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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화. 사전 준비(3) (188/249)

 189화. 사전 준비(3)

 최악의 흑마검사, 게르반.

 역사에 전해지길, 그는 대륙 최고 수준의 마법사이자 검사로 군림했다고 한다.

 마법사로서의 능력은 대현자 이상. 마법검사로서의 능력은 검존 이상.

 그런데 역사를 조금 깊이 파고든 자들은 재미있는 사실을 한 가지 발견했다. 바로 게르반의 실제 검술 경지가 초일류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토록 압도적인 마법적 재능을 지닌 인물이, 검술 재능까지 대륙 최고 수준일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어느 세월에 마법과 병행해서 개화시킬 것이고.

 그렇다면 게르반은 대체 어떻게 근접전에서 검존의 그것을 능가하는 무위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일까.

 해답은 ‘마검’이다. 게르반의 상징과도 같은 그 물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검을 게르반이 제작한 아티펙트라고 알고 있다. 마치 대영웅이 ‘성휘’를 이용해 ‘성검’을 제작했듯이.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게르반은 그저 어딘가에서 마검을 우연히 습득했을 뿐이다.

 그가 마검을 습득하게 된 경위는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무튼 그가 마검을 제작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했다.

 마검의 힘은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게르반의 압도적인 근접 전투력은 오롯이 마검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물론 누구라도 마검을 취하면 그것이 가능해지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흑마법을 깊이 파고들어 마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게르반이기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지.

 다만 게르반이 활용한 마검의 힘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유 또한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마검에 내재된 이해 불가한 힘에 경계심을 품은 것인지, 아니면 대륙 제패를 위해 검술보다 흑마법에 치중한 것인지.

 아무튼.

 지금 이 순간, 마검을 손에 쥔 르우벤은 느낄 수 있었다.

 체내에 들끓는 내력이. 흘러드는 마검의 의지가. 급격하게 고조되는 감정이. 그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지금 그가 서 있는 위치가 지금까지의 그가 서 있던 위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영역임을.

 지금까지는 이만한 힘을 뽑아낼 수 없었다. 일정 이상의 힘을 뽑아내면 마검에 자아를 빼앗길 위기를 맞이하게 되기에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리미트가, 지금 이 순간 해제되었다.

 그렇기에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 욕구를 도저히 억누를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레인에게 대련을 부탁했다.

 이 자리에서 자신의 힘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는 레인뿐이었기에. 혹시 자신이 폭주하더라도 억눌러줄 수 있는 존재는 그뿐이었기에.

“대련?”

“아니, 대련이라는 말은 적절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이 힘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확신을 못 하겠어.”

 르우벤이 후, 하고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내가 가진 힘을 확인해 보고 싶다. 그 과정에서 위험한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 조금 이기적인 말이지만, 그럼에도 확인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어.”

“······.”

“그래서 부탁하는 거다. 내 상대가 되어줬으면 해. 지금의 너라면 만일의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완벽하게 그것을 통제할 수 있을 테니까.”

 가까이에서 레인을 지켜봐 온 르우벤은 안다. 그의 무위가 얼마나 대단한지.

 아직 겪어보지 못한 바르바젠을 예외로 두고 보았을 때, 현재 모든 각성자들 중 최강자는 레인이다.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런 레인이 상대이기에 이런 부탁을 건네는 것이 가능했다. 이렇게나 이기적이고 위험천만한 부탁을, 아무리 전투 욕구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치밀어 오른다고 하지만.

“좋아. 대신 이걸로 네게 진 빚은 퉁 치는 거다.”

“빚?”

 이해할 수 없는 레인의 발언에 르우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자신에게 남겨둔 빚이 있었던가?

“이전에 네가 내 제자들을 구해준 것 말이야.”

“그건 유적 공략을 도와주는 것으로 이미 퉁 친 것 아니었나?”

“아니. 그러기엔 그 유적 공략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이 너무 많았지.”

 레인은 고개를 저었다.

 분명 처음엔 르우벤에게 보은하는 의미에서 따라나선 유적 공략에 불과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자신에게 떨어진 떡고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후에 생각해 보니, 유적 공략에 도움을 준 것으로 빚을 청산했다고 여기기엔 영 껄끄러운 감이 없잖아 있었다. 실상 아무도 그걸로 뭐라고 할 사람이 없건만, 레인 스스로가 부족함을 느꼈다.

“그것참. 너도 알고 보면 이상한 데에서 빡빡한 녀석이야.”

“내가 좀 그런 면이 없잖아 있지.”

