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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화. 펜타트리움 아카데미(2) (153/249)

 153화. 펜타트리움 아카데미(2)

 마탑으로 되돌아온 일행은 평화로운 한때를 보냈다. 여유로운 시간은 아니었으나 별다른 트러블은 없었으니 평화로웠다고 봐도 좋으리라.

 밀리아는 레인에게서 무공을 전수받았다. 남만야수궁(南蠻野獸宮)의 무공을.

 반면 르우벤의 경우엔 무공의 노선을 틀었다. 본래는 로엘의 것과 같은 생사공을 익히기로 했었는데, 그것을 그만두고 마공을 익히기로 했다.

 이유는 여럿 있었지만 역시 ‘마검’을 습득한 탓이었다. 마검을 능숙하게 다루기 위해선 그 기반이 되는 기운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물론 마공은 굉장히 위험한 무공이었다. 그렇지만 르우벤은 몸에 새겨진 특수한 문신을 통해 위험도를 상당 수준까지 낮출 수 있었다.

 애초에 마검을 소지하고 있다는 시점에서 이미 위험도는 최대치에 다다른 상태였다. 마공에 좀먹힐 것을 걱정할 시간에 마검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노력해야 했다.

 그렇게, 르우벤은 천마신공(天魔神功)을 전수받았다.

 레인은 이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르우벤에게서 수십 점에 달하는 아티펙트를 받아냈다.

 마탑으로부터 되돌려받은 공간검 ‘비기스트’. 일전에 대련에서 선보였던 사슬낫. 거기에 더해 본인 취향에 맞는 성능이 담긴 각종 병장기까지. 그 모두를 흑아를 이용해 보관시켰다.

 제1, 2 유적을 공략하며 얻어낸 유물의 대부분은 르우벤이 차지했다.

 애초에 그의 지분이 높다는 점도 있었고, 레인이 지분을 포기했다는 점도 있었다. 그러나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인물들이 쓸 만한 물건이 그다지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제1 유적에서 획득한, 영웅들의 무예가 담긴 무술서와 무술 시연이 담긴 메모리 크리스탈은 레인이 챙겼다. 제2 유적에서 습득한 게르반의 마법서와 연구 일지, 그리고 실험 자료들은 로엘에게 돌아갔고.

 그리고 제3 유적에서 얻어낸 유물의 상당량을 로엘이 가져갔다. 로엘과 르우벤이 챙겨가고 남은 것들은 공용으로 쓰기에 좋은 아티펙트들이라 모두가 공평하게 나눠 가졌다.

 제3 유적에서 얻어낸 유물 중 가장 유용한 것을 꼽으라면 역시 십자검 형태를 한 귀걸이 수십 점이었다.

 무려 같은 귀걸이를 착용한 이들끼리 통신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물건.

 솔직히 로엘은 이것의 가치를 르우벤이 가진 최상위 아티펙트보다도 높게 보았다. 거리의 제약을 받지 않는 물건이기에 유용성이 무궁무진했다.

 수십 개에 달하는 귀걸이가 모든 각성자들과 그 동료들에게 하나씩 지급되고, 나머지는 로엘의 아공간에 보관되었다.

 그리고 몇 가지 소소한 일이 있었다.

 플로라와 로엘이 결국 연인 관계가 되었다. 함께 다니다 보니 좋은 감정이 싹튼 것이다.

 중간에 플로라의 성격 변화에 대한 부분이 들통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로엘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바뀐 것으로 따지자면 자신 쪽이 더하다며.

 그 때문에 루나가 한동안 개인 작업실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다. 어쩐 일인지 엘리제 파르테인 또한 한동안 수련실에 박혀 두문불출했다.

 그리고 레인의 제자인 셀린이 성년의 나이에 다다름과 동시에 술꾼의 길로 들어섰다. 술이 든 호리병을 옆구리에서 매달지 않고 다니는 날이 없어지게 되었다.

