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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화. 벨리아 왕국(5) (161/249)

 161화. 벨리아 왕국(5)

 반란이 일어나고 그것이 진압되었을 때, 국가에서는 무슨 일을 가장 먼저 벌일까?

 이것저것 있겠지만, 역시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장 먼저 시행하는 일은 바로 ‘숙청’이다. 관련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그것을 내보임으로써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렇다면 그 숙청의 대상은 누가 될까.

 역시 가장 먼저 숙청되는 인물은 반란군의 총지휘자. 총지휘자쯤 되면 그 인물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녔든 간에 반드시 처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역자 처벌의 근간이 흔들리니까.

 그리고 다음으로는 총지휘관을 따르던 수뇌부. 그쪽의 경우엔 그래도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골라서 남겨두는 경우가 어느 정도 있다. 적당한 처벌의 굴레를 씌워 국가에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

 이를테면 왕국 전역을 통틀어 10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 ‘초인’의 경우.

 그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략 병기다. 한 사람 숙청할 때마다 상당한 국가 전력 감소가 일어나게 된다. 왕국 상층부로선 함부로 그들을 제거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적당히 수뇌부에 근접해 있으면서 실력도 적당한 이들은 도저히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이를테면 상위 귀족이나 초일류 전력들. 그들은 숙청을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는 자들이다.

 국가의 입장에서, 한차례 반란을 일으킨 이들은 언제 또다시 반란을 일으킬지 모르는 불온 분자다. 쉽게 말해 ‘잠재적 범죄자’들.

 그런 그들을, ‘언제 다시 국가에 칼을 들이밀지 모르는’이들을 굳이 살려두기 위해선 웬만한 메리트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초인급 전력이라면 그 메리트가 차고 넘친다. 그러나 귀족이나 초일류 전력은 국가가 그렇게까지 리스크를 감수해가며 살려두기엔 메리트가 부족하다.

 특히 귀족의 경우엔 대체할 자들이 차고 넘치니만큼 메리트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초일류 전력의 경우에도 웬만큼 재능이 차고 넘치는 젊은 인재가 아니라면 도리가 없고.

 그것은 이번 벨리아 왕국 내전에서도 마찬가지.

 오랜 시간 계획해온 대대적인 반란이 제대로 시작도 해 보기 전에 좌절되었다. 그로써 ‘죽음이 확정된’ 이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로엘이 언급한 ‘죽은 자’들은 바로 그들을 뜻했다.

 * * *

“그러니까, 저희에게 제국으로 망명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무면탈을 쓴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위 인물들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왕국에서 저희를 놓아줄 리가 없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이미 국왕 전하와 협의를 마쳤으니 말입니다.”

“저, 정말입니까?”

 비교적 젊은 청년 하나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면인, 로엘이 재차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청년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이번에 로엘은 제국의 사자로서 벨리아 왕국 왕실과 거래를 했다. 물론 ‘황제의 대리인’으로서.

 이번 벨리아 왕국 내전의 조짐을 왕실에 알려준 것도,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 제시에 인력까지 제공해준 곳도 제국.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당연히 제국은 벨리아 왕실로부터 상당한 수준의 보상을 뜯어냈다.

 사실 제공한 인력의 핵심인 ‘대현자’ 프라젠은 아직 확실한 제국 소속은 아니다. 그러나 로엘은 그의 이름마저 팔아가며 받아낼 보상을 뻥튀기시켰다.

 지금이야 어쨌든, 어차피 차후 제국 소속이 될 인물 아닌가. 그 본인이 크게 불쾌해할 일도 아니라는 판단하에 거리낌 없이 이용해 먹었다.

 혹시 불편해하더라도 차후 보상해주면 그만이기도 했다. 원래 정치라는 게 그런 법. 귀족 출신인 프라젠이라면 그 같은 생리를 이해할 테니 적어도 폭주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그렇게 왕국에서 건넨 ‘공식적인 보상’은 이후 제국이 벌일 대륙통합 전쟁을 준비하는 데에 쓰일 예정이었다. 벨리아 왕국 왕실에서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겠지만.

 그리고 현재 로엘이 영입하려는 반란군의 수괴들은, ‘비공식적인 보상’이었다.