 레인은 훗, 하고 웃었다. 은혜도, 원한도 확실하게 갚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조만간 있을 ‘그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네가 가진 힘을 확실히 파악해 두는 게 좋을 테고.”

 그 이외에도, 레인 본인의 개인적인 호승심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그는 이런 종류의 상황을 마다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레인이 주변을 한차례 쓱 훑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일단 주위를 싹 비울 필요가 있겠군.”

 * * *

 콜로세움 내 모든 무인들이 관중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마다 기대 가득한 얼굴을 하고서.

“이야. 성자님의 대련이라니!”

“처음엔 웬 이상한 녀석이 통째로 여길 전세 놓겠다고 선언하기에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했는데, 성자님이라면야 뭐. 인정.”

“초월자의 전투를 볼 기회는 진짜 흔치 않은데. 오늘 진짜 계 탔네.”

“그런데 상대는 누구지?”

 사람들을 물리는 일은 의외로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전적으로 레인이 가진 명성 덕분이었다.

 메르타 왕국에서 레인의 명성은 그야말로 굉장한 수준이다. 아무리 그가 봉쇄된 영지에서 활약했다지만, 그만한 일을 벌였는데도 유명해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런데 카르테리온 백작령에서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냈을 때도 카트넬 가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더니, 이번엔 아예 검가 내에 있네. 선녀님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대충 예상은 했다만.”

“여기 검가 사람들이랑 친분이 있다더니, 진짜 그런가 봐.”

“그건 그렇고 선녀님 진짜 예쁘지 않았냐. 난 얼굴만 보고도 그분이 소문의 선녀님이란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니까.”

 사람들이 흥분한 기색 가득한 얼굴로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는 가운데, 레인과 르우벤이 콜로세움의 중앙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그러고 보니 마검을 든 너와 대련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가.”

“생각해 보니 그렇네.”

 르우벤이 후후, 하고 웃었다. 마검의 압도적인 잠재성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지금까지는 그것을 제대로 사용해 보질 못했다. 감당할 수가 없었으니까.

“흑아.”

 레인이 그림자로부터 언월도(偃月刀)를 한 자루 뽑아 들었다.

 원래 기형 장창이었던 것을 로엘의 개인 공방에 맡겨 개조한 물건이었다. 아티펙트로써의 성능은 그대로 남겨두고, 외형만 변화시키는 식으로.

“인벤토리 툴.”

 반면 르우벤은 인벤토리 툴을 불러놓고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 그는 여러 종류의 세트를 갈아 치워가며 전투에 임할 수가 없었다. 다름 아닌 마검 때문에.

‘마검과 병행해서 사용할 수 있는 아티펙트는 기껏해야 한 세트 정도.’

 그 이상은 마검이 용납하지 않을 터였다. 이제부터는 오로지 한 세트만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오래지 않아 결정을 내렸다. 사실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던 상태였다.

 그가 선택한 것은 블루 드래곤 세트(Blue dragon set). 그가 가장 애용하는, 동시에 가장 범용성이 높은 세트였다.

“장착(Equip).”

 그는 이내 레인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모습으로 화했다.

 이어서 그가 마검의 힘을 끌어올렸다. 마검의 중심부에 박힌 보석이 번쩍, 하고 눈을 떴다.

‘온다.’

 레인이 몰아닥칠 귀곡성을 대비해 귀에 내력을 집중했다.

“…….”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레인이 의아함에 미간을 모으는 사이, 마검이 슬며시 떴던 눈을 다시 감았다. 그 직후.

 끼기기기기긱.

 칠판을 손톱으로 긁었을 때와 같은 불길한 소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르우벤의 뒤쪽 허공에 칼로 비스듬히 내리그은 것만 같은 ‘선’이 생겨났다.

 끔뻑.

 그리고 그 선이 갈라지며 거대한 눈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충류의 그것과 같은 황금빛 눈동자를 붉은 자위가 감싸고 있는, 섬뜩하기 짝이 없는 럭비공 형태의 눈이.

 화아악!

“……!”

 동시에 느껴지는 압도적이고 불길한 기운. 마치 세상이 붉게 물드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단순히 힘을 개방했을 뿐이건만, 그 압박이 심상치 않았다. 지금껏 여유로웠던 레인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긴장감이 어렸다.

 쿠구구구구구구.

 두 사람의 기운이 맞부딪쳐 허공에 스파크가 일었다. 거대한 기운과 기운의 충돌로 인한 여파가, 멀리 떨어진 객석에까지 미약하게나마 전해질 정도였다.

“그럼.”

“시작하자.”

