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9화. 몬스터 웨이브(3) (178/249)
  •  179화. 몬스터 웨이브(3)

     헬 하운드 두 개체에게 양팔을 붙들려 질질 끌려온 뤼바르 아덴바인에게, 로엘이 물었다.

    “이번 작전에 동원된 나머지 조직원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연락 수단은 어떻게 되죠?”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답을 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도저히 입을 열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꼴이 되어버린 탓이었다. 워낙 격렬하게 저항하는 통에 이렇게 되고 말았다.

    “곤란하네.”

     로엘은 볼을 긁적였다.

     뤼바르 아덴바인, 혹은 아드바렌. 아마 이 두 사람이 이번 일의 총책임자일 터였다.

     분명 이들 외에 ‘보옥’으로 사념을 추출하는 ‘회수팀’이 어디선가 움직이고 있을 터. 그들의 위치에 대해선 이 두 사람에게 물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래서야 그건 불가능하겠군.”

     이들이 이렇게 나올 줄은 로엘도 예상치 못했다. 정확히는 뤼바르 아덴바인이 갑자기 그런 돌발행동을 벌일 줄은 몰랐다는 게 옳은 표현이리라.

    ‘남 잘되는 꼴은 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못 보는 성격이라더니. 그게 그렇게 극단적인 행동으로까지 표출될 정도였을 줄이야.’

     이전에 르우벤이 그랬었다. 이게 비유가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라고. 성격이 아주 꽈배기가 울고 갈 정도로 제대로 뒤틀린 놈이라고. 지금 보니 실로 옳은 표현이었다.

     로엘이 고개를 돌려 한 장년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한 명이라도 살려서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 인사는 되었다. 이젠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군.”

    “물론입니다.”

     장년인의 정체는 크레필만 카트넬. 카트넬 가의 전대 가주였다.

     그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로엘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임기응변이 빠른 로엘이 곧바로 자신이 제국의 사자임을 증명했기에 문답무용으로 공격해 온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프레퍼의 최고 간부 중 하나인 ‘아드바렌’은 죽었다. 정확히는 이대로면 붙잡히는 건 시간문제라고 판단한 뤼바르 아덴바인이 직접 살해했다.

     뤼바르는 그 직후 스스로의 목숨마저 끊으려고 했는데, 그때 갑자기 난입해 온 것이 바로 크레필만 카트넬이었다.

     로엘이 많이 강해졌다지만 스스로의 목숨을 끊으려는 초강자를 제지하는 건 그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뤼바르 정도 되는 강자를 자해하지 못하도록 막아가며 제압하는 일은, 웬만큼 근접전의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면 힘들었다. 그렇다 보니 크레필만의 난입은 큰 도움이 되었다.

    “우선 말씀드렸듯이, 저는 제국의 사자입니다. 이번에 정식으로 메르타 왕실에 방문했습니다. 이 서신이면 증명이 되겠지요.”

     로엘은 그렇게 말하며 아공간에서 황제와 국왕의 직인이 나란히 찍힌 서신을 꺼내 크레필만에게 건넸다. 크레필만은 심란한 표정으로 서신의 내용을 확인하곤, 그것을 다시 돌려주었다.

    ‘잘됐군. 자연스럽게 서신을 읽게 만들었다.’

     로엘은 가면 아래서 살짝 웃었다.

     황실과 왕실이 나눈 ‘조약’. 그 조약엔 왕국 상층부의 썩어빠진 일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내용이 상당히 많이 담겨 있다.

     안 그래도 카트넬 가와 메르타 국가상층부 사이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않다. 이것으로 검가 인사들의 국가에 대한 반감을 조금 더 높일 수 있으리라.

    “그리고……?”

     무언가 더 설명하려던 로엘은, 갑작스럽게 들어온 통신에 그것을 멈춰야만 했다.

    [로엘.]

    “카트란?”

    [그쪽 일은 끝났나?]

    “어, 뭐 대충.”

    [그렇다면 최대한 빠르게 이쪽으로 지원을 와 줘야겠다. 문제가 생겼어.]

    “문제?”

     로엘의 표정에 잠시 의아함이 깃들었다가, 카트란의 설명이 이어짐에 따라 점점 심각해졌다. 그가 크레필만을 돌아보며 말했다.

    “상황 설명은 조금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저와 함께 바로 이동하시죠.”

    “음?”

    “지금 백작령 쪽에 큰 문제가 생긴 듯합니다. 일단 레인 녀석이 버티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자칫하면 대참사가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전대 가주님의 손자 손녀분도 위험해질 테지요.”

    “그게 무슨 소리지? 제대로 설명해라.”

    “간단히 말하자면, 이번 일의 흑막인 세력에서 파견된 현자가 그곳에 초고위 언데드를 소환해낸 모양입니다. 아마 고대의 아티펙트를 이용해서.”

    “고대의 아티펙트?”

    “한시가 급합니다.”

    “……나머진 가면서 듣지.”

