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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화. 지옥수련(4) (185/249)
  •  186화. 지옥수련(4)

     수련 10일 차.

     르우벤은 반항을 포기했다.

     도주를 시도해 보기도 했다.

     기절하기 위해 바위에 머리를 박으려는 시도도 했다.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애걸복걸해보기도 했다.

     나중에 두고 보자고 윽박질러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수면을 취할 수가 없었다. 융통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레인은, 정말로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르우벤은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오직 하나. 레인의 말마따나 경지를 올리는 것뿐이라는 것을.

     그의 눈에 독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가능, 불가능의 문제는 일단 뒤로 제쳐 두기로 하고, 그 자신의 수련에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야 좀 눈빛이 쓸 만해졌네.”

     레인이 슬쩍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조차 르우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후읍!”

     그가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 * *

     수련 13일 차.

     르우벤이 드디어 실마리를 잡았다.

     그는 주위 모든 것에 신경을 거두었다. 그의 온 신경이 집중된 곳은, 그 본인의 손에 들린 검의 끝부분.

     지금까지 무공을 수련함에 있어 신경 써온 것들. 자세, 호흡, 내력의 운용, 균형, 보폭, 간격, 시선 등등.

     그 모든 것들을 잊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동안 의식적으로 신경 써왔던 그것들을 무의식으로 돌렸다.

     검 끝의 미약한 흔들림을 잡아낸다. 그것을 위한 아주 미묘한 중심의 분배에 신경 쓴다. 딱 필요한 근육만을 움직여 초식을 펼쳐낼 수 있도록 주의에 주의를 거듭한다.

     어찌 보면 그것은, 큰 것을 포기하고 오히려 작은 것에만 집착하는 바보 같은 행위.

     그러나 르우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모두 챙겨서 가지 않으면 ‘다음’으로 나아갈 길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의 신경은 요 며칠 동안 더할 나위 없이 날카로워졌다. 스트레스가 병행된 탓에 성질을 부리는 횟수가 많아졌지만, 대신 그만큼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신경 쓰게 되었다.

     그 감각이 고하고 있었다. 이 모든 문제점을 고쳐야 한다고.

     딱히 고친다고 전투력이 확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를 검 끝의 흔들림을 잡아낸다고 단숨에 상대를 훨씬 잘 베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중심 배분이 그렇게까지 정밀하지 않더라도 검격엔 충분한 힘을 실을 수 있다.

     쓸데없는 근육을 조금 사용할지라도 초식의 운용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이 모든 것을 바로잡더라도 실질적인 전력의 향상은 미미하겠지. 오히려 확 진전이 있는 쪽이 더 이상하다.

     그렇지만 해내야 했다. 얼핏 무의미한 것 같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분명히.

    “크읍!”

     그 시도대로 잘 풀렸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았다.

     그는 천재가 아니었다. 여태껏 의식적으로 해오던 것을 갑자기 무의식으로 돌려야겠다 마음먹어도 그것이 단번에 잘 될 턱이 없었다.

     그는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터무니없는 실수를 자꾸만 저질렀다.

     저 혼자 발이 꼬여 넘어졌다. 스스로의 검에 자상을 입었다. 심한 경우엔 검을 손에서 놓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정신력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육신이 피로를 버티지 못하게 되는 주기는 점점 짧아져만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에 서린 독기만큼은 오히려 점점 독해지고 강해져 갔다.

     그즈음부터 레인은 르우벤에게 별다른 조언을 건네지 않게 되었다. 르우벤 또한 지도를 요구하지 않았다.

     레인은 그저 르우벤이 스스로 수행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그가 쓰러질 것 같으면 포션 목욕통에 그를 담갔다 빼기만 했다.

     이날, 르우벤은 총 열다섯 번의 포션 목욕을 했다.

     * * *

     수련 18일 차.

     르우벤이 검을 휘두르는 자세에서 힘이 빠졌다.

