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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화. 게르반의 유산(4) (168/249)
  •  168화. 게르반의 유산(4)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한 번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어려웠을 뿐, 두 번째, 세 번째는 어려울 이유가 없었다. 그냥 앞서 행한 일을 반복하기만 하면 되니까.

    <사자(死者) 소환(Summon the dead)>.

    <사자(死者) 소환(Summon the dead)>.

    <사자(死者) 소환(Summon the dead)>.

     연속해서 마법을 발현. 헬 하운드가 거침없이 생성되었다.

     로엘은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언데드의 한계 수치를 채울 때까지 마법을 계속해서 발현했다. 숙련도가 떨어져 초반엔 조금 버벅거렸지만 금세 능숙해졌다.

    “아직은 30개체 정도가 한계인가.”

     로엘이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30개체. 게르반이 부렸다고 하는 언데드의 개체 수에 비하면 굉장히 초라한 숫자였다. 그러나 로엘이 제작한 언데드 하나하나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안다면 그 누구도 그 사실을 가지고 그를 비웃을 수 없을 터였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30개체의 고위 언데드를 부릴 수 있게 되는 것부터가 일반적이지 않았지만.

    “하나하나가 초일류를 가볍게 찜쪄먹을 성능이라는 점은 마음에 드는군.”

     단순히 강한 것뿐만 아니라 힘의 특수성이 두드러지는 녀석들이다 보니 한꺼번에 운용하면 웬만한 검성 두셋은 손쉽게 쓸어버리는 게 가능할 듯했다. 물론 그 본인도 전투에 가세한다는 전제하에.

    “앞으로 발전의 여지는 많을 테지.”

     어차피 앞으로 다룰 수 있는 언데드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날 터였다. 그리고 단순히 거기서 그치지도 않을 예정이었고.

    ‘지금이야 한 종류의 언데드만 생성했지만, 이후로는 조합을 갖춰갈 테니.’

     적어도 네 종류의 언데드는 조합시킬 계획이었다. 그중 빠른 기동성을 기반으로 상대를 교란하고 요격을 가할 개체는 이미 완성되었다.

     여기에 탱커 역할을 할 개체가 더해진다면. 후방에서 강력한 딜링을 할 개체가 더해진다면. 심지어 공중 병단까지 더해진다면!

    “…….”

     거기까지 생각하던 로엘이 문득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문제가 있다면, 거기까지 다다르기 위해선 이 짓을 적어도 세 번은 더 반복해야 한다는 건가.”

     당연한 말이지만, 나머지 언데드는 다른 종류의 개체를 이용할 뿐만 아니라 다른 현대 무구를 조합시킬 예정이었다. 조합을 위한 시행착오는 당연히 겪게 되리라. 이번처럼.

     경험도 데이터도 상당히 쌓인 만큼 다음번에는 조금 더 수월하긴 할 터였다. 물론 다다음 번에는 더욱 수월할 테고. 그렇다고 해도 벌써부터 피로가 몰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부분은 나중에 생각하자.”

     로엘은 고개를 내저어 상념을 떨쳐내며 제작한 언데드를 모두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언데드는 생명체가 아니다 보니 이렇게 아공간에 수납하는 것마저 가능했다. 정말로 여러모로 로엘과 잘 맞는 능력이었다.

    “좀 쉬어야지.”

     이어 수련실에 늘어놓은 갖가지 물건들도 정리했다. 그런 뒤, 그가 배게 하나 베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웠다.

     지금까지 쌓인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적지 않았다. 휴식이 절실했다.

     * * *

     하루 뒤.

     수련실을 나선 로엘을 맞이해준 것은 그의 전속 수행원이자 연인, 플로라였다.

    “몸은 좀 괜찮아?”

    “걱정해 주신 덕분에요.”

     그나마 짧은 휴식이라도 취한 덕분에 혈색이 좋아진 로엘은 웃는 얼굴로 플로라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승강기에 올랐다. 바로 밀린 업무를 보러 갈 예정이었다.

     휴가가 하루는 더 남았지만, 그 부분은 그냥 넘기기로 했다. 애초에 자신이 억지를 부려 얻어낸 휴가이니, 되도록 빨리 복귀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

     그런데 갑자기 귀걸이가 울리더니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르티아 남작. 들리나?]

    “바르바젠 님?”

     당연한 말이지만, 유적에서 획득한 귀걸이 중 하나는 바르바젠에게로 돌아갔다. 그 또한 각성자였으니까.

