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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화. 사전 준비(1) (186/249)

 187화. 사전 준비(1)

 콰르르르르르르르!

“크윽!

로칼트 가르시아의 신형이 레일건의 후폭풍에 휘말렸다. 막대한 마력의 파장이 육신을 사정없이 강타하자, 그가 참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퀴이이이익!]

 그런 그를 향해 곧장 달려드는 거대한 동체를 지닌 언데드.

 콰앙!

“커헉!”

 마치 거북이의 등딱지와 같은 놈의 외피가 로칼트 가르시아의 육신과 거칠게 충돌했다.

 속도와 체중이 그대로 실린 일격. 로칼트가 받은 타격이 극심했다.

 놈은 마력의 폭풍이 채 가시지 않은 그 영역 내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막대한 체중과 방어력을 지녔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그것은 최근 로엘이 새롭게 제작한 언데드, ‘마충(魔蟲)’. 개체 수는 총 스물, 그것의 생김새를 설명하자면, 마치 삼엽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은 등딱지 아랫부분의 이야기고, 등딱지의 형태는 동산처럼 둥그스름했다.

 벌레의 외형을 지니긴 했지만, 그 높이만도 3미터, 너비는 5미터에 이르렀다. 상당한 거체를 자랑했다.

 이 언데드의 제작 목적은 굉장히 심플했다. 오로지 탱킹.

 그렇다 보니 이 개체엔 딱히 현대 병기가 조합되지 않았다. 다만 그 등껍질 표면에 엄청난 강도의 마법 합금이 덧대어져 있을 뿐.

 물론 그렇다 해도 개체의 성능만큼은 압도적이었다.

 일단 각 개체의 기동성이 굉장히 높았다. 그리고 거대한 만큼, 돈을 쏟아부은 만큼 굉장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아무래도 공격 패턴이 굉장히 직선적이고 단조롭다는 단점은 있었다. 그렇지만 그쯤이야 그다지 큰 문제도 아니었다.

 그야, 그 단점을 보충해줄 다른 개체가 존재했으니까.

[커르릉! 컹!]

[커르르르르!]

 헬 하운드 50개체가 마충들 사이를 불규칙하게 뛰어다니며 로칼트를 압박해 들어갔다.

 로칼트가 추가로 날아드는 마충의 몸통박치기를 피해내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헬 하운드의 무리는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마력 탄환을, 마력포를 쏟아냈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로칼트가 답답함에 괴성을 내질렀다.

 끊임없이 신형을 날리고 공격을 쳐내고 언데드를 부숴나갔지만, 그뿐이었다. 언데드를 조종하는 가면인에게 접근하는 것은 고사하고 일정 영역을 벗어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그리고 그 전투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구릉 지대 위쪽. 그곳에 자리 잡은 언데드 세 개체.

 이 세 언데드는 정말로 거대했다. 마충 따윈 비교도 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로엘에게서 부여받은 이름은 ‘베히모스’. 무려 체내에 레일건이 장착된 괴물 중의 괴물.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영웅과 악마의 유적에서 습득한 뛰어난 성능의 마력 집적진. 그것을 이용해 제작한 레일건이 주위 마나를 거칠게 빨아들여 막대한 기운을 응축하기 시작했다.

[구워어어어어어어어!]

 그렇게나 거대한 마나의 흐름을 검성인 로칼트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가 필사적으로 신형을 움직여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언데드들은 집요했다. 그가 절대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로칼트의 입장에선 초조함에 심장이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결국, 레일건이 작동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베히모스가 그 거대한 아가리를 쫙 벌리고-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거대한 빛의 기둥이 쏟아져 나와 그 경로에 위치한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대지도, 헬 하운드도, 마충도, 그동안의 전투로 인해 쌓인 잔해도.

 언데드들은 그 자신의 동체가 갈려 나가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로칼트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데에만 힘을 쏟았다.

“쯧쯧. 또 잔뜩 부서졌네.”

 베히모스 한 개체의 등 위에 걸터앉아 상황을 주시하던 로엘이 혀를 찼다. 이 공격 한 번으로 인한 재산 피해가 장난이 아니었다.

 딱히 상관없었지만.

[커르릉! 컹!]

[퀴르르르르르!]

 금세 다시 제작된 언데드가 전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로칼트는 어떻게든 레일건의 공격범위를 벗어나는 데엔 성공했지만, 그것으로 여력이 다한 모양이었다. 후폭풍에 저항하지 못하고 형편없이 튕겨 나가 대지에 깊게 처박히고 말았다.

“크흡. 큭.”

 그가 검을 지팡이 삼아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더 이상 검을 휘두를 힘은 남지 않았는지, 헬 하운드 무리의 접근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헬 하운드들이 그의 팔다리를 붙들고 거꾸러뜨리는 모습이 로엘의 시야에 들어왔다.

“끝났군.”

