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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화. 카르테리온(5) (173/249)

 173화. 카르테리온(5)

 그날도 어김없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진료소를 찾아든 날파리들이 있었다.

“이것들아!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장사질이야! 엉?! 누구 허락을 받고!”

“장사라니. 무료 의료봉사라는 걸 보면 모르시는 겁니까?”

“어디 말대꾸야!”

 비대한 몸집을 지닌 사내가 입구의 환자들을 통제하던 자원봉사자를 걷어찼다. 정확히 복부에 작렬하는 발길질.

“크학!”

 청년이 바닥을 굴러 천막 안쪽까지 밀려 들어갔다. 약간이지만 오라가 실린 발길질이었다. 일반인인 청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극심한 타격을 입었는지 청년의 입에서 선혈이 흘렀다. 그가 배를 부여잡고 피가래 섞인 기침을 뱉어냈다.

“커헉. 컥!”

“여기 책임자가 누구야! 그 성자라는 놈이냐!”

 사내가 뒤따라 들어와 청년의 머리 위에 발을 얹으며 소리쳤다.

 그는 영지에 세력을 떨치고 있는 암흑가의 보스 중 하나였다.

 최근 영지가 무법지대가 되면서 암흑가들은 완전히 살판이 났다. 완전히 고삐가 풀린 그들은 일반인에게 패악질을 벌이며 온갖 범죄를 일삼았다.

 그런데 활동이 활발해지다 보니 암흑가들 사이의 충돌도 빈번해졌다. 심한 경우엔 조직간의 전면전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사내의 조직이 바로 그 전쟁을 벌이고 있는 조직 중 하나였다.

 그가 이곳 진료소에 모습을 드러내 패악질을 벌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렇게 환자가 많이 몰려드는데도 이곳 진료소는 물자가 부족해지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 풍족한 물자를 적당히 뜯어낼 수 있다면 앞으로 여러모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조직간 항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사내는 마음속으로 괴소를 흘리며 발밑에 놓인 청년의 머리를 조금 더 강하게 짓눌렀다.

“안 들리나!”

“넌 또 뭔데 지X이야.”

 그러자 되돌아오는 대답. 좌중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을 쫓았다.

 눈이 부시도록 잘 생긴 소년이 그곳에 서 있었다. 사내는 직감적으로 그 소년이 ‘성자’임을 알아챘다.

 그런데 그 성자의 오른손에, 환자 중 하나가 가져온 대형 도끼가 들려 있었다.

“네가 성자라고?”

 푸흡!

 어디선가 숨죽여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이 성큼성큼 사내의 앞으로 다가갔다. 기백에서 밀린 사내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뒤로 물렸다.

“일반 환자 치료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자꾸 정신병 환자까지 찾아오는 건지.”

 푸하하하하!

 소년의 발언에 천막 내부에 폭소가 퍼져나갔다.

 천막 내부에 자리 잡은 이들 중에서, 사내와 그를 뒤따르는 폭력배 무리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역시 성자님이구만!’ 하고 물개 박수를 치는 자는 있었지만.

‘뭐, 뭐야.’

 사내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이 반응은 대체 뭐란 말인가.

 기대했던 것과 비슷하기는커녕 완전히 상반된 눈앞의 광경. 심지어 성자라는 놈은 욕설과 함께 도끼를 끌고 다가오는 중.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 뭐. 잘 찾아왔다. 내가 너와 비슷한 증상을 지닌 정신병자들을 치료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좀 있거든.”

“…….”

 소년, 레인은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채로 사내를 응시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죽도록 처맞다 보면 낫게 되는 병이니까. 완치를 약속하지.”

“이, 이 건방진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챙!

 사내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순간 기백에 눌리긴 했으나, 상대는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송이.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나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눈앞의 건방진 놈을 때려눕히고 관계자들을 협박해 물자를 빼앗는다!

 사내가 마음을 다잡고 소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백작령에 도착한 성녀는 곧바로 영지민들에게 길을 물어 진료소를 찾아갔다.

 이왕 사람들을 도울 거라면 이미 기반이 다져져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장소가 좋았고, 부관이 보고한 가짜 성자와 성녀에 대한 일도 알아봐야 했기에.

 오래지 않아 성녀의 눈에 대형 천막이 들어왔다. 무료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기에 소규모 진료소를 상상했건만, 생각보다 본격적인 규모였다.

‘이렇게 시간, 인력, 자금을 크게 소모해가면서까지 타인을 돕는 이들이라니. 대체 어떤 자들일까.’

 성녀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가짜 성자와 성녀에 대한 부분으로 넘어갔다.

