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벨리아 왕국(3)
“어?”
한껏 긴장한 기색이었던 여인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흘렀다. 대체 누가?
“잠시 물러나 계십시오. 위험할지도 모르니.”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로엘이 빙긋 웃으며 그녀를 뒤로 물렸다. 가면을 착용한 탓에 얼굴이 여인에게 보이진 않았지만.
한편, 르우벤은 가르본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저 정도면 충분히 위기 상황이지? 극적으로 도움을 받았다는 인상이 남겠지?’ 하고 로엘에게 의견을 구하던 것과는 다른, 늠름한 모습.
“가, 감사합니다.”
여인은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두 사람에게 감사를 표했다.
“네놈은 누구냐!”
폭발로 인해 타오르는 공간 속에서, 약간 수염이 그을린 드워프 노인이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노한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으며.
“프레퍼의 간부, 발정 난 드워프 가르본.”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그러고 보니 뤼바르 에덴바인에게도 이렇게 말했었지. ‘다시 봐서 정말로 반갑다’고. 그때 죽이지 못한 건 좀 아쉽지만.”
“! 네 놈이 뤼바르를 패퇴시켰다는 그 녀석인가!”
“다시 봐서 존X 반갑다 이 새끼야.”
르우벤이 섬뜩하게 웃으며 달려들었다.
전생에 르우벤이 속한 용병대는 가르본과 몇 차례 충돌한 적이 있었는데, 가르본은 매번 패퇴하면서도 ‘단장’을 음흉한 눈길로 쓸어보곤 했었다.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였다.
<뇌격(Lightning)>.
고밀도의 전격이 쏟아져 나왔다. 가르본이 그것이 피해 신형을 뽑아 올렸다.
“최근 조직의 행보에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무리가 있다더니, 네놈이 관련된 모양이구나!”
르우벤은 킥, 하고 웃고 말았다.
‘무려 간부의 움직임을 꿰고 있다가 기습하기까지 했으니 그렇게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만.’
그러나 사실 르우벤은 그 일과 전혀 관련이 없었다. 그가 무슨 세력이 있다고 프레퍼의 광범위한 활동 범위를 커버하겠는가. 아무리 뛰어난 실력자라도 개인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것은 실제로는 로엘, 그리고 바르바젠이 관련된 일이었다.
“너희가 멋대로 설치면 몇 사람이 죽는데. 당연한 소리를.”
그렇지만 오해를 풀어줄 이유는 없다. 르우벤은 오해의 여지가 큰 말만을 남기고 계속해서 공격을 가했다.
“죽어라!”
떨어져 내리며 건틀릿에 뒤덮인 주먹을 내질러 오는 가르본. 여러 종류의 보조 마법들이 주먹을 타고 휘감아 올라왔다. 르우벤이 마주 주먹을 내질러 맞받아쳤다.
콰드드드드드드드드!
강기와 전격이 부딪치며 소음을 토해냈다. 번쩍이는 빛이 사위를 휩쓸었다.
뒤에서 그 장면을 숨죽인 채 지켜보던 마법사 여인의 머리칼이 후폭풍으로 인해 거칠게 흩날렸다.
* * *
프레퍼의 간부 가르본. 그는 대륙에 그 존재가 드문, 진짜배기 ‘마권사’였다.
애초에 권법 수련가의 숫자는 적은 편이다. 마법사야 말할 것도 없고. 그 두 가지 재능을 모두 가진 자라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어린 시절, 그는 툭하면 자신의 두 가지 재능을 놓고 고민하곤 했다.
그가 가진 재능 중 상대적으로 뛰어난 것을 꼽으라면 권법가의 재능이었다. 그야말로 초인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 것임이 확실한, 만인에게서 칭송받는 재능.
마법의 재능 또한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었다. 적어도 마도사의 대열에 발을 들여놓을 정도는 된다고 그 스스로 자신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길로 나아갈 것인가. 만일 두 재능 모두를 키워낼 거라면 어느 쪽을 메인으로 삼을 것인가.
그는 결국 성인이 되기 전에 자신이 나아갈 길을 확실하게 결정했다. 그가 목표로 한 것은 권사로서 초인의 영역에 이르는 것, 그리고 온갖 보조 마법을 익혀 순간 파괴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곧바로 성과가 드러나는 마법 수련에 비해 권법 수련은 더디기만 했으니까.