 참고로 호리병은 레인에게서 받아낸 물건이었다. 그가 이전에 술맛 좀 내겠다고 직접 제작한 물건.

 호리병을 받아낸 정황은 이러했다.

 전생에 쓰던 물건을 떠올리고 레인이 로엘에게 부탁해 얻어낸 호리병박. 레인은 그것의 속을 파낸 뒤 찌고 말려 호리병을 제작했다. 그런데 그가 그 병으로 술을 들이켜는 것을 빤히 지켜보던 셀린이 툭 하고 말했다.

[사부. 그거 내 취향에 맞는 것 같아. 나 줘.]

[이게? 뭐, 그렇다면야. 하나 만들어 줄게.]

[아니. 그걸로 줘.]

[이거 내가 쓰던 건데.]

[상관없어.]

 셀린은 그렇게 받아낸 호리병에 곧바로 보존 처리를 마쳤다. 오랫동안 사용이 가능하도록. 그렇게 항상 호리병을 들고 다니게 된 그녀였다.

 참고로 그녀가 좋아하는 술은 과일주였다. 그것도 굉장히 비싼 종류의. 비용이야 로엘이 후원자인 덕분에 문제없었지만, 호리병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종류의 주류였다.

 그리고 흑아가 실체를 가지게 되었다.

 정확히는 일종의 분신체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귀여운 새끼 고양이의 모습을 한.

 흑아는 최근 크게 성장하면서 필요로 하는 식사량 또한 상당히 늘어났다. 이전과는 비교되질 않는 수준.

 레인으로선 그것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그것은 금전이 풍족하다고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로엘처럼 아공간이라도 보유하고 있지 않고서야.

 흑아가 아공간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지만 음식물에 관해서 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음식물은 넣으면 그냥 없어져 버렸다. 애초에 보관용량한계가 그리 크지 않기도 했고.

 그냥 두면 흑아를 먹이기 위해서만 해도 행동에 제약이 걸릴 판국. 그렇기에 레인은 흑아에게 방도가 없겠냐고 물었고, 흑아는 적당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 방법이란, 그다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 조그마한 분신체를 생성해 둔 다음 본체를 가수면 상태에 빠뜨리는 것. 그러니까 일종의 겨울잠을 자는 것이었다.

 이 방법이면 흑아의 식사량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대량의 식료를 공급하는 일은 주기적으로 한 번씩만 해 주면 되니까.

 그러다 전투 상황이 되면 분신체가 그림자로 되돌아가 본체를 깨우는 식이었다. 상당히 효율적인 방식. 레인이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별달리 대단한 일은 없었지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각성자 세 사람이 입학시험을 치를 날짜가 다가왔다.

 * * *

“이게 뭐야.”

 레인이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확인하고 인상을 사정없이 찌푸렸다. 뒤쪽에서 레이나가 입가를 가리고 숨죽여 웃었다. 셀린과 르우벤의 경우엔 아예 폭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푸흡. 잘 어울리네.”

 로엘이 엄격,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레인이 웃기지 말라는 듯 눈을 부라렸다.

“너, 내 외견을 평범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실 네가 웃고 즐기는 게 목적이었던 거지? 아무리 봐도 그런 것 같은데.”

 코에 떨어질 듯 걸쳐진 안경을 추켜올리며, 레인이 그렇게 말했다. 셀린이 자지러지는 웃음을 토해냈다.

 현재 레인의 모습은 평소의 그와는 완전히 달랐다.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보기만 해도 재미없는 기운을 뿌리는 모범생 같다고 할까.

 전체적으로 헐렁헐렁한 옷가지에 어디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동그랗고 커다란 안경. 최소한의 정리도 되지 않아 부스스하게 늘어진 머리칼. 평소의 날카로운 분위기는 조금도 느껴지질 않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착용한 안경은 르우벤에게 받은 인상을 흐리게 만드는 아티펙트였다. 그 누구도 평소의 레인과 현재의 레인을 동일 인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외견이 밍숭맹숭해졌다.

