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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화. 카르테리온(4) (172/249)
  •  172화. 카르테리온(4)

     기본적으로 레인이 검가를 세울 장소는 대산맥을 끼고 있는 영지일 필요성이 있었다.

     이유야 당연히 원활한 영약의 수급을 위해서였다. 언제까지고 영약 채집을 로엘의 수하들에게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현 대륙에서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영지는 몇 존재하지 않았다. 있다 해도 검가와 같은 거대 세력이 들어섰다간 잡음이 일어날 영지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카르테리온은 검가를 세울 후보지로 안성맞춤이었다. 현시점에선 개판 5분 전인 영지지만, 그 점이 오히려 좋았다. 영지 정비야 나중에 제국이 메르타를 점령한 뒤에 감행하면 그만이니까.

     게다가 지역 민심을 단번에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일반적으로 신흥 검가는 영향력을 차차 늘려가며 규모를 불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레인은 그렇게 여유를 부려가며 차근차근 세력을 성장시켜나갈 수 없었다.

     거대한 자본과 인력을 투자해 단숨에 세력을 일궈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발이 없기 위해선 주위로부터 호의, 혹은 인정을 받는 편이 좋았다.

     어차피 차후 메르타를 집어삼킬 제국을 등에 업고 있으므로 웬만한 잡음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만 민심은 또 다른 문제.

     특정 지역에 명성을 떨쳐가며 차근차근 지역 민심을 끌어모으는 방안은 당연히 논외였다. 특별한 계기를 통해 단숨에 민심을 끌어모을 필요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레인은 일부러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카르테리온 백작령을 찾았다. 현재 백작령은 국가에 배신당해 민심에 공백이 생긴 실정. 굉장히 파고들기 좋은 상황이지 않은가.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어갔다. 뛰어난 실력의 소년 의원에 대한 소문은 영지 전역으로 퍼졌다.

     그 어떤 환자에게 돈을 받지도 않고, 어떤 환자도 거절하는 법이 없으며, 살려내지 못하는 환자가 없는 소년 의원.

     게다가 소년의 외모는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가 없는 완벽함을 자랑했다. 심지어 소년을 보조하는 여인조차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이슈되지 않을 수가 없는 조합이었다.

     사람들의 레인에 대한 평가는 그야말로 최상. 성자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외모와 실력, 자비로움을 갖춘 인물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그런데 그에 따라붙는 묘한 소문도 있었다.

     그 소년 의원이 성자라는 칭호와 가장 어울리는 인물임과 동시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는.

     * * *

    “야 이 어린놈의 새끼야! 이 몸께서 아프시다고 하잖아! 당장 와서 치료하라고!”

     짧게 자른 머리에 근육질 몸매. 구릿빛 피부를 가득 뒤덮은 흉터. 그리고 침상 근처에 놓인 대형 도끼. 그야말로 사납게 생긴 인상의 환자였다.

     그가 침상에 누워 피가 흐르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다른 환자를 돌보고 있는 소년 의원을 윽박질렀다. 상세가 더욱 위독한 환자를 우선으로 돌보고 있는 상대에게 괜히 시비를 건 것이다.

    “안 들리냐!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아!”

    “닥쳐.”

     소년 의원, 레인은 치료하고 있던 손을 잠시 놓고 사내에게 다가가더니, 피가 흐르는 옆구리를 대뜸 걷어찼다.

     콰직!

    “아아아악!”

    “너는 조금 나중에 마저 상대해 주마.”

     고통에 눈을 까뒤집는 용병을 두고 레인이 다시 환자를 치료하러 움직였다. 주변 환자들이 낄낄거리며 사내를 비웃었다.

    “어이구. 뭣 모르고 분위기 잡던 놈 하나가 또 지옥을 보는군.”

    “성자님! 잘 하셨수다! 크하하!”

     이와 같은 일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레인의 치료소를 찾아오는 이들은 대부분이 힘없고 버림받은 이들이었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현재 백작령은 그야말로 무법지대였으니까.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찾아온 이들도 있었고, 일리나에게 추파를 던지는 이도 있었으며, 방금과 같이 환자 주제에 진상을 부리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을 대하는 레인의 방식은 실로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잔혹무비!

     그는 분명 그 자신의 손으로 수없이 많은 생명을 구해내는 성자였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인물에겐 무자비한 폭군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불순한 목적으로 치료소를 찾아온 이들 중 몸 성히 되돌아간 자는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성자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나름 귀엽게 생긴 외모의 여인이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붉혔다.