     검격의 위력이 약해졌다는 뜻이 아니었다. 군더더기가 줄었다는 의미였다. 쓸데없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실마리를 잡은 지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았건만, 실수가 없어졌다. 힘을 흘리지 않게 되었다. 아직은 약간 모자라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계단을 착실히 밟아 올라가고 있었다.

     레인은 그런 르우벤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해내는군.’

     솔직히 실패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 수련법은 양날의 검이다. 인간은 극한으로 몰리면 그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무언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무너져버리기도 한다.

     아니, 오히려 무너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르우벤의 경우엔 그 본인의 의지력이 보통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었지만.

    ‘정신이 붕괴될 기미라도 보였다면 바로 중단시킬 생각이었지만.’

     올바른 길을 찾아서 가고 있는 듯하니 굳이 중단시킬 필요는 없겠지. 레인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사부.”

     어느새 수련장에 찾아온 것일까. 셀린이 입가에 호리병을 기울이며 다가와 레인의 옆자리에 털썩 자리 잡고 앉았다.

    “정말로 저 짓을 모든 무력대 구성원에게 시킬 생각이야?”

    “그럴 거다.”

     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레인이 무공을 전수해 가르치고 있는 무력대의 구성원들. 그들도 르우벤과 똑같은 과정을 거칠 예정이었다. 애초에 이번 르우벤의 수련은 그것을 위한 사전 실험이기도 했다.

     괜히 그가 로엘을 통해 무력대를 모집하면서 높은 스펙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괜히 그렇게 모인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오기와 집념을 시험한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이, 이것을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그 녀석들이 불쌍해지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들이 차근차근 성장하는 걸 기다려줄 정도로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마족의 대군이 대륙을 침공해오는 그 날이 오기 전까지 대륙제일검가를 세운다. 그 말도 안 되는 목표를 현실로 이뤄내기 위해선, 적어도 검가의 근간이 되는 무력대가 대륙 제일일 필요성이 있었다.

     일류의 끝자락에 오르는 순서대로, 그들은 이 비인간적인 수련 과정을 거치게 될 터였다.

     미안한 일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초일류로 거듭나지 못하는 낙오자는 내칠 생각이었다. 레인이 창설할 무력대의 구성원이 될 최소한의 자격요건이 바로 초일류일 테니까.

     숫자는 백 단위에 불과하더라도 그 구성원 전부가 초일류라면. 그것도 일반적인 초일류 무인보다 훨씬 강력한 좌공 수련자들이라면. 분명 그 무력대는 대륙제일을 다투는 집단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검가 사람들과 대련은 많이 하고 있어?”

    “그게, 어쩐지 내가 직접 찾아가서 대련을 요청하지 않아도 알아서 지원자들이 몰려들더라고.”

    “알 만하군.”

     레인이 쯧, 하고 혀를 찼다. 분명 그 압도적인 외모 탓이리라.

     셀린은 처음 성형공을 전수받은 그 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꾸준히 그것을 운용해 왔다. 그 덕분에 현재는 가히 성녀에 비견될 정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가만. 그렇다는 건.’

     레인이 미간을 모았다. 셀린이 그랬다면, 레이나도 같은 상황을 겪었을 것임이 분명했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조만간 카트넬 가를 한 번 뒤집어엎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 * *

     수련 20일 차.

     르우벤이 무아지경에 빠져 검무를 추었다.

     검무는 끊일 듯 끊이지 않고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천마신공의 공능에 따라 흘러나온 검은 기운이 르우벤을 중심으로 반경 2미터를 완전히 뒤덮었다.

     레인은 그런 르우벤의 모습을 지켜보며 레이나와 셀린에게 말했다.

    “잘 봐둬.”

     그들은 지금, 인간이 한계를 넘어서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재능이 있는 너희에겐 저 광경이 낯설겠지. 그렇지만 재능에도 한계가 있다. 언젠간 너희도 거대한 벽을 마주할 날이 올 거다.”

    “…….”

    “그때가 오면 저 광경을 떠올려라. 도움이 될 테니까.”

    “네, 스승님.”