 레이나는 겉으로 난처한 웃음을 흘리면서도 내심 속으로 안도했다. 그 빛나는 외모 때문에 아카데미에 다니는 동안 온갖 여학생들이 꼬여 들지 않을까 걱정했건만, 부질없는 걱정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당연하지.”

 로엘이 가차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인이 이런 식으로 외견을 변화시키고 아카데미에 입학해야 하는 데에는 엄연히 이유가 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본인의 성격.

 아카데미는 표면상으론 학생들의 평등이 보장되는 공간이지만,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았다.

 남성과 여성. 부자와 그렇지 못한 자. 귀족과 평민. 성적 상위권과 성적 하위권. 잘생긴 자와 못생긴 자.

 사실상 온갖 갈등 요소가 다 모인 곳이 바로 이 세계의 아카데미였다. 지구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리고 그 갈등으로 인해 드러나는 결과 또한 지구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뭐가 어쨌든, 이 세계는 신분제를 비롯한 온갖 차별이 횡행하는 곳이니까.

 레인의 외모는 너무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야 시골 영지에서만 거주해왔으니 그로 인한 문제를 거의 경험하지 못했겠지만, 동년배들이 넘쳐나는 아카데미에서도 그렇지는 않을 터.

 작든 크든, 호의를 받든 질투를 받든 분명히 트러블이 일어날 터였다. 그리고 레인은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절대 원만하게 넘어가질 못하는 성격이었고.

‘잘못했다간 참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물론 레인이 아닌 레인과 시비가 붙는 학생 쪽이 재앙을 맞이한다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설마 아무리 성격이 나쁘대도 그러기야 하겠어?’ 라며 넘어가겠지만, 그 대상이 레인이었기에 도저히 적당히 믿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런 연유로 일행은 애초부터 트러블의 원인이 될 법한 요인을 사전에 제거해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지금의 모습이었다.

“야. 진짜로 네가 사용한 것과 같은 아티펙트는 또 없는 거냐.”

“안타깝지만 크흡! 없는데.”

“웃지 마, 좀.”

 모습을 변화시킨 것은 레인뿐이 아니었다. 르우벤 또한 완전히 다른 사람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가 모습을 바꾼 이유는 바로 ‘프레퍼’였다.

 이전에 프레퍼에 대한 이야기 중 ‘알테라 시 침공’에 관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레인과 르우벤이 입학시험을 치를 아카데미가 위치한 곳이 바로 알테라 시였다.

 그리고 그보다도 더 큰 문제는, 프레퍼의 공작으로 인한 ‘알테라 시 침공’이 원래의 역사보다 훨씬 빨리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도록 유도한 것은 현 제국 황실이었고.

 로엘에게서 그 사실을 전해 들은 레인, 르우벤, 카트란은 프레퍼에게 역습을 가하는 일에 힘을 보태기로 약속했다. 르우벤이 변장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프레퍼가 아무리 점조직이고 뒷세계 놈들이래도 그 구성원 중 머리 좀 굴리는 놈은 분명 존재할 터였다. 그렇다면 알테라 시를 침공하기 이전에 미리 그곳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한 세작을 파견할 터.

 그 세작이 숨어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아카데미였다. 제국 전역에서 몰려든 인재들이 밀집된 곳이니만큼 당연했다.

 그런데 학생들 사이에 이전에 그들의 간부와 크게 충돌한 르우벤이 끼어있고, 세작이 그것을 발견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나마 레인의 경우엔 당시 겨우 초일류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들이 그리 크게 경각심을 가질 정도의 활약도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는 마법사들을 좀 족친 정도. 그 정도라면 정보전달이 시원찮은 점조직 상층부에까지 위험인물로 보고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반면 르우벤의 경우엔 무려 초인의 영역에 다다른 프레퍼의 최상위 간부를 반죽음으로 만든 이력이 있었다. 심지어 상대를 놓치기까지. 경계 대상이 되기 위한 조건은 죄다 충족시킨 셈이었다.