 그가 베히모스의 등 위에서 가뿐히 뛰어내리며 중얼거렸다.

 * * *

 바르베룸 왕국에서의 일을 만족스럽게 끝마친 로엘은, 카트넬 가에 들러 인벤토리 툴을 돌려주고 곧바로 바엘른 마탑으로 되돌아왔다.

 마탑 최상층에 위치한 탑주 전용 연구실. 그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니 두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구나.”

“죄송합니다. 일이 좀 많아서.”

“괜찮다. 어차피 네가 맡은 일은 다 끝내고 가지 않았더냐.”

 두 사람의 이름은 각각 로카인 파르테인, 가데른.

“완성되었나요?”

“그래. 시험 구동까지 마쳤다. 안전성은 확실하다.”

 가까이 다가간 로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상당히 특이하게 생긴 ‘로봇’들이었다. 거의 사람만 한 크기의. 정확히 33개체.

 그중 3개체가 최종 완성형 제품이고 나머지 30개체는 열화판이었다. 정확히는 실패작.

 로봇들은 기본적으로 인간형이되 다리가 없었고, 대신 등에 마력을 분출하는 추진기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굽어진 팔 끝엔 무언가 분사하는 게 가능할 듯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무려 바엘른 마탑의 탑주와 부탑주가 로엘과 함께 공동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이 로봇들에 집약된 기술은 그야말로 현 대륙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약속대로 각자 하나씩 나눠 가지면 되겠군요. 두 분 모두 직접 사용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내 몫은 엘리제에게 줄 생각이다. 죽을 날 얼마 안 남은 늙은이가 이런 걸 써서 뭘 하겠느냐.”

“사용하시다가 물려주셔도 될 텐데요.”

“되었다. 저런 물건 없어도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쯤은 문제없다.”

“난 일단 직접 사용하다가 나중에 물려줄 생각이다.”

“부탑주 님은 아직 제자를 두지 못하셨으니 말이죠.”

 로엘은 후후, 하고 웃으며 굳이 첨언했다.

 로봇의 배분 방식은 최종 완성 제품을 하나씩 나눠 가지는 것. 그리고 실패작들은 모두 로엘이 챙겨가기로 되어 있었다.

 실패작들의 가치도 절대 적지 않았지만, 애초에 이번 프로젝트는 로엘의 공헌도가 가장 높았다. 그에게 적용되는 배분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로카인의 공간 마법과 가데른의 중력 마법은 확실히 이 로봇 제작에 있어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그뿐.

 핵심이 되는 현대의 지식, 골렘 제작 기술, 고대의 아티펙트, 실험을 위한 자본, 온갖 귀한 재료들은 모두 로엘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로카인과 가데른도 배분율에 대해 딱히 이견이 없었다.

‘바르바젠의 도움이 컸지.’

 로엘은 로봇을 컨트롤하는 리모컨의 역할을 할 반지형 아티펙트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몇 달 전, 바르바젠이 선물이라며 한 중년인을 질질 끌고 왔다. 거진 반병신이 다된 그 사내의 이름은 ‘브람’. 프레퍼의 최상위 간부 중 하나였다.

[이 녀석이 추후 프레퍼의 핵심 전력을 담당하게 되는 두 축 중에 하나다.]

 바르바젠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흑마법사 제파스와 같은 프레퍼의 특수전력이라고 했다. 무려 ‘골렘의 현자’라고.

 로엘은 모종의 방법으로 그가 가진 마법적 지식을 모조리 뽑아냈다. 골렘 제작 기술은 공방 마법의 한 종류였던 덕에 빠른 습득이 가능했다.

[아!]

 그렇게 습득하게 된 골렘 제작 기술을 한참 연구하던 중, 로엘의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이 기술을 이용해 무엇을 해야 할지 순식간에 계획이 세워졌다.

 그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고, 현재에 이르러 그 결과물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그나저나, 이 실패작들은 가져다가 어디에 쓸 생각이지?”

“다 쓸 데가 있답니다.”

 로엘은 빙긋 미소 지으며 답했다.

 실패작도 사용하기 나름이다. 로엘의 머릿속에는 이것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이미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아마 원래 용도와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겠지만, 뭐 아무려면 어떤가.

‘손을 봐야 할 데가 좀 많겠지만, 충분히 그만한 수고를 들일 가치가 있겠지.’

 오히려 실패작의 활용도가 성공작의 그것보다 훨씬 높을지도 모른다. 생각대로만 된다면.

 로엘이 아공간에 자신의 몫을 쓸어 넣었다. 로카인과 가데른도 자신의 몫을 챙겼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었다.

 * * *

 마탑에서의 일을 마무리 지은 로엘은, 다음으로 알테라 시를 방문했다.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도시의 중심. 영주관이었다.

“반갑소. 케르티아 남작. 미리 연락받고 기다리고 있었지.”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엘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김없이 깔끔한 정장 차림에 무면탈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래. 내게 전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어디 들어볼까.”