 두 사람이 동시에 신형을 날렸다. 탐색전 따윈 일절 없이, 서로를 향해 직선으로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마검과 언월도의 충돌로 인한 거대한 폭음이 주위를 울렸다.

 * * *

“후우.”

“쿨럭!”

 얼마나 오랜 시간 대련을 펼쳤을까.

 결착이 났다. 르우벤은 마검을 손에서 놓친 채 바닥에 드러누워 피가래 섞인 기침을 토해냈고, 레인은 그런 르우벤의 고개 바로 옆에 언월도를 꽂아놓은 채 그것을 붙들고 앉아 숨을 골랐다.

“이게 바로 초월자들의 싸움인가.”

“단순히 초월자들의 싸움이란 말로 넘어가기엔 너무나 대단한 접전이로군. 저 두 사람은 정말로 규격 외의 존재들이야.”

“난 오늘 내가 본 광경을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우연이군. 나도 그럴 것 같은데.”

 관객들이 웅성거리는 소음이 크게 울렸다.

 저마다의 얼굴에 걸린 다양한 감정들. 놀람, 경외, 두려움, 경악, 흥분, 공포, 전율 등등.

 레인과 르우벤을 향해 쏟아지는 그 다양한 감정의 홍수가, 레인의 제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

 평소라면 그런 것쯤 가볍게 흘려넘겼을 제자들이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암만 레인이라는 초강자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그녀들일지라도 이 대련에서만큼은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으므로.

“후우.”

 레인이 언월도를 붙잡은 양손에 힘을 주어 신형을 일으켰다.

 그가 언월도를 흑아에게 넘겨주며 작게 중얼거렸다.

“힘드네.”

 위험했다. 마검을 손에 쥔 르우벤은 정말로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이 정도로 고전할 줄이야.

“그새 더 강해졌구나. 너.”

 르우벤이 앓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레인과 르우벤이 대련을 펼쳤던 때가 지난 여름 방학 초. 그로부터 채 8개월이 지나지 않았건만, 레인은 그새 또 굉장한 진보를 이룬 상태였다.

 이 녀석은 대체 성장에 한계가 있긴 한 것일까. 잠시 눈을 떼면 순식간에 팍팍 성장해 있으니 그 뒤를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다.

 문득 억울해졌다. 자신은 20일에 걸쳐 그 미친 짓을 하고서야 겨우 ‘초일류의 벽’을 뚫을 수 있었거늘. 그놈의 재능은 항상 사람을 서럽게 만든다.

“중간에 한 번 위험하지 않았냐?”

“어. 집어 삼켜질 뻔했다.”

 레인의 물음에 르우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느 때처럼 마검에 자아를 침식당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당할 수 없는 힘을 끌어다 쓰는 반동과 같은 것이었을 뿐.

 이번에 느낀 감각은 침식이라기보단 오히려 의식이 빨려 들어가는 감각에 가까웠다.

 굉장히 소름 끼치는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게 그런 기분일까.

 르우벤은 그 감각이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이 자신의 한계점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했다. 그 이상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앞으로 그가 개척해 나가야 할 영역이기도 했다.

 그것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이번 대련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일어날 수 있겠냐.”

 르우벤은 레인이 내민 손을 붙잡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착용한 아티펙트를 인벤토리 툴로 되돌렸다.

 사실상 그것으로 대련은 완전히 끝이 났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직후.

[레인. 르우벤.]

 로엘로부터 통신이 들어왔다.

[슬슬 제국으로 복귀할 때가 된 것 같은데.]

“그래.”

“그렇지.”

 레인과 르우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겨울방학도 끝자락이었다. 당장 내일이면 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잊지 않았겠지? 이번 학기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안 잊었어.”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 방금 전까지 그래서 확실한 전력을 점검하고 있었지.”

[그렇다면 됐어.]

“정확한 시기는 언제쯤일 것 같아?”

[글쎄. 역시 축제 시즌을 노리지 않을까 싶은데.]

“학기 말 즈음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군.”

[확실하진 않아.]

“우리는 우리대로 준비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놈들과의 전면전이구만.”

[그래. 전면전이지. 이번 ‘프레퍼의 알테라 시 침공’에는, 놈들의 주력이 대거 가세할 테니까.]

 오랜 공작의 끝에, 결국 그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원래 역사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형태로. 그것도 훨씬 이른 시기에.

[그리고 우리는 그 침공을 막아낸 뒤 곧바로 역습을 가한다.]

 레인과 르우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엘이 말이 이어졌다.

[여름이 오기 전까지, 프레퍼를 대륙에서 완전히 지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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