‘역시 심성이 굉장히 고운 이들이겠지.’

 사칭 문제의 건이 있지만, 일단 상대를 마주하게 되면 색안경을 끼고 대하진 않아야겠다. 성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콰앙!

 갑자기 둔중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

성녀가 창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어 확인해 보니-

“우와아아아아악!”

 -비대한 몸집을 가진 사내 하나가 천막 입구에서부터 튕겨져 나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사내는 허우적거리며 허공을 유영하다가, 한쪽에 놓인 바위에 비스듬하게 처박혔다.

“컥, 커헉.”

 그나마 단련된 무예가인지 죽지는 않은 듯했다.

 사내의 몸이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가 바닥에 닿았다.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등을 바위에 기댄 모양새.

 콰앙!

“흐억!”

 곧바로 천막으로부터 도끼가 날아들어 사내의 오른쪽 눈 바로 옆에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사내의 뺨에 실선이 그어졌다.

 기겁한 사내가 급히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자, 이번엔 망치가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콰아아아앙!

 망치에 적중된 부분에 금이 가더니 후드득후드득 부서져 내렸다. 초근접 거리에서 바위의 일부가 분쇄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 사내의 몸이 제자리에서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런 사내의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와, 오른발을 바위에 턱 걸치고 그림자를 드리우는 한 소년.

“사, 살려주십시오! 성자님!”

“내가 왜.”

“살려주시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필요 없어.”

“제, 제발!”

 사내가 소년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려 했다. 소년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런 사내의 얼굴을 걷어차 버렸다.

 그리고 폭력의 현장을 본의 아니게 쭉 지켜보게 된 성녀가 손목으로 자신의 머리를 팍팍 두들겼다.

“자, 잠깐. 상황을 이해하질 못하겠어. 뇌에 이상이 생겼나?”

“…….”

“기사장님. 저쪽의 사내가 저 소년을 ‘성자’라고 부른 것, 맞죠? 잘못 들은 것 아니겠죠?”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맙소사.”

 성녀는 상상 속 ‘성자’의 이미지가 산산이 깨어지는 것을 느꼈다.

 가짜 성자와 진짜 성녀가 처음으로 조우하게 된 순간이었다.

 * * *

 마치 은은한 빛이 감도는 것만 같은 은빛 긴 생머리. 맑고 커다란 주홍빛 눈동자. 갸름한 얼굴에 도톰한 입술. 탄력적인 피부.

 신령스러운 법의로 가려져 있음에도 그 훌륭함이 느껴지는 몸의 굴곡. 머리 위에 얹힌, 교단의 3대 신물(神物)중 하나인 티아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위에 감도는, 범접하기 힘든 신성한 아우라.

 대륙에 이름 높은 성녀, 아이린 리메리아(27세)가 진료소에 강림했다.

 그녀는 치료소 내부의 인물들과 적당히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 치료를 도왔다.

 과연 성녀라고 할까, 굉장한 힘을 선보였다. 광역 회복 마법이 사위를 확 휩쓰는가 싶더니, 외상 환자들이 단숨에, 모조리 회복되었다.

“지, 진짜 성녀님이다.”

“단숨에 병이 나았다! 굉장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암흑가 사내의 패악질로 인해 부상을 입은 청년 또한 단숨에 회복되었다. 예의 바른 청년은 곧바로 깊숙이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모두가 성녀에게 감탄과 경외의 시선을 보냈다. 신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기도하는 이도 나타났다.

“지적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그러나 레인만은 애매한 표정이었다.

“되도록 그런 식으로 힘을 낭비하진 않는 게 좋을 거다. 외상 환자들은 의원들과 일반 사제들에게 맡겨 두고 넌 전염병 환자만을 돌보는 편이 체력 소모를 줄일 수 있을 테니.”

“……?”

“딱히 기분 나쁘라고 한 소리는 아니야. 다만 성력을 무한히 남발할 수 있는 건 아닐 테니 이왕이면 효율을 높이자는 이야기지. 그 페이스대로라면 금세 지치고 말 거다.”

 성녀가 활용할 수 있는 성력의 양은 확실히 방대했다.

 본래 성력은 질병에는 효율이 낮은 힘. 웬만큼 고위 사제라도 질병을 치료하는 일은 힘에 겨워한다. 오로지 성녀만이 그 압도적인 출력으로 무리 없이 질병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아무리 성녀라도 발현할 수 있는 기적에는 엄연히 한계가 존재했다. 반면 이곳 진료소로 몰려드는 환자의 행렬은 끝이 보이질 않는 수준이었고.