     이런 일도 비일비재했다. 레인도, 일리나도 하루에 몇 번씩이나 추파를 받았다. 개중에는 조금 정도가 심한 인물도 있었다.

    “헛소리 지껄이는 걸 보니 몸이 좀 나아지긴 했나 보군. 다음 환자 누울 자리 없으니까 당장 일어나서 회복실로 꺼져.”

     물론 레인의 답변은 가차 없었다. 칼로 찌르면 피 대신 맹독이 흘러나올 것 같은 단호함이었다.

    “허허. 정말로 호쾌한 친구로고.”

     그 모습을 천막 한쪽에서 흥미롭게 바라보는 두 사람. 크레필만 카트넬과 오베른 카트넬.

     이 두 사람은 최근 레인을 따라 이곳 영지까지 행차했다. 오베른은 대련을 신청을 받아달라는 이유로, 크레필만은 단순히 레인에게 흥미가 일어서.

     두 사람은 간혹 근방의 몬스터를 일소하러 돌아다니곤 했다. 쓸데없이 방해하지 말고 뭔가 도움이 될 일을 하던지, 아니면 차라리 가만히 있으라는 레인의 윽박에 못 이겨서.

     상대는 왕국에 이름 높은 검존이었지만, 레인에게선 그에 대한 존중이고 뭐고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정말로 특이한 녀석이란 말이지.’

     크레필만은 온갖 환자 사이를 빠르게 누비는 레인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처음에 백작령으로 데려갈 의원을 모아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무려 검가에 입힌 은혜에 대한 보상이다. 그걸 그런 식으로 받겠다고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그것은 애초에 보상도 뭣도 아니었다. 정작 본인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없는 요구니까.

     그가 그 점을 지적했을 때, 레인은 이렇게 말했다.

    [딱히 그 외엔 바라는 게 없습니다. 나머진 그냥 빚으로 달아두죠.]

     나중을 위해 아껴둔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정말로 검가에서 자신에게 내어줄 만한 것들엔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태도였다.

     일반인에게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태도. 안 그래도 레인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던 크레필만이 더욱 큰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영지 전역에서 몰려드는 환자의 행렬은 끝이 보일 기미가 없었다. 레인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휴식만 취해가며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성자님! 여기 이 환자는 어떻게 치료해야 합니까!”

     한 의원이 레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레인은 우선 그쪽으로 다가가 의원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악!”

    “누가 성자냐.”

     중첩되고 중첩된 피로와 스트레스에 의해, 레인의 태도와 말투는 꽤 과격해져 있었다. 그렇게 되지 않는 게 이상한 환경이긴 했다.

     환자는 등에 끔찍한 상처가 나 있었다. 홍수에 휩쓸리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었다. 레인은 상처를 한 번 훑어보고는 의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일단 응급처치하고 붕대로 상처를 압박해 둬. 나중에 내가 직접 수술을 진행할 테니.”

    “넵!”

     의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성자님! 저쪽에 있는 상처 소독용 술 좀 가져다 마셔도 됩니까?!”

     이번엔 용병 차림의 환자 하나가 웃기지도 않는 질문을 던졌다.

    “마시고 싶으면 말해. 위장에 구멍을 뚫어서 다이렉트로 부어줄 테니.”

    “…….”

     용병이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다물었다. 농담 한 번 했다가 골로 갈 뻔했다. 눈앞의 소년 의원은 진짜로 그렇게 하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전염병 환자가 네 명 더 추가되었습니다!”

     천막 바깥에서 환자들을 정리하던 사내가 소리쳐 왔다. 레인에게 부상을 치료받고 자진해서 의료봉사를 돕겠다고 나선 청년이었다.

    “아 진짜 더럽게 바쁘네.”

     레인이 후, 하고 한숨을 불어냈다.

     환자 중 그래도 상세가 그리 심각하지 않은 이들은 끌고 온 의원들에게 맡기면 그만이었다. 준비된 약재는 충분했다. 의원들에게도 짬이 날 때마다 약초술을 전수하기도 했고.

     그러나 단순히 약초술로는 어찌할 수 없는 중환자들이 문제였다. 이들에겐 내가요상술을 이용한 치료가 동반되어야 했기에 레인이나 일리나가 직접 나서야 했다.

     전체 환자 중 그들의 비율은 그렇게 높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숫자가 적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두 사람만으론 손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레인은 막대한 스테미너라도 지니고 있었다. 반대로 일리나의 경우엔 체력적인 한계가 명확했다.

     레인은 내력의 고갈로 안색이 눈에 띄게 파리해진 일리나에게 지시했다.

    “넌 그 환자까지만 치료하고 쪽잠이라도 자둬. 운공 한 차례 하는 것 잊지 말고.”