실제로 무술과 마법, 그 두 가지 재능을 모두 타고난 이들이 빠지게 되는 가장 큰 딜레마가 바로 이것이었다. 두 재능이 꽃을 피우는 시기가 완전히 다르기에 결국엔 한쪽에만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집 센 드워프의 표본과도 같은 존재인 가르본은 결국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관철시켰다. 권법과 마법 모두를 놓치지 않았으며, 두 가지를 적절히 조화시켜 본인만의 전투 스타일을 확립했다.
그로써 그는 무술 경지만 놓고 봐도 초인인데, 마법이 더해지면 순간적으로 경지를 초월하는 힘을 발휘하는 게 가능한 초강자로 거듭났다. 웬만한 초인들조차 눈에 차지 않을 실력자로.
그렇게 자기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뒤로, 가르본은 지금까지 웬만해선 패배를 경험해 본 일이 없었다. 프레퍼의 보스, ‘그 사내’에게 처참하게 패배한 그날 이외엔 별다른 실패가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 뛰어난 실력으로도 상황을 타파하기가 벅찼다. 오늘의 상대는 특별한 전투 스타일을 확립한 그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전투방식이 괴랄했다.
괴랄하기만 하면 다행인데, 실력이 이쪽과 비교했을 때 전혀 꿇리지 않는 게 더 문제였다. 그가 내쏘는 몇몇 마법은 온갖 마법으로 보조된 그의 주먹으로도 맞받아칠 수 없는 절대적인 위력을 자랑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가 한 가지 더 있었다. 상대는 하나가 아니었다. 뒤쪽에 서서 호시탐탐 자신의 허점을 노리는, 또 다른 초강자의 존재가 가장 큰 문제였다.
“이런 빌어먹으을!”
시차를 두고 쏟아져 내려오는 일곱 자루 검의 참격. 가르본이 신들린 듯한 움직임으로 모든 공격을 쳐냈다.
모든 검이 결국 그의 지근거리 바깥으로 밀려났을 때였다.
“이번엔 그쪽이냐!”
포격이 날아들었다. 가르본이 손에 강기를 덧씌워 휘두름으로써 맞받아쳤다. 단숨에 다섯 개 이상의 보조 마법이 그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콰드드드드드득!
포격과 권격이 거칠게 충돌하며 사방으로 기파를 퍼뜨렸다. 그런 와중, 한쪽 담장 위에서 가만히 사태를 주시하고 있던 밀리아가 빛으로 이루어진 창을 내던졌다.
“젠장할!”
밀리아의 고밀도 마법 공격까지는 받아칠 수가 없었던 것인지. 가르본은 중심이 흐트러진 채로 억지로 신형을 위로 띄워 올렸다.
그리고 그 바로 지척에 르우벤이 따라붙어 몸통박치기를 날렸다. 어느새 탱커 세트로 장비를 갈아치운 상태였다.
콰앙!
“커헉!”
실 끊어진 처럼 날아가 뒤쪽 벽에 처박히는 가르본. 그래도 기막을 두를 수 있는 초인이라 그런지, 어떻게든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시야에, 수십 개의 총기가 허공에 둥둥 뜬 채 총구를 자신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그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시X!”
저 멀리 허공에 둥둥 뜬 채로 가르본의 반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플로라가 가면 아래서 슬쩍 웃음을 흘렸다.
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
수없이 많은 금속 탄환과 마력 탄환이 허공을 갈랐다. 가르본이 미친 듯이 발을 놀려 탄환이 빗발치는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기를 썼다.
체외에 기막을 두를 수 있는 실력자인 만큼 대부분의 공격은 그냥 몸으로 때우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문제는 교묘히 섞여서 날아드는 고밀도 마력 탄환.
이 탄환에 적중당하면 그냥 아픈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무려 초인의 육신이라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괴물 같은 위력을 자랑했다.
고밀도 마력 탄환만큼은 몸으로 받아내는 게 아니라 직접 주먹으로 쳐내야 했다. 그런데 수많은 탄환 중 그것만을 골라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지라 가르본의 심력이 빠른 속도로 고갈되어갔다.
“이 비겁한 놈들아! 정정당당하게 붙자!”
“다른 놈도 아닌 네가 정정당당을 찾는 건가. 지X이 아주 풍년이구만.”
르우벤이 코웃음을 쳤다. 그의 기억 속에 있는 가르본은 비겁함의 대명사와도 같은 인물이었다.
탄환 세례로 인해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가르본에게, 탄환이 빗발치는 공간 안쪽에서도 멀쩡한 르우벤이 재차 온몸을 날려 부딪쳤다.
콰아아앙!
“쿨럭!”