     로엘은 뤼바르를 들쳐메고 크레필만과 함께 카트리나의 와이번에 올랐다. 곧바로 와이번이 백작령을 향했다.

     * * *

     쾅! 쾅! 콰아앙!

     놈과 레인이 맞붙는 충돌음이 계속해서 울렸다.

     레인은 소림사의 무공으로 놈을 몰아쳤고, 놈은 여덟 개의 주먹을 쉴 새 없이 휘둘러 레인을 압박했다.

     전투가 이어질수록 레인이 수세에 몰렸다. 아무래도 놈과는 달리 레인은 전투에 임함에 있어 거리낄 것이 많았으니까.

     우선 레인은 등 뒤의 인간들을 지켜야 했다. 게다가 일정 시간 동안 무적인 놈과는 달리 그 자신의 몸을 사려야 했다. 심지어 체력과 내력의 배분에도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꾸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커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놈이 내지르는 포효를 레인이 사자후로 맞받았다.

     음파와 음파가 충돌한 것임에도, 그 충돌지점이 일반인의 눈에까지 보였다. 양측이 방출한 마나가 뒤섞여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흐하하하하! 재미있구나, 인간!]

     놈의 오른쪽 두 번째 주먹에 불길한 검은 화염이 깃들었다.

    ‘이건 맞받아치지 말고 피해야 한다.’

     레인은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끼고 주먹을 회피했다. 막아내기 힘든 공격임은 둘째치고, 저것을 막는답시고 힘을 크게 소진하면 뒤로 갈수록 힘들어진다.

     촤르르르르르르륵!

     회피와 동시에 그림자로부터 사슬낫을 뽑아 들고 놈을 칭칭 얽매는 레인. 놈이 가진 팔 중 세 개가 괴상하게 얽혀 고정되었다.

     레인이 사슬낫에 내력을 주입했다. 사슬의 굴곡에 따라 삐죽삐죽 솟아오르는 강기. 동시에 사슬낫이 가진 고유능력, 지옥염 또한 발동되었다.

     레인은 곧바로 사슬낫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크아아아아아!]

     얽혀 있던 놈의 팔이 단숨에 갈려 나갔다. 세 개의 팔 중 두 개는 갈가리 찢겨나갔고, 나머지 하나는 아예 흔적도 없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놈은 여전히 건재했다.

     남은 주먹 중 하나가 울룩불룩 변화하더니 널찍한 망치와도 같은 모양으로 화했다. 그것이, 큰 공격을 가하느라 빈틈이 생긴 레인의 전면으로 날아들었다.

     떠어엉!

     그 공격을 그림자 줄기를 타고 솟구쳐 오른 바데룬이 받아냈다.

     그는 아예 무기를 버리고 2미터에 달하는 방패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놈과 어정쩡하게 공방을 주고받느니 아예 작정하고 탱커 역할만을 수행하기로 한 것이다.

    “크으읍!”

     대비하고 있었던 충격임에도 뼛속까지 시렸다. 악문 이 사이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튕겨 나가는 바데룬의 몸을 그림자 줄기가 부드럽게 받아냈다.

    “후읍!”

     어느새 그림자 줄기를 발판 삼고 이동해 놈의 좌측으로 돌아간 레인이 놈을 향해 비스듬하게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천근추를 운용하고 발끝에 기운을 모았다.

     충돌과 동시에 진각.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놈이 왼쪽 팔 두 개를 교차해서 막아냈지만, 워낙에 강렬한 공격이다 보니 신형이 약간 기울어졌다. 레인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공간검을 뽑아 들어, 그대로 내리쳤다.

     쿠우우우웅!

     내력은 일절 실리지 않은 공격임에도 워낙에 기본적인 질량이 막대했다. 놈이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균형을 잃었다.

     콰르르르르르르르.

    “키하악!”

    “퀘에에에엑!”

     단순히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것뿐임에도 막대한 소음과 먼지가 일었다. 근방의 몬스터들이 압사당해 비명을 토해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성벽 위에서 병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그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레인을 응원하고 있었다. 레인이 밀리게 되면 다음은 그들이었으므로.

     레인이 탁, 하고 대지에 착지해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후우.”

    [크흐흐흐흐. 어떻게 된 거냐, 인간. 지쳐 보이는데.]

     놈은 괴소를 흘리며 아직 멀쩡한 팔들로 대지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갈아버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망가진 팔들이 불룩거리며 재생되고 있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성녀를 끌고 오는 건데.”

     레인이 욕설을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전쟁에 도움이 될 구석이 없을 것 같아 두고 왔는데, 결론적으로 언데드 퇴치의 스페셜리스트를 저 스스로 마다한 꼴이 되고 말았다.

    “후우우우우.”

     뭐 어쩌겠는가. 그런 걸 지금 생각해 봐야 상황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애초에 눈앞의 언데드는 일반적인 언데드도 아니었다.

     레인의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이놈은 설사 성력으로 정화시켜 버린대도 마력이 다할 때까진 다시 육신을 복구해내는 유형의 언데드가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성녀가 있었더라도 큰 의미는 없었을지도.