    “하지만 스승님.”

    “네가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상황이 더 심각해져. 잔말 말고 하란 대로 해.”

    “……네.”

     일리나가 피로 가득한 얼굴로 비척비척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레인은 쉴 틈 없이 간이침상 사이를 누비며 환자들을 치료했다.

    ‘손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어디서 갑자기 인력이 충원될 리고 없고…….’

     이럴 줄 알았으면 생사공을 전수할 제자를 조금 더 받아들일 걸 그랬다, 하고. 레인은 평소였다면 하지 않았을 실없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런데, 그가 착용하고 있는 귀걸이로부터 갑작스레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레인.]

    “왜.”

     목소리의 주인공은 로엘이었다.

    [갑자기 변수가 생겨서, 미리 알려주려고.]

    “중요한 일이야?”

    [어. 굉장히.]

    “말해봐.”

    [지금 ‘성녀’가 네가 있는 영지로 향하고 있어.]

    “뭐?”

     레인은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춘 채 저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수행을 위해 대륙을 순회하던 성녀가 마침 이 시기에 메르타에 있었던 모양이더라고. 그 성녀의 다음 목적지가 바로 네가 있는 카르테리온 백작령이라고.]

    “…….”

     르우벤이 전해 준 정보 중에는 없었던 내용이었다. 아마 그도 이 시기에 수재가 터졌다는 단편적인 정보만을 기억하고 있었을 뿐, 이 시기 성녀의 행방 같은 건 알지 못했으리라.

     잠시 생각에 잠겼던 레인이 저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마침 잘됐네.”

    [야. 너 지금 무슨 생각 하냐.]

    “안 그래도 일손이 심각하게 부족하던 차인데.”

    [말해두겠지만, 실례를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해. 그녀는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니까. 좋은 관계를 맺어둬야 한다고.]

    “노력은 해 볼게.”

    [어째 불안한 기분인데.]

    “더 전할 말 있어?”

    [아니.]

    “그럼 끊어. 나 바쁘다.”

     레인은 바로 통신 기능을 정지시켰다. 이 이상 통신을 이어가 봐야 잔소리밖에 더 듣겠는가.

    ‘성녀라.’

     말로만 들어보았지,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수행 중인 성녀라면 환자들이 대거 모여 있는 이곳 진료소를 찾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번 기회에 아름답다고 소문이 자자한 그녀의 얼굴을 구경할 수 있을 듯했다.

     아무튼, 일단 지금 당장은 눈앞의 환자를 치료하는 데 집중해야 했다. 레인의 손이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 * *

     수행을 목적으로 대륙 전역을 돌아다니며 신의 말씀을 전하고 기적을 행사하는 여인. ‘성녀’.

     그녀는 예정된 다음 목적지, 카르테리온 백작령으로 향하는 길에 묘한 소문을 접했다.

    “성녀님. 지금 저희가 향하고 있는 카르테리온 백작령에 성자와 성녀를 사칭하는 자들이 있다는 모양입니다.”

    “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수백 년간 대륙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성자는 그렇다 치고, 성녀라니. 성녀라는 건 한 시대에 한 명만이 존재할 수 있는 법이거늘.

     성녀의 칭호는 사칭하고 싶다고 사칭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존재는 이미 세상에 너무 잘 알려져 있다.

    “그게 가능한가요?”

    “현재 백작령에는 온갖 환자가 몰려 있는 실정입니다. 그들에게 무상으로 치료를 베풀면서 명성을 얻고 있다는 모양입니다.”

     무상 치료라. 딱히 성품이 나쁜 이들은 아닌 모양이라고, 성녀는 생각했다.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사칭 건도 무슨 이유가 있거나 소문이 와전된 것이겠지. 그녀는 일단 그렇게 긍적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정말로 그 본인들이 제멋대로의 사정으로 성스러운 칭호를 사칭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문제에 대한 처리를 이쪽이 떠맡아야 할 게 뻔했으니까.

    “성녀님.”

     부관의 부름에 성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곧바로 눈을 가늘게 만들었다. 어쩐지 이 꽉 막힌 사내가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예상이 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성자와 성녀의 칭호를 사칭한 것은 엄연한 잘못입니다. 그들을 찾아가 그것을 주지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다만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입니다. 우리는 아직 정확한 자초지종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

    “그러니 상대와 대면하게 되더라도 일단 경거망동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부관히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좀 마음이 놓인다는 듯, 성녀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 성녀가 탑승한 마차와 그 마차를 호위하는 성기사의 무리가 카르테리온 영지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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