 일족이 백호족이거든.”

     차후에 접선해서 아군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일족이기도 했다. 그 일은 르우벤이 맡기로 되어 있었다.

    “옆에 애는 그냥 인간이지? 꽤 친해 보이네.”

    “그러게. 저 두 사람은 딱히 접점이 없을 텐데, 그새 저 정도로 친해진 건가. 친화력이 좋은 녀석인 모양이야.”

    “금발에 금안이라. 되게 인형같이 생겼네. 금안은 웬만해선 찾아보기 힘든데.”

    “듣기로 쟤는 뒷배경은 딱히 없지만 본신의 실력이 굉장하다고 하더라고. 어느 검가에서 검술을 사사하다가 원로의 눈에 띄어서 제자가 되라는 권유까지 받았는데 거절했다나.”

    “검가의 원로에게? 그런 좋은 기회를 왜 걷어찬 거지?”

    “자기하고 뭔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거절했다던데? 정령술도 수준급으로 익히고 있다는데, 아마 그것과 관련된 게 아닐까 싶다.”

     르우벤이 어깨를 으쓱였다.

    ‘정령술?’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레인이 미간을 모았다.

    ‘금발에 금안. 그리고 정령술. 분명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 조합인데.’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야옹.

     어깨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흑아가 한 차례 크게 울었다. 배가 고프다는 의미였다.

     그 소리에 반응한 것인지. 금발 금안 소녀의 고개가 레인이 있는 쪽을 향해 돌아갔다.

    “어?”

     그리고,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레인 오빠?!”

    “……?”

     갑자기 자신을 알아보는가 싶더니 총총 달려오기까지. 레인이 상황을 이해하질 못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와! 여기서 오빠를 보게 될 줄이야! 나 기억해?”

     코앞까지 다가와 서서 친한 적 말을 걸어오는 소녀.

     르우벤이 아는 사이냐며 뒤쪽에서 어깨를 흔들었다. 주위 남학생들의 시선이 질투로 물들어 갔다.

    “날 알아?”

    “알지! 솔직히 오빠는 외견이 너무 변해서 좀 헷갈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흑아를 알아보지 못할 리는 없잖아? 이젠 나도 명색이 상위 정령사인데.”

     흑아를 알아보았다?

     레인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자신과 접점이 있는 사람들 중 흑아를 알아볼 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 그때 그 철부지 꼬마.”

     이내 레인은 떠올렸다. 눈앞의 소녀가 누구인지.

     그가 과거 헤이슨 자작령에 거주하던 시절. 펠라키 산맥에서 위기에 빠진 어린 소녀 하나를 구해준 적이 있었다.

     그 인연으로 상위 정령사인 소녀의 할아버지와 대면, 그의 도움으로 흑아와의 계약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벌써 그날로부터 5년 가까이 지났던가.

    “철부지라니! 대체 날 무슨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는 거야?!”

    “시끄러워. 그렇게 크게 말하지 않아도 잘 들리니까 일단 음량 좀 낮춰.”

     이름이 리나였었던가.

    “기억하고 있는 성격 그대로네. 오랜만이야!”

    “그래.”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친근하게 구는 것일까. 아무리 인연이 있다지만 벌써 5년 가까이 된 과거의 일일 뿐이다. 솔직히 이쪽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주위 남학생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여기에 더 얽혔다간 귀찮은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 레인은 곧바로 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그런데 그 기색을 눈치챈 것일까.

    “잠시만!”

     소녀, 리나가 레인을 제지했다. 그리곤 빠르게 입을 열었다.

    “할 말이 있어. 오빠 찾아서 헤이슨 자작령까지 찾아갔었는데, 없더라고. 그런데 운명처럼 여기서 이렇게 보게 되네. 내 부탁 좀 들어줘.”

    “…….”

     그 부탁을 왜 굳이 여기서, 이런 식으로 하는 거냐.

     레인이 표정을 찡그렸다. 주위의 시선이 완전히 이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질투심 가득한 남학생들의 시선도, 흥미 가득한 르우벤, 카트란, 그리고 백호족 소녀의 시선도 거슬린다.

     호기심 가득한 공주의 시선도 신경 쓰이고, 무슨 일이 벌어졌나 싶어 멀찍이서 이쪽을 기웃거리는 학생들의 기척도 신경 쓰인다.

     레인은 정말로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나가 결연한 얼굴로 외쳤다.

    “나 검술 좀 가르쳐줘!”

     * * *

    “그러니까 예전에 내가 펼치는 검술을 보고 필이 꽂혀서 검술을 익히기 시작했는데, 어쩐지 죄다 마음에 차질 않았다고?”

     레인이 이마를 짚었다.

     일행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인적 없는 장소를 찾아온 상태였다. 바로 레인이 속한 유령 스터디 그룹의 스터디룸.

    “응! 수련을 해도 해도 뭔가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 왜 그런가 싶었는데, 최근 깨닫게 됐어. 내가 익힌 검술이 부족한 게 아니라 오빠의 검술이 특별한 종류의 것이라는 걸!”

    “…….”

    “확실히 알게 된 거지. 항상 무언가 성에 차질 않았던 그 느낌은, 그때 본 오빠의 검술과 내가 직접 익힌 검술의 차이로 인한 괴리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이곳 스터디룸에 자리 잡은 인원은 모두 다섯. 레인, 르우벤, 카트란, 리나, 그리고 백호족 소녀 ‘로난’.

     로난은 어떤 이유에선지 끝까지 일행을 쫓아왔다. 그리고 현재는 스터디룸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 흥미로운 얼굴로 리나와 레인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부탁이야! 내게 검술을 가르쳐줘!”

    “…….”

     검술 지도를 요청하는 리나의 얼굴은 무언가의 결의에 차 있었다. 레인은 괴상한 표정으로 그런 리나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그것도 잠시.

    “그래, 뭐. 네 사정에 대해선 잘 알겠다.”

     삽시간에 결연한 표정을 지은 그가, 툭 하고 답변을 내어놓았다.

    “하나,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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