 공식적인 보상이 ‘제국의 사자’로서 뜯어낸 것이라면, 비공식적인 보상은 로엘이 임의적으로 뜯어낸 것이었다. 로엘은 은근슬쩍 제국의 의지에 자신의 의지를 곁들여 그것을 얻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웬만한 언변과 재치로는 그것이 불가능하겠지만, 로엘은 그런 쪽에는 귀신같았다. 왕국 인물들은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하고 로엘이 내건 ‘적절한 수준의 조건’을 수락했다.

 물론 제국은, 아니 바르바젠은 로엘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다. 실상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마침 딱 좋지. 이쪽 인력이 많이 필요하던 차인데.’

 제국의 어둠을 도맡게 되면서, 로엘은 그동안 굉장한 인력난에 시달려왔다. 그 인력을 이번에 대거 보충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고위 실력자들이 다수 포함된 인력을.

‘숨 좀 돌리겠군.’

 전투팀을 창설한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용병을 더 받아들이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용병들은 아무래도 통일성이 떨어져 다듬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전체적인 실력도 조금 떨어졌고. 거기다 무력적인 측면 이외의 인재는 용병업계 쪽에선 아예 구할 수가 없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로엘의 눈앞에 있는 이들은 그가 반란군 명단을 살펴 고르고 고른 실력자들. 영입하는 순간 짧은 훈련 기간을 걸쳐 바로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이들이었다.

“물론 여러분은 공식적으로는 ‘죽은 자들’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절대 사회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 말은.”

“앞으로 여러분이 속할 곳은 제국의 어둠이라는 말입니다.”

“…….”

 좌중의 인물들이 떫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벨리아 왕국 입장에선 반란군 수뇌부의 양도를 탐탁잖게 여길 수밖에 없다. 특히 그들이 사회의 전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가 없었다.

 타국에서 세력을 결집해 다시 반란을 일으키는 자들은 역사에도 흔히 등장한다. 왕국 입장에선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로엘이 그들을 내어달라고 했을 때, 왕실에선 당연한 수순으로 그들의 활동을 제한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나마 아예 내어주지 않겠다고 강짜를 부리지 않은 것은 상대가 세계 최강국, 제국이었기 때문.

 말하자면 힘의 논리였다. 원래 강국의 요구는 그것이 조금 무리한 것일지라도 약소국 입장에선 거절하기 힘드니까.

 최소한 그들이 사회의 전면에서 활동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 물론 로엘은 애초부터 그럴 작정이었으므로 그것을 승낙했다. 적당히 밀고 당겨 상대측의 애간장을 태워 가면서.

 그렇게, 로엘은 가격 대비 효율 최상위인 인력을 대거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여러분은 제 아래에서 일하게 될 겁니다. 우선 초일류 이상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 분들은 저와 마법적인 계약을 나누게 될 테니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계약 마법은 이런 때 활용하라고 있는 것이었다. 실력은 확실하지만 신뢰할 수는 없는 자들을 통제하기 위해. 상대방의 동의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는 마법이지만 어차피 저들은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다만 계약 마법은 초일류 이상의 경지에 이른 자들에겐 통하지 않는 섬세한 기예. 일부 실력자들에겐 적용시킬 수가 없었다.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사람을 통제하는 수단은 계약 마법뿐이 아니니까.

“물론 여기 계신 여러분 전원의 가족은 제가 신원을 맡을 겁니다. 이유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

 그 본인을 인질로 잡을 수 없다면 주변 사람을 인질로 잡으면 그만이 아닌가.

 특히 초일류 실력자들의 가족 중 몇 사람과 따로 계약 마법까지 나누면 그야말로 완벽.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거미줄의 완성이었다.

 뭐, 어차피 로엘이 아니었다면 모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목숨들이었다. 이 세계에서 ‘반란’은, 일으킨 당사자뿐만 아니라 일가친척의 목숨까지 배팅되는 행위니까.

“제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곳에서 나가시면 됩니다.”

 어찌 보면 기분 나쁘게 들릴 법한 로엘의 발언에도,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야 일어나는 순간 자신과 일가친척의 목숨이 모두 사라지게 되니 그럴 수밖에.

“그렇다면 이곳에 있는 전원이 제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이해하겠습니다.”

 로엘이 무면탈 아래서 옅게 미소 지었다.

 * * *

 제국으로 복귀한 로엘은 곧바로 조직을 정비했다.

 우선 겨우 13팀에 불과했던 전투팀이 총 60팀으로 늘어났다. 그중 50팀은 검수급 실력자들에게 현대 무기를 지급해 탄생시킨 팀이었다. 기존에 존재하던 전투팀의 숫자만을 확장시킨 것.