 그렇기에 수월하게 놈들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선 르우벤의 존재를 숨길 필요성이 있었다. 놈들에게 쓸데없는 경각심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때문에 르우벤의 경우엔 아티펙트를 이용해 아예 얼굴을 교체해버린 상태였다. 약간 노안인, 평범한 인상을 지닌 사내의 모습으로.

 그의 경우엔 적어도 레인만큼 우스꽝스러운 느낌은 나지 않았다. 그저 화려하기 짝이 없었던 모습이 많이 수수해졌을 뿐.

 당연하게도 레인은 그것을 부러워했다. 그 자신의 모습과 비교해 훨씬 낫다고 여긴 것이다.

“설마 가지고 있으면서 일부러 없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진짜야. 신께 맹세할게.”

“너 불신자잖아.”

“들켰다.”

 르우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런 와중 카트란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기사학부에 지원했다. 그리고 기사학부는 옷차림에 제한이 없는 행정학부와 달리 교복이 정해져 있었다.

 현재 그는 푸른색 바탕에 황금색 수실이 들어간 제복을 멋스럽게 차려입고 있었다. 물론 변장은 하지 않았다. 그의 경우엔 지금까지 프레퍼와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기에 딱히 거리낄 것도 없었다.

 참고로 기사학부는 시험 일자가 행정학부보다 더 빨랐다. 그렇기에 카트란은 이미 시험을 마치고 합격 판정까지 받아둔 상태였다.

“잘 어울리네.”

“그런가? 난 영 어색하기만 해서.”

“하긴, 너도 용병 출신이니.”

 레인이 그런 카트란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별다른 감정이 엿보이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로엘은 그가 내심 카트란의 세련된 복장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학창 생활이 기대되지? 앞으로 네 생활 범위는 아카데미, 숙소, 도서관뿐이다. 내가 이렇게 바쁜데 네가 여유롭게 청춘 따위를 구가할 수 있을 것 같았냐.”

 로엘이 킬킬 웃으며 레인을 놀렸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이 이런 의미였군.”

 레인이 체념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

“생각보다 쉬웠네.”

“생각보다 어려웠네.”

 레인과 르우벤이 시험장을 나서며 동시에 뱉어낸 말이었다. 두 사람의 평가가 엇갈렸다.

 르우벤이 뺨을 살짝 경련시키며 물었다.

“쉬웠다고?”

“그게 어려웠다고?”

 똑같은 교육을 받은 두 사람이다. 그러나 시험을 치른 감상이 판이하게 달랐다. 르우벤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이래서 머리 좋은 놈들은!”

“…….”

 잘못한 것도 없는데 불평을 듣게 된 레인이었다. 그가 묘한 표정을 지은 채 이전에 로엘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입학하게 되면, 적어도 전교 10위권 내에 들 각오로 공부해라, 너.]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당연하지. 네가 만들어야 하는 세력은 무려 ‘검가(劍家)’라고. 아무리 그 규모가 대단할지라도 결국 ‘용병대’를 창설할 예정인 르우벤과는 사정이 달라.]

[…….]

 사실 레인이 그동안 그다지 관심도 없는 학문 습득에 그렇게 열을 올린 것은 이런 이유도 있었다.

 그는 일단 싫더라도 한 번 결심한 일은 끝까지 파고드는 성격이었다. 그 ‘결심’을 하게 만들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잠시 르우벤을 빤히 응시하던 레인이 툭 하고 내뱉었다.

“넌 편해서 좋겠다.”

“뭔 소리야?”

 당연한 말이지만, 르우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반문에 레인은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며칠 뒤, 두 사람의 시험 결과가 통보되었다. 두 사람 모두 무사히 합격했다. 르우벤은 조금 아슬아슬하게 붙었고, 레인의 경우엔 나름 상위권의 성적으로 여유롭게 붙었다.

 그날, 일행은 세 각성자의 무사 합격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치킨 파티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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