“그 전에, 사람들을 좀 물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지.”

 영주가 가볍게 손짓해 사람들을 물렸다.

‘케르티아 남작’ 정체를 확인하는 과정은 이미 충분히 거쳤다. 그가 가짜일 가능성은 전무했다.

 그렇기에 영주는 그의 요구를 웬만해선 거절할 수가 없었다.

 상대의 지위가 이쪽보다 낮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제국의 주인 되는 자의 의지니까.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로엘은 기감을 풀어 주위에 별다른 기척이 느껴지지 않음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알테라 시 곳곳에 특수한 건축물이 세워질 예정입니다.”

“건축물?”

“예. 첨탑 형태를 띤 건축물이 될 겁니다.”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군.”

“특수한 아티펙트, 그리고 결계사와 연동되어 일정 공간 내에 절대적인 방어막을 형성시킬 수 있는 물건입니다.”

“그 말은, 오래지 않아 그 건축물을 필요로 하게 되는 때가 온다는 건가? 이 도시에?”

“이 이상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로엘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역시 나름 하나의 도시를 다스리는 인물이라는 것일까.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상황을 읽어내는 능력이 꽤 괜찮았다.

‘다행히 프레퍼와 내통하는 인물은 아니니.’

 원래 역사에서, 알테라 시는 프레퍼와 그들에게 선동당한 반란군에 점령당했다.

 그 탓에 회귀 후 바르바젠은 이곳 영주가 프레퍼와 내통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너무 허무하게 제국의 주요 도시 중 하나가 점령당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곳 영주는 정말로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엠페러 아이즈는 물론 따로 특수 인력까지 동원해 조사에 조사를 거듭한 결과, 그가 프레퍼와 내통하고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일단 어느 정도는 믿을 수 있는 자였다.

“영주님께 요청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건축물 설립의 허가. 둘째는 완성된 건축물의 은폐.”

“은폐? 건축물이라고 한 것을 보면 절대 작은 구조물이 아닐 듯한데, 어떻게 은폐하라는 거지?”

“방법은 뭐든 좋습니다. 아직 완공되지 않은 시늉을 하며 건축물을 가림막으로 가려두셔도 좋고, 평범하게 무언가를 기리는 기념비라는 식으로 가짜 정보를 퍼뜨리셔도 좋습니다.”

“······.”

“중요한 건 사람들이 이 건축물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지하더라도 딱히 큰 관심은 가지지 않게 하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해했다. 아예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식의 조치는 오히려 이목을 끌 수 있으니 피해야겠군.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로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해력이 좋은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며.

“첨탑이 세워지는 정확한 장소는?”

“총 다섯 곳입니다. 우선 중앙의 영주관. 그리고 도시 동쪽에 위치한 베르파룸 아카데미. 서쪽의 파르베리온 아카데미. 남쪽의 카르탄 아카데미. 마지막으로 북쪽의…….”

“펜타트리움 아카데미겠군.”

“그렇습니다.”

“건축물을 세우는 데 우리 영지에서 도움을 주어야 할 일이 있나?”

“그 부분에 대해선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이번 일을 행하는데 들어가는 인력, 자금은 모두 황실에서 부담할 겁니다. 영주님께선 제가 말씀드린 부분만 신경 써주시면 됩니다.”

 정확히는 황실이 아닌 로엘 본인이 부담할 예정이었지만, 굳이 그 사실은 입에 담지 않았다.

 사실 이번 일은 알테라 시 수호를 목적으로 하는 것인 만큼 조금 강압적으로 나가기만 하면 영주에게서 금전, 인력 지원을 받아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로엘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 방식으론 영주에게 반감이 심어지게 된다. 그에겐 전후 사정을 완벽히 설명하지 않았으니까.

 괜히 푼돈 아끼려다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 영주가 반감 없이 이쪽의 지시를 잘 이행하게 만드는 편이 좋았다.

“일단 묻겠다만, 이 모든 것이 황제 폐하의 뜻인 것은 확실하겠지?”

“물론입니다.”

“좋다. 전할 말은 이것으로 끝인가?”

“예.”

 영주와 로엘의 대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로엘은 아공간에서 몇 가지 서류를 꺼내 영주에게 전달하고 곧바로 영주성을 벗어났다.

“수고했어. 피곤하지 않아?”

“이 정도는 괜찮아요.”

 로엘은 와이번에 오르기 전에 플로라가 건넨 수통을 받아들고 그것을 들이켰다.

“이제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카트리나의 물음. 로엘은 수통을 플로라에게 돌려주고 입가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대답했다.

“마탑으로 돌아가죠. 일단 당장 해야 할 일은 마무리했으니, 당분간은 개인 수련에 좀 힘을 쓸 생각입니다.”

“알겠습니다.”

 이내 와이번이 세 사람을 싣고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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