 나머지 열 팀은 적룡대와 같은, 초일류 전력 5~6명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팀들이었다.

 이들에게는 현대 무기를 지급하지 않았다. 계약 마법이 적용되지 않는 이들일뿐더러, 굳이 현대 무기 없이도 여타 전투팀들을 압도했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초일류 전력에게 현대 무기를 지급하는 것은 전력상 오히려 손해였다.

 공간 마법이 존재하는 로엘이야 사용할 수 있는 무구의 제한이 없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소지할 수 있는 무구의 개수도 한정적인데다 내구도라던지 이런저런 부분을 고려해야 해서 무기의 위력도 상대적으로 낮은 것을 지급할 수밖에 없기도 했고.

 다음으로는 행정 업무를 도울 이들.

 로엘은 업무에 능한 이들 수십을 임시로 정한 부서에 배치시켰다. 차후 각자의 성향과 실력이 파악되면 한 차례 조정을 가할 생각이었다.

 지금까진 로엘과 카트리나,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해왔던 업무. 그것을 분담할 수 있게 되면서 원년 멤버들의 부담이 단숨에 확 줄어들었다.

 물론 제국엔 인재가 많았다. 그러나 ‘이쪽’ 세계의 일을 맡아줄 행정학도는 의외로 구하기가 힘든 측면이 있었다. 그들은 지식층인 만큼 용병과는 달리 자신의 가치를 높게 잡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그로 인한 인력난을 이번 일로 인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로엘의 입장에선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정비를 마친 뒤엔 곧바로 훈련 기간을 가졌다.

 기존 전투팀이야 더 손 볼 데가 없지만, 새로 유입된 인력의 경우엔 최소한의 훈련은 거쳐야 했다. 무공을 전수하고 무구에 익숙해지게 만들기 위한 기간이.

 로엘은 그 문제를 레인에게 일임했다. 사격 쪽이야 적절히 감독만 해 주면 되고, 무공 쪽은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마침 방학 중이라 시간이 남는 레인이었기에 강제로 떠넘기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 자신과 제자들의 수련, 그리고 학업에 힘을 쏟고 있던 레인은 난데없는 일거리에 툴툴거리면서도 로엘의 요청을 수락해주었다.

 다만 초반엔 약간의 마찰이 있었다.

 용병 출신 전투팀원들과는 달리, 새롭게 유입된 인력은 하나같이 ‘높으신 분’이었던 이들. 딱 봐도 평민에 나이도 어린 레인이 훈련 교관으로 나서자 반발하고 나섰다.

 당연하지만, 레인은 코웃음을 쳤다.

“불만이면 덤비던지.”

 레인의 도발에 너도나도 지원자로 나섰다. 강제로 오게 된 곳이긴 해도 새로운 터전에서 입지를 높이고 싶은 이들은 차고 넘쳤다.

 전체 인원 380명 중에 무려 50에 가까운 인원이 앞으로 나섰다. 레인은 그들을 죽 둘러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너무 많아. 하나하나 상대해주기엔 시간이 너무 걸리겠는데.”

“왜, 이제 와서 위기감이 드시나? 불만 있는 사람은 전부 나오라고 하지 않았나?”

 비교적 젊은 청년 하나가 이죽거렸다. 레인은 그 청년의 얼굴을 기억해 두겠다는 듯 잠시간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 일일이 검을 맞대기엔 시간이 아까우니 한 번에 가자는 말이었다. 덤벼.”

 무려 오십여 명에 달하는 인원을 상대로 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발언. 심지어 그 인원 전부가 검수에 달하는 실력자였다.

 주위 인물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다 생각한 것이다.

 다들 무공 수련을 위해 모인 이들이라 로엘이 지급한 아티펙트를 소지하고 있지는 않은 상태였다. 초일류 전력까진 이 자리에 없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레인의 발언은 확실히 광오하게 여겨질 만했다.

 참고로 초일류 전력들은 따로 훈련 스케줄을 잡지 않았다. 그들에겐 무기 지급도, 무공 전수도 없었다. 바로 현장에 투입시켰다.

 무공의 경우엔 왜 전수하지 않는가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하나의 경지를 이룬 이들에게 새로운 무공을 전수하는 건 신중해야 할 일이었다.

 전혀 다른 체계의 무술을 함부로 주입시켰다간 오히려 그들이 퇴보해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아니, 상당히 높았다.