 심지어 성력 잡아먹는 하마인 전염병 환자의 비율이 굉장히 높기까지. 적절히 역할을 분담하고 페이스를 조절하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힘이 고갈되고 말 것임이 분명했다.

 레인은 그것을 지적한 것이었다.

“…….”

 성녀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듣고 보니 옳은 소리였다. 그러나 성녀는 그것의 옳고 그름보다 자신에게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인물의 존재에 더욱 놀랐다.

 그녀는 설사 제국의 황제일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정도의 지위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자신을 대등한 시선으로 대하는 인물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감히 일개 의원 주제에 성녀님께 무례를!”

 그 와중 성기사 한 사람이 으르렁거렸다.

 같은 말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법. 그는 레인이 성녀가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무안을 주고 있다고 여겼다.

 레인이 그를 돌아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뭐.”

 주춤.

“……?”

 성기사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린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며 혼란에 빠졌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당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방금 무언가 항거할 수 없는 감각을 느꼈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었는지 정의를 내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인지를 초월한 무언가였다. 그렇기에 그것에 당한 성기사는 자신이 무엇에 당하긴 한 것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전염병 환자가 열 명 더 찾아왔습니다!”

 그때, 바깥에서 자원봉사자 청년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 끝이 없군.”

 레인이 곧바로 그림자로부터 각종 침을 받아들며 자리를 벗어났다.

 성녀는 살짝 웃는 얼굴로 성기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신은 괜찮다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리곤 환자를 돌보기 위해 움직였다.

“…….”

 성기사만이 제자리에 덩그러니 서서 무언가 석연찮은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 * *

 성녀 일행이 진료소에 자리 잡고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한 지도 3주가 지났다.

 원래 성녀의 수행 일정에는 이와 같은 장기 체류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성녀는 이곳 영지에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영지를 떠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해서 저게 가능한 거지?’

 성녀는 환자를 치료하는 내내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그렇다 치고, 대체 저 레인이라는 소년과 일리나라는 여인은 무슨 수로 전염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것일까.

 시간을 들여가며 차차 낫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저들의 치료 또한 즉효성이었다. 일반적인 의술과는 궤를 달리하는 무언가의 신비한 능력을 지녔음이 분명했다.

 특히 레인이라는 소년 쪽이 놀라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자라는 칭호와는 거리가 먼 행동양식을 보이는 인물이었지만, 그 외의 부분에선 정말로 굉장했다.

 그가 치료한 전염병 환자의 숫자는 거의 성녀 본인과 비등한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치료 속도 자체는 이쪽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그는 지치지도 않는지 최소한의 휴식만을 취하며 계속해서 움직였다. 힘을 소모하고 나면 보충의 시간이 필요한 이쪽과는 달랐다.

 아무리 이쪽이 성력과 상성이 나쁜 전염병 환자만 치료하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단한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성직자도 아닌 일반인이지 않은가.

“조금 입맛이 쓰군.”

 그러나 그런 성녀의 생각과는 반대로, 정작 레인 본인은 조금 씁쓸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성녀가 대단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이래서야 이쪽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묻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녀를 보다 보면 그런 생각이 가끔씩 들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의 목적이 목적인 만큼 약간 초조한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의 생각과는 좀 달랐다.

 그 성녀에도 밀리지 않는 외모와 실력. 아름다운 수행원에, 무엇보다도 그 특유의 괴팍한 성격. 레인의 존재감은 타인의 그것에 묻혀버리기엔 지나치게 거대했다.

 오히려 성녀와 ‘비교’되며 더 큰 화제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상한 방향에서 시너지효과가 생겨난 것이다.

‘아니, 초조해할 필요까진 없나.’

 레인은 살짝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버렸다.

 어차피 의료봉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민심엔 한계가 있다. 메인이벤트가 따로 준비되어있기도 하고. 그러니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그런 와중 귀걸이로부터 익숙한 진동이 전해져 왔다. 로엘의 통신이었다.

[레인.]

“어.”

[슬슬 날짜가 다가오고 있는데. 잊지 않고 있었겠지?]

“안 잊었어.”

[카트란이 그쪽으로 향하고 있어. 며칠 뒤면 도착할 거야.]

“그래.”

[이번에 통신을 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고, 변수가 한 가지 더 생겼다는 걸 알려주려고.]

“변수?”

 레인이 미간을 모았다. 또 변수란 말인가.

 게다가 이번 변수는 성녀의 출현처럼 좋은 종류의 것도 아닌 듯했다. 이야기를 전해오는 어조만 가지고도 그것을 유추하는 것이 가능했다.

[아무래도 그쪽 일에 프레퍼가 개입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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