    [뒤쪽의 벌레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구나. 그런 종류의 발버둥을, 나는 싫어하지 않는다.]

    “이 빌어먹을 소 대가리 새끼는 왜 이렇게 말이 많아.”

    [흐하하하! 그건 이해해 줬으면 좋겠군. 그 빌어먹을 아티펙트에 갇혀 있던 세월이 워낙 길어야지. 그럼 간다.]

     놈이 그 거대한 육신으로 높이 뛰더니 레인이 서 있는 대지를 발로 내리찍었다.

     쿠콰콰콰콰콰쾅!

     레인이 순식간에 자리를 이탈, 들썩이는 대지에서 절묘하게 중심을 잡아가며 빠르게 이동했다. 그는 놈의 양쪽 다리를 번갈아 박차고 올라가 순식간에 거대한 복부에 도달, 신형을 크게 뒤틀어 돌려차기를 먹였다.

     꾸우우우웅!

     놈의 복부가 크게 패였다. 마치 크레이터와도 같이.

     제대로 들어간 공격이었지만 레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기대했던 것은 이런 종류의 피해가 아니다. 이런 겉보기만 화려한 타격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놈이 무언가 수작을 부렸다.

     콰아아앙!

     놈이 마치 모기를 잡듯 레인이 있는 곳을 향해 손바닥을 맞부딪쳐 왔다. 레인이 신형을 억지로 뒤틀어 그것을 간신히 피해냈다.

     그러나 놈의 팔은 총 여덟 개. 곧바로 연격이 날아들었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납작하게 눌려 죽을 상황.

     레인이 곧바로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쳤다. 이걸 또다시 억지로 피해 봤자 연속 공격이 앞으로 2번은 남았다. 그렇다면······.

    “흑아! 비기스트!”

     그림자 줄기로부터 밀려 나온 비기스트를 붙잡은 레인이, 그것을 수평으로 세웠다.

     쿠웅!

    [쿠아악!]

     놈의 양 손바닥이 공간검의 검 끝과 손잡이 끝부분을 후려쳤다. 비명을 내지르는 게 꽤나 아파 보였다. 언데드가 정말로 아픔을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후웁!”

     비기스트를 아무렇게나 내던진 레인이 사슬낫으로 놈의 허리를 칭칭 감았다. 놈은 방금 전 레인의 공격으로 복부가 꽤 잘록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대로, 아까 전 그랬던 것과 같이 놈의 허리를 통째로 갈아내 버렸다. 검강에 지옥염이 실린 사슬낫을, 단숨에 죽 잡아당긴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륵!

    [크하아아아아아아!]

     놈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뚝, 하고 분리되었다. 그런데 분리된 상반신이 그 상태 그대로 움직임을 보였다. 레인을 향해 직선으로 떨어져 내리는 놈의 주먹.

     놈의 얼굴에는, 이런 타격쯤 아무래도 좋다는 듯한 기괴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우아아아압!”

     콰아아아아아아앙!

     이번 공격도 그림자 줄기를 타고 올라온 바데룬이 받아냈다. 그는 초인의 감각을 동원해 상황을 냉정하게 살피다가, 가장 필요한 순간에만 나서 레인을 지원하는 형태의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그 전략은 상당히 주효했다.

     압도적인 스테미너를 지닌 레인. 그리고 상대적으로 부족한 스테미너를 적절한 상황 판단력으로 메우는 바데룬. 두 사람은 상당히 효율적으로 놈을 상대해 나갔다.

    “크으.”

    “후우우.”

     그러나 문제는 두 사람의 체력이 소모되는 속도. 역시 근본적인 부분이 발목을 잡았다.

     놈은 아무리 피해를 입어도 금세 복구해내고, 아무리 날뛰어도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반면 두 사람의 체력과 오라는 시시각각 줄어만 가고 있으니 점점 힘에 부칠 수밖에.

    “시간 한번 더럽게 안 가네.”

     레인이 퉷, 하고 피 섞인 침을 뱉으며 불평했다.

    “가망이 있겠나? 아무리 봐도 놈이 소멸하는 것보다 이쪽의 체력이 먼저 바닥날 것 같은데.”

     바데룬이 우려를 표해왔다. 그러자 레인이 목을 뚜둑 뚜둑 꺾으며 대답했다.

    “지원군이 올 거야. 일단 그때까지 버티고 마저 생각하도록 하자고.”

    “지원군?”

    “그 둘이 오면 상황이 좀 나아지겠지.”

     레인은 카트란이 통신 아티펙트를 이용해 전해온 내용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바데룬이 심호흡을 하며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쿠구구구구구.

    [이제 슬슬 끝이 보이는 것 같구나!]

     어느새 육신을 완전히 회복한 괴물이 두 사람이 서 있는 대지로 주먹을 날려 왔다. 두 사람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신형을 빼냈다.

     콰아아아앙!

     둔중한 충돌음이 사위를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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