 그걸 어느 세월에 다시 키워서 어느 세월에 써먹는단 말인가.

“광오하군 그래.”

“안 광오해.”

“우리 전원을 상대하겠다니. 네놈이 검성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어.”

“미쳤군. 벨리아 왕국의 신성이셨던 가브론 님도 네 나이대에는 초일류의 영역에밖에 이르지 못하셨다. 허풍도 정도껏 떠시지.”

 벨리아 왕국 역사서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영웅, 가브론. 겨우 열여섯의 나이에 초일류의 영역에 발을 들인 그는 확실히 굉장한 천재였다.

 그러나, 레인의 평가는 가차 없었다.

“알 게 뭐야. 재능이 더럽게 없는 인간이었나 보지.”

 그는 열셋에 초일류를 찍고 열다섯에 초인의 경지에 발을 디뎠다.

 당연하다고 할까, 벨리아 왕국 출신 전원이 격분했다. 오죽했으면 50명이 추가로 대련 지원자로 나섰을 정도.

“함부로 입을 놀린 걸 후회하게 될 것이다.”

“시간 끌지 말고 덤벼. 주둥이는 그쯤 놀리고.”

 레인은 귀찮다는 얼굴로 쿵, 하고 진각을 밟았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구우우웅.

 묵직한 파장이 사위를 휩쓸었다. 한껏 격분한 얼굴로 레인을 질책하던 젊은 청년이 저도 모르게 입을 닫았다. 상대적으로 실력이 부족한 몇몇이 신형을 휘청거렸다.

“무슨?”

“방금 그건 대체.”

 주위 인물들의 당황한 목소리를 무시하며, 레인은 어깨에 얹혀 있던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흑아, 검.”

“야옹.”

 검은 고양이가 레인의 어깨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그의 그림자 속으로 그 모습을 감췄다. 그리자 그림자로부터 한 자루의 장검이 검은 줄기에 휘감긴 채 밀려 나왔다.

 이전에 르우벤이 유적 공략 후 보답으로 내어준 아티펙트 중 하나였다. 마법적인 조치가 가해져 높은 강도를 지닌 데다 날이 무뎌지지도 않는 물건.

 심지어 세트로 준비된 검집에 정화 마법이 걸려 있어 이물질이 묻더라도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었다. 검 자체의 성능도 실력 있는 장인이 만들었는지 나쁘지 않았고.

 다른 것 없이 검 자체에, 그리고 편의성에 충실한 물건이라 레인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는 물건이었다.

“시작하지.”

 레인이 검집을 탁, 하고 붙잡았다. 이어 검을 검집에서 뽑아냈다. 화려하진 않지만, 어딘가 시선을 잡아끄는 미려한 검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허.”

 레인의 압도적인 외모와 맞물리자 일련의 과정이 마치 화보와도 같은 멋스러운 광경으로 화했다. 상황에 맞지 않게 누군가가 감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레인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기파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꿀꺽.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이가 있는 것인지, 정적의 와중 어디선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 * *

 그로부터 정확히 1시간이 지나, 모든 도전자가 바닥에 쓰러져 골골거리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레인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아까 전 기분 나쁘게 이죽거리던 젊은 청년의 볼을 검집으로 쿡쿡 찔렀다.

“…….”

 어쩐지 청년의 몸에 새겨진 구타의 흔적이 다른 이들의 것에 비해 심해 보인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지켜본 관객들은 생각했다.

 그리고 일행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멀리 떨어진 건물 옥상. 그곳에서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지켜본 로엘이 입가에 진한 미소를 그렸다.

“역시 권위적인 인간을 찍어누르는 데엔 레인을 이용하는 게 제격이지.”

 용병이 아닌, 정규 기사 출신의 실력자들을 끌어들이게 되면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자존감’.

 자존감만큼 ‘이쪽’ 세계에서 쓸데없는 것이 없었다. 적당히 죽여둘 필요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로엘은 레인을 이용했다.

 과연 기대대로 레인은 그들을 완벽하게 찍어눌러 주었다.

 로엘은 군기가 바짝 들어 레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있는 벨리아 왕국 출신 전투팀원들을 보며 머릿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일거리는 죄다 레인에게 떠넘겨야겠다.’

 레인이 들었다면 ‘비기스트’를 뽑아 들었을지도 모를 생각과 함께, 로엘이 등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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