이번엔 정말로 타격이 극심했는지 입에서 선혈이 줄줄 흘러내리는 드워프 노인. 그러나 르우벤은 아예 끝장을 내려는 듯, 인정사정없이 재차 달려들었다. 노인공경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르우벤이 달려드는 궤도에서 간신히 몸을 빼낸 가르본이 르우벤의 뒤를 쫓으며 주먹에 기운을 모았다. 상대가 자세를 바로잡을 틈을 주지 않고 일격을 먹일 심산.
그러나 르우벤은 그저 씩 하고 한 차례 웃어 보인 후 몇 가지 아티펙트를 발동시키는 것으로 대처를 마쳤다. 그는 다른 각성자들과의 수많은 대련으로 아티펙트 활용 능력이 크게 는 상태였다.
콰드드드드득!
가르본의 권격이 몇 겹이나 두른 방어막을 찢어발기고 르우벤이 걸친 갑주 위까지 다다랐다.
그러나 그뿐. 정작 갑주를 꿰뚫지는 못했다. 출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갑주가 움푹 파여 들어갔지만 정작 르우벤은 타격을 받지 않았다. 르우벤이 유쾌하게 웃었다.
“하하!”
콰앙!
르우벤이 곧바로 신형을 뒤틀고, 가속해서 가르본을 들이받았다. 벌써 세 번째. 무슨 축구공처럼 훨훨 날아가는 모양새가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털썩.
“크으으.”
바닥에 볼썽사납게 엎어진 가르본이 이를 갈며 신형을 일으켰다. 데미지가 상당히 축적된 탓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이놈들! 너희 얼굴을 기억해 두겠다. 반드시! 언젠가 반드시 복수해 주겠다!”
“그러든지 말든지.”
르우벤은 가르본의 처절한 외침에도 개의치 않고 유유히 세트를 갈아치웠다. 이내 그의 손에 검은 화염이 넘실거리는 건틀릿이 장착되었다.
그가 건틀릿에 둘러싸인 양 주먹을 쾅쾅 부딪치며 말했다.
“너 이 새X. 너도 한 번 네가 납치한 여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개처럼 맞아 죽어봐라.”
“크흐흐.”
그런데, 가르본이 난데없이 웃음을 흘렸다. 진득하고 기분 나쁜 비웃음을.
“빌어먹을 애송이 놈. 끝낼 거라면 그렇게 여유 부리지 말고 빨리 끝냈어야지. 그 같잖은 여유가 네 명을 재촉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뭐?”
퍼엉!
르우벤의 반문과 동시에 흑연(黑煙)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감각을 교란시키는 마력의 파장이 사위를 휩쓸었다.
“크흐흐! 다음에 보자!”
연기 속에서 들려오는 괴소 섞인 목소리. 르우벤이 곧바로 화염 실린 강력한 권격으로 연기를 걷어냈지만, 그 자리엔 시체가 된 검은 로브인 몇이 목숨을 잃은 채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젠장! 원군이 온 건가!”
르우벤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가 한쪽에서 허둥지둥 달아나고 있는 로브인의 무리를 향해 거칠게 달려들어 마구잡이로 권격을 날렸다.
“그 드워프 자식은 어디로 내뺀 거냐!”
“크윽! 그냥 죽여라!”
르우벤의 윽박지름에도 로브인들은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내 그 모두가 차디찬 대지 위로 그 몸을 뉘었다.
“빌어먹을!”
원통한 표정의 르우벤이 옆의 담벼락에 아무렇게나 주먹을 내질렀다. 담벼락에 크게 균열이 일어났다.
그런 르우벤에게, 어쩌다 보니 도움을 받게 된 여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괜찮으신가요?”
“그놈을 놓쳐서 멘탈이 피폐해 진 것만 빼면 괜찮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리고, 정말로 감사합니다. 어떻게 보답을 드려야 할는지.”
“아니, 괜찮습니다. 저희도 그 드워프를 추적하던 와중 어쩌다 보니 돕게 된 것이니까요.”
르우벤이 고개를 저으며 답변했다.
참고로 이것은 그와 로엘이 사전에 계획한 대사였다. 그들이 여인에게 빚을 지우기 위해 위기 상황이 일어나기 전까지 의도적으로 상황을 방관했음을 감추기 위한.
“여기서 잡았어야 했는데.”
르우벤이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여인의 얼굴에도 우려의 기색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직접 피해를 입은 당사자이니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르우벤은 그런 여인의 기색을 확인하고, ‘준비했던’ 대사를 입 밖으로 꺼냈다.
“그자가 도망쳐 버렸으니 완전히 안전을 장담해 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법사이신 것 같은데, 혹시 속한 세력이나 마법을 전수해준 스승님이 계십니까?”