    [이 귀걸이, 확실히 쓸 만하군.]

     그러고 보니 바르바젠은 귀걸이를 사용해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일 터였다. 그가 귀걸이를 통해 대화할 사람이라곤 로엘 정도뿐이었으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별건 아니고. 내가 이번에 일이 있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다 알테라 시에 들렀다.]

    “예.”

    [현재 각성자들이 모여있는 도시가 알테라시였지?]

    “그렇습니다.”

    [마침 잘 되었다 싶어서. 이참에 나도 그들과 안면 좀 트려는데, 도움을 좀 줄 수 있겠나?]

     로엘은 금세 머릿속으로 계산을 내렸다.

     현재 자신은 알테라 시가 아닌 칸테른 시에 있다. 그렇지만 와이번을 타고 이동하면 알테라 시까진 3시간이면 된다.

     밀린 일의 경우엔 어차피 아직 휴가가 하루 남았으니 일단 미뤄둬도 좋을 터였다. 심지어 부탁을 건네 온 상대는 거물 중의 거물.

    “알겠습니다. 다만 알테라 시까지 이동하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릴 듯합니다.”

    [그 정도는 상관없다.]

    “펜타트리움 아카데미 정문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제 상단 소유의 찻집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기다려 주시면 최대한 빠르게 찾아가겠습니다.”

    [그러지.]

     통신이 끊어졌다. 로엘은 곧바로 다시 귀걸이를 조작해 카트리나를 호출했다.

     * * *

    “만나서 반갑군. 바르바젠이다.”

     다섯 각성자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장소는 로엘 소유의 저택 내부. 즉 레인과 르우벤, 카트란이 거주하고 있는 집의 거실이었다.

    “바, 반갑습니다. 폐하.”

     바르바젠이 고개를 저었다.

    “황제가 아니다. 이왕이면 편하게 대해줬으면 좋겠군. 저 녀석처럼 재미없게 굴지 말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로엘을 한 차례 흘겨보았다.

     르우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회귀자. 전생에 바르바젠의 위명을 귀가 따갑도록 접해왔다.

     아무리 상대가 자신과 동갑이고 평민이라지만, 대하기 어려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쉽게 되는 일은 아니었다.

     잠시 정적의 시간이 흘렀다.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지. 만나서 반갑다 바르바젠. 나는 레인이다. 다른 세상의 기억을 가지고 환생한 무인이고.”

     침묵을 깨뜨린 것은 레인이었다. 첫 마디부터가 대놓고 반말이었다.

    “…….”

    “왜 그렇게 봐. 본인이 원하잖아.”

     다른 사람들이 당혹한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보든 말든, 레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전생엔 황제고 뭐고 예를 취해본 일이 없었다. 법과 규제와 관례 바깥에서 살았으니까.

    “말이 좀 통하는 녀석이 있군. 마음에 들어.”

    “네 성격은 나와 꽤 잘 맞을 것 같군.”

     레인과 바르바젠이 악수를 했다.

     결국, 어찌어찌 분위기가 두 사람을 따라가게 되었다. 서로 말을 트고 편하게 대하는 쪽으로. 한 번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 퍼지고 나니 금방이었다.

     눈치를 보던 르우벤이 은근슬쩍 말을 놓은 것을 시작으로, 카트란이 그 뒤를 이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로엘 또한 무언의 압박에 못 이겨 결국 존대를 거뒀다.

     * * *

     다섯 각성자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부분으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다시 보게 되는 때는 프레퍼의 알테라 시 침공이 일어날 때인가.”

    “그래. 그전까진 용인족의 영역에 머물 생각이다.”

     바르바젠의 다음 목적지는 용인족의 땅, 프로키란이었다. 유일하게 제국과 맞닿아 있는 아인종의 대지. 그곳에 중요한 볼일이 있다는 모양이었다.

    “용인족이라.”

     타 종족에 비해 선천적인 육체 능력이 뛰어난 종족이 바로 용인족. 그 개체 수는 적지만, 각 개인의 능력치는 절대 작지 않은 종족이었다.

     당장 밀리아만 해도 르우벤이 유적에서 깨워낸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현재는 상당한 실력자로 거듭났다.

     물론 그녀의 경우엔 어디까지나 특수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 본인의 자질도, 그녀의 주위를 둘러싼 환경도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압도적인 성장 속도는 용인족 특유의 뛰어난 신체 능력이 기반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용인족은 수명이 길었다. 그들의 평균 수명은 오백 이상.