     레이나가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진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날, 르우벤은 한 번도 포션 목욕을 하지 않았다. 바로 전날만 해도 서른 번이 넘는 포션 목욕을 했건만.

     그야말로 남아 있는 여력을 한계까지 쥐어짜서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보다 정확하게, 보다 간결하게, 보다 효율적이게.

     어느 순간, 검 표면에 일렁이던 기운이 화라락 일어났다. 그 기운이 한데 뭉쳐서 무언가의 형상을 갖추려는가 싶더니, 이내 팍! 하고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아깝다!”

     일리나가 두 손을 꼭 모으고 중얼거렸다. 크게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반면 르우벤은 동요하지 않았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계속해서 검무를 이어갔다.

     오래지 않아, 다시 검 표면의 기운이 움직임을 보였다. 먼젓번보단 약간 느리게, 그렇지만 착실하게 기운이 밀집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이내, 검 위에 또 다른 검의 형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완연한 검강의 발현이었다.

    “후읍!”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르우벤이 신형을 확 뒤틀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곧바로 검강이 사출되어 수련장 한편에 위치한 바위를 향해 날아갔다.

     촤아악!

     바위가 시원하게 썰려 나갔다. 경사면을 따라 위쪽 바위가 미끄러져 내려오고, 매끄러운 절단면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해, 해냈다.”

     르우벤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멍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앉은 자세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뒤로 넘어가는 그를, 어느새 달려온 밀리아가 받아들었다.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무릎을 베개로 내주어 그가 누울 수 있게 해 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응…….”

     르우벤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끝내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곤 실로 편안한 얼굴로 잠에 빠져들었다.

     새액. 색.

     잠든 그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레인이었다.

     그가 르우벤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수고했다. 그리고 축하한다.”

     르우벤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생겨났다. 마치 레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깊게 잠들었기에 그럴 리가 없을 텐데도.

     르우벤이 잠에서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 * *

     그 시각, 바르베룸 왕국.

     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왕국의 북부. 그곳에 모습을 드러낸 로엘이 가면 아래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찾았다.”

     그의 눈앞에는, 강직한 인상의 용인족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용인족 사내가 검 손잡이에 손을 얹은 채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넌 제국의 인물인가?”

    “알려줄 이유가 없다는 것, 잘 알 텐데.”

     이 용인족 사내의 이름은 로칼트 가르시아. 프레퍼의 최고위 간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다른 것 없이 오로지 검술만을 극한까지 연마한 인물. 가르본이나 뤼바르처럼 무술과 마법을 병행해 사용하진 못하지만, 오히려 그 둘보다도 강한 실력자였다.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초인 중 최상위. 검술 실력만 놓고 봐도 전 대륙에 그를 감당할 수 있는 초인이 그리 없건만, 거기에 용인족 특유의 강인한 신체와 세월의 힘까지 더해졌다. 강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한 수확이군. 이런 식으로 프레퍼의 최상위 간부 하나를 잡을 수 있게 될 줄이야.”

     이번에 로엘이 로칼트를 발견해낸 경위는, 르우벤이나 바르바젠의 전생 경험을 빌어서가 아니었다. 그랬다면 그가 ‘예상치 못한 수확’이라고 하지도 않았겠지.

     그를 찾아내고 함정에 빠뜨려 이렇게 일대일 대치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엠페러 아이즈의 제보 덕분이었다.

     솔직히 운이 좋았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엠페러 아이즈가 대단한 활약을 펼쳤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오랜 투자가 결실을 맺었다. 엠페러 아이즈의 국외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전 대륙을 아우르는 초거대 정보 조직이 탄생할 날도 머지않았다.

    “마치 내가 다 잡은 고기인 것처럼 말하는군. 너무 오만한 것 아닌가?”

    “후후. 그건 지금부터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지.”

     로엘이 손가락을 튕겼다.

     우우웅!

     아공간이 열렸다. 그 안쪽에서부터 언데드의 무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커르르릉! 컹!]

    [그르르르르르르르.]

    [퀴이이이익!]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언데드는 총 세 종류. 그리고 그 숫자는 도합 73개체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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