“스승님이 한 분 계십니다. 굉장히 강하신 분이시니 절 충분히 보호해 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 스승님께선 도시 바깥에 시약 재료를 구하러 가신 참이라서.”
“그렇다면 그분이 돌아오시기 전까진 저희와 함께 움직이도록 하시죠.”
르우벤은 빙긋, 하고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어쩐지 로엘이 연상되는 웃음이었다.
* * *
르우벤은 숙소로 삼고 있는 로엘의 상단 지부로 여인을 데려갔다. 그리곤 그녀를 밀리아가 사용하고 있는 방에 데려다주고 쉴 것을 권했다.
여인이 르우벤의 배려에 재차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르우벤은 이 정도는 별것 아니라며 가볍게 대꾸했다.
“르우벤.”
여인과 밀리아가 있는 방을 뒤로하고 나선 르우벤의 눈앞에 무면탈을 쓴 푸른 머리칼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르우벤이 곧바로 그녀에게 물었다.
“로엘은 그 드워프 노인네 잘 쫓아갔나요?”
“응. 뭐. 뒤를 쫓는 정도야 로엘에겐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니까.”
“하긴, 그 녀석과 레인의 준족은 굉장하다고 표현할 수준을 넘어섰으니.”
르우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은 잘 몰아가고 있고요?”
“그것도 순조로워.”
플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놈’은 가르본을 뜻했다.
그는 지금 현재 로엘 직속 전투팀의 위협 사격에 쫓겨 몰이를 당하는 중이었다. 가르본이 아무리 강자라지만, 그 몸 상태로는 로엘과 전투팀이 연계를 감당하는 게 불가능하리라.
“그대로 ‘기본의 현자’가 위치한 곳까지 몰리게 될 거야.”
“하하. 제 손으로 죽이지 않고 일부러 놔준 보람이 있네요. ‘끔찍이 아끼는 제자’의 위험을 전해 들은 ‘대현자’의 눈앞에 그 범인이 떡하니 나타나게 된다니. 얼마나 즐거운 상황이 벌어지게 될까.”
“요즈음 로엘을 보면 진짜 악랄함의 화신이 아닐까 싶다니까. 어떻게 매번 이런 계획을 짜내는 건지.”
"좀 아쉽긴 하네요. 그놈이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광경을 내 눈으로 직접 봤어야 하는 건데."
르우벤이 그렇게 말하며 키득키득 웃음을 흘렸다.
* * *
미래에 ‘기본의 대현자’라고 불리게 되는 노인. 프라젠 라 델타하르그.
그는 자신의 눈앞에 벌레처럼 엎드려 있는 드워프 노인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내 제자를 납치해서 간살하려 했다지? 그래, 어디 변명할 말은 있느냐.”
“흐, 흐억! 괴물 자식!”
가르본이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추하게 바닥을 기었다. 그는 맹세코 ‘그분’ 이외에 다른 자에게서 이런 압박감을 받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만한 힘을 가지고서도 어지간히 할 일이 없었나 보지? 듣기로 너와 네가 속한 조직이 저지른 일이 보통 악독한 것이 아니더군.”
“시끄럽다!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않느냐!”
“내 제자를 건드리려 한 놈이 할 소리가 아니군.”
“그러니까 모르고 한 일이라니까! 그년이 당신 같은 괴물의 제자인 줄 내가 어떻게 알아!”
“그년?”
노인, 프라젠이 인상을 험악하게 구겼다. 가르본이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화염구(Fire ball)>.
프라젠이 마법을 발현했다.
“자, 잠깐! 잠깐!”
그러자 가르본이 기겁해서 손을 내저었다. 그저 기초적인 마법에 불과한 <화염구>의 발현에 대한 반응으로는 지나치게 보일 정도로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미, 미친!”
안 그래도 일반적인 화염구에 비해선 크기가 거대했던 마법. 그것이 점점 크기를 불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흐악! 으아아!”
마치 태양이 떨어져 내린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거대한 불의 구체가, 공중에 둥둥 뜬 채 그 압도적인 위압감을 주위에 퍼뜨렸다. 그 압도적인 힘의 행사에 가르본이 땀을 줄줄 흘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과연. 대현자의 칭호를 얻게 되는 인물이라기에 대체 어떤 자인가 했더니.’
멀리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로엘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저런 거였나.’
대충 시선으로만 훑어봐도 직경 일백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일개 개인이 펼친 마법임이 믿기지 않는 초대형 화염구.
단순히 그 크기만 거대한 것이 아니라 그 위력마저 크기에 비례하는 수준임이 여실히 느껴졌다. 실로 압도적인 힘의 결정체가,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