     아무래도 종족 개체 수 자체가 적다 보니 초인이나 초월자의 대열에 들어설 정도의 재능을 가진 자는 적었다. 그 영역에 도달하기 위한 벽은 수련에 매진한 시간으로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긴 수명과 강인한 육체라는 건 뭐가 어찌 되었든 강력한 무기. 그들 종족은 그 구성원 하나하나가 뛰어난 전사이며, 훌륭한 전력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까. 그들은 같은 경지의 인간에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강한 면모를 보였다.

     다음 경지로 향하기 위한 벽을 넘어서는 것은 재능의 영역. 그렇지만 가진 힘의 수습과 숙련도 증진은 노력과 세월의 영역이다.

     말하자면 용인족의 전사는 모두가 백전노장이자 노련한 사냥꾼. 강하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 종족에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종족 특성상 마법을 익힐 수가 없다는 점 정도일까.

    ‘결국 아군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이들이지.’

     바르바젠은 대륙통합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었지만, 타 종족의 영토까지는 침공할 생각이 없었다.

     그럴 이유도, 시간도 없으니까. 굳이 복속시키는 게 아니라 동맹을 맺는 정도로 충분하니까.

     그치들의 경우엔 인간의 국가와는 달리 이쪽의 뒤통수를 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얽히고설킨 인간 권력자들의 그것과는 달리 각자의 영역이 명확히 구분되었기에.

     그렇기에 그치들과는 전쟁을 일으키는 대신 따로 동맹을 맺을 계획이었다. 제국에 복속시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세운 국가뿐. 이전에 로엘과 르우벤이 엘프 왕족에게 접근했던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황제가 용인족의 대지로 향하는 것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하고, 레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해야 할 일이라는 거, 잘 풀렸으면 좋겠군.”

    “그게 아니지. 잘 풀리게 만들어야 하는 거다.”

    “그런가.”

     레인이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와중, 카트란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가장 말이 없던 이가 갑자기 주의를 끌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해.”

    “바르바젠 네가 대륙통합 전쟁을 계획하고 있다고 들었어.”

    “그런데?”

     바르바젠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한 사안을 입에 담는 사람치곤 너무나도 담담한 얼굴인지라 그 모습에서 괴리감마저 느껴졌다.

    “대륙통합 전쟁이 정말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건 나도 묻고 싶은 부분이다.”

     곧바로 레인이 편승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묻지. 대륙통합 전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확률을 어느 정도로 보고 있는 거지?”

     두 각성자가 묻고자 하는 바는 간단했다.

     제국은 분명 세계 최강국이다. 그러나 대륙엔 제국 이외에도 많은 국가와 민족이 존재한다. 그 전부를 복속시키는 데에 흘리는 피가 대체 얼마나 흐르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상황.

     아군 측 전력 규모가 월등하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는 게 바로 대규모 전쟁이다. 그런데 그런 전쟁을 하나의 국가가 아닌 다수의 국가와 벌이는 것이다.

     애초에 통합 성공 여부부터가 불투명했다. 아니, 객관적인 시선에서 봤을 때 그리 가능성이 높지도 않았다.

     게다가 성공한다고 쳐도 대륙의 전체적인 전력에 큰 감소가 일어나면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것만 못했다. 결국 대륙통합 전쟁도 마족의 대륙 침공을 막아내기 위한 준비과정이니까.

     그런데도 바르바젠은 대륙통합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나머지 각성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의문이 하나.

     그것은 냉정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다분히 충동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가.

     두 각성자가 지적한 것은 그 부분이었다.

     어찌 보면 상대의 결정에 의심을 품은 것으로 비쳐 보일 수 있는 무례한 질문이지만,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다섯 각성자의 행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일이니만큼.

     자신을 빤히 바라보든 두 각성자의 시선을 맞받으며, 바르바젠은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군.”

     그가 한 손으로 턱을 괴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대륙통합 전쟁은 승리의 가능성을 재가면서 계획한 것이 아니다. 통합의 과정에서 있을 전력의 손실 같은 부분은 더더욱 고려의 대상이 아니고.”

    “…….”

    “내가 대륙통합 전쟁을 계획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것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뿐. 가능성의 높고 낮음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야.”

     많은 것이 함축된 발언이었다. 레인과 카트란의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기도 했다.

    “그렇군.”

     레인이 이해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계획한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일기기에 그것을 준비한 것이지. 단지 그뿐인 이야기.

     바르바젠과 로엘을 제외